‘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에 입시운영 난맥상부터 바로잡아야’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최근 공개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의 과학영재 발굴육성전략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선보인 과기부의 과학영재 발굴육성전략의 골자는 영재학교 2개교 신설과 영재학교 2년제 조기졸업제도 도입이다. 과기부는 윤석열 정부의 과학인재 양성 공약을 적극적으로 실현/구체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지만 현재 ‘의대 열풍’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영재학교 체제에 대한 개편 없이 학교 신설에 조기졸업 등 지원만 늘릴 경우 아예 영재학교는 의대 진출의 통로로 굳어지면서 ‘의대 열풍’의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영재학교 추가 신설과 조기졸업 도입이 입시 난맥상을 보여온 영재학교의 사기를 올려주는 대책일 뿐 ‘의대 쏠림’으로 집중된 과학인재들의 ‘탈 이공계 현상’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영재학교의 ‘탈 이공계 현상’의 근본 원인을 표면적으로는 ‘의대 열풍’이지만 수학 중심의 통합형 수능과 이탈이 손쉬운 정시40% 체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고 영재학교 인재들이 재수 반수를 통해 의대로 이탈 가능한 것은 수시이월 포함하면 50%에 육박하는 정시 문호 확대라는 인식이다. 여기에 수학 한 줄 세우기의 통합형 수능의 문제점과 약대까지 포함해 커진 ‘의대 열풍’이 재수 반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영재학교를 확대하거나 과기원 조기 진학으로 붙들어 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재수 반수를 통해 의대 가는 것이 가능한 정시 확대 체제와 수학 중심의 통합수능 아래에선 잠시 붙들어 두는 착시 효과만 예상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정시40% 유지 발언을 고수하는 가운데 대통령의 범부처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과기부가 ‘의대 열풍’ 대책의 일환으로 나온 듯한 영재학교 확대나 조기졸업 허용은 오히려 영재학교의 ‘의대’열풍’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우려가 크다. 지역별 나눠먹기’ 식으로 접근하는 영재학교 확대보다는 설립취지에 맞는 운영을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교육부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못’인 정시40%를 폐기하는 한편 통합수능의 문제도 다듬어야 한다. 과기부는 현재 난맥상을 보이는 영재학교 입시 운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요강 공개 시점도 너무 늦는 데다 하기로 했으면 수요자가 활용할 수 있게 기출문제의 공개 시점과 공개 수준을 통일해야 한다. 심지어 경쟁률 공개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질 만큼 영재학교 입시는 문제투성이다. 사교육 유발이 가장 많은 입시를 운영하는 데다 입시 운영방식도 제멋대로여서 수요자 친화 시대에 가장 행정편의적인 입시를 운영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과기부는 지난달 28일 제14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미래인재특별위원회를 열고, ‘과학영재 발굴육성 전략(안)’을 심의/의결했다. 전략안을 살펴보면 영재학교의 2년제 조기졸업 제도를 도입한다. 기존 과고, 일반고 학생들은 2년 조기졸업 후 대학 진학이 가능했지만, 영재학교 학생들은 졸업학점제를 운용해 조기진학이 불가능했다. 우선 한국영재 학생 대상 4개 과기원(KAIST/지스트/DGIST/UNIST)에 조기진학 트랙을 시범 도입하고, 교육 규정 특례 부여가 가능한 과학영재교육 특례자 제도 운영을 활성화하는 등 과학영재의 교육적 속성에 대응하는 속진 진로를 개척한다.

 

<영재학교 조기졸업.. “‘의대 열풍’ 불쏘기개 만드나”>
향후 영재학교 학생들도 과고와 같이 2년제 조기졸업을 통해 KAIST 등 과기원에 조기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교육계는 오히려 영재학교의 ‘의대진학 열풍’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이번 과기부의 과학인재 양성 대책 중 하나로 포함된 영재학교 2년제 조기졸업 허용은 대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안으로 보인다. 통합수능에서 수학에 강점을 갖는 과고 학생들의 경우 2년 조기졸업 후 재수 등을 통해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재학교라고 이 같은 ‘의대 속진’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영재학교든 과고든 재수 후 의대로 진학한다고 하면 사실상 이를 제재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이공계 우수인재의 ‘의대 쏠림’을 막으려면 과고와 영재학교의 의학계열 진학을 제재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재학교/과고 출신의 의약계열 진학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를 막는 대책은 전무하다. 실제 지난해 4월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2022 정시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의약계열 지원자, 합격자, 등록자’ 자료에 의해 2022정시에서 서울대 의대 등록자의 30%가 영재학교/과고 출신이라는 충격적 결과가 공개됐다. 수시에서도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의약계열 수시 합격자의 21.9%는 영재학교/과고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대 의예과는 최초 합격자 98명 중 34명이 영재학교/과고 출신으로 그 비율이 34.7%나 된다. 고대 의대는 29.4%, 서울대 의예는 4.7%가 영재학교/과고 출신이다.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에게 ‘의대 선호 현상’은 이미 일반화한 지 오래다. 앞서 강 의원은 영재학교/과고 졸업생의 의약계열 대학 진학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계류 중인 상태다. 

일각에서는 조기졸업 트랙 시범도입을 한국영재부터 시행하는 것에도 의문을 표한다. 한국영재는 8개 영재학교 중 ‘깜깜이 입시’의 대표주자로 꼽히는데, 이번 영재학교 조기졸업 운영에 관한 내용도 ‘깜깜이’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은 영재학교 조기졸업 도입으로 실제 과학인재를 양성했는지, 의대로 빠졌는지 등의 정보는 가려진 채 조기졸업의 정책효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영재는 2021년 4월 청와대비서관을 지낸 과기부 관료 출신 최종배 교장이 부임한 이후 수요자를 무시하는 ‘깜깜이 입시’ 양상이 심화됐다. 특히 2022학년은 영재학교 간 중복지원 금지, 지역인재 선발, 의대 진학 제재방안 강화 등의 조치가 처음 시행돼 ‘실질 성적표’인 경쟁률 공개를 두고 부담이 있는 상황이었다. 7개교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경쟁률을 공개했지만, 한국영재만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비공개 방침을 전했다. 당시 2022학년 입시를 치르는 수요자는 물론 이후 입시를 치를 수요자를 무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첫 공개된 영재학교의 2단계 기출문제 역시 한국영재가 가장 늦게 공개해 ‘행정편의주의적’ 입시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재학교가 2단계 기출문제를 공개하는 이유는 영재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 학습을 가능케 하기 위한 목적인데, 한국영재는 2단계 기출문제를 5월 공개하고 7월 2단계 면접이 진행되면서 수요자 배려 없는 ‘보여주기 식’ 행정처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광주, 충북 AI영재학교 2개 신설.. ‘지역별 나눠먹기보다 체제 개편부터 해야’>
이번 대책에는 광주, 충북 지역에 영재학교를 2곳 더 신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27년까지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 GIST)부설 인공지능(AI) 영재학교, 충북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AI·바이오 영재학교를 더 만들어 영재학교는 기존 8개교에서 10개교로 확대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교육계는 영재학교가 더 늘어나게 되면 고교 입시경쟁이 치열해져 사교육이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영재학교의 입시는 지필고사와 창의력 캠프전형까지 포함해 ‘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10월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23학년 영재학교 합격예정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영재학교 합격예정자는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중도 높다. 영재학교를 희망하는 중3 학생 중 월평균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62.5%이며, 이 중 3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25%에 이른다. 일반고를 희망하는 중3 학생 중 14.8%만이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강득구 의원은 “고액 사교육비 지출의 원인은 지필고사로 치러지는 영재학교의 입학시험에 있다”며 “사교육을 통해 정답을 요구하는 유형화된 문제풀이 과정은 타고난 영재성을 발굴해 이공계 인재로 양성한다는 영재교육의 취지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을 통과한 영재학교 학생들의 익숙해진 사교육 관성이 의대 진학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수학 한 줄 세우기’ 식 통합수능 체제에서 수학 과학 최우수 인재로 구분되는 영재학교 학생들은 최대 선발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 진학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영재학교 개수를 늘리고 조기진학까지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영재학교의 의대행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광주에 영재학교인 광주과고가 있고, 충북에도 이미 과고인 충북과고가 있는데 영재학교를 한 곳씩 더 만들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정치적 나눠먹기’라는 비판도 있다. 2022학년 기준 8개 영재학교 학생 수는 2300여 명이고,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영재교육의 일환으로 운영해오고 있던 과고는 전국 20개이며, 전체 학생 수는 4900여 명이다. 충북과 광주의 AI영재고가 합류하면 영재학교는 총 10개교가 된다. 

국내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든 영재교육을 확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학부모는 “이미 설립된 과고와 영재학교부터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해야 한다”며 "AI 역량과 바이오 융합 역량이 필요하다면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과고와 영재학교에서 해당 과목의 시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인 이유로 불필요하게 예산이 낭비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과기부 ‘과학영재 발굴육성 전략안’ 확정>
과기부가 지난달 28일 확정한 ‘과학영재 발굴육성 전략(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스템 개선 △정책 영역 확장 △육성 기반 강화 등 3개 방향을 중심으로 전략을 추진한다. 우선 부산 한국영재 학생을 대상으로 4개 과기원(KAIST/지스트/DGIST/UNIST)에 조기 진학하는 트랙을 시범 도입한다. 뿐만 아니라, 영재학교 학생부에도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수상 등 영재교육 이력을 온전히 기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과기원 입학전형에서 그 실적을 반영할 수 있게 개선한다. 영재 교육 대상자를 선발할 때도, 대학부설 과학영재교육원 등에서 먼저 교육받은 후 교사 관찰 등을 통해 우수 학생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확대하고, 지필 고사 없이 관찰과 면접 중심으로 연중 수시 선발하는 제도를 확대한다.

기존 8개 영재학교에 더해, 광주 GIST 부설 AI 영재학교와 충북 KAIST 부설 AI바이오 영재학교 두 곳도 2027년 개교를 목표로 신설한다. AI영재학교 두 곳이 신설되면 영재학교는 현재 경기과고 광주과고 대구과고 대전과고 서울과고 세종영재 인천영재 한국영재 8개교 체제에서 10개교 체제로 확대된다. 

이밖에 해외 과학 교육 기관 등과 협력, 학생들이 직접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행해 보는 과학영재 창의연구(R&E)를 글로벌로 확대하는 등 해외 교류를 지원한다. 올해 설립 예정인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에서 중고생 및 대학생 수학 영재를 양성하고, 과학영재와 전문가 만남을 마련하는 등 과학영재 양성 생태계를 조성한다. 

기존 대학교 학부생에게만 지원돼 왔던 대통령 과학장학금에 더해 대학원생 대상으로도 대통령 과학장학금도 신설한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과학기술 전문 사관 제도는 기존 학사생 25명에 더해 석사생 25명까지 확대하고, 과학영재교육 페스티벌 확대 운영, 우수사례 표창 등 성과 관리 기반도 마련하는 등 고등교육단계에서도 과학영재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과기부는 이번 방안이 윤석열 정부의 과학인재 양성 공약을 적극적으로 실현/구체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1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든 정책 중 최우선 순위에 과학기술을 두고,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보상시스템 제공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앞으로도 과학기술/디지털 중심 시대 선도 부처로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방향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과학기술/디지털 인재 양성 정책 발전/고도화에 방점을 두고 다각적 정책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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