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연계 폐지 주장까지 대두.."중하위권 아예 외우는 수능특강 영어제시문"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2021수능연계 교재인 ‘EBS 수능특강 영어’의 제시문을 둘러싼 교육계의 비판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면서 틀린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EBS와 교육계에 의하면 수능특강 교재의 일부 제시문에서 대기업과 언론의 역할을 학생들이 오해할만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지역업체 활성화를 다룬 제시문에선 대기업 프랜차이즈 유통업체가 지역상권을 침체시킨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대기업의 역할과 경제주체들의 시장참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논란이 된 다른 제시문의 경우 기존 언론은 ‘미디어 권력’으로 평가하며 비판한다. 대신 대안언론을 장점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수험생들이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교재의 내용을 검증하는 시스템 자체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논란의 발원지인 EBS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이 현장 반발을 더욱 키우고 있다. 집필진의 자체검증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수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EBS는 제시문 내용이 학생들에게 그릇된 경제적 인식을 줄수 있다는 교육계의 지적을 무시하고 있다. 실제 대기업 물건 사면 소수권력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제시문은 수험생들에게 좌파 경제학자들도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듯싶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대신 지역업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현실과도 맞지 않다. 프랜차이즈 점주도 결국 소상공인이기 때문”이라며 “미디어에 대한 제시문도 마찬가지다. 대안언론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이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뉴미디어가 부상하면서 ‘가짜뉴스’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됐다. 두 제시문을 독해한 학생들은 사회교과에서 배운 내용과 틀리고,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학습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EBS는 두 제시문의 소재가 적절하고 내용적으로 흥미롭다는 감수 결과를 토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소한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EBS가 스스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교재의 내용을 수능에 연계하는 방침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고교 한 관계자는 “고3이 보는 수능연계교재의 오류는 단순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파급효과면에서 역사 교과서 논란의 전례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고3교실에서 교과서로 학습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EBS교재의 영향력은 고교현장에서 막강하다. 다른 교육적 지원이 어려운 환경의 소외지역이나 지방 고교에선 고3 내내 EBS수능연계 교재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과목이 영어라는 점도 심각하다. 특히 중하위권에선 영어과목은 EBS제시문을 암기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교재 내용의 잘잘못을 떠나 그대로 외우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번 문제제기가 2021수능에 연계되는 EBS 수능특강에서 제기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보통 고3 수험생들이 집중적으로 풀게 되는 EBS교재는 기출문제집을 포함해 9개다. 이 가운데 수능 연계교재는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의 2개뿐이다. 정확한 판매량이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1월 발행된 이후 50만명에 달하는 수험생 가운데 연계교재인 수능특강을 구입하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애초 꼼꼼하게 확인해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걸러내고 학생들의 오해가 없도록 했어야 한다. 학생들이 이미 교재를 통해 학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터져나온 것은 치명적이다. 향후 정시확대가 지속되는 만큼 교재의 신뢰상실도 문제지만 EBS의 대응방식은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할수 밖에 없다. 향후 50%로 축소예정이지만 안일한 인식과 대응이라면 EBS의 수능연계가 유지될 필요가 있겠냐는 근본적인 의문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2021수능연계 교재인 ‘EBS 수능특강 영어’ 제시문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EBS와 교육계에 의하면 수능특강 교재의 일부 내용에서 대기업과 기존 언론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2021수능연계 교재인 ‘EBS 수능특강 영어’의 제시문을 둘러싼 교육계의 비판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면서 틀린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기업 불신’ 드러난 제시문.. ‘경제원리 어긋난 설명 포함’>
교육계에서 가장 논란이 큰 부분은 ‘EBS 수능특강 영어’ 교재 195쪽의 20번문항이다. 지역 업체를 살리기 위한 방법에 대한 영어 제시문을 읽고 글의 흐름에 맞는 순서를 찾아야 하는 문제다. 수험생들은 전체 내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논리적 관계를 추론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제시문에는 글쓴이의 관점에 따라 대기업의 역할과 경제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수험생들이 독해하는 과정에서 오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제시문에선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업체를 대립시키고 있는 글쓴이 논리 전개방식이 문제로 꼽힌다. 제시문의 첫 문장에서 글쓴이는 “대기업으로부터 물건을 살 때 여러분은 소수의 수중에 있는 부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 기업이 수입의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더 작은 규모의 지역 업체의 부를 갈취한다는 시각이 글 속에서 드러난다.

반대로 지역 업체에 대해선 “지역의 제조업체와 서비스 제공업체에 더 많이 의존하여 일종의 상호의존적인 지역 경제망을 형성한다”며 “실제 지역업체는 일자리와 번영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낸다. 지역 업체에서 구매함으로써 여러분은 그 돈을 더 많은 지역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지역사회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지역업체들이 신용카드 회사의 수수료를 지불하기 어렵다며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보다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EBS 문제집 제시문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으로 우려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소위 대기업의 골목상권 약탈에 대한 우려와 비슷한 맥락에서 활용된 제시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단순히 글쓴이의 주장 혹은 흥미로운 관점으로 넘기기엔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잘못됐다”며 “글의 논리에 따르면 영세한 지역업체는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의 부를 증대한다. 반면 대기업은 이와 같은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가로막는 ‘방해물’로만 묘사된다. 그렇지만 소규모 지역업체와 달리 대기업은 프렌차이즈 기업의 수익 등을 통해 국가 전체로 경제효과를 파급시킨다. 일자리 유발효과도 더 크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시장 참여가 단순히 지역업체의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왜곡된 관점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편향적인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른 한 전문가는 “경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교환에 의한 상호이익’이다. 그렇지만 EBS 문제집의 제시문에선 경제주체들에 대한 자의적인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카드회사의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것이다. 수수료는 신용카드가 아니었으면 더 높아졌을 거래비용을 낮춘 것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그런데도 마치 신용카드 회사가 지역업체의 이익을 약탈하는 것처럼 제시문에서는 설명됐다”며 “프랜차이즈 기업과 지역업체를 대립시킨 것 역시 문제다. 실제적으로 프랜차이즈 점주 역시 지역에서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프랜차이즈 업체가 지역상권을 무너뜨린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다. 정확한 설명 없이 제시문의 논리를 수용할 경우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권력집중 해체’도 주장.. ‘언론 역할 오해 유발’>
같은 교재의 73쪽 8번문항에서도 일방적인 관점으로 서술된 부분이 도마에 올랐다. 빈칸추론 유형으로 민주주의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 출제됐다. 그렇지만 기성언론을 ‘미디어 권력’으로 지칭하며 해체의 대상으로 보고, 대안언론의 확산을 지지하는 글의 내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실제 다양한 형태의 뉴미디어가 부상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범람하는 ‘가짜뉴스’로 정보의 선별이 필요한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정보가 취사 선택된 제시문 내용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언론의 역할을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쓴이는 기성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제시문에는 “이제는 일반 국민이 대기업으로부터 양질의 미디어를 생산할 책임을 되찾을 때다. ‘미디어 권력’의 집중을 깨야 한다. 더 폭넓은 범위의 정보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더 많은 수의 소규모 회사에게 통제권을 주자”는 주장이 담겼다. 비상업적인 공공 미디어 시스템은 물론 독립적인 대안 미디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독립적인 정치 블로그, 대안적인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망 등을 미디어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시민 저항의 예시로 들었다. 

현장에선 글쓴이의 단정적인 주장이 수험생들에게 언론의 기능에 대한 오해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물론 최근 경영 어려움 등으로 광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언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성 언론을 ‘미디어 권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기본적으로 주류 언론은 오랜 세월 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권위를 얻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의 언론과 진보매체 모두 ‘팩트’를 중심으로 일관된 관점에서 뉴스를 다뤄온 점은 동일하다.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독자 혹은 시청자의 몫”이라며 “반면 최근 다양한 형태의 뉴미디어가 부상하면서 ‘가짜뉴스‘도 급속도로 확산됐다. 근래 유튜브 등을 통해 좌우 가릴 것 없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대안언론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명암이 뚜렷했다. 대안언론의 의의만 강조한 제시문의 시각은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문제 없다는’ EBS.. ‘수능연계 역효과 우려 확산’>
정작 부실한 제시문 검증으로 비판을 자초한 EBS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두 지문 모두 대학교수와 고교교사 등으로 구성된 집필진이 기존 영문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EBS 교재는 자체 위원회가 선정한 집필진이 교차 검증해 초안을 확정하고, 모든 제시문을 평가원에서 감수한다. EBS 관계자는 “감수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해당 지문은 집필진이 해외 원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제시문 모두 ‘소재 적절함‘과 ‘소재 적합하고 흥미로움‘ 등의 의견을 받았다는 것이 EBS 관계자의 설명이다. 195쪽의 20번문항의 경우 지역업체 상품 구매가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제안했다는 점이 제시문 선정의 이유였다. 73쪽 8번문항에선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주목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EBS가 제시문 내용의 오류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능연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정시비중까지 늘어나는 만큼 EBS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EBS의 대응은 매우 실망스럽다. 문제의 핵심을 전혀 짚어내지 못한 모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논란이 불거진 EBS 수능특강이 ‘2021수능 연계교재’라는 점이다. EBS가 제작하는 다른 교재들에 비해 영향력이나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라며 “수능연계 비율이 70%에 달하는 만큼 중하위권의 학생들은 교재의 내용을 암기하는 경우도 많다. 내용의 검토를 허술하게 진행한다면 수험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책임을 질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수능연계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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