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적성 대신 점수로 선택’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문과생 16%가 이과 수학인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게 선택과목을 택하도록 한 통합수능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로학원이 22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수험생 1052명 설문 조사에서 문과생의 15.9%가 ‘이과 수학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문이과 구분 없이 진로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토록 하겠다는 것이 통합수능의 취지이지만 정작 학생들은 점수가 더 잘 나오는 쪽으로 선택하고 있다”며 “문과 상위권 학생의 이과 수학 선택이 증가하면 문과생의 표준점수 하향 조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종로학원은 올해 2024수능에서 문과생의 이과 수학 선택 비율이 3년 연속 상승해 10%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2수능 땐 5.2%, 2023수능 땐 7.1%였다. 임 대표는 “문과생 중 수능에서 이과 수학을 선택하는 학생 비중이 올해 통합수능 3년 차에서 가장 커질 전망이며 10%대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며 “재수생 표본조사에서 문과 재수생 중 이과 수학을 선택한 비율은 지난해 2.4%에서 올해 5.7%로 2배 이상 증가한 점도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도 올해 문과생의 이과 수학 갈아타기와 미적분/기하 쏠림은 여전할 것으로 봤다. 한 교육전문가는 “2022수능에서 이과생에게 유리했던 운동장이 2023수능에서 더 유리하게 기울어졌다. 문과생은 이과 수학을 선택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게 통합수능 취지인 문이과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3년 연속 이어진 통합수능 문이과 유불리 격차는 통합수능을 아예 폐지하지 않는 이상 개선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2년 차 통합수능에도 문이과 유불리가 양극단으로 벌어지면서 이과생의 인문계 교차지원 즉 ‘이과 침공’ 등 부작용이 증폭되자 그제서야 해결책을 모색한다고 나섰다. 하지만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통합수능을 폐지한다고 해도 2028학년에나 폐지할 수 있어, 대학이 대입 전형을 세부 조정하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교육부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이과 침공과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는 대입 전형을 설계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걸어 해결책 모색을 떠넘긴 상황이지만 그것도 대학은 2025학년 전형계획에서야 문과생이 불리하지 않도록 전형을 고칠 수 있다. 교육부는 이미 통합수능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2022수험생과 2023수험생을 외면하더니, 2024학년 수험생을 또다시 방치하겠다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문과생 16%가 이과 수학인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게 선택과목을 택하도록 한 통합수능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문과생 16%가 이과 수학인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게 선택과목을 택하도록 한 통합수능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문과생 16% “이과 수학 선택할 것”>
종로학원이 문과생 105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 올해 미적분/기하의 이과 수학을 선택하는 문과생이 15.9%나 됐다. 문과 재수생 사이에서도 이과 수학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종로학원이 문과 재수생 17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능 모의고사 등에서 미적분/기하의 이과 수학 선택 비율은 5.7%로 지난해 같은 조사(2.4%)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2022수능 2023수능 2년 연속 문과생에게 불리한 구조가 이어지자 2024수능에선 문과생이 이과 수학으로 갈아타는 양상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10%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수능 1년 차인 2022수능 5.2%에서 2023수능 7.1%로 1.9%p 증가했는데 2024수능에선 9~10%까지 치솟을 것이라 예상했다. 세부적으로는 이과 수학을 선택한 문과생 중 미적분을 선택하는 비중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이과 수학을 선택한 문과생 중에서는 2022학년 79.5%, 2023학년 81.7% 등 대부분 미적분을 선택했다. 기하는 2022학년 20.5%, 2023학년 18.3%다. 

실제 2023수능에서 수학 표점 최고점은 미적분 145점, 확률과통계 기하 각 142점으로 3점 차다. 국어는 언어와매체 134점, 화법과작문 130점으로 4점 차다. 2022수능의 수학 3점 차, 국어 2점 차에서 국어 표점 격차가 2점 더 벌어진 것이다. 특히 2023수능 국어가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면서 수학의 영향력은 더욱 거세졌고, 문과생은 국어에서 만점을 받았더라도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원점수에서 동일한 만점을 받았더라도 이 같은 표점 격차가 나는 이유는 표점에서 미적분, 기하가 확률과통계에 비해 더 우수한 학생이 몰려 있기 때문에 점수 산출 방식상 동일 원점수를 맞고도 표점에서 앞서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행 수능 점수 산출 체계를 들여다보면, 공통과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은 집단이 선택과목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는 구조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각각 A, B 선택과목을 고른 두 수험생의 선택과목 원점수가 같더라도 A 선택과목을 택한 집단의 공통과목 평균 점수가 B 선택과목 집단보다 높으면 선택과목 보정 후 점수는 A 선택과목을 본 수험생이 높을 수 있다. A 선택과목에 더 좋은 실력을 지닌 학생이 몰린 것으로 간주해 해당 선택과목 수험생이 일종의 보상을 받는다는 의미다. 

다만 선택과목 변경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습부담이 커져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표본조사에서 수학 선택과목을 이과 수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 학습부담에 대해 ‘매우 부담된다’가 52.9%, ‘부담된다’가 35%로 전체 학생의 87.9%가 부담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 대표는 “만약 중하위권 학생이 이과 수학으로 빠져나간다면 오히려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학생이 유리한 상황일 수 있으나, 상위권 학생이 이과 수학 선택 시에는 오히려 문과생에게 불리한 상황이 지금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며 “따라서 문과생 중 상위권과 중상위권은 이과 수학 선택 시 학습부담 등을 고려해 매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문과생 두 명 중 한 명(51.8%)은 이과 교차지원이 허용될 경우 지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문과생의 자연계 교차지원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임 대표는 “문과생이 확률과통계로 이과에 지원 가능하더라도 확률과통계의 표점이 미적분/기하의 표점에 밀리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지원 가능하더라도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통합수능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표점 유불리 문제가 계속되면서 이과생의 인문계 교차지원, ‘이과 침공’이 극심해지자 교육계에선 문과생도 이공계열로 진학할 수 있게 장벽을 허물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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