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처럼 예고해 수요자의 예측가능성 높이고 정책전횡 막아야'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대입 사전예고제를 강화하겠다는 새 정부가 정작 내년부터 고입체제를 크게 뒤흔드는 입시변화를 주겠다는 계획을 밝혀 정책의 엇박자 내지 이중잣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입정책 발표시기를 법제화해 중장기적인 관점에 따라 교육정책 변화를 줌으로써 교육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정부가 고입에선 3년정도의 사전예고는 커녕 중2부터 고입체제를 흔드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때문이다. 최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당장 내년부터 전기고/후기고 구분을 없애겠다는 섣부른 변화 구상을 밝히면서 교육정책 ‘이중잣대’를 드러냈다. 교육계에서는 특목자사고체제역시 미리 준비해온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차원에서 시행중인 대입3년예고제의 정신을 살려 고입역시 사전예고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계에선 정권 교체 때마다 급변하는 교육정책에 피로감을 느끼는 수요자들을 위해서라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입시변화가 이뤄져야 하며, 그 일환으로 고입 역시 사전 예고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특히 김상곤 부총리 체제의 교육부가 교육회의출범 이전부터 특목자사고 무력화를 위한 입시시기전환방침을 밝히면서 고입 역시 정책의 엇박자로 피해보는 수요자를 줄이기 위해 대입과 동일한 3년정도의 예고기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입은 사전예고제의 부재로 원서접수 3개월 전에야 전형방법이 공개되는 등 예측 가능성이 바닥에 떨어진 데다 교육부까지 나서 혼란상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밝힌 전기고 후기고의 입시시기 일원화 방안은 최근의 고입체제를 완전히 뒤바꾸는 계획임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특목/자사고 폐지와 맞물려 있는 문제인 만큼 당연히 중장기적 현안에 포함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다음해 구상을 밝힌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기적 교육 현안을 풀어나가는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란 지적도 더해진다. 

일각에서는 현재처럼 교육부가 ‘불도저’식 변화를 감행하는 이상 사전예고제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겠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고입 사전예고제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고교체제 아래 고교선택 역시 대학선택 못지않게 중요한 상황에서 시/도별로 제각각인 모집요강, 입학전형 기본계획 발표 등은 수요자들의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이번 전기/후기고 입시시기 일원화처럼 체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정책’ 문제는 대입처럼 3년 내지 3년 반 전에는 예고함으로써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문제는 수요자들을 무시하는 교육부다. 이미 사전예고제가 제도화돼있는 대입에서조차 블라인드 면접, 자소서/추천서 폐지, 논술/특기자 폐지 등을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교육부가 사전예고제를 우습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고입 사전예고제를 법제화 함으로써 장관 개인 또는 몇몇 고위공직자로 인해 전체 고입 수험생들이 겪을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 향상을 돕는 사전예고제를 강화하는 반면, 고입에선 섣부른 변화를 주겠다는 ‘이중잣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인해 고입 사전예고제 정착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당장 내년부터 전기고/후기고 구분 폐지? 폐지 전초단계>
김 부총리는 최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기고와 후기고의 입시시기를 일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의 전기모집을 실시하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와 후기모집인 일반고를 통합해 동시에 학생 선발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초중등교육법령을 개정해 실시 근거를 만들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 중 운영 성과평가 기준 미달학교와 희망학교를 중심으로 일반고 단계적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뒤따랐다. 

입시시기 일원화 적용시기는 내년이다. 현 중2가 치르는 2019학년 고입부터 고교체제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고입은 원서접수 등 전형일정 시점에 따라 전기고와 후기고로 구분된다. 전기고에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에 더해 과고 예고 체고도 포함된다. 직업계열 고교인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일반고 내 특성화학과도 전기고로 구분된다. 후기고는 통상의 일반고와 자공고 농어촌자율학교 등이다. 과학영재학교와 과학예술영재학교 등의 영재학교는 전기고보다도 앞서 입시를 실시하는 ‘특차’ 성격의 고교로 분류된다. 

김 부총리가 밝힌 입시시기 일원화의 구체적인 실현방식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외고 국제고 자사고와 일반고의 입시시기를 통합한다는 발언에 비춰볼 때 전기고 입시에서 외고 국제고 자사고가 제외돼 후기고와 동시에 입시를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특차 성격의 영재학교는 차치하고 보더라도 과고 예고 체고 마이스터고 등의 입시가 먼저 치러져야 하는 상황에서 일반고와 자공고의 입시시기를 앞으로 당겨오긴 어려운 때문이다. 일종의 선발권을 지닌 농어촌 자율학교와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입시시기를 전기고보단 다소 늦지만 동일한 시기로 조정하고 일반고와 자공고를 후순위에 배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김 부총리가 입시시기 일원화의 이유로 ‘학교 구조와 입시중심교육 개선’을 든 이상 활용 가능성이 낮다. 

이렇듯 일부 고교유형의 입시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정부가 주장하는 ‘특목 자사고 폐지’를 겨냥한 조치로 보여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이 설립 취지와 관계없이 입시중심학교로 변질됐다며 일반고로 전환하고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의 입시를 동시에 실시하겠단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약집에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과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 고입 동시’가 포함됐다. 이는 당선 후 마련한 100대 국정과제에도 일관되게 유지됐다.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이란 이름 아래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일반고와 입시 동시 실시 등’이란 문구가 포함됐다. 

때문에 이번 김 부총리의 발표는 단기적으로 봤을 땐 입시시기 일원화 조치로만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하겠단 계획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전기고 입시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후기고로 진학하면서 지닌 패배의식 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지만, 과고 영재학교 등 전기고 유형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볼 때 명분조차 희미한 상황이다. 

<성급한 변화 감행.. 수요자 예측 가능성은 어디로?>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입시시기 조정방침은 당장 내년부터 적용된다는 데 있다. 고입을 머잖아 치를 중2부터 바뀐 제도를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단 평가다. 통상 고입을 중1부터, 빠르면 그 이전부터 준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시급한 변화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는 교육정책들이 수요자들의 피로감을 키운다는 비판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특목 자사고의 급격한 체제변화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인 사전예고제 강화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문 대통령은 공약으로 ‘예측가능한 입시가 되도록 대입 법제화 추진’을 내걸었고, 이는 국정과제에서 3년6개월 전 대입정책 예고제 법제화를 올해 중 실시하겠단 내용으로 구체화됐다.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대입 사전예고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행 대입 사전 예고제는 ▲대입전형 기본사항 ▲대입전형 기본계획 ▲모집요강 으로 구성된다. 통상적인 수험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대입 관련 사항을 주재하는 4년제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고1 8월말 내놓는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들은 차년도 수시/정시의 전반적인 항목들을 기재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고2 4월말 발표한다.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흔히 현장에서 전형계획으로 불린다. 이후 고3 4월말이 되면 전형계획을 더욱 구체화한 수시 모집요강이 나오고, 9월에 정시 모집요강이 발표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 중 전형계획에서 발표한 내용은 법에 명시된 예외사유가 아니면 변경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고2 4월에는 향후 자신이 치르게 될 대입의 얼개를 알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새 정부는 현행 대입 사전예고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입전형 기본사항 발표시점에 앞서 중3 8월말에 대입에 대한 큰 변화 지점을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갑작스런 정책변화로 수험생들이 받게 될 불의의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사전예고제는 최초 논의되던 당시 대입정책 발표시기를 규정하려 했지만 무위로 돌아가면서 대입전형기본사항과 대입전형기본계획 발표시기만 고등교육법에 법제화돼있는 상태다. 정부의 방침은 여기에 대입정책을 더하는 것이기에 기존 예고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은혜 김병욱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12명의 의원들은 이미 6월8일 ‘교육부장관이 입학년도 3년 6개월 전 대학입학전형에 관한 기본계획을 공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이 같은 내용은 이번 김 부총리의 간담회에서도 ‘대입제도 개편안’ 중 하나로 언급됐다. 

이처럼 정부가 교육 수요자인 수험생 학부모 등의 예측 가능성을 중시, 대입에선 사전예고제를 강화하는 것과 달리 고입은 언제든 휘두를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이중잣대'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중학교 교사는 "아무리 고입의 중요도가 대입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갑작스레 입시시기를 일원화한다는 것은 합당치 못한 처사다. 대입과 고입에 대해 왜 이렇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년 당장 고입 시기 일원화가 일어나는 것은 대입으로 보면 전형계획 발표보다 6개월이나 더 늦은 시점에 대입 전형일정을 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현 시점에 고2 대상으로 치러지는 2019학년 대입에서 수시/정시 선발시기 통합 발표를 갑작스레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입에선 용납되지 못할 조치들이 고입에선 당연히 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은 향후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물론 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법규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대입과 달리 고입은 사전예고제가 아직 정착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매해 3월말까지 각 시/도 교육청이 고입전형(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입학전형 실시권자인 교장이 전형실시 3개월전까지 계획을 수립해 공고하면 된다고만 규정한다. 대입에선 사전예고제를 강화하는 반면, 고입에선 당장 중2 대상 변화를 주겠다는 일관성 없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법적 문제는 없다. 다만, 정부가 수요자 예측 가능성 개선을 표면 상에 내세우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수요자 배려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란 비판을 받기엔 충분하다. 

교육계에선 고입 사전예고제를 정식으로 만들어야 정부의 수요자 배려 주장이 논리적 일관성을 갖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정부의 막무가내식 고입시기 일원화 외에도 입시 3개월 전에야 요강을 공고하고, 전형계획 발표는 별도로 없는 고입전형 체제 때문에 수험생들의 피해가 컸던 사례가 잦았던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3월말 각 시/도 교육청이 고입전형(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요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수험생들이 상세 입시내용을 알 방법이 없다. 지난해 서울교육청이 원서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소서가 수험생 부담으로 연결된다며 자사고들에 폐지를 강요해 이후 허수지원자를 대거 발생시키는 ‘실책’을 저지른 것도 고입 사전예고제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고입 사전예고제가 정착하지 못하면서 정권/교육감 등의 입맛에 따라 정책이 급격히 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고입전형 기본계획과 요강 발표 시점 등을 앞당기고 고입정책 발표시기를 규정해 정치논리가 고입체제를 휘두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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