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열의 교육돋보기]

2014 정시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2014 정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원전략을 세우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 수시확대의 추세가 만든 가장 좁은 문이라는 점,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택형 수능으로 이전 대입 자료가 유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 학생들은 모평보다 성적이 내려갔다는 점에 비추어 올해 정시의 환경은 수험생 입장에서 ‘깜깜이’ 지원을 하거나 포기하기 쉬운, 가장 힘든 정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은 좁고 잣대는 없는데 성적은 낮아져서 갈 데가 없는 막막함이라니.

수험생의 선택은 상당부분 포기 쪽으로 기울었던 것 같습니다. 상위권부터 수시 상황에서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한 인원이 늘면서 재수를 마음먹은 인원이 속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모두 경쟁률이 하락했고 계열별 최대선호학과인 경영과, 의예 역시 경쟁률 하락을 피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내년 정원증가를 앞두고 재수를 불사한 소신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의예과도 경쟁률이 하락하면서 상위권 역시 선택형 수능이 빚은 심리적 타격을 피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2014 정시의 심난한 환경을 만든 주범은 교육정책입니다. 교육당국은 연초 대학과 고교의 실무자 상당수가 유보를 건의했지만 선택형 수능을 강행해 혼선을 자초한데다 정시 확대의 내년 입시안 확정을 통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수험생들에게 재수를 독려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수험생들이 깜깜이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들의 대응 역시 실망스러운 구석이 많았습니다. 사상 최악의 혼전이 예고된 상황에서 대학의 대응은 평소 교육수요자에 대한 대학의 시각과 자세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잣대가 없고 막막한 수험생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는 대학과 전혀 무시하거나 무신경한 대학으로 극명하게 갈린 것이지요.

먼저 가장 멋져 보인 대학은 한양대였습니다. 한양대는 올해 가장 교육수요자 마인드를 가진 대학으로 꼽힐 만합니다. 한양대는 24일 원서접수 하루 만에 합격자를 발표했습니다. 대입에서 원서마감 하루 만에 합격자 발표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지요. 정시 조기발표 말고도 한양대의 교육수요자 마인드는 올해 돋보였습니다. 지난 입시의 합격선을 포함해 입시정보를 모두 공개했고 입학설명회도 수험생 눈높이에서 카페식으로 진행하는 신선한 시도들을 올해 선보였습니다.

수험생들도 수험생마인드를 갖춘 한양대에 신뢰로 화답했습니다. 한양대는 주요 10개 대학 가운데 중앙대와 함께 지난해 대비 경쟁률이 드물게 상승하는 선전을 펼쳤고 주요 10개 경영대학가운데 유일하게 경쟁률이 상승한데다 24개 의대 가운데 경쟁률이 상승한 단 3개의 대학에도 들었습니다.

경쟁률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주는 친절한 대학도 있었습니다. 눈치작전과 소나기지원이 예고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경쟁률을 자주 공개해주는 일은 대학 입장에서 손해 볼 수도 있고 귀찮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교대와 전주교대 우송대는 당일 경쟁률을 실시간으로 중계한 대표적 대학들입니다. 10분 15분 단위로 변경된 경쟁률이 대학 자체 홈페이지에 속속 올라왔습니다. 특히 우송대가 돋보였습니다. 교대의 경우 모집단위가 1개(초등교육과)밖에 없어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했다 쳐도 우송대는 가/나/다군 각각 모집단위가 35개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특히 마감시각인 오후6시를 불과 30분 앞둔 오후5시30분까지 경쟁률을 올려 ‘마감직전’까지 수험생들 입장을 배려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수험생들을 화나게 만든 대학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당장 경쟁률의 업데이트에 무신경하게 나오면서 올해 지치고 힘든 수험생들을 더 힘들게 한 대학들은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대표적인 대학은 연세대입니다. 이미 서울대와 고려대가 경쟁률 하락으로 원서마감한 상황에서 연대의 상황에는 비상한 관심들이 쏠려 있었습니다. 23일 원서를 마감했던 연세대는 마감 전날인 22일 경쟁률부터 공개가 늦어지면서 23일 마감 당일 포털의 실기간 검색어에 연세대 입학처가 오를 만큼 원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마감 전날 경쟁률이 당일 오전에도 2개의 어플라이에 올라오지 않은 데다 당일 오후3시쯤 당일 오전10시 경쟁률 하나만 올라왔습니다. 연대 입학처는 전날 경쟁률의 공개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당일도 오전10시 상황 하나만 올린 채 오후5시에 마감을 강행했습니다. 연대를 지원한 한 학부모는 “참다못해 입학처에 전화했다가 더 황당했다. 점심시간이라고 전화도 받지 않더라. 이게 대학이 할 짓이냐. 수험생을 뭘로 보길래”라고 비난을 했지요.

연대처럼 마감 당일 오전 한 차례만 경쟁률을 공개하고 마감을 강행한 대학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떨까요. 올해처럼 마감 전날 경쟁률에서 서울대 고대까지 미달학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오전 한 차례 공개한 다음 마감이라 경쟁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적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 상황입니다.

사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큰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비슷한 메커니즘과 시각으로 입시를 진행해 왔을 테니까요. 늘 하던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수험생들이 늘 처음 대입을 치른다는 특성은 대학들의 안일한 대응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올해 잘못했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음해가 되면 다시 처음 치르는 수험생이 올 테니까요. 하지만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학생과 학부모가 좀더 현명해진다면, 그리고 대입을 늘 지켜보는 교사와 언론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베리타스알파는 새해에도 늘 수요자 입장에서 대학의 행태를 낱낱이 지켜볼 생각입니다. 수험생 눈높이에 맞춰 노력하는 대학과 고압적 자세가 여전한 대학을 갈라 적어도 ‘착한 대학’인지 ‘나쁜 대학’인지를 지속적으로 알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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