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없는 형식상 ‘필수과목 폐지/변표 통합’ 요구.. 대학가 ‘울며 겨자 먹기’
[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한 통합형 수능 대국민 사기극’… 최근 대학가는 교육부가 떠넘긴 통합형 수능 해결책을 둘러싸고 자괴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이하 기여대학사업)’을 고리로 통합수능의 문제점을 해결하라는 주문 때문이다. 대학들은 31일까지 대교협에 제출해야 하는 2025전형계획에 담을 내용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학이 고민이 깊은 이유는 문이과 유불리나 ‘이과 침공’의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데 있다. 상위 대학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기여대학사업과 연계해 요구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교육부도 알고 대학도 아는 ‘대국민 사기극’에 동참을 강요당한 꼴”이라고 한탄했다.
교육부가 대학 측에 요구하는 통합수능 문제점의 해결방안은 필수 응시과목 폐지와 탐구 변환표준점수(이하 변표) 통합 산출.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이과 침공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다른 대학 입학 관계자는 “대부분 대학이 이과 진학 시 수학에서 걸어 둔 미적분/기하 필수 지정을 폐지하고 확률과통계를 응시한 학생도 지원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에는 의학계열도 포함했다. 하지만 현 표준점수 체제에서 확통 선택자의 의대 진학은 사실상 어렵다. 지난 2년간 미적/기하의 표점이 확통보다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과에서도 이과 수학을 택하겠다는 학생이 15.9%에 달하며 이미 미적/기하 쏠림은 심화했다. 과목별 유불리는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호만 개방하라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탐구 변표 통합 역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문이과를 통합했으니 변표마저 통합하라는 얘기인데 변표는 과목별 유불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정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활용되어 왔다. 대학들은 “교육부가 ‘통합’이라는 단어 아래 스스로 유불리를 더 키우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교육부와 대학은 모두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대학이 이과 침공 해결책을 내놓는 시늉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의미 없는 필수 응시과목 폐지에 이어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제해버리는 탐구 변표 통합까지 무리한 요구가 이어져도 대학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교육부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수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지원금이 중요한 대학은 예산이 걸린 기여대학사업 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 상위 대학 입학사정관은 “말로는 대학 자율화를 논하지만 2019년부터 돈을 핑계로 대학을 협박하고 있다. 의미 없는 얘기인 줄 뻔히 알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까지 받게 됐다. 기여대학사업의 이름으로 지난 정권 때는 사교육 늘리는 정시 확대 대학에 주더니 이번엔 더 뻔뻔한 대학에 주겠다는 얘기를 한다. 고교교육 정상화를 취지로 만들어진 사업명이 부끄럽다”라고 토로했다.
교육계 전문가들도 ‘교육부가 대학에 사기치라고 강요하는 꼴’이라며 비판한다. 문제 많은 통합수능은 실질적으로 그대로인데 문호를 열어 문과도 이과에 진학할 수 있는 것처럼 수험생들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마치 확통도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것처럼 문호를 열겠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수로 의대 입학은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폐지론에 몰린 교육부이지만 이젠 하다하다 대국민 사기극까지 벌인다”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발단.. ‘통합수능 책임 떠넘기기로 대학에 닥친 딜레마’>
교육부가 기여대학사업을 통해 대학에 통합수능의 문제점을 해결토록 하며 대학의 딜레마가 깊어졌다. 사실상 해결책 없는 통합수능을 해결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딜레마의 시작은 교육부가 2월 발표한 기여대학사업 기본계획부터다. 평가항목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는 전형(학생부/수능) 운영’에 10점을 배정했기 때문.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대학에 통합수능의 책임까지 떠넘긴 셈’이라며 비판했다.
그간 교육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계속되어 왔다. 올해 1월11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서울의 13개 대학 입학처장과 간담회를 갖고 통합수능을 기반으로 한 문이과 유불리가 없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장관은 “최근 문이과 통합수능을 둘러싸고 우려가 나타나고 있어 아쉽다”면서 대학에 문이과 통합 취지에 맞는 전형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대학별 보완책도 논의했다. 문이과 유불리의 원인이 통합수능인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결책은 대학에서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2월 기여대학사업 계획 발표와 더불어 교육부의 주문이 구체화된 것은 최근 대교협과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경기도 모임이다. 대교협은 경기도 모처에서 수도권 대학 입학사정관들을 불러 놓고 ‘통합수능 취지에 맞게 전형을 운영하라’고 전했다. 특히 강조한 점은 수능 필수 응시과목 폐지다. 교육부의 사업 취지 설명까지 대리해가면서 대학에 전형 수정을 요구한 셈이다.
- ‘지원금 빌미’ 오락가락 기여대학사업.. ‘교육부 기여 사업’
대학은 교육부가 제시한 필수 응시과목 폐지와 탐구 변표 통합 등이 문이과 통합의 개선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등록금 동결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예산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돈이 걸려 있으니 대학은 이에 따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은 교육부가 예산을 미끼로 대입 전반을 흔드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한 서울 상위 대학 입학사정관은 “말로만 ‘대학 자율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돈으로 대학을 협박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통합수능의 개선책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육부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등록금이 십수 년간 안 올랐는데 어떡하냐”고 토로했다.
게다가 교육부의 요구가 갈수록 무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요구한 탐구 변표 통합이 그 예다. 대학에서 탐구 선택과목 간 유불리를 조정하고자 적용하고 있는 변표를 ‘문이과도 통합했으니 변표도 통합’이라는 것. 대학은 무의미한 필수 응시과목 폐지까진 그렇다 쳐도 유불리를 키우는 처사를 주문한 것이라 설명한다. 한 대학 사정관은 “지난 몇 년간 전반적으로 과탐의 표점 최고점이 사탐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세부 과목 간에도 표점 최고점 차이는 존재했다. 이 유불리를 조정하고자 마련한 것이 바로 변표다. 이마저도 통합하라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 비판했다.
이미 취지를 잃어버린 기여대학사업은 대학 입학사정관들뿐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 입맛대로 사업 성질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새 장관이 들어오고, 새 장관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고교기여사업을 다시 소환한 것”이라 분석했다. 사업 시작은 학종을 지원토록 했으나 문 정부가 갑자기 정시 확대를 주문하면서 지난해엔 정시를 40%까지 확대하라더니 현 정부는 통합수능 해결책까지 마련하라는 식이다.
<2025전형계획 대학의 고민 ‘통합수능 개선 우선돼야’>
교육부가 실효성 없는 개선책을 요구하자 대학은 2025전형계획 확정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보지만 근본적 원인인 통합수능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개선책은 헛바퀴만 돌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의 고민은 31일까지 집중된다. 대교협에 제출해야 하는 2025전형계획 마감일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결국 통합수능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유불리는 계속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통합수능 자체에서 유불리가 발생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표점 체제일 뿐 아니라 사과탐을 따로 보는 체제인 통합수능은 결국 폐지 수순을 밟지 않는 이상 표점 격차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 상위 대학 A입학팀장은 “선택과목 없이 문이과가 모두 같은 시험을 친다면 문이과 구분이 없어지는 게 맞는데 수능은 사실상 사탐과 과탐을 나눠 놓은 상태”라며 “수능 제도가 개편되지 않는 이상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 지적했다.
결국 대학이 2025전형계획을 통해 고민하는 방안은 실질적 유불리 해소가 아니라 대학별 아이디어 차원에서 성의를 표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상위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확통 사탐 등 인문계로 분류되는 과목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총점이 낮아지는 등 대입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대학이 논의하고 있는 방안은 탐구 변표 조정과 수학 반영 비율을 낮추는 방안이다. 상위 대학 B입학팀장은 문이과 유불리 개선에 대해 “탐구 변표 변환 방식이 사탐 학생들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사탐 변표를 개선하거나, 수학 반영 비율이 높은 모집단위들의 수학 반영 비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순수문학이라 할 만한 외국어대학은 사탐에 가산점 등을 부여하는 등 안정장치를 적용할 수도 있다”며 논의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전했다. 하지만 사업과의 연계와 강한 요구까지 이어지며 결국 수능 필수 응시과목은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서강대와 성균관대는 필수 응시과목을 폐지했으며 타 대학 역시 그 수순을 밟을 것이라 예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