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특구 중심 경제력이 가른 N수 양극화까지’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정시40% 유지에 의대 증원 규모까지 확정되면서 대학 전방위적 중도이탈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SKY 자연계열 상위권의 이탈에서부터, 치대/한의대/수의대에서, 심지어 같은 의대 내에서도 상위의대로 진학하고자 중도이탈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시 문호가 절반 이상으로 넓혀진 상황에서는 수능 재도전의 유혹이 계속해서 남아있기 때문이다. 반수 러시를 포함한 무한 N수 굴레로 수험생을 떠미는 형국이다. 특히 무한 N수는 사교육과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교육 양극화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시40%룰이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이 아닌, ‘재도전 안 하면 손해’인 것으로 만드는 모양새다.
정부가 강제한 정시40%룰 체제의 부작용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최근 서울대가 정시40%룰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대는 ‘2028학년 서울대 대입전형 개편을 위한 대입정책포럼’에서 최근 4년간 합격생의 지역 편중이 심화하고 중도탈락자가 늘어난 점을 문제로 꼽기도 했다. 의대 확대가 대입 사상 최대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만큼, 정시40%를 손보지 않으면 의대만 바라본 N수 반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N수생이 싹쓸이하는 정시.. 4년간 의대 정시 최초합 N수생 비중 77.4%>
교육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이 정시40%의 부작용을 극대화할 것으로 평가한다. 현 정시40% 룰은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에서 선발하는 수시이월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정시50%의 효과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정시는 반복 학습이 유리한 수능의 특성상 재도전의 유혹이 강한 전형이다. 정시 문호가 좁을 때는 섣불리 재도전하기 어렵지만, 정시 문호가 넓어질수록 재도전에 대한 부담이 적다. 지난해 치른 2024수능에서 N수생과 검정고시생은 17만7942명(35.3%)으로 27년 만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학년 29.2%, 2023학년 31.1%, 2024학년 35.3% 순으로 계속해서 확대세다. 올해 반수생 추정 규모는 8만9642명으로 역시나 역대 최대치였다.
실제로 정시 입시결과 N수생의 강세가 증명된다. 지난해 3월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과 현직 교사로 구성된 정책연구단체 ‘교육LAB 공공장’이 발표한 ‘2020~2023학년 정시모집 의대 합격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의대 정시 최초합 인원 중 N수생이 77.4%를 차지했다. 치대 79.4%, 한의대 82.7%로 의학계열 정시 전반에서 N수생이 싹쓸이한 것이다.
지방 의대로 범위를 좁히면 더 심각했다. 안민석(더불어민주) 의원이 전국 10개 국립대 의대로부터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시 합격생 중 N수생 비중이 81.3%나 됐다. 의대뿐만 아니라 SKY 역시 마찬가지였다. 4월 ‘2020~2023학년 서울대/고대/연대 신입생 선발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SKY 정시 합격자의 61.2%가 N수생이었다.
<대학 중도이탈로 이어지는 반수 행렬>
문제는 기존 수험생의 재도전뿐만 아니라, 이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반수 러시까지 가세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미 넓혀진 정시 문호를 통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수시 입학생에 비해서는 정시 재도전에 대한 부담이 적다. 수시에 비해 낮은 학과 적응도 역시 중도이탈을 부추긴다. 학종의 경우 3년간의 고교 활동을 근거 자료로 계열적합성을 따져 선발하는 전형인 만큼 중도이탈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수능성적으로 선발하는 정시의 경우 지원 시 입결을 최우선순위로 고려해 성적 순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대학생활 적응도가 낮아 이탈하기가 쉽다. 2018∼2021학년 수도권 대학 14개교의 주요 입학 전형별 신입생을 분석한 결과 제적/자퇴 등 중도이탈 비율은 수능전형 출신이 16%로 가장 높았고, 학종은 6.8%였다.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중도이탈은 같은 의대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대 중도이탈은 상위의대 진학을 위한 N수행으로 여겨진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빅5으로 이어지는 이탈 메커니즘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알리미 공시 기준 2020년~2022년 의대 중도탈락을 분석한 결과 555명 중 75.1%가 지방권으로 나타났다. 의대 가운데 선호도가 가장 높은 빅5 의대(가톨릭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울산대)의 중도탈락자 수는 적은 편이었다. 올해 빅5 의대에서도 증원이 이뤄질 경우 빅5를 목표로 한 의대 내 중도이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2024수능 표점수석 학생은 2023학년 성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서울대 의대 진학을 목표로 2024대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치대/한의대/수의대 등 다른 의학계열에서 의대를 목표로 재도전 하는 경우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년간 중도탈락자 추이를 살펴보면 치대는 2020학년 75명, 2021학년 66명, 2022학년 61명으로 총 202명, 한의대는 2020학년 74명, 2021학년 100명, 2022학년 82명으로 총 256명, 수의대는 2020학년 71명, 2021학년 97명, 2022학년 66명으로 총 234명이다.
최고 선호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에서의 반수마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 비율이 12.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자연계열인 공대에서 117명이 휴학해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대행을 목표로 한 반수라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SKY로 범위를 넓히면 2022년 중도포기자가 2131명으로, 전년보다 160명 증가했다. 재적 학생 7만5322명의 2.83%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7년 1.6%(1196명), 2018년 1.78%(1340명), 2019년 1.9%(1415명), 2020년 2.15%(1624명), 2021년 2.6%(1971명), 2022년 2.83%(2131명) 순으로 5년 연속 증가했다.
상위15개대에서도 중도이탈이 확대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위15개대 중도포기자는 1만595명으로 재적 학생 33만2240명의 3.19%를 차지했다. 2020년 2.84%(9613명), 2021년 3.08%(1만389명), 2022년 3.19%(1만595명) 순으로 확대됐다. ‘이공계의 꽃’으로 불리는 과기원, 이공계특성화대에서의 중도이탈도 확대됐다. 2021년 2.47%(269명)에서 2022년 3.03%(338명)로 확대됐다.
<경제력이 가르는 N수 양극화.. 사교육과 결합한 교육특구 강세>
N수가 유리하다고 해서 모두가 N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숙학원일 경우 연 3000만원 이상까지 든다는 점에서 경제력에 재수 여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소득층인 경우 의대 증원 이후 의대만을 목표로 한 무한 N수에 돌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단 의대행이 아니더라도 ‘대학 간판’을 높이기 위한 무한 N수 역시 고소득층 중심으로 쏠릴 수 있다.
정시 실적이 고가의 사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육특구에 쏠려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5월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대 정시 등록자 중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 출신 비중이 2022학년 기준 22.7%였다. 강남 3구의 고교생 수가 전국의 3.2%에 불과하다는 점을 놓고 보면 상당한 비중이다. 사교육 메카로 불리는 대치동이 강남구에 소재해 있는 만큼 사교육 영향이 짙은 교육특구에서 정시 실적을 쓸어가고 있는 셈이다.
무한 N수를 부추기는 상황은 결국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다. 정시 수능전형은 문제풀이 식 교육을 통한 반복학습으로 입시 성과를 낼 수 있어 사교육 효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전형이다. 결국 경제력이 N수 여부를 가르는 상황에서, 무한 N수가 유리한 정시를 4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교육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