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도 문제? 취업난부터 해결해야’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올해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학생의 수가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섭(국민의)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대 입학포기 인원은 총 1714명. 매년 300명 이상의 입학포기 인원이 나오는 가운데 올해는 386명의 입학포기 사례가 발생했다. 가장 입학포기 인원이 적었던 2015학년의 317명과 비교하면 70여 명이나 많은 수치다.

이 같은 입학포기 인원 증가는 의대 치대 한의대를 일컫는 ‘의치한’을 향한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선호도 상승으로부터 비롯됐단 평가다. 실제 입학포기가 발생한 모집단위를 보면 공대(136명)를 필두로 농생대(53명) 간호대(50명) 자연과학대(42명) 등 자연계열에서 입학포기자가 월등히 많았다. 모집인원과 비교해서 보더라도 간호대(61.7%) 치의학과(32.7%) 수의대(18%) 공대(16%) 자연과학대(15.3%) 농생대(15.3%) 순으로 포기비율이 높았다. 반면, 경영대는 단 1명(0.7%)의 입학포기자가 발생하는 데 그쳤으며, 사회과학대 9명(2.5%), 인문대 12명(4.3%) 등 인문계열에선 입학포기 사례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의치한이라는 ‘대체제’가 있는 자연계열과 달리 인문계열에선 서울대가 최고대학의 위상을 공고히 지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최고대학인 서울대에서의 입학포기 발생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대의 입학정책이 문제가 있다며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판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입학포기는 취업난이라는 사회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입학정책의 문제로 보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모집인원 대비 비율로 따져보면 수시보다 정시에서 포기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 이 같은 비판대로라면 정시를 지금보다 더욱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 서울대의 정시선발 비율이 약 20%에 불과하단 점을 고려하면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을 일축했다.

올해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학생의 수가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으로 인해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의대선호가 날로 심화돼다보니 생긴 현상이란 분석이다. /사진=서울대 제공

<2017 서울대 입학포기 386명.. 대다수 자연계열, 의치한 선호 심화 탓>
2017학년 서울대 입시에 합격했지만, 등록을 포기한 사례는 총 386명으로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학년 326명의 입학포기자가 나왔던 서울대는 2014학년 339명으로 소폭 증가 이후 2015학년 317명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16학년 346명, 2017학년 386명으로 2년 연속 입학포기자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입학포기자 대다수는 자연계열에서 나왔다. 올해 386명의 입학포기자를 단과대별로 분류하면, 공대(136명) 농생대(53명) 간호대(50명) 자연과학대(42명) 순으로 포기 사례가 많았다. 농생대의 경우 농경제사회학부를 인문계열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자연계열의 교차지원이 가능하며 나머지 농생대 모집단위는 전부 자연계열인 만큼 자연계열로 봐도 무리가 없다. 단과대별로만 현황이 공개된 탓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자연과학대 다음으로 많은 29명의 입학포기자를 낸 사범대도 인문/자연이 혼재돼있는 가운데 인문계열보단 자연계열에서 입학포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자연계열에서의 입학포기자가 많았음은 모집인원과 비교하면 더 명확해진다. 모집요강 상의 수시 모집인원과 수시이월을 포함한 정시 모집인원을 입학포기 인원과 대비해보면 간호대의 입학포기율이 가장 높았다. 81명을 모집한 간호대는 50명이 입학을 포기해 61.7%의 입학포기율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치의학과 32.7%(입학포기 17명/모집 52명), 수의대 18%(9명/50명), 공대 16%(136명/850명), 자연과학대 15.3%(42명/274명), 농생대 15.3%(53명/346명) 순이었다.

입학포기 중 대다수가 자연계열인 것은 올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매년 가장 많은 입학포기자가 나오는 곳은 공대였으며, 농생대 자연과학대 간호대 등도 항상 입학포기가 많이 발생하는 단과대로 손꼽혔다. 한 해 전인 2016학년의 경우 공대에선 128명, 농생대 61명, 자연과학대 48명, 간호대 33명의 입학포기자가 나왔으며, 2015학년에도 공대 136명, 농생대 76명, 자연과학대 28명, 간호대 14명 등의 순이었다. 입학포기 인원의 숫자만 다소 변할 뿐 입학포기 발생 추세는 비슷하게 흘러온 셈이었다.

반면, 인문계열의 입학포기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경영대에선 단 1명의 입학포기자만 있었고, 사회과학대 역시 9명의 입학포기 사례가 나오는 데 그쳤다. 인문대에선 12명이 합격 후 입학을 포기했다. 비율로 보더라도 경영대는 0.7%(1명/135명), 사회과학대는 2.5%(9명/367명), 인문대는 4.3%(12명/281명)로 자연계열과 차이가 컸다. 특히, 경영대는 2013학년 3명의 입학포기자가 나온 것이 최대였으며, 2014학년과 2015학년엔 입학포기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은 곳이었다. 한 해 전인 2016학년에도 2명의 입학포기자가 나오는 데 그쳤다.

물론 인문계열 모집단위라 하더라도 실제론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이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서울대가 인문계열 전반에 교차지원을 허용하고 있는 때문이다. 서울대는 입시에서 모집단위를 3개 유형으로 구분해 각각 응시영역을 정하고 있다. 올해를 기준으로 보면 인문대 사회과학대 경영대 농생대(농경제사회학부) 사범대(교육 국어교육 영어교육 독어교육 불어교육 사회교육 역사교육 지리교육 윤리교육) 생활과학대(소비자아동 의류) 자유전공은 국어+수학(나)+영어+한국사+사탐/과탐+제2외국어/한문을 모두 응시하거나 국어+수학(가)+영어+한국사+과탐/사탐을 응시한 경우 지원 가능하다. 통상 인문계열로 분류되는 곳이지만, 자연계열 수험생도 얼마든지 지원 가능한 셈이다. 간호대도 국어+수학(나)+영어+한국사+사탐/과탐을 응시하거나 국어+수학(가)+영어+한국사+과탐/사탐을 응시하면 지원 가능하기에 교차지원이 허용되는 곳으로 봐야 한다. 그밖에 자연과학대 공대 농생대(농경제사회학부 제외) 사범대(수학교육 물리교육 화학교육 생물교육 지구과학교육) 생활과학대(식품영양) 수의대 의대 치의학과는 국어+수학(가)+영어+한국사+과탐을 응시해야 해 통상의 인문계열 수험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곳이다. 자연계열 수험생은 서울대 지원에 있어 모집단위 제한이 없는 반면, 인문계열은 일부 제한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인문계열 모집단위에서 발생한 입학포기 사례 중 자연계열이 포함돼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열에서 입학포기가 많은 이유로는 의치한 선호가 한층 심화돼가는 양상 때문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 의원은 “공대에서 포기자가 많은 것은 다른 대학에 동시합격한 학생들이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취업이 보장된 학과를 선택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한 고교 교장 역시 “의치한 선호현상은 날로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취업난으로 인해 상위대학 학생들마저 졸업 후 진로에 불안감이 큰 상태인 때문이다. 반면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의학계열의 라이센스가 주어지는 곳들은 취업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문직인 만큼 향후 택할 수 있는 진로 행보도 넓은 편이다. 사실상 자연계열에서는 서울대 위에 ‘의치한’이 올라타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자연계열과 달리 인문계열의 입학포기가 드문 이유는 인문계열의 ‘의치한’과 같은 존재가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매년 서울대 의대 정시합격자의 절반을 배출할 정도로 고득점 수험생이 즐비한 대성학원의 이영덕 학력평가연구소장은 “자연계열은 의치한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문계열의 경우 서울대보다 선호도가 높은 대학/학과가 없는 만큼 이동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상대적으로 서울대 내에서도 선호도가 낮은 인문대는 고대/연대 경영과 같은 선호도 높은 학과, 고대 사이버국방 등 특성화학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과학대 역시 마찬가지”라며, “문제는 경영대다. 선호도가 높은 서울대 경영대에 합격하고 고대/연대 경영 등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는 탓이다. 예년의 사례에 비춰보면 특수대학인 경찰대학과 중복합격해 서울대 경영을 포기한 사례가 존재한다. 올해도 이와 같은 사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시에서 다군에 마땅한 학과가 없다 보니 교차지원이 가능한 순천향대 의대에 지원해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과연 입학정책 문제일까.. 취업난 개선 절실>
국내 최고대학으로 수험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서울대에 합격했음에도 입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입학포기자가 매년 300명이 넘는다는 점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전례가 있다.

이 같은 비판은 올해 국감에서도 되풀이될 전망이다. 서울대로부터 자료를 받은 이 의원 역시 “지난해 서울대는 국정감사에서 선발시스템의 개선책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고교생 대상 ‘자연대/공대/농생대 고교생캠프’를 운영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라며 “서울대는 국비지원을 받는 국내 최고의 국립대임에도 순수학문에 대한 열정보다 취업을 우선시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학생들을 뽑을 수 있도록 학생선발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이 같은 비판이 합당치 못하단 게 중론이다. 입학포기자의 발생을 입학정책의 문제 또는 학생선발시스템의 문제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입학포기 발생 책임을 서울대 입학시스템에 지우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취업난이란 사회문제 해결 없이는 이 같은 현상은 어떠한 입학정책을 택하더라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업난이 계속되는 이상 수험생/학부모가 의치한을 더 선호하고 선택하는 것을 두고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맹목적인 문제제기가 곧 정시를 축소해야 한단 결론을 낳을 것이란 의견도 존재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국정감사에서 지적 받은 사항은 향후 개선계획 등을 세우도록 규정돼있다. 입학포기자 비율은 통상 수시보다 정시에서 더 높다. 수시 모집인원이 많다 보니 입학포기자의 절대 숫자는 수시가 더 많겠지만, 모집인원과 비교해보면 정시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시는 전공적합성 등을 고려해 지원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이탈 사례가 그나마 적지만, 정시는 점수에 맞춰 지원하는 경향이 강한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입학포기율이 높은 정시를 줄이고, 입학포기율이 낮은 수시를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의 정시 선발비율이 20%를 약간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단 점을 볼 때 이 같은 변화가 옳을지는 심사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가뜩이나 크지 않은 ‘뒤늦게 철든’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기회를 더욱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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