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방식 순증이냐 제로섬 게임이냐
[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최근 10년간 학령 인구가 감소하며 위기를 겪어온 순수/기초 학문 분야의 미래가 고사의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2028대입 개편안을 통해 정시 40%를 유지하는 데 이어 무학과 30%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순수 기초 학문을 덮치는 삼각파도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의대 증원 방식을 첨단 학과 증설과 같은 방식인 정원과 무관하게 순증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정원을 묶어 둔 상태에서 제로섬으로 증원하는 방식이 된다면 거의 곧바로 입학 정원부터가 사라지는 고사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의대 재도전’과 같은 N수 문호는 미취업 불안감에 떠는 인문/사회/자연 계열 중심 순수/기초 학문 분야 재학생들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자퇴를 급증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교육위 소속 서동용(더불어민주) 의원이 2013년과 2023년 전국 4년제 대학의 계열별 입학 정원을 분석한 결과, 자연/인문/사회 계열 등 순수/기초 학문 분야 정원은 최소 16.1%에서 최대 22.3%까지 축소됐다. 자연계열의 경우 스마트모빌리티 로봇시스템 등 최근 정부가 지원하는 융복합 중심 학과의 정원은 증가했지만 토목/도시 산업 등은 정원이 감소했다. 특히 특히 과학자를 양성하는 순수 학문인 자연계열은 16.1% 축소됐다. 인문계 역시 심각하다. 사회계열의 경우 22.3% 축소했으며 인문계열은 20.1%, 교육계열은 12.1% 축소됐다. 의약계열의 경우 23.8%까지 확대됐지만 약대의 학부 선발 전환과 의전원의 의대 회귀를 고려해야 한다. 2013년 수치와 달리 2023년의 경우 2022학년 약대 학부 선발 전환으로 약대 모집 인원이 증가했으며 의대는 2016년 동국대, 2017년 제주대, 2019년 강원대, 2020년 건국대 등 4개 의전원의 의대 회귀 영향으로 인원이 증가했다.
단, 대학 정원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수도권 정비 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대학의 총 입학 정원은 1999년 정해진 11만7145명을 넘을 수 없다. 때문에 학과 신설이나 증원을 추진할 경우 타 단과 대학의 정원을 축소하는 게 불가피하다. 융합 학과가 신설되면서 순수/기초 학문 분야 학과의 정원이 줄어드는 이유다.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최근 논의 중인 의대 정원 확대 역시 첨단 분야와 같은 순증일지, 타 학과 정원을 줄이는 제로섬 게임이 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타 학과 정원 감축 없는 순증은 2024학년 첨단 분야 1829명 순증이 이례적인 일이다. 2000년 이후 처음이라고 교육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제는 순수/기초 분야 정원의 축소는 최근 10년간의 흐름보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는 데 있다. 이미 예고된 대입 환경의 변화는 2028대입 개편에서 유지되는 정시 40%와 현재 논의 중인 의대 정원 확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밝힌 무전공 30% 선발까지 삼각파도 형태로 순수/기초 분야를 덮칠 것으로 보인다. 수시 추가 모집 인원까지 고려해 정시 문호가 절반가량 확대되어 있는 상황 속 의대 정원이 1000명가량 확대된다면 의대 진학을 위해 중도 이탈하는 학생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게다가 무전공 30% 선발까지 추진된다면 의대를 제외하고도 첨단 분야 등 인기 학과에만 인원이 몰려 기초 학문 분야의 쇠퇴를 촉진할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을 비교해 본 결과 지난 10년간 3만5363명(10.2%)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학령 인구 감소가 주 요인이지만 계열마다 차이가 있다. 의료계는 45.5%, 간호는 24.2% 증가하는 등 의약계열은 23.8%가 증가했다. 다만 의약계열의 23.8% 상승은 2022학년 약대의 학부 선발이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의전원의 의대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2013년의 경우 2009년부터 본격 도입된 의전원 체제인 대학이 많았지만 2011년부터 전국 41개 대학 중 36개 대학이 의대 학제로의 복귀를 택했으며 의전원을 유지한 대학 중에서도 2016년 동대, 2017년 제주대, 2019년 강원대, 2020년 건대 등 4개 의전원이 의대 회귀를 선언하면서 의전원은 차의과대만 남게 됐다. 특히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의약계열 정원은 이보다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무전공 30% 선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러한 정책이 자칫 기초 학문 분야의 쇠퇴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0년간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순수/기초 학문 분야의 정원이 크게 감소했는데 학생에게 학과 선택권을 주면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5일 교육부 이 장관은 출입 기자단 간담회에서 대학 정원의 30%를 무전공으로 모집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대학도 벽 허물기가 시작됐고, 잘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줘 안 하는 대학과 분명히 차별화하겠다”며 “정원이 1000명이면 300명 정도는 입학 후 원하는 전공을 택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학과 소통하겠다. 정책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과 연계해 무전공 입학을 추진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문제는 인기 학과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동용 의원이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을 분석한 결과 10년 동안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은 총 3만5363명(-10.2%) 감소했다. 사회계열이 1만9944명(-22.3%)으로 감소폭이 가장 크며 인문계열 9042명(-20.1%), 자연계열 7029명(-16.1%), 교육계열 2423명(-12.1%), 예체능계열 4682명(-11%) 순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과 분류 체계에서 중 계열 기준으로 살펴보면, 기초 학문 분야 중심의 쇠퇴가 더욱 뚜렷하다. 과학자를 양성하는 순수 학문인 자연계열에서는 생활과학이 2642명(-24.4%) 감소했다. 의약계열과 함께 정원이 3% 증가한 공학계열에서도 계열별 차이가 뚜렷하다. 산업 정밀/에너지 전기/전자 소재/재료 계열은 감소하고, 기타 계열이 증가한 것이 두드러졌다. 토목/도시 1506명(-24.5%), 정밀/에너지 657명(-19.1%), 전기/전자 1570명(-12.3%)의 감소폭이다. 5557명(89.5%) 증가한 기타 계열은 응용공학 교양공학 기전공학(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융합한 학문)으로 로봇시스템 스마트모빌리티 공학자율전공 등이다. 최근 산업 경향에 따른 융복합 중심 학과의 입학 정원이 증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학과 30% 모집과 의대 정원 확대가 맞물려 기초 학문 분야 쇠퇴가 촉진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2028대입 개편안에서 유지로 가닥 잡힌 정시 40%도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상위권에서는 문호가 넓어진 의대로, 그 외 자연계에서는 첨단 학과로 쏠리게 될 것이며 인문계 역시 취업에 유리한 학과로 쏠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교수 사이에서도 비인기 학과의 폐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서 의원은 “취업 중심의 인기 학과나 정부 정책에 따른 학과 증설에 매몰되면 오히려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인재 양성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체계적인 고등 교육 인재 양성 정책 없이 경쟁력 중심의 구조 조정을 강요한다면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