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채점표 금지요구'.. '대안도 없이 수요자 혼란만 가중'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코로나 확산으로 비상이 걸린 올해 수능 시행을 앞두고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이 가채점표 논란을 던지면서 현장혼란을 키우고 있다. 사교육걱정은 수능을 3일 앞둔 지난달 30일 수험생들이 수험표 뒷면에 붙이는 가채점표의 사용금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사실상 묵인되어온 가채점표를 명료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옳다쳐도 수요자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문제는 주장을 꺼내놓은 '상황'과 ‘시기’ 다.

올해 수험생들은 코로나로 인한 유례없는 수능을 맞아 그야말로 패닉에 빠진 상태다. 올해 수능을 앞둔 수험생 입장에서 변수는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수능 시행시기 자체가 한 달 미뤄졌고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인해 가림막을 설치해 시험을 치르게 됐다. 교시가 끝날 때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해 ‘수능 한파’를 더욱 크게 체감할 우려도 있다. 시험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점도 수험생들이 올해 적응해야 할 변화다. 마스크를 벗고 먹어야할 점심식사도 변수다. 감염을 우려해 가족들도 카톡을 한다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시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험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지난달 30일은 수능 시험지의 전국 배포가 마무리됐고 2일 배포될 수험표도 바꿀수 없는 시점이다. 올해 수능에서 사교육걱정이 내민 요구가 실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얘기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변수가 한 두 개가 아닌 상황에서 뜬금없는 ‘가채점표’ 논란을 더해 수험생과 현장에 혼란을 극대화시킨 형국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험생과 너무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이고, 모든 교육 관계자들의 신경이 수능을 무사히 치러내기 위한 데 쏠려있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고 충분히 현장에 안내할 수 있는 시간도 이미 지난 지금에서야 금지요구 주장을 던져놓는 것은 수요자 혼란만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은 수험표 뒷면에 가채점표를 자체 인쇄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지만 이미 수능 준비가 완료되어 있는 현 시점에선 실행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능을 2~3일 앞둔 상황에서 가채점표의 사용 금지가 오히려 수험생과 감독관 모두 혼란만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가채점표 논란 자체는 내년 평가원이 알아서 할 문제이고 올해 수능에서는 수험생들의 혼란을 줄이는 차원에서 가채점표에 대한 시비는 없는 것으로 교육당국이 현장에 전달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능 가채점표의 활용여부를 두고 매년 수험생들의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수능 가채점표의 활용여부를 두고 매년 수험생들의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수능 목전에 와서 전면금지하면’.. 또하나 변수를 더하며 혼란만 가중>
매년 가채점표에 대한 혼란이 반복되는 만큼 명확한 지침과 더불어 대안은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시기’다. 사교육걱정은 수능을 사흘 앞둔 11월30일 가채점표에 대한 명료한 금지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매년 묵인 하에 대부분 허용되어 오면서, 이미 많은 학생들이 ‘사실상 허용’ 조치로 인식하고 시험을 목전에 둔 현 시점에서, 가채점표 반입이 갑자기 금지될 경우 오히려 수능 당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독관에 따라서는 이전에도 가채점표를 허용하지 않고 떼어내도록 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대로 치른 경우가 많았다.

수능날이 다 되고서야 금지 조치가 명시화될 경우 일부 소수의 학생이 아닌, 상당수에 해당하는 수험생들이 수험표에 가채점표를 붙이고 고사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이를 떼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소한 돌발상황 하나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고사 당일,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한 고교 교사는 “과거 한 재학생이 수험표에 가채점표를 붙이고 들어갔다가 감독관이 떼라고 해서 시험 중간에 떼어낸 경우가 있다. 꼭 그것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결국 그 학생은 재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이 주장한대로 ‘수능 주관 측에서 수험표 뒷면에 가채점표를 자체 인쇄해 제공’하도록 하는 대안 자체는 일리가 있지만 이 역시 현 시점에서는 대안으로 작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수능 시험지는 배부가 마무리됐고 수험표 배부역시 수능 전날인 12월2일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에 와서 수험표 형태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채점표 허용여부와 대안을 논의하기에는 시기 자체가 부적절한 이유다. 가뜩이나 올해 코로나로 혼란 속 수능을 치르게 된 수험생들에 짐을 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능을 코앞에 둔 지금이 아니라, 수험생들에게 안내사항이 모두 고지가 될 수 있는 시점 훨씬 이전부터 논의가 진행되고 추진됐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무책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정행위의 소지도 있으므로 시험 당일 감독관에게 문의">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주체인 평가원은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다.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 홈페이지 ‘질문과 답변’ 코너에 가채점표와 관련해 올라온 동일한 내용의 여러 질문에 대해 “수능 반입금지 시험시간 중 감독관의 감독 하에 문제풀이 및 답안지 마킹만 가능합니다. 질의하신 수험표 뒷면을 이용한 메모 행위는 시험시간 중 허용된 행위가 아니고 부정행위의 소지도 있으므로 반드시 시험 당일 감독관에게 문의 또는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으로 응하고 있다. 부정행위라고 못 박지 않고 ‘소지가 있다’는 표현을 쓴 점이나, ‘감독관에게 문의해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표현은 허용 가능성을 여전히 남긴다.

규정된 물품 외에 나머지 모든 물품을 이물질로 본다면 원칙상으로는 금지에 더 가깝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묵인되는 분위기다. 감독관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사실 원칙으로 본다면 ‘이물질’로 보고 금지하는 것이 맞지만 감독관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떼라고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만일 감독관 한 선생님이라도 고사본부에 허용 여부를 물어본다면 원칙적으로 금지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가 되는 것은 수험생이다.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가채점표 사용이 허용된다고 보는 분위기다. 가채점표 사용이 가능하느냐는 질문 글에 대부분 가능하다는 답변이 올라오고 있다. 다만 감독관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시험 전에 물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매교시마다 감독관 확인을 받아야 하는 건지 헷갈리는 수험생도 나온다. 

당장이라도 전면 금지시키고 못쓰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은 수험생 입장에선 무책임하다. 가채점을 통해 수시 대학별고사 응시여부를 결정하고 입시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가채점표를 가져가지 않는 수험생들은 수험표 뒷면에 손으로 일일이 칸을 그려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허용이라 할 수도 없고 금지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규정으로 따지고 보면 금지라고 볼 수 있음에도 가채점표를 쓰는 학생 수가 상당하고, 이를 허용하지도 않고 금지하지도 않음으로써 매년 수능을 인생에서 처음 치르게 되는 ‘초보’ 수험생들만 수능이 끝날때까지 맘졸이고 갈팡질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채점표’ 왜 붙이나>
수험생들이 수험표 뒷면에 사교육업체들이 만든 가채점표를 붙이는 이유는 효율적인 ‘가채점’을 위해서다. 가채점을 통해 수시지원전형의 수능최저 충족 가능성을 판단해야 대학별고사 응시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시 지원가능 대학의 가닥을 잡고 전략을 빨리 짜기 위해서는 최종 성적표가 나오기 이전부터 본인의 성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수험생들은 본인이 답안지에 표기한 답안을 그대로 옮겨가서 당일 저녁 답안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가채점 성적을 확인한다. 수험표 뒷면에 별도로 종이를 부착하지 않고 답안을 적는 경우도 있지만 한 문제라도 빠뜨리거나 틀어지게 되면 전체 답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채점을 위해서 사교육업체가 배포한 가채점표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기관들은 자체 가채점표를 제작해 배부하고 있다. ‘부착 전에 반드시 감독관의 확인을 받으시기 바란다’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수험표 신분증과 함께 챙겨야할 사항으로 가채점표를 소개하면서 사용이 사실상 허용된다는 가정하에 가채점표를 제공하고 있다. 

<입시 커뮤니티 "가채점표 문제없이 썼다">
가채점표는 시험장 반입 금지품목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금지물품은 휴대전화, 스마트기기(스마트워치 등), 디지털 카메라,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카메라펜, 전자계산기, 라디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통신ㆍ결제 기능(블루투스 등) 또는 전자식 화면표시기(LCD, LED 등)가 있는 시계, 전자담배, 통신(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이어폰 등 모든 전자기기를 명시하고 있으며, 휴대하거나 사용해서는 안되는 물품으로는 투명종이(일명 기름종이), 연습장, 개인 샤프, 예비마킹용 플러스펜을 예시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능 물품에 명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지 가능한 물품은 신분증, 수험표, 검은색 컴퓨터용 사인펜, 흰색 수정테이프, 흑색 연필, 지우개, 샤프심(흑색, 0.5㎜), 시침/분침(초침)이 있는 아날로그 시계로 통신/결제 기능(블루투스 등) 및 전자식 화면표시기(LCD, LED 등)가 모두 없는 아날로그 시계, 마스크(감독관 사전 확인) 등이 있다. 배치표를 ‘시험 중 휴대 가능 물품 외 모든 물품’으로 본다면 시험기간 중에는 소지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가채점표를 ‘이물질’로 해석한다면 반입 금지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껌이나 엿 등이 답안지에 붙어 오류를 일으켰던 사례로 인해 모든 이물질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수험표 뒷면에 외부에서 반입된 별도의 종이를 부착하는 것은 부정행위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사장 현장에서는 대부분 가채점표 사용이 묵인되는 분위기다. 이미 수능을 치른 경험이 있는 수험생들 역시 문제없이 가채점표를 활용했다는 내용을 입시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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