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대학 가운데 유일한 일방적 입시운영’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한국영재가 올해도 신입학 원서접수 결과를 비공개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원서접수를 마감한 장영실전형뿐 아니라 일반전형 역시 경쟁률을 공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영재의 경쟁률 비공개 방침은 2022학년 이후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경쟁률을 공개해달라는 지원자의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공개 방침을 강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원서접수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곳은 전국의 대학은 물론 영재학교를 포함해 과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 국내 교육열과 관심이 집중되는 전국의 선발 고교 가운데 한국영재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수요자를 무시하는 일방적 입시운영’의 오명을 굳힐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재가 경쟁률을 비공개하는 이유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영재 측은 원서접수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MIT를 비롯한 세계 명문대학 역시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지원자 대부분이 국내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환경과 교육정서를 고려하기보단 미국 ‘MIT’의 잣대로 입시를 운영한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제기한다. 한 입시 전문가는 “국내 입시에서는 학교별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마저 제한되기 때문에 서구 입시와 비교해 임하는 자세와 마인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고, 사교육의 영향력도 압도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국내 고교가 MIT의 시선에서 입시를 운영하겠다는 건 현실성이 없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경쟁률을 공개하는 것이 단순 궁금증 해소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고도 밝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입시에서 ‘수요자의 궁금증’에 대한 가치를 평가 절하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영재를 제외하면 국내 고입과 대입에선 최대한의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수요자친화적 방향으로 부단하게 진화하는 상황이다. 입시에 대한 궁금증이 스스로의 힘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수요자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자극할 요인을 최대한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경쟁률을 공개하는 데는 입시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입시의 당사자인 지원자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물론 다른 학교와 비교되기 싫다는 이유로 경쟁률을 공개를 꺼려하는 내부 목소리도 있긴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당사자의 지엽적인 학교의 사정이 수요자들의 알 권리보다 우선될 순 없다”고 말했다.

<한국영재 2024장영실전형 경쟁률 비공개.. ‘3년 연속’>
15일 한국영재가 장영실전형 원서접수를 마감한 가운데 올해 역시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영재 관계자는 “장영실전형의 경우 각 특기 유형별로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 터라 단순 경쟁률이 무의미하다”고 비공개 이유를 밝혔지만, 일반전형마저 경쟁률을 비공개하겠다고 밝혀 설득력을 잃은 상태다.
올해 장영실전형의 경쟁률 비공개가 더욱 답답한 점은 일반전형과의 중복지원이 불가능해지면서 경쟁률이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변화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장영실전형에 추천된 학생 중 일부 인원에게 일반전형 2단계 응시자격을 부여했지만, 올해는 2단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1단계에서 불합격한 인원은 모두 전형이 종료되기 때문에 본인에게 적합한 전형이 무엇인지 신중히 판단해 지원해야 했던 상황, 여기에 장영실전형의 모집인원이 확대되면서 경쟁률이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영재의 비공개로 이를 확인할 수 없어 전형 내내 깜깜이 입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경쟁률은 향후 진행되는 전형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정보다. 전형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규모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입시의 투명성, 공정성과도 직결된다고 여겨진다. 이 같은 이유에서 한국영재를 제외하면 다른 특목고나 자사고에서는 경쟁률을 비공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교육부 산하 종합대학은 물론 한국영재와 동일하게 과기부 산하에서 특별법의 관리를 받는 KAIST GIST DGIST UNIST까지 대학으로 범위를 넓혀도 모두 원서접수 직후 경쟁률을 빠짐없이 공개하고 있다.
한국영재 역시 경쟁률을 공개하긴 하지만 다음 입시가 시작되기 직전인 내년 3월 중순이 돼야 확인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당해연도 전형에 응시하는 지원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전형이 끝날 때까지 경쟁률을 모르게 되는 셈이다. 1년 뒤에야 공개되는 경쟁률 정보 역시 수백 장에 달하는 학교교육계획 보고서의 일부로, 공개 방식이 수요자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국영재 경쟁률 비공개 이유.. ‘MIT는 공개 안 해’>
한국영재는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MIT를 비롯한 세계 명문대학 역시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쟁률을 공개하는 것이 단순 궁금증 해소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등을 들었다.
다만 한국영재가 비교 대상으로 든 MIT 등 세계 명문 대학의 입시환경은 한국영재와 동일 선상에 올려놓기엔 무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지원 기회부터 다르다. 미국 대학은 여러 곳에 동시에 지원이 가능한 반면, 국내 영재학교의 경우 중복지원이 금지되면서 8개교 중 한 군데만 선택해야 한다. 한국영재에 지원하기 위해선 다른 학교의 지원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만큼 전형에 응시하는 지원자의 마인드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입시를 대하는 지원자의 정서에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한국 입시는 공정에 대한 가치도 높다. 미국 대학에서는 기여입학제가 여전히 적극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입시에선 부모에 대한 정보를 일체 기재할 수조차 없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사교육에 대한 입시의 영향력도 다르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확연히 높은 국가다. 사교육비를 잡는 게 국가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국가가 기준을 세워 사립대학의 입시까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지경에 이른 상태다. 이 같은 국내 교육환경을 ‘국립학교’인 한국영재가 외면한 채 독단적인 입시를 운영할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입시 요강도 여전히 미공개.. ‘수요자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국영재의 수요자 무시 행보는 경쟁률 정보 외에도 입시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통상 5월 말에서 6월 초에 실시하는 일반전형 원서접수가 두 달도 남지 않은 현재 한국영재의 입학요강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원서접수 한 달 전에만 요강을 공개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수요자 입장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은 촉박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8개 영재학교 가운데 인천영재 서울과고 대전과고 세종영재 4개교는 요강을 이미 공개했고, 대구과고 광주과고는 4월19일, 경기과고는 4월4주 차에 요강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영재는 아직 모집요강 공개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기출문제 공개 역시 문제지만 공개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영재는 교육부가 2020년 발표한 영재학교/과고 입학전형 개선방안에 따라 의무적으로 기출문제를 공개하긴 했지만, 출제근거 평가기준 등의 해설 없이 단순 ‘문제지’만 공개하는 데 그쳤다. 사교육 의존도 경감을 목표로 기출문제를 공개하면서 학생이 스스로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끔 돕겠다기보단, 단순히 문제를 공개하라니 공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교육관계자는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해진 답이 없고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열린 문제’ 방식으로 출제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개의 예시 답안이나, 출제의도, 최소 문제풀이의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시하는 노력까지 이어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과정은 학교의 자율성에 맡기더라도 최소한 입시만큼은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거세다. 한 교육전문가는 “대입 비교하면 고입은 ‘수요자’의 개념에 대해 안일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입시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안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획일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수요자에게 최대한의 정보를 투명하고 공개하면서 예측 가능한 입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입에서 4년 예고제를 실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국방부가 관할하는 4개 사관학교와 경찰청 소속의 경찰대학, 과기부 관할 이공계특성화대학 역시 마찬가지로 법령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대입의 틀을 따라 사전예고제를 실시한다. “국가적 관리 체제가 없이 영재학교를 방치할 경우 사교육 의존 확대, 의대 이탈 등의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