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민 중앙대 선임입학사정관

-교육문제해법, 대입전형에 국한해선 곤란
-학종, ‘배움의 가치’ 구현하는 최선의 방식

몇 주 전 화제가 되었던 어느 TV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공부를 강요당한다. 듣고-적고-졸업, 듣고-적고-졸업, 듣고-적고-졸업, 듣고-적고-구속. 구속. 구속. 구속…”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목적도 잃은 채 수동적으로 공부를 해왔던 우리네 학생들.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 듣고, 칠판 필기 받아 적고, 별 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초중고를 넘어 대학까지 졸업한다. 이 과정을 잘 견딘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가 선망하는 좋은 직장에 가게 되지만, 결국은 생각과 질문이 사라진 로봇이 되고 말았고, ‘악의 평범성’을 그대로 실천하고 말았다는 우울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왜 공부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소위 ‘대2병’ 학생들을 취재하고, 이러한 무기력의 원인이 초중고 수업을 비롯한 학교교육의 과정에 있었으며, 수업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지식의 습득보다는 지식의 융합을, 일방적 강의보다는 토론식 수업을, 돈과 명예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학교는 변화하고 있다. 자유학기제, 수행평가, 진로교육, 거꾸로 수업, 교사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우리 대학에서 몇 년째 실시하는 입학사정관 고교 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달라지는 고교의 변화된 모습을 실감하고 있다. 영어 수업 시간, ‘뉴스의 시대’를 읽고 우리 언론 환경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학생들, 우리 말 토론이었지만 교사가 버거워 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화들. 상벌 규정 개정을 위해 2시간을 토론하는 아이들, 팽팽한 논리적 긴장감 속에서 묻어나는 뿌듯함. 그 가운데서도 밝고 자신감 있는 아이들. 어느 학교, 어느 교실을 가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우리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정민 중앙대 선임입학사정관

대학은 졸업생들의 취업시장 성공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실망하고 그만두는 젊은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대학 홈페이지 <파워 중앙인> 코너에 등장하는 자랑스러운 졸업생들 중 단순히 스펙이 훌륭해 좋은 직장에 입성한 사람이 소개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떤 분야든지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꾸준히 걸어간 사람들이다.

대학 입장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목표는 결국 학교를 빛낼 사람을 찾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넘치고 넘친다. 지원자 중 상당수는 입학 후에도 충분히 수업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췄을 것이다. 그렇기에 판단 기준은 조금 달라진다. 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가? 시험에 나오지 않지만 더 알고 싶고, 찾아보고, 읽고, 생각하고, 질문한 적 있는가? 대학 입학 후에 진짜로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가? 이런 학생들은 대학 입학 후에도 자신의 길을 간다. 그래서 결국은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빛낼 수 있다.

결국,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던져주고,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며, 협력하는 경험을 마련해 주면서 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된 배움의 과정이어야 하고 학생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원칙을 가끔씩 잊어버리고, 아직도 껍데기만 예쁘게 치장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평가에서 변별이 될 것 같지 않아 그만두는 학습 멘토링, 참고서 해설지 수준으로 정리된 데 불과한 독서 기록, 학생 자율이 보장되지 않는 자율 활동과 동아리 활동, 누가 쓴 건지 모를 정도로 대학 수준의 어려운 과학 용어가 난무하는 자기소개서.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나만 생각해서는 멀리 갈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교육문제 해법은 단순히 대입전형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아니어야 한다. 대입전형을 통한 교육의 급격한 변화는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대입전형이 중고교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학교는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학종 전형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전형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덕은 우리가 그 동안 잊고 있던 배움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가장 근접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비판도 일리가 있다. 여기저기 아우성도 들린다. 바꿀 건 바꿔 나가야 한다.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갈 길은 가야 한다. 학교교육의 과정 속에 비판적인 사고와 질문 던지기를 통해서 흥미를 갖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 빠져드는 연습을 해야 하고, 스스로 그리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경험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이고, 학습이고, 배움이다.

마지막도 TV 얘기로 끝을 맺는다. 얼마 전 끝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6년 간 우승자 중 한국에서 중고교 정규교육을 똑바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을 그리며 자기 세계를 펼쳤습니다. 이 대회만큼은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아닌,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너무도 잘 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