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효과도 떨어지는 막무가내'.. '오히려 일반고죽이기 가능성'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교육부가 끝내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고입 동시선발을 밀어붙였다. 교육부는 2일 ‘자사고 외고 국제고와 일반고 고입 동시실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그동안 전기모집을 실시해온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모집시기를 후기모집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은 40일간 입법예고된 후 시행된다. 

문제는 이 같은 교육부의 조치가 그간 해온 말들을 뒤집는 조치라는 데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 당시 자사고 특목고 폐지 논란에 대해 향후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임명 후 ‘모르쇠’로 일관한 데 더해 급기야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사실상 고입 동시선발 문제의 결론을 내린 상태다. 교육부는 입시시기 조정문제는 고교유형의 폐지 내지 존립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며 교육회의에서 다룰 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입시시기 조정부터 수요자의 선택과 연결된 고입체제 개편 문제라는 점에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그동안 부총리의 발언을 지켜봐온 교육 수요자들 역시 ‘말바꾸기’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발표시기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당장 중2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은 때문이다. 현행 대입 사전 예고제를 더욱 강화해 3년반 전 교육정책 변화를 발표함으로써 교육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강화하겠다던 정부가 당장 내년에 치러질 고입에 큰 변화를 감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고입 동시선발 방안이 교육부의 재량에 속하더라도 최소 현재 중학생들 이후로 시기를 조정함으로써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고 불의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는 얘기다. 

고입체제의 상당부분을 개편한 명분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고입 동시선발의 목적인 ‘우수학생 선점 해소’와 ‘고교 서열화 완화’의 실현은 현 조치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차’ 성격의 입시를 실시하는 과학(예술)영재학교, 전기모집으로 여전히 남은 과고가 있는 상황에서 우수학생 선점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와의 동시선발이 오히려 일반고들의 여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은 고교 서열화 완화라는 목적 역시 흐릿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외고 국제고의 어학계열 이외 진학, 자사고의 국영수 중심 교육과정 편성 등도 문제 삼고 있지만, 외고 국제고는 어학계열만 진학해야 하는 곳이 아니며 자사고의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 역시 보장돼있다는 점에서 명분으로 삼기 어렵다는 평가다. 오히려 고입재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등 문제점만 가득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형편이다. 

이번 고입 동시실시 방안은 고입체제 변화를 넘어 교육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추진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향후 우려를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번 고입 동시실시 방안은 부총리가 취임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꺼내들었던 카드다. 이후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해야 될 사안이란 비판이 더해지자 전격적으로 ‘말뚝박기’에 나선 셈”이라며, “향후 수능 절대평가를 비롯해 대입/고입 변화, 대학/고교체제 개편 등 교육현안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교육부가 이처럼 말을 바꿔가며 ‘밀어붙이기’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이후 산적한 교육현안들도 우려된다. 현장이 반발하면 교육회의등을 핑계로 물러섰다가 전격적으로 말바꾸기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교육회의를 통한 신중한 정책마련을 기대해온 수요자들을 돌아서게 만든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외고 자사고 국제고의 선발시기를 후기모집으로 전환해 논란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그간 해온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겠단 발언들이 무색해진 데 더해 내세운 명분들의 설득력마저 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고입 동시선발.. 교육부 ‘말바꾸기’>
이번 고입 동시선발은 정부부처의 ‘말바꾸기’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단 평가다. 김 부총리는 불과 4달 전 치러진 인사 청문회 당시 특목고 자사고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질문에 대해 “교사 학부모 의견을 수렴해 국가교육회의에서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당시 이재정 경기교육감을 필두로 일부 시/도 교육감이 자사고 특목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힘에 따라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교육회의에서 진지하고 폭넓게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같은 김 부총리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었다. 한동안 자사고 특목고에 대해 별다른 입장발표가 없던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부총리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년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입시시기를 일반고와 일원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급기야 2일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규정돼있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전기고 입시 근거를 삭제, 후기고로 전환하는 형태로 시행령을 개정했다며 40일간 입법예고를 실시한다고 밝힌 상황이다. 당초 얘기했던 국가교육회의와의 논의나 교사 학부모 의견 수렴 등의 절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교육부는 고입 동시선발이 교육회의와 논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총리가 고입 관련 현안들에 대해 발언하는 과정에서 여러 말들이 뒤섞인 부분이 있다. 실제로는 고입체제 개편 중 일부를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번에 밝힌 고입체제 개편 로드맵은 총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선발시기 조정, 2단계는 운영 성과평가에서의 기준 미달학교와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고 단계적 전환, 3단계는 고교체제의 전반적인 개편이다. 이 중 1단계나 2단계는 국가교육회의와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1단계는 고교체제 개편이 아닌 단순 고입시기 조정이기 때문에 교육회의의 결정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전형방법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모집시기가 바뀐 고교들에도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해명은 궁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입 동시선발 방안은 결국 고교판도 변화를 포함해 준비해온 많은 수요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결국 폐지를 겨냥한 포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특목 자사고 폐지 논란 당시 폐지찬성 입장이던 교육감들은 시행령을 개정해 설립근거를 없애거나 입시시기를 일원화 하는 방안, 운영평가를 통해 폐지를 유도하는 방안 등을 주장했다. 교육부의 이번 고입 동시선발은 폐지 찬성 주장의 연장선상일 뿐 단순 모집시기 변경으로 보기 어렵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이번 고입 동시선발은 단순히 입시시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론 폐지를 겨냥하고 행해지는 조치란 점에서 중장기적 교육 현안으로 보고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는 게 적합하다. 그간 자사고 특목고 논란에 대해 국가교육회의를 해결책처럼 꺼내들었던 걸 고려하면, 교육 수요자들 역시 ‘말 바꾸기’로밖에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수요자들을 배려했다면 유예기간을 두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발표시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내년 고입 동시선발은 현 중2에게 적용되는 사안인 때문이다. 현재 대입은 사전예고제를 통해 늦어도 입학일 기준 2년6개월 전에는 전반적인 전형의 얼개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여기에 새 정부는 수요자 예측 가능성을 명분으로 내걸고 사전예고제를 더욱 강화해 3년6개월 전 정책변화를 발표하는 방안을 법제화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유독 고입에서는 이같은 수요자 배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한 고교 교장은 “고입 역시 대입 못지 않게 복잡한 영역이다. 사전에 대비할 수 없도록 지금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고입 사전예고제를 정착하겠다고 나서도 모자랄 교육부가 오히려 주도적으로 혼란을 만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동시선발 명분 있나.. 오히려 일반고 죽이기 가능성>
교육부가 내세운 명분의 설득력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 고입 동시선발 방안은 ▲우수학생 선점 해소 ▲고교서열화 완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앞서 선발을 시행하는 외고 자사고 국제고의 선발시기를 일반고와 동일하게 늦춤으로써 우수학생들이 전기고에 몰리는 현상을 완화시키고 고교선호도 쏠림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두 명분의 궁극적 목적인 ‘일반고 살리기’ 역시 정책목적에 포함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내세운 정책 목표들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공염불’에 불과해 보인다. 우수학생 선점 해소나 고교 서열화 완화는 모든 전기고가 후기고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 고입 동시선발 적용 전인 현재 전기고 입시를 치르는 고교유형은 과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예고 체고와 자사고 외고 국제고다. 이 중 직업계열 고교로 분류되는 마이스터고 특성화고와 예체능계열 특목고인 예고 체고를 제외하면 과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남는다. 이 중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후기모집으로 전환되더라도 여전히 과고는 전기고로 남는다. 우수학생을 선점하는 문제와 이로 인한 고교서열화는 재편되는 것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에 ‘특차’ 성격으로 전기고보다 앞서 입시를 진행하는 과학영재학교와 과학예술영재학교까지 더해지면 일반고에 앞서 입시를 실시하는 학교 수는 더 늘어난다. 

교육부가 내세운 우수학생 선점 해소나 고교 서열화 완화는 ‘일반고 살리기’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일반고의 교육력 약화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해명으로 존재하던 ‘전기고 입시의 존재로 인한 학생들의 열패감’ 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이번 자사고 등의 입시시기 조정안으로 구현된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모집을 후기모집으로 전환함으로써 일반고를 살리겠다는 것은 학생자원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재학교 과고에 더해 자사고 등의 정원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일반고로 퍼지는 우수자원의 총량은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전기고 중 1회만 지원 가능한 고교 체제 하에서 과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학생들이 일반고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면서 우수자원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면, 바뀐 제도 하에서는 영재학교와 과고에서 줄줄이 불합격하더라도 또 다시 자사고 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수자원의 특정 고교 유형 쏠림 효과는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기대하는 정책효과와는 정반대로 ‘일반고 죽이기’의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한 고교 교장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들은 이미 선발권을 기반으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교실혁명을 대부분 끝마친 상태다. 일반고와 자사고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자사고를 포기하고 일반고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학생이 원하는 일반고에 100% 진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자사고에 지원하는 것이 해법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고교 선호도가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형성되는 셈이다. 일반고나 특목자사고나 학교시스템과 경쟁력 차원의 옥석가리리가 시작되는 계기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가뜩이나 경쟁력 없는 일반고들은 더욱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교육부의 조치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일반고의 교육력 약화는 일반고의 교육 경쟁력 강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일반고의 교육력을 높이는 상향 평준화가 아닌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수월성 교육과 평등교육의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의 약화문제로 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어왔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결국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다. 국가차원의 인재유출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고 국제고 자사고는 설립목적과 거리 멀다? 진학실적 교육과정 몰이해>
교육부가 내세운 설립취지에 대한 평가도 지적이 많았다. 외고 국제고의 경우 어학계열 진학자가 적고, 자사고는 국영수를 50% 이상 교육과정에 편성하고 있어 설립목적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전기 선발권을 줄 근거가 없다는 게 교육부가 내세은 또 다른 입시시기 조정의 근거다. 하지만, 진학실적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외고 국제고의 2016년 진학현황에 따르면 외고는 어문계열로 31.9%가 진학했고, 인문사회계열로 53.1%, 이공계로 5.3%, 의약계열로 1.8%가 각각 진학했다. 나머지 8.4%는 기타계열로 분류된다. 국제고는 18.1%가 어문계열로 진학해 외고보다 어문계열 진학비율이 다소 낮았고, 인문사회계열 진학자는 58.4%로 비슷했다. 이공계열은 7.2%, 의약계열은 1.4%, 기타계열은 14.9%였다. 기타계열이 외고보다 월등히 많은 것은 국제고의 특성 상 해외대학 등을 택하는 비율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교육부가 문제삼는 것은 어문계열 진학자 비율이다. 외고는 31.9%, 국제고는 18.1%만이 어문계열로 진학했으니 본래 도입 취지는 퇴색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설립과정과 그 이후 각 고교의 운영현황을 살펴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외고 도입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82년 발표된 ‘영재교육 종합방안 추진 계획’이다. 당시 계획에서 외국어 영재를 만들기 위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외고는 비록 설립이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1984년 각종학교인 외국어학교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됐고 이후 1992년 외국어학교들은 현재의 외고로 전환됐다. 평준화 정책이 자리잡아가며 ‘강남 8학군’의 위세가 등등해지자 평준화정책을 완전 폐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문교부가 고교 평준화 제도의 개선책으로 어학영재를 위한 영재고를 신설해 고교 다양화와 특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외고 응시 자격은 중학교 성적 상위권 5% 이내로 규정, 어학영재보다는 사실상 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수월성 교육의 통로로 여겨져왔다. 설립 단계에서부터 단순 어학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사실상 수요자들은 물론이고 정부 역시 수월성 교육의 통로로 활용해온 외고를 이제 와서 어문계열 진학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설립취지 훼손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게 교육계의 평가다. 

국제고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국제고의 설립 필요성을 최초로 담은 보고서는 1992년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육부의 의뢰로 만든 ‘국제고 설립방안 연구’다. 당시 보고서는 기존 특목고들이 과학 외국어 등 특정 분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탓에 한 분야의 전문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뿐 다양한 국제사회의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재를 길러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국제인재 양성 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후 1995년에는 교육부가 세계화에 대비한 교육정책을 내놓겠다며 전 강의와 교과과정을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고와 국제대학 설치 방안을 발표했다. 추후 국제대학 설립 등은 불발됐지만, 이 같은 국제인재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은 1997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정 당시 국제고를 새로운 특목고 계열로 안착시키는 배경이 됐다. 

결국 외고와 국제고의 설립배경을 생각하면 현재 촉발된 설립취지 논쟁은 두 학교유형에게 있어 억울함을 안겨다주는 측면이 큰 상황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설립목적과 완전히 유리된 의약계열 진학, 이공계 진학 등은 비판의 소지가 있겠지만, 어학/국제 관련 학업역량을 바탕으로 인문사회계열에 진학하는 것까지 막아설 이유는 없다. 국제고를 나와 국제통상학과 경영학과 등에 진학하는 것을 두고 인문사회계열에 진학했다고 폄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고 역시 대학에 진학해 학문을 쌓는 과정에서 고교 시절 쌓은 어학 역량을 활용하면 되는 것일 뿐 어학특기자 전형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어학계열로의 진학만 유도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특히 외고의 경우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외고-어문학과 루트만 밟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상황”이라며, “진학실적 조사가 면밀하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다. 외고에서 영어-중국어과를 나와 베트남어과에 진학하기보다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무역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진학 형태지만, 전자는 어문계열 진학이라는 이유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교육부의 주장 가운데 타당성이 일부 존재하는 대목도 있다. 수능에 응시한 외고/국제고 재학생들의 수능 응시영역을 확인해본 결과 고교 전공 언어와 다른 제2외국어/한문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많다는 부분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 수능에서 수능에 응시한 외고/국제고 3학년생 5844명 중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제2외국어를 선택한 학생 수는 1145명으로 19.6%였다. 이는 어학계열 학업역량을 쌓는 외고에서 특히 문제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역시 외고 국제고 등의 선발시기를 조정해야 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란 게 교육계의 설명이다. 19.6%란 비율이 선발시기를 바꿀 근거로 사용될 만큼 큰 수치로 보기 어려운 데다 전공과 불일치하는 제2외국어 선택학생들이 대부분 아랍어를 선택한 상황인 때문이다. 

현재 대입에서 아랍어는 학습 기회가 사실상 없는 데다 조금만 공부하면 고득점/상위등급을 노릴 수 있는 탓에 제2외국어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영역이다. 외고 역시 하나의 고교유형인 만큼 재학생 중 학업역량을 제대로 쌓지 못한 학생들이 존재할 수 있고, 이 학생들은 통상 고교내신이 좋을 수 없기 때문에 수능을 통한 정시지원에 목을 매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성적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아랍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즉, 현행 대입구조에서 촉발된 문제를 두고 제2외국어와 전공불일치를 운운하며 설립취지 훼손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철규(자유한국) 의원이 17개 시/도로부터 받은 ‘2017 외고 재학생 제2외국어 선택현황’을 보면 제2외국어에 응시한 외고생 5438명 중 24.7%인 1345명이 전공과 맞지 않는 제2외국어를 선택했지만, 이 중 87.4%인 1175명은 아랍어를 선택한 케이스였다. 한 외고 교사는 “일부 학생들이 성적이 안 나오다보니 전공과 다른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3년간 고교에서 공부한 자신의 전공 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곤 한다. 영어-중국어과처럼 2개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영어과처럼 이미 수능 영역인 영어에만 주로 집중한 경우에도 선택할만한 제2외국어가 마땅치 않아 아랍어를 선택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이를 두고 불일치로 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자사고는 외고 국제고와는 다소 양상이 다르다. 이과 문과를 아우르는 특성으로 인해 진학실적을 두고 비판받을 소지는 없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지적받는 부분은 교육과정 편성 부분이다. 국어 영어 수학의 편성비율이 50%를 넘는 경우가 많아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입시중심학교가 됐다는 게 교육부의 주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의 경우 고교 다양화를 위해 만들어진 고교 유형임에도 국어 영어 수학에만 너무 몰두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교가 아닌 입시기관화 됐기에 전기 선발권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과도한 해석이라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자사고는 공통 교육과정 중 50%를 편성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학교 유형이며, 국어 영어 수학을 50% 이내로 편성하라는 것은 ‘권고’ 규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행 교육과정 총론은 ‘국영수 수업 비율이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자사고는 이를 권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자율권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단위학교의 자율적 권한일 뿐 비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자율권을 이미 줘놓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트집잡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약 국영수 50% 초과 편성이 비판 대상이라 하더라도 현재 자사고들이 비판받을 만큼 국영수 비율을 높게 편성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전 정의당 국회의원인 정진후 의원이 2014년 재지정 평가를 받은 전국 25개 자사고의 국영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53.2%에 불과하단 결과가 도출된 전례가 있다. 올해 유은혜(더불어민주) 의원이 44개 자사고를 전수조사한 결과 29개교의 국영수 편성비율이 50%를 넘어섰단 결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평균 비율 등은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실태파악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 

국영수 편성비율만 두고 교육과정 편성에 문제가 있다며 자사고를 공격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올해 자사고 폐지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전국단위 자사고 5개교 교장단은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양서읽기 자기역량강화프로그램 명사초청특강 고급/심화과목 과제연구 태권도 음/미/체 등 건학이념과 지역특성에 부합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당시 교육계는 자사고가 바람직한 공교육 모델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국영수 편성비율만 놓고 공격을 일삼는 것은 ‘사교육 살리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입을 모았다. 

자사고의 입시학원화에 대한 교육부의 주장도 반박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 전문가는 "자사고가 지나치게 입시학원화했다는 주장 자체에 모순이 있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 학교체제 내에서 다양한 전형 준비를 마무리할 수있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의 여지를 줄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성공한 공교육 모델로 볼 수 있다. 자사고의 성공한 수시체제들이 전파되면서 수시에서 경쟁력을 갖춘 일반고 모델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 입시학원화 운운하는 주장은 현체제에서 학교에서 입시전반을 커버하지 말고 사교육으로 보내도 된다는 얘기를 하는 셈이 된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자사고 한 관계자도 "치열하게 학원이 없어도 되는 체제를 교내에 만들었더니 학교가 입시학원화했다고 비난한다. 교내체제를 만들지 않고 느슨하게 운영하면 강남지역 일부학교들 처럼 일찍 학교 마쳐주고 학원 보내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카테고리로 고교유형을 본다면 사교육을 축소하고 공교육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자사고라고 본다. "고 주장했다. 

<‘고입 재수’ 해결 가능할까? 근본적 해결책 전무>
이번 조치가 고입의 새로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전기고를 후기고로 대거 이동시키는 조치는 ‘고입재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때문이다. 고입재수는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자사고 등에 불합격한 경우 더 좋은 학교에 가려는 목적 또는 다시금 고입에 도전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자발적인 고입재수와 자사고 등에 지원해 불합격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꼬여 일반고 배정을 받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강제적인 고입재수로 구분 가능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제적인 고입재수다. 대입과 고입의 방법이 다르기에 자발적인 고입재수 발생은 드물 것으로 보이는 때문이다. 현행 고입은 민사고 등의 극소수 고교를 제외하면 자기주도학습전형에 따라 내신과 면접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짜여져 있다. 면접은 교과형이 아닌 제출서류인 자기소개서 등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 통상적인 예다.  1년을 더 허비한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받아들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대입은 정시 논술 등의 경우 학업역량을 더 쌓음으로써 뒤집기가 가능하지만, 절대평가를 베이스로 한 내신 위주 선발인 고입은 이미 정해진 학생부 성적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도전할 의미가 적은 편이다. 

반면, 강제적인 고입재수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자사고 등에 지원했다가 탈락 후 일반고 배정을 받지 않고 추가모집에 도전하는 경우 종국에는 고교 입학을 하지 못해 강제로 재수를 택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 등으로 전환하거나 고입 재수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부 학교장추천전형을 실시하는 고교나 차후 3월 초 모집하는 정원외 선발 등을 노려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전무하다. 

교육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으며, 지적에 대해 부정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하는 경우 탈락 시 일반고 배정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토록 할 예정이다. 탈락 후 일반고에 배정되지 않으면 고입 재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선택사항이기에 일반고 배정에 동의하지 않고, 미달된 자사고 등의 추가모집에 계속해서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최대한 시/도 차원에서 일정을 조정함으로써 재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예정이지만, 고입 재수생의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재수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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