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재 이어 경찰대 육사 해사 국간사까지 경쟁률 비공개’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교육부가 수능 정보를 비공개한 이래 본격화된 ‘깜깜이’ 입시가 고입과 대입 전반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사교육의 가장 주된 원인은 불안감’이라며 입시 정보 공개를 확대하겠다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포부와는 달리 가장 기본적인 원서접수 경쟁률조차 공개하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교육부가 최근 3년간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등 수능 정보에 대해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교육계에서는 입시 정보를 수험생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공감대가 무너지고 있다”며 “풍선 효과로 교육 법령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과기부 국방부 등 타 부처 관할 학교는 지난해부터 이미 입시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고 올해는 아예 경쟁률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고입에서 과기부 관할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원서접수 마감 이후 최종 지원현황을 공개하지 않더니, 대입에서는 경찰청 관할 경찰대학, 국방부 관할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등 특수대학까지 경쟁률을 비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찰대는 1차 시험이 끝난 후에 원서접수 현황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쟁률은 입학전형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 원서를 접수한 수요자가 앞으로의 전형 추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학교 측에서 공식적인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으면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교육 기관을 통해 경쟁률 ‘추정치’가 유통되는데, 실제 경쟁률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입시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문제도 불가피하다. 입학전형 시작부터 수험생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수요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 공개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교육부가 오히려 깜깜이 입시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형 수능 도입 이후 단 한 차례도 점수 산출 체계나 선택과목 응시 집단별 세부 통계를 공개하지 않은 교육부는 올해도 결국 전면 비공개 방침을 선언했다. 선택과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 달라 대입에서 유불리가 극명하게 나뉘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비공개로 일관해 수험생은 사교육 기관에서 분석한 추정치에 의존해 대입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부가 깜깜이 입시를 주도하고 있는 형국에 타 관리부처의 입시운영 행태는 불 보듯 뻔하다. 누가 누굴 관리하겠나”라고 비판했다.

<교육부 ‘깜깜이’ 입시 개선책 無.. ‘수능 정보 비공개’ 고수>
교육부가 수험생이 전적으로 사교육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국어 수학 선택과목별 표점에 대해 여전히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다. 26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수능 정보 공개는 전문가들과 논의해 본 결과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 올해는 수능의 킬러문항을 핀셋 제거하는 데 집중하겠다. 많은 것을 하려다 보면 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에 2025학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수능 문항별 정답률이나 변별도 등의 정보 또한 공개 여부 결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교육부와 평가원이 선택과목별 표점 차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정보 공개 시 학생들이 잘할 수 있는 선택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 체제에 맞춰서 선택과목을 고르는 문제, 과목 선택률에 왜곡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염려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점수 보정 체계에 따라 상위권 학생이 많이 선택한 선택과목 점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결국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아무리 문제 난이도를 조정하려 한들 문이과 유불리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선택과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 달라 대입에서 유불리가 극명하게 나뉘는 상황인데도 교육부는 팩트를 숨기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선택과목 간 표점은 통합수능 이후 단 한 차례도 공개되지 않아 수험생은 사교육 기관에서 분석한 추정치를 토대로 대입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어 깜깜이 입시에 내몰린 수요자가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풍선 효과’.. 영재학교 특수대학 깜깜이 입시 확대>
입시 정보 공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교육부를 넘어 타 관리부처까지 급속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과기부 관할 영재학교나 국방부 관할 특수대학 등은 관련 법령이 상이해 입시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분위기에 맞춰 경쟁률이나 면접 기출문항 등 입시 정보를 꾸준히 공개해왔으나 한국영재는 2022학년부터, 육사를 제외한 특수대학은 지난해인 2023학년부터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태세를 돌연 전환했다. 올해는 취재 결과 공사만 남녀 통합 30.2대1이라는 경쟁률을 알려왔고, 국간사 육사 해사는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원서접수를 끝낸 경찰대는 1차 시험이 끝난 후에 경쟁률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영재는 수험생이 경쟁률이 아닌 각자 본인의 소신대로 전형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지원현황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는 입장인데, 내부 기대와는 달리 교육 현장에서는 오히려 사교육 기관이 예측해 내놓은 비공식적 경쟁률 정보가 성행하며 부작용만 커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학부모는 “접수 이후 경쟁률이 궁금해 며칠째 인터넷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원자들의 접수번호로 대략적인 경쟁률을 예측하고 있는데 학원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언급하는 지원자 수가 천차만별이라 하루에도 마음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입시가 끝날 때까지 이 불안함이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학교에서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수요자가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간절하고 불안한 마음에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흘러나오는 정보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얘기다. 학교의 비공개 방침은 불확실한 정보로 인한 수험생의 혼란을 그저 방치하겠다는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의적으로 공개 비공개를 학교당국이 결정하는 것부터 원서를 넣은 수험생과 학부모를 배려하지 않는 오만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 ‘수요자 불안감 해소’ 가능할까>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에는 깜깜이 입시를 타파할 수 있는 개선책이 결국 전무한 상황이다. ‘학생들 누구나 학원의 도움 없이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공정한 입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이미 실시해오고 있는 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교협 무료 대입상담, 대입 정보 포털을 통한 대학 평균 합격선 공개는 수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것들이고, 공공 컨설팅을 확대하거나 정보공시 방안을 개편한다는 내용에는 뚜렷한 개선 방향이나 세부 계획 등이 전혀 없는 추상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공정한 입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입시 준비를 위해 ‘고액 컨설팅 및 학원은 필수’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입시 준비는 양극화돼 불공정한 상황에 다다랐다는 데 있다. 통합수능이 실시된 이후 교차지원이 증가하고 합격선이 변동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졌고, 고액의 컨설팅을 찾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막상 국어 수학 선택과목별 표점은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고, 대입 관련 정보 제공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에는 무엇을 공개할 것인지조차 논의되지 않은 허울뿐인 대책만을 내놓았다. 교육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혼란을 거듭하는 사이 깜깜이 입시는 고입과 대입 전반으로 확대되며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의 가장 주된 원인은 불안감” “막연한 불안감으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교육부가 나서서 학부모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강조한 이주호 장관의 포부와 달리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대책은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가장 핵심인 수능 정보조차 교육부가 앞장서서 비공개로 일관하는데 어떻게 학원에서 준비할 필요 없는 입시를 만들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입시전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보인데 정부가 공개하지 않으니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수험생의 불안감을 자극해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건 바로 교육부”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