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단위 선발’ 여부 관심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정부의 교육발전특구(이하 특구) 지정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특목자사고나 자율학교의 신설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구의 골자는 학교 설립과 학생 선발권 등에 자율성을 부여할 테니 지자체의 주도로 ‘지역의 수요에 맞춘’ 고교를 만들어보라는 것. 이때 교육열이 높은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지역 주민의 수요는 사실상 우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수월성 교육 기관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대입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방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명문고’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특목자사의 폐지 리스크가 해소, 대입 개편까지 이어지면서 학부모와 학생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만큼 지방의 고교 체제가 새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지자체의 주도로 부일외고가 자사고로, 강원외고가 농어촌 자율학교로 전환된 것만 살펴보더라도 지역의 열망은 대입에 유리한 고교로 직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두 고교 모두 외국어에 특화된 교육 과정만으로는 대입에서 불리하다는 점, 이로 인해 지역 인재의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전환을 결정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각 지자체에서는 현재 특구 지정을 발판 삼아 특목고와 자사고를 유치하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광주는 AI영재고를, 충북은 AI바이오영재고를, 강원은 국제학교를 특구의 구체적인 과제로 명시하고 개교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모두 공통적으로 우수 인재가 명문고 진학을 위해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지방을 중심으로 학령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자체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모델은 전국 단위 자사고와 전국 단위 자율학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전국 단위 모집’ 여부다. 지역 내 인구로만 충원하게 되면 명문고의 신설이 오히려 타 고교의 폐교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방 교육청에서는 고교 정원의 일부를 서울 경기 등 대도시에서 학생들로 채울 수 있는 방안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지역 교육 경쟁력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 내 고교 재학인원 자체를 늘리는 게 맞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이와 함께 전국 선발을 진행할 경우 나오는 부대적인 연계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지방 고교 관계자는 “주말에 학부모들이 기숙사에 거주하는 자녀를 보러 오면서 자연스럽게 식당도 찾고 관광도 즐긴다. 수도권 학생들이 다시 졸업 후 다시 수도권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재학 중에는 이 지역을 많이 방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라면서 “그것만으로도 전국 단위 명문고의 지역 활성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특구 운영의 주체를 지자체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지역 공교육이 활성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입장이다. 지방 명문고가 생겨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탄이 된다는 얘기다. 특구는 지역이 먼저 제안하면 중앙 정부가 검토해 지원을 결정하는 상향식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현장과 괴리된 탁상공론 정책에서 벗어나 ‘진짜’ 지역에서 원하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돕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욱이 지역의 특목자사나 자율학교 등의 확대 계획이 정부의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 전국 단위 선발을 실시할 경우 수도권 학생들을 지방 공교육으로 흡수해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교육부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교육발전특구’ 계기.. ‘지방 명문고’ 열망 실현될까>
정부가 지방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특구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자체의 ‘명문고 만들기’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좋은 학교가 있어야 지방이 산다’는 데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거주 여건을 개선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인구를 늘리려면 결국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필수라는 데 동의하면서, 지역 여건에 적합한 특구 운영 모델을 지자체에서 마련하면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구로 지정되면 특구 내에 있는 초중고교의 자율성이 확대된다. 학교가 다양한 학생 선발 방식을 활용하고, 지역 여건을 반영한 교원 인사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되 기업 등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미국형 차터 스쿨’과 같은 지역 고교가 탄생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방 이전 공공 기관을 위한 학교 운영도 가능해진다. 공공 기관 이전으로 이사한 임직원 자녀가 특구 내 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해당 공공 기관의 전문 분야에 특성화한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학교 설립과 학생 선발 방식, 교육 과정 등이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지자체가 고안하고 있는 특구 모델은 특목고나 자사고, 국제학교 등을 설립해 ‘명문고’를 세우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자사고나 특목고 등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을 상정하고 특구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 그었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지역 인재의 유출을 막으려면 대입 실적이 우수한 고교가 필요하다는 게 지역 현장의 반응이다. 더욱이 최근 교육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존치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특목자사의 부활을 공식화했고, 2028대입 개편안에 의대 정원의 대규모 확대까지 예고되면서 특목자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특목자사 진학을 위한 지역 이탈이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각 지자체는 명문고 만들기가 시급하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교육부가 강조했듯이 이번 특구 사업의 주체가 중앙 정부가 아닌 지자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의 뜻대로 특목고나 자사고의 신설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현재 특구 신청 대상인 비수도권 14개 시도 중 울산 세종 광주 전북 제주가 특구 지정과 운영을 목표로 제시했고, 그 중 광주 강원 충북 등 세 곳이 특목자사 설립을 구체적인 과제로 명시했다. 광주는 AI영재고설립, 강원은 국제학교 유치, 충북은 AI바이오영재고 설립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역시 동서 지역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서부산권에 기업형 자사고 등을 설립하려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발표된 특구는 이전에 발표된 교육자유특구가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교육 문제로 지역 주민이 수도권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일부 지역을 특구로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고 자율을 주는 정책이다. 교육부는 “지역 발전을 위한 기업 유치를 추진할 때 지역의 교육 및 정주 여건 미비로 우수 인재 유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공교육의 틀에서 지역 교육력을 높이고,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특구는 기초지차제장과 교육감이 공동으로 신청하는 1유형과 광역지자체장과 교육감이 공동으로 신청하는 2, 3유형으로 운영된다. 12월부터 시범 지역 공모를 시작, 2024년부터 시범 운영을 추진한다. 범지역 지정 규모(개수)는 사전에 정해두지 않고, 공모 심사 과정에서 유형별 특구 신청 현황과 추진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후에 단계적으로 결정한다.
<전국 단위 자사고/자율학교 ‘최고 선호도’ 전망.. 지방 공교육 롤 모델>
학령 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지자체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모델은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자사고와 자율학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소멸 위기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서울 경기 등 대도시에서 학생들을 유입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전국 단위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는 사실 지역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현장의 반응은 상반되는 셈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명문고를 만든다 한들 해당 고교가 지역 학생들을 많이 흡수하면 그만큼 지역 내 타 고교들이 충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적어진다는 점에서 폐교되는 고교가 많아지는 악순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율학교의 전국 단위 선발권은 2000년대 초반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고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 아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부여했던 특례다. 이전에 비해 학생 충원은 더욱 힘들어진 만큼 농어촌 소규모 학교들의 전국 단위 선발은 불가피한 시점에 다다랐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현장에서는 전국에서 인재를 선발해 교육력을 제고한 학교들이 인근 지역의 고교로 우수 교육 시스템과 진학 노하우를 공유하며 ‘지역 교육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점도 공감을 얻고 있다. 사교육 밀집 지역에 위치한 수도권 고교를 중심으로 상위 대학 입시 실적이 집중되며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단위 고교들만큼은 지역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도 교육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최근인 2023대입에서 서울대 등록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전국 고교 톱50 중 서울 경기를 제외한 비수도권 일반고는 농어촌 자율학교인 공주사대부고와 한일고 두 곳밖에 없다. 한 학년에 100명 남짓한 소규모 학교인 남해해성고와 풍산고 역시 매년 다수의 서울대 등록자를 배출하면서 ‘작지만 강한 학교’로 꼽힌다. 농어촌 학교의 롤 모델로 꼽히는 이들은 인근 농산어촌 학교들과 교육 정보와 프로그램 사례 등을 공유하며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전국 단위로 선발하는 지방 학교들이 늘어날수록 사상 최대 사교육비를 기록하며 뜨거워진 수도권의 사교육 열기를 공교육으로 이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생 기숙사 체제를 바탕으로 한 완벽한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수도권 명문고에 버금가는 대입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국 단위 자율학교의 경우 일반고의 저렴한 학비로 우수한 진학 성과를 냈다는 점은 수월성 교육을 위해 값비싼 사교육을 고려했던 교육 수요자의 눈을 돌릴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28대입 개편’ ‘의대 확대’.. 고교 판도 변화 예고>
현재 교육 정책의 변화를 고려해봐도 교육 수요자의 눈길은 전국 단위 자사고와 자율학교로 쏠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이슈는 의대 정원 확대. 동일한 전국 단위 학교로 수월성 교육의 성격이 같은 영재학교가 의대 열풍으로 주춤한 사이, 전국자사나 자율학교의 경우 인문 자연 의약계열까지 전 분야를 막론하고 진학 대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영재학교를 제치고 최고 선호도를 가진 고교 유형으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통령실까지 나서 “의대 정원 확대를 이번에는 관철시키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이상 증원이 유력한 상황이다.
최근 고입 판도가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교육부가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특목자사 일괄 폐지 정책을 백지화하면서부터다. 자율학교의 전국 단위 선발권도 원복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겪었던 지정 취소 리스크가 사라진 셈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정부의 고교 유형 단순화 정책은 공교육의 다양성과 학생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제약했다. 공교육 내에서 학생별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유형의 학교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현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11월22일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올해 안으로 법안 개정을 최종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어 10월에는 2028대입 개편 시안이 발표되면서 다시 한번 특목자사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됐다. 2028대입 개편안은 한마디로 ‘내신 변별력 약화’와 ‘수능 영향력 강화’로 요약된다. 특히 내신은 2028수능을 치르는 현 중2 학생이 고1이 되는 2025학년부터 5등급 체제로 평가 방식을 바꾼다. 기본적으로는 A~E등급의 절대 평가를 실시하면서 백분위에 따른 1~5등급의 상대 평가 등급을 함께 기재하는 방식이다. 내신 경쟁이 치열했던 자사고나 소규모 농어촌 학교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