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고교 “전국단위 선발 특례 절실”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정부가 지방 인구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로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을 90곳이나 지정했지만 막상 교육 수요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현실적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 진학에 유리한 고교를 원하지만, 이번에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의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지역 산업에 기여하는 인재 양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지역 명문고’를 졸업한 뒤, 지역 대학에 진학, 지역기업에 취업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인데 이 같은 사업으론 현재 학부모들의 명문대 열망에서 비롯된 학군지 수요를 막을 순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자체가 추진하는 명문고와 학부모들이 원하는 명문고가 완전히 달라 사업 주체와 수요자가 동상이몽에 빠진 형국이다.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점은 결국 교육발전특구가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국내 높은 교육열과 입시 경쟁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수요자의 많은 선택을 받는 학교는 대입에 강한 학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지역에서 유출되는 우수 인재의 최종 종착지 역시 대학 진학실적이 좋은 고교가 모여 있는 지역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이번 교육발전특구 사업은 지역산업 살리기가 목적인지, 공교육 살리기가 목적인지 모르겠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겨냥해 도심지역으로 이주했던 학부모가 지역산업 특화교육에 힘써주겠다고 하면 소규모 지역에 남아있을지 의문”이라며 “지자체 주도로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지역 주민의 현실적 수요를 적극 반영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자공고2.0 등 정부의 입맛대로 지자체가 따라가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 고교 현장에서도 교육발전특구 사업내용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학생 수가 부족해 폐교 위기에 놓인 상황인데 외부 인재를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학생들을 지역에 정주시키는 대책만으로는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내세운 고교 교육 활성화 대책은 자공고2.0인데, 자공고는 현재 광역단위 선발만 허용하고 있어서 타 지역의 학생을 데려오지 못한다. 경남(거창/함양/의령/창녕)과 강원 영월에서 로컬유학을 활성화해 작은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외에는 초중고에 외부 인재를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인구소멸 지역의 한 고교 관계자는 “우리끼리 잘 지내보자는 식의 대책은 한계가 있다. 졸업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더라도 외부 우수 인재가 우리 지역의 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양질의 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면에서 전국단위 선발 특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방 인구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로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을 90곳이나 지정했지만 막상 교육 수요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사진=교육부 제공
정부가 지방 인구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로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을 90곳이나 지정했지만 막상 교육 수요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사진=교육부 제공

<‘이상만 가득한’ 교육발전특구.. 지역소멸 막을 수 있을까>
교육부가 선정한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이 90개 지역까지 늘었지만 현장의 반응은 시원찮다. ‘좋은 학교가 있어야 지방이 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지역 우수 학생이 서울권 상위 학교를 포기하고 지역 학교를 선택할 만한 유인책은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발표된 2차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의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지역 명문고를 나와 지방 대학에 진학하고, 이후 지역 기업에 취업하도록 하겠다는 식이다. 이상적인 지방 정주 여건이긴 하지만, 국내 입시 열기를 고려하면 자녀 교육을 위해 일명 학군지로 이사하는 학부모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성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교육발전특구의 취지는 지역 주민이 원하는 좋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거주 여건을 개선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인구를 늘리려면 결국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필수라면서 산업, 거주 여건, 문화 생태계 정비와 함께 교육 여건 개선에 무게를 실었다. 초기 교육발전특구가 주목을 받았던 건 정부가 특구 운영의 주체를 지자체에게 넘겼다는 점에서였다. 지역이 먼저 제안하면 중앙 정부가 검토해 지원을 결정하는 상향식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현장과 괴리된 탁상공론 정책에서 벗어나 ‘진짜’ 지역에서 원하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돕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본 취지와는 다르게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의 사업내용은 지역 주민이 원하는 좋은 학교 만들기보단, 지역 산업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역 명문고를 꿈꿨던 학부모들은 다소 실망한 분위기다. 특히 고교 교육 활성화의 두 갈래는 ‘자공고2.0’과 ‘협약형 특성화고’로 나뉘는데, 둘의 차이도 불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산업 연계에 과도하게 연결 짓다 보니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고인 자공고 모두 성격이 비슷해지면서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원 삼척의 경우 자공고2.0으로 미래에너지 등의 지역 특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겠다고 했고, 협약형 특성화고 역시 미래에너지 보건의료 등 지역산업과 연계해 운영하겠다고 했다. 강원 정선의 경우에도 자공고2.0를 통해 문화예술 관광 웰니스산업 기반의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고, 협약형 특성화고도 웰니스산업 공연예술 등 지역산업전략과 연계하겠다고 했다. 

2차까지 선정된 90개 지역이 별다른 특색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부분의 지역이 늘봄학교 자공고2.0 지역인재확대 등을 계획안에 담아서 냈는데, 이는 모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과제다. 상향식 방식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정부의 주도에 따라 사업이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교육발전특구 지역 안에 자공고2.0은 85개 중 68개(60%), 협약형 특성화고는 10개 중 6개(60%)가 위치한 상황이다.

교육발전특구 2차 시범지역으로 1개 광역지자체와 40개 기초지자체가 신규 선정됐다. 교육부는 2월 1차 지정에서 광역지자체 6곳과 기초지자체 43곳을 선정한 데 이어 30일 2차 지정 결과를 발표했다. 3차 지정 계획은 없어서 시범지역은 광역지자체 7곳, 기초지자체 83곳으로 확정됐다. 지정된 지역은 3년간의 시범운영 후 평가를 거쳐 특구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명문고 동상이몽’.. 자사고 특목고 대신 ‘자공고2.0’ 추진>
결국 교육발전특구는 정부가 말하는 명문고와 학부모가 원하는 명문고가 서로 다르면서 동상이몽에 빠진 상황이다. 학부모가 원하는 명문고는 사실상 우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수월성 교육 기관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전국단위 자율학교 등 대입실적이 뒷받침되는 고교를 학부모들은 명문고라 인식하고, 해당 고교를 중심으로 학군지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명문고는 지역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공고2.0이다. 자공고2.0은 과거 일반고와 큰 차이가 없어 실효성이 미미했던 자공고 제도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올해 다시 부활시킨 제도다. 교육과정 교사정원 등에 대한 규제를 자사고와 특목고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완화하고 개방형 교장공모제도 도입한다. 종전의 자율형 공립고와 달리 지자체뿐 아니라 대학 기업 등 지역의 여러 주체와 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이 내놓은 자공고2.0 추진방안은 대입보단 지역산업 연계 교육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자공고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한 차례 실패로 돌아갔던 자공고가 규제 개혁을 통해 부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자공고는 이전에도 교장공모제, 교사초빙, 교육과정상 자율성 보장 등 자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율성을 이미 부여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자사고와 달리 ‘자공고인 줄도 몰랐던’ 경우가 허다했다. 초기 설계한 교육과정을 책임질 교장, 지자체 관계자, 교사진이 5년이면 바뀌니 교육에 실효성이 있을 때까지 밀어붙일 힘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자공고 실패의 원인은 교육의 연속성이 부족한 공립의 구조적인 문제이지 자율성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학교단위에서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도입해 운영하려면 책임자가 있어야 하는데, 자공고의 경우 장기적으로 책임을 질 담당자가 구조적으로 부재하다는 것이다. 

동상이몽 속에서 명문고 양성의 목표가 지역인재의 유출을 막는 데 있다면 현실적으론 대입 실적이 우수한 고교가 필요하다는 게 지역 현장의 반응이다. 더욱이 교육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존치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특목자사의 부활을 공식화했고, 2028대입 개편안에 의대 정원까지 확대하면서 특목자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특목자사 진학을 위한 지역 이탈이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각 학부모가 원하는 명문고 만들기가 시급하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인구유입 절실한데.. 전국단위 선발 특례 가능할까>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서 꼽은 가장 현실적인 공교육 활성화 대책은 전국단위 선발 특례를 부여해달라는 것이다. 지역 소멸 위기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서울 경기 등 대도시에서 학생들을 유입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자공고2.0의 경우에도 학생 선발은 다소 제한된다. 학교가 소재한 광역단위로만 모집할 수 있고, 시/군/구 단위로 지역인재를 우선선발할 수 있는 정도다. 평준화 지역의 경우 교육감 배정 방식, 비평준화 지역은 기존과 같이 학교장 선발 방식을 적용해 내신 성적 순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사실상 일반고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현재 공교육의 롤모델로 꼽히는 지역 명문고를 살펴보면 전국단위 선발 특례가 부여된 곳이 대부분이다. 충남 공주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 경남 거창고 거창대성고 남해해성고 풍산고 등은 지역인재뿐 아니라 수도권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가는 학교다. 사교육 밀집 지역에 위치한 수도권 고교를 중심으로 상위 대학 입시 실적이 집중되며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만큼은 지역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도 교육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근 농산어촌 학교들과 교육 정보와 프로그램 사례 등을 공유하며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명문고를 만든다 한들 해당 고교가 지역 학생들을 많이 흡수하면 그만큼 지역 내 타 고교들이 충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적어진다는 점에서 폐교되는 고교가 많아지는 악순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농어촌 자율학교의 전국 단위 선발권은 2000년대 초반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고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 아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부여했던 특례다. 이전에 비해 학생 충원은 더욱 힘들어진 만큼 농어촌 소규모 학교들의 전국 단위 선발은 불가피한 시점에 다다랐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전국 단위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는 사실 지역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현장의 반응은 상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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