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의사와 의료인류학자의 말기 돌봄과 죽음의 현실에 관한 깊은 대화
[베리타스알파=김하연 기자] 죽음도 고통스럽지만, 죽음의 과정은 더 고통스럽다. 병원에서 겪는 죽음의 과정이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큰 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위해 일상을 희생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지난하게 오가며 삶을 느릿하게 잠식해나가는 암울함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깔끔하게 죽고 싶다는 바람”에 휩싸이곤 한다. 이른바 안락사 찬성 의견이 여론조사에서 80% 내외로 나타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그런 것밖에 없을까? 편리한, 그러기에 섣부를 위험이 있는 선택에 앞서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죽음에 대해서도 효율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책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의 두 저자는 오늘날 죽음의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급한 대안이 아닌 좀더 느리고 섬세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내는 동시에, 보호자에게도 병원 관계자에게도 온전하게 여겨지는 그런 죽음의 과정 말이다. 단순하고 이른바 깔끔한 수단은 그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호스피스’이다.
이 책은 호스피스를 중심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말기 돌봄과 죽음의 현실을 치열하게 성찰한다. 호스피스는 흔히 말기 암 환자가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와 호스피스 의사 김호성은 이런 단순한 인상을 넘어 호스피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제도와 시스템적인 특성은 무엇인지 등을 각자의 전문성에 바탕해 꼼꼼하게 뜯어본다. 생생한 현장 경험과 에피소드는 물론, 제도 분석, 비교문화적 관점, 역사적 검토, 인류학적 탐구 등 입체적 시선으로 호스피스와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로지른다.
저자들은 여섯 개의 키워드(공간, 음식, 말기 진단, 증상, 돌봄, 애도)를 선정하여 2년여에 걸쳐 여러 차례 대담을 나누었으며, 녹취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과 다수의 자료들을 치밀하게 보완했다. 이를 서술체의 산문이 아닌 대화체 형식으로 제시하여 저자들의 상호 교감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한편,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도모했다. 특히 한국의 실정, 한국의 질문들을 다루는 호스피스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환자를 “죽게 하지도, 죽게 내버려두지도 않겠다는 응답”으로서 호스피스의 실천들을 풍부한 맥락 아래 제시하며, 치료 중심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죽음의 대안을 모색한다. (송병기/김호성, 프시케의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