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지 들고 학원으로 가라는 수준”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영재학교의 입학전형 영향평가(이하 영향평가)가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올해 역시 실효성이 없었다는 평가다. 영향평가의 일환으로 8개 영재학교가 지난해 2단계 기출문제를 홈페이지에 공지했으나 모두 출제의도 문제분석 등의 해설 없이 단순히 ‘문제지’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는 사교육 의존도 경감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무색하게 단순 문제만 보고 풀이에 어려움을 느낀 학생은 결국 사교육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정해진 답이 없고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열린 문제’ 방식으로 출제됐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여러 개의 예시 답안이나 출제의도, 최소 문제풀이의 가이드 라인 정도는 제시해야 했다”고 밝혔다. 

공개 시점도 아쉬움이 크다는 반응이다. 발표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아 학교별 발표일정이 들쭉날쭉한 데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먼저 기출문제를 공개한 곳은 대구과고(2월28일)로 마지막으로 공개한 한국영재(4월12일)와 한 달 반가량 차이가 난다. 지난해에 5월2일에서야 모든 영재학교의 기출문제가 공개됐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마지막 공개시점이 소폭 앞당겨지긴 했으나, 수험생이 지필고사 대비 시간을 확보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영재학교의 영향평가 공개 시점은 애초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서부터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내년 입학요강 발표 전까지’ 고교 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영재학교/과고 개선방안에 담긴 영재학교/과고 영향평가 보고서는 다음해 모집요강 발표 전까지 공개토록 하고 있다. 다만 공개일정이나 공개방식 등은 특별히 정해진 게 없고 홈페이지에 공개하거나 모집요강에 포함해 공개하는 등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에 따라 2025학년부터는 영재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출문제를 2월 말까지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영재학교의 영향평가와 맥을 같이 하는 대학의 선행학습 영향평가 보고서(이하 선행보고서)를 살펴보면 수준과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로 9년 차를 맞은 대학의 선행보고서는 대학별 고사의 기출문제와 해설, 가이드 라인, 출제의도 채점기준 모범답안 등 상세한 정보를 담아 교과과정 내 운영을 유도하고 수험생의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유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험생에게 대학의 ‘기출문제집’ 격으로 활용되는 정도다. 한 교육전문가는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 형식은 상당히 불친절하다. 정보가 부족한 수험생에게 또다시 기출문제를 들고 사교육 시장으로 가라는 얘기를 하는 듯하다. 그간 ‘깜깜이’로 운영해온 영재학교 전형의 기출문제를 공개한 데는 사교육 의존을 줄이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오히려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단순히 ‘문제지’만 공개한 영재학교의 영향평가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출제의도 근거 등을 명시한 대학의 선행보고서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좌)서울과고가 공개한 기출문제 (우)서울대가 공개한 기출문제
단순히 ‘문제지’만 공개한 영재학교의 영향평가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출제의도 근거 등을 명시한 대학의 선행보고서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좌)서울과고가 공개한 기출문제 (우)서울대가 공개한 기출문제

 

<‘사교육 절감’ 영재학교 영향평가.. 오히려 ‘사교육 활성화’ 우려>
‘영재학교 입학전형 영향평가’는 2020년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영재학교/과고 입학전형 개선방안’에 담긴 내용이다. 개선방안으로 ‘영재학교 중복지원 금지’ ‘지역인재 선발’ 등 굵직한 내용들이 발표됐다. 그중 ‘영재학교 입학전형 영향평가’를 의무화해 전년 기출문제를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쉽게 말해 3단계 전형으로 운영되는 영재학교 입시에서 2,3단계 기출문제를 공개하도록 정한 것이다.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유발 정도를 점검해 입학전형을 개선하고, 입학 관련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확인,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고는 이미 2011학년부터 영향평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영재학교는 그간 입학전형에서 선행학습과정 문제가 출제되는 등 ‘고입 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위 교육과정 문제 출제, 선다형이나 단답형 위주의 지식평가, 과다한 문항 수 등으로 인해 사전 시험 준비가 필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전형구조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이 전형의 세부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증폭돼 왔다. 실제 지난해 영재학교를 희망하는 중3 학생 중 월평균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62.5%이며, 이 중 3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25%에 이르렀다. 일반고를 희망하는 중3 학생 중 14.8%만이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기출문제 공개로 기존 ‘깜깜이’ 입시에선 벗어났지만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한 교육관계자는 “영재학교 출범 20년 차를 맞이해 그간 비공개였던 기출문제를 의무 공개하도록 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선행학습 출제 점검을 넘어 수험생의 사교육비 경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보고서를 보면 문제만 있어서 해당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22학년 영재학교/과고의 고입전형의 사교육 쏠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단계 전형에서는 영재학교의 지필평가는 그대로 유지하되, 전년부터 평가 문항을 개선해 창의성/문제해결력 평가를 위해 열린 문제 중심, 문제풀이 과정에 대한 평가를 확대했다. 지난해부터 정해진 답이 없고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열린 문제’ 방식으로 출제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개의 예시 답안이나, 출제의도, 최소 문제풀이의 가이드 라인 정도는 제시하는 노력까지 이어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대학 선행보고서와 비교.. 출제의도 예시답안 포함 ‘기출문제집’>
영재학교의 영향평가가 나아가야 할 목표점은 대학의 선행보고서다. 선행보고서는 논술을 준비 중인 수험생에게 ‘기출문제집’ 격으로도 활용된다. 전년 논술 기출문제와 출제의도 예시답안 등을 안내하고 있어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특히 출제주체인 대학이 직접 내놓는 자료라는 점에서 출제자의 의도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대학별 출제경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대학의 기출을 복원해 각기 다른 분석을 내놓는 사교육 교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뢰도를 지닌다. 

선행보고서는 크게 △선행학습영향평가 대상 문항 △선행학습영향평가 진행절차/방법 △고교 교육과정 범위/수준 준수 노력 △문항분석결과 요약 △대학입학전형 반영계획 및 개선 노력 △부록(대학별 고사 문항카드) 등으로 구성된다. 수험생이 참고할 만한 항목은 주로 ‘부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 출제의도 출제근거 문제해설 채점기준 예시답안 순으로 문제를 분석해 소개하고 있다. 올해 31일 일제히 공개된 선행보고서 역시 상세한 분석 내용을 담고 있어 논구술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전형을 대비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됐다. 

대학이 선행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첫 보고서는 분량도 일정하지 않아 형식적 대응에 그쳤으나 지난해부터 보고서 공개 수준은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영향평가가 시행된 이후 논술의 수준과 포맷도 공교육 정상화의 취지에 맞게 변화했다. 보고서 발표 기한도 정해져 있어 매년 3월31일까지 대학 홈페이지에 게재토록 시행령으로 강제하고 있다. 

반면 시행 2년 차인 영재학교 영향평가는 공개방식은 물론이고, 공개일자도 정해져 있지 않아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대학의 선행보고서처럼 공개방식이나 일정 등을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올해 각 영재학교의 2단계 기출문제 공개일정은 대구과고 2월28일, 경기과고 3월1일, 대전과고 3월17일, 인천영재 3월29일, 서울과고 4월10일, 한국영재 4월12일 등으로 제각각인 데다 학교별 편차도 크다.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다는 지적도 있다. 영재학교 입시일정은 4월 말에서 5월 초 전형요강을 공개하고 5월 말에서 6월 초에 곧바로 원서접수가 시작된다. 2단계 전형도 7월 초에 치른다. 불과 2개월 만에 전형요강 파악과 지필고사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고교유형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영재학교 다음으로 전기고 입시를 시행하는 과고의 경우 5월 초 모집요강 공개를 시작으로 원서접수는 9월 초 시작한다. 대학 입시전형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대입의 경우 4년예고제에 따라 4년 전 전체적인 큰 틀을 제시하고, 대학은 1년 전 전형계획을 통해 내년 입시전형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공개한다. 그리고 5월 초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한 뒤 9월 초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논술이나 면접 전형 등 대학별 고사는 수능 이후 치러지는 등 준비 시간이 반 년 정도로 넉넉한 셈이다.

교육관계자들은 “모든 고교유형 중 영재학교가 가장 먼저 고입을 시행하는 불리함을 감안하더라도 한 달이라는 준비기간은 너무 촉박하다. 예고제가 없는 고입은 1년 전, 최소 겨울방학에라도 전형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 일정 조율 등 전형요강 발표 시점을 앞당기기 어려운 경우 최소 영향평가 보고서라도 사전에 홈페이지에 공지해 수요자의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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