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부터 뒤집은 자충수’.. ‘교육 개혁 시작 전부터 잇단 좌초’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지난달 29일 교육부 업무보고의 후폭풍으로 교육계 전반은 시끄럽다. 교육계의 논란 확산은 교육부의 업무보고가 자초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업무보고 자체가 문재인 정부가 비틀어 둔 교육정책을 정상화하는 교육개혁의 청사진이나 대선을 통해 제시된 공약의 실현 과정을 담은 게 아니라 돌출된 사안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컸던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한다는 학제 개편은 학부모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4일 만에 철회됐다. 이어 공약부터 뒤집은 자충수라는 외고 폐지 방침 역시 학교 학부모의 반발이 거세지는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외고 폐지 역시 학제 개편과 마찬가지로 철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사실상 철회된 학제 개편보다 외고 폐지 철회는 명분 측면에서 더욱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공약에서 문재인 정부에 반하는 다양한 고교 선택과 수월성 교육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느닷없이 업무보고를 통해 공약을 뒤집는 자충수의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사고는 존치하고 외고를 폐지한다는 결정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교육 개혁을 시작하기 전 출범부터 비틀대는 교육부의 행보는 이미 박순애 교육부장관의 임명에서부터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이다. 박 장관이 행정전문가로 교육 관련 정책을 한 번도 다뤄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두 달이 다 되도록 교육수장 자리가 공석으로 이어지며,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박순애 후보를 인사청문회 없이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임명하면서 교육계의 반발이 거셌다. 교육부수장 자리는 다른 부처에 비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는 만큼 당시 진보 성향인 전교조와, 보수 성향인 교총 등 교육부장관 임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육계에 가득했다.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2001년 12월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돼 벌금 250만원 형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만취운전 전과 외에도 제자 논문 가로채기, 논문 중복 게재, 연구비 유용, 조교 갑질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녀 불법 입시컨설팅 논란 의혹으로 국회에서 자녀의 생기부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를 사실상 거절해 의혹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다. 

교육부장관만의 문제도 아니다. 교육부장관을 둘러싼 정책 결정권자들이 모두 교육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다는 점 역시 예견된 참사의 한 축을 이룬다. 박 장관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을 겨냥한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 경험이 전무하다. 장상윤 차관도 국무조정실 출신, 이상원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대통령실 교육정책을 맡고 있는 안상훈 사회수석도 복지 전문가다. 교육계에서는 시급한 현안이 산더미인데, 엉뚱한 외고 폐지, 초등학교 만 5세 입학연령 하향 등의 의견수렴도 되지 않은 섣부른 방향을 제시한 것부터 교육라인을 구성하는 비전문가들로 인한 예견된 사고라는 반응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현재 교육계에 시급한 현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가장 시급한 건 통합수능이다. 지난해 첫 시행한 통합형 수능은 같은 만점을 받아도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개편 없는 2년 차 통합수능을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지난해 학습효과로 인해 대입이 ‘수학 한 줄 세우기’ 구조로 왜곡되며 고교뿐 아니라 초등학교까지 미적분 사교육 열풍에 휩싸인 결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고교학점제와 엇박자를 내는 정시 확대 등 지난 문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고교현장을 흔드는 정책들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자사고 존치를 골자로 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 외고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자사고 존치를 골자로 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 외고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거센 외고 반발 “시대착오적, 박순애 사퇴하라”>
지난달 29일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자사고 존치, 외고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새 정부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교육부는 “자사고는 존치하되 외고는 폐지 또는 전환해서 다양한 분야의 교육과정을 통해 특수한 목적을 갖도록 하는 형식으로 전환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사고 존치 방침과 함께 발표한 일반고 교육역량 제고 방안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교과 특성화 학교 운영’을 포함시킨 만큼 외고가 폐지되면 교과 특성화 학교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기존 공약을 뒤집는 외고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5일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회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교육부장관의 일방적인 발표는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고 폐지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교육의 영역 안에서 숙의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을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드는 행태는 현 정부가 이 문제를 교육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고 폐지 정책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다”며 "과고 영재학교 자사고 유지의 명분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자율성과 다양성 충족에 있다면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외고 국제고 존치 역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또 “정부가 일방적이고 성급하게 추진 중인 외고 폐지 정책을 즉시 철회하고 최소한의 진정성을 갖고 대화의 장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어 “백년대계인 교육 정책을 졸속으로 발표했다”며 박순애 교육부장관의 사퇴도 요구했다. 토론회나 공청회 없이 정책을 갑자기 내놨다는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주최 측 추산 약 200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연합회는 “학교 학생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어떠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여론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교육 당국의 행태에 우려를 표한다”며 “글로벌 시대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외고는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11일에도 서울 중구 이화외고 강당에서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행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11일 기자회견에는 20여 개 외국어고 교장선생님들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1일에도 전국 30개 외고 교장들로 구성된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가 입장문을 내고 “시대착오적/반교육적”이라며 폐지 방침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특수목적고인 외고를 폐지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접하고 시대착오적이고 반교육적인 정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외고 존치 정책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토론이나 공청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교육부는 외고 폐지 검토 계획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이어 “당장 외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률적 행위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인 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자신이 외고 1학년 재학생이라 밝힌 청원인이 올린 “외고 폐지를 멈춰 달라”는 청원글도 게시됐다. 8월5일 오전1시 기준 동의 수는 1만3856건이다. 청원인은 “외고 설립취지와 결과가 맞지 않아 폐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꼭 어문계열을 가야 하는가 의문”이라며 “우리는 각종 언어들을 구사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리,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 서 있는 스스로를 꿈꾸며 공부한다. 우리의 꿈을 지켜 달라”고 밝혔다.

<‘명분 없는’ 외고 폐지 취소되나>
지난달 29일 교육부가 발표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 안도 포함됐다. 사회적 합의 후 이르면 2025학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는 물론이고 학부모와 정치권 등 전국 각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교육부는 공론화를 진행한다고 한 발 물러났다. 사실상 공론화를 진행해도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어 철회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이다.

외고 폐지 역시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어 이와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공약으로 특목고의 존치를 내세우며 학생의 선택권과 수월성 교육을 강조했다. 하지만 돌연 이와 반대되는 방침을 밝히며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게다가 외고 폐지 명분은 학제 개편 안 추진보다 부실하다. 자사고는 존치하고 외고만 폐지한다는 방침에 대해 설명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리스크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뒤 최저치인 24%를 기록하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부담이다. 25%선이 붕괴된 것은 한국갤럽 조사결과 2016년 국정농단이 불거졌던 시기의 25%와 맞먹는 수치다. 한국갤럽은 2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24%로, 부정평가가 6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는 ‘인사 문제’가 23%로 가장 컸고, ‘경험/자질이 부족하고 무능하다’가 10%, ‘독단적/일방적이다’가 8% 등으로 상위 요인을 차지했다. 특히 최근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이 부정평가 이유의 5%를 차지했다. 평가에 참여한 연령은 40대가 10%로 가장 낮았고, 30대가 13% 등 30~40대에서 10% 초반을 기록했다. 이는 만 5세 자녀를 둔 학부모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사회적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지율이 높았던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교육 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했는데 교육부수장 공석이 길어졌고 박 장관의 흠결로 인해 정책 추진을 감행할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가까이 교육수장의 공백 상태가 이어지면서 교육정책을 준비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이 강행되면서 교육부수장은 높은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는 만큼 흠결 지적이 이어져왔다.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2001년 12월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돼 벌금 250만원 형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만취운전 전과 외에도 제자 논문 가로채기, 논문 중복 게재, 연구비 유용, 조교 갑질 등 여러 의혹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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