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사교육비와 수도권 N수 굴레 떠미는 정시 40% 룰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2028대입 개편 시안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는 가운데, 최대 적폐로 꼽히는 ‘정시 40%’ 유지를 두고 공교육 시스템 파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정시 40% 룰의 부작용은 공교육 시스템 전반을 무너뜨리며 대학 전방위적 중도 이탈에 역대 최대 사교육비, 교육 특구 싹쓸이를 부추겨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폭 증원으로 가닥 잡은 의대 증원이 결합되면서 정시 40% 부작용이 가진 폭발력은 지금과 다른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지금도 ‘의대 쏠림’ 때문에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 대학 이공계열에서 이탈하는 상황에서, 의약계열까지 중도 포기가 확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의대 내에서도 ‘상위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재도전하는 경우까지 증가하는 상황이다. 문호가 확대된다는 소식에 유치원생부터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대입 사상 최대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시 문호로 입학한 대학생들이 다시 정시로 뛰어드는 경향이 강한 만큼, 이제라도 정시 40% 룰을 손보지 않으면 의대만 바라보고 재수를 반복하는 ‘N수 굴레’로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최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뿐만 아니라 지방 의대를 비롯한 의대 전반에서도 정시가 ‘N수생 잔치’라는 점이 수치로 증명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의대 정시 합격자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 출신으로 나타나면서 의대 정시는 ‘수도권 N수생’을 위한 전형으로 굳혀지는 양상이다.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러시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반도체(첨단 학과) 인재 양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첨단 학과 정원을 확대하기로 한 상태이지만 정시 40%가 유지되는 한, 첨단 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도 의대로 가겠다고 이탈할 가능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6월 내놓은 사교육 경감 종합 대책 역시 무위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시 자체가 문제 풀이 식 수업이 유리한 사교육 유발 전형인 데다, N수 반복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킬러 문항 폐지’ ‘사교육 카르텔 근절’ 등을 대책으로 꼽았지만 정시 40%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효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의대 증원이 교육부와의 협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사전 교감을 통해 이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2028대입 개편안에서 정시 40% 룰을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미 정시 40% 룰이 ‘의대 쏠림’ ‘N수생 확대’ ‘사교육비’ 문제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꼽혀왔던 상황에서 의대 증원까지 더해질 경우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 명약관화했음에도 나 몰라라 식의 대응으로 교육계 현안들을 최악으로 몰고 가는 사태를 빚었다”고 지적했다.

<‘중도 이탈’ ‘N수’ 부추기는 정시 40%>
현 대입 정시 40% 룰은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에서 선발하는 수시이월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정시 50%의 효과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대입의 절반에 가깝게 정시 문호가 대폭 확대되면서 ‘정시 재도전’을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다. 정시 문호가 좁을 때는 재도전이 부담돼 주저하던 졸업생들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판단으로 대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시는 반복 학습이 유리한 수능의 특성상, 재도전을 통해 ‘대학 간판’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시에서 N수생 강세가 이어지면서 수험생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차원을 넘어, 재도전해야만 유리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수능에 응시하는 N수생 비중은 ‘역대급’을 경신, 올해 2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학년 29.2%, 2023학년 31.1%, 2024학년 35.3% 순으로 올해 확대폭은 더 커졌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것은 반수 희망에 따른 대학 중도 이탈이다. 특히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이 다시 정시로 재도전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학종의 경우 오랜 진로 고민을 거쳐 전공적합성을 따져 입학해 중도 이탈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정시의 경우 입결만을 고려해 ‘성적 순’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만큼 대학생활 적응도가 낮아 이탈률도 높다. 2018∼2021학년 수도권 대학 14개교의 주요 입학 전형별 신입생을 분석한 결과 제적/자퇴 등 중도 탈락률은 수능전형 출신이 16%로 가장 높았고, 학종은 6.8%였다.
올해는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 비율이 12.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 수능 재도전을 노린 반수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SKY 중도 포기자는 2131명으로, 전년보다 160명 증가하기도 했다. 재적 학생 7만5322명의 2.83%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7년 1.6%(1196명), 2018년 1.78%(1340명), 2019년 1.9%(1415명), 2020년 2.15%(1624명), 2021년 2.6%(1971명), 2022년 2.83%(2131명) 순으로 5년 연속 증가했다.
상위15개대에서도 중도 이탈이 확대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위15개대 중도 포기자는 1만595명으로 재적 학생 33만2240명의 3.19%를 차지했다. 2020년 2.84%(9613명), 2021년 3.08%(1만389명), 2022년 3.19%(1만595명) 순으로 확대됐다.
‘이공계의 꽃’으로 불리는 과기원, 이공계특성화대에서의 중도 이탈도 확대됐다. 2021년 2.47%(269명)에서 2022년 3.03%(338명)로 확대됐다. 심지어는 최근 3년새 ‘의치한수’ 중도 탈락자도 증가세다. 2020년 357명, 2021년 382명, 2022년 457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본과 전 예과 단계의 중도 탈락률이 88.9%로 대부분 적성에 안 맞아서라기보다는 상위권 의대 진학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SKY 등 최상위권 대학과 이공특에서도 발생하는 중도 이탈은 의대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사실상 정시가 40%까지 확대된 데 이어 의대의 학부 전환으로 의대 문호가 대폭 확대되고 여기에 수학에서 이점을 얻는 통합 수능까지 도입되면서 ‘의대 재도전’의 최적의 조건이 마련됐다. 수학에 자신 있는 자연계 최상위권이라면 반수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 의대를 제외한 치한수약 등 다른 의약계열에서도 중도 탈락자가 증가했다는 점이 중도 이탈 폭증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종로학원이 최근 4년간 의약계열 중도 탈락 학생 추이를 살펴본 결과 의치한수 등 의학계열 중도탈락자는 2019년 357명, 2020년 382명, 2021년 457명으로 증가하다가 2022년 381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약대 중도 탈락 206명까지 합하면 733명의 의약계열 재학생이 이탈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정시는 N수생이 휩쓰는 양상이다. 재학생보다도 오히려 N수생의 비중이 더 높을 정도다. N수생 수능 응시자가 통상 현역 재학생의 3분의1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강세를 보인 셈이다. 최근 4년간 서울대 고대 연대의 정시 합격자 10명 중 6명 꼴로 N수생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강득구 의원실(더불어민주)과 현직 교사로 구성된 정책연구단체 ‘교육LAB 공공장’이 4월 발표한 ‘2020~2023학년 서울대/고대/연대 신입생 선발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SKY 정시 합격자 1만6281명의 61.2%인 9956명이 N수생이었다. N수생 비중을 대학별로 보면 고대 64.6%, 연대 60%, 서울대 58.2% 순이다.
<의대까지 이어진 ‘중도 이탈’ 메커니즘.. 지방 의대 중도 이탈 가속화>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중도 이탈 메커니즘이 의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지역 의대는 수도권 주요 의대로, 수도권 의대에서는 다시 빅5로 연쇄 이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공공 의대부터 지역 인재 등의 정책을 내세우지만 이 역시 ‘밑 빠진 독’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지방 의대 졸업생들의 수도권 이탈이 심각할 뿐 아니라 지방 의대마저도 교육 특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N수생들이 다수 입학하고 있어 중도 이탈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다.
의대의 경우 최근 4년간 정시 합격자 가운데 N수생 비중이 77.4%나 된다. ‘교육LAB 공공장’이 3월 발표한 ‘2020~2023학년 정시 모집 의대 합격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의대 정시에 최초 합격한 인원 5144명 중 N수생은 3984명이었다.
그중에서도 지방 의대의 경우 정시 합격자 10명 중 8명을 넘어서는 81.3%가 N수생으로 나타나면서 말 그대로 ‘N수생 잔치’였다. 안민석(더불어민주) 의원이 전국 10개 국립대 의대로부터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정시를 통해 지방 의대에 합격한 1121명 중 N수생이 911명이나 됐다.
여기에 정시 입학생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5월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대 정시에서 수도권 출신 비율이 2022학년 기준 60.3%였다. 심지어 서울대와 전국 의대의 정시 등록자 5명 중 1명 이상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강남 3구’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쏠림 대책’ ‘반도체 인력 양성’ ‘사교육비 대책’ 차질 불가피>
정시 40% 룰에 의대 증원까지 합쳐지면서 ‘의대 쏠림’ 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의사 소득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의대 선호 현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최근 7년간 소득 증가세를 변호사와 비교하면 4배 빨랐다. 정시 문호가 넓혀진 상황에서 의대 문호까지 확대되며 끊임없는 의대 재도전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대학 중도 이탈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부터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를 목표로 들썩이고 있다. 초등 의대반도 모자라 미적분을 가르치는 유치원 의대반까지 생겼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 학원에 등록하는 실정이다. 올해 초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범부처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을 주문했지만 정시 40% 룰을 고수하는 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의대가 이공계 인재를 빨아들이는 사상 최대 블랙홀이 될 것임이 자명해지면서, 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첨단 분야 인재 양성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인재 양성을 주문한 이후 교육부는 내년부터 반도체/AI 등 첨단 학과 정원을 늘리기로 결정한 상태다. 하지만 정시 40% 체제 아래에서는 언제든 정시를 통해 의대에 재도전하려는 수요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첨단 학과 진학 이후에도 얼마든지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이공계 인재를 육성해야 할 영재학교/과고에서부터 의대로 이탈하는 현상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재학교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 대입 학생부 평가에 불이익을 주거나 장학금을 회수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정시 40% 룰을 그대로 두는 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각종 대책이 나올수록 정시를 통한 의대 정시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하는 형국이다.
정시는 문제 풀이 식 교육을 통해 입시 성과를 낼 수 있어 사교육의 효과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전형인 만큼, 사교육 대책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도 역대 최대 사교육비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인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전년 23조4000억원보다 10.8%p 폭증했다. 정시는 문제 풀이 식 교육을 통해 입시 성과를 낼 수 있어 ‘정시 확대’ 정책 자체가 사교육에서는 마케팅 구호로 활용될 정도다.
<의대 증원 알고도 정시 40% 고수했나>
2028대입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곧바로 의대 증원 이슈가 터져 나온 시차를 고려하면, 교육부가 의대 증원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시 40%를 고수한 것이라고 의구심을 자아낸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협업이 핵심인 만큼, ‘1000명 이상’이라는 규모까지 언급된 상황에서 사전 논의가 없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올해 2월에는 대통령실이 직접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범부처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고, 최근에는 ‘필수 의료 혁신 대책’을 범부처 협력 과제로 추진하면서 의대 증원 등을 포함한 대책을 논의 중인 상태다. 여기에다 교육부 산하 기타 공공 기관인 국립대 병원을 복지부 산하로 옮기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상황에서 교육부와의 사전 교감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2028대입 개편안 발표를 목전에 두고 정시 40%에 대해 ‘교육의 정치화’ 사례로 꼽기도 했다. 이 장관은 10월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장관 취임 후 1년을 돌아보며 리뷰해 본 것 중 안타까운 게 정시 40% 룰이었다. 정책 결정에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었고 이는 교육이 정치화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시 40% 룰은 지난 문 정부에서 ‘조국 사태’로 인해 돌발성으로 튀어나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이 발단이 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 논란이 불거지면서 개인의 비리를 제도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교육계 평가다. 학종 공정성 문제로 프레임이 전환되면서 정시 확대 여론이 커지는 상황에 편승해 2022대입 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정시 30%의 결론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서울 소재 대학 16개교에는 정시를 40% 이상 확대하도록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2028대입 개편안의 뚜껑을 열고 보니 정시 40% 룰에 대한 손질은 전혀 없이 나 몰라라 식 대응에 그쳤다. 가장 핵심이 되는 현안은 건드리지 않고 ‘쉬운 수능, 쉬운 내신’이라는 포퓰리즘 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앞서 기자단 간담회에서의 무학과 확대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결국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정시 40% 이후 자퇴생이 증가하고 N수생이 늘어난 데다 사교육비 최대치를 경신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안정성을 빌미로 정시 유지를 선택하는 정치적 행보를 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