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언어학과 이승현 (상지초-상암중-예일여고, 2017 수시 일반전형)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진로에 대한 실질적 탐구와 열정. 이승현(20)양은 언어학과에 진학한 후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곳곳에 묻어났다. 학업부담이 가장 큰 고3 때 역시 제2외국어 거점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기도 했다. 호기심과 열정은 서울대 일반전형의 문을 넘게 한 핵심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내신과 수능 공부에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비교과 활동은, 이양의 열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문자 없는 민족이 그들의 문화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한국 언어학자들의 신념을 접하고 언어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진로를 정한 후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탐구 분야를 설정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진학학과의 구체적인 수업 과목에 대해 미리 살펴볼 만큼 실질적인 탐구와 열정을 보였다는 점이다.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가르치는 세부 과목이나 언어학의 하위 분야까지 숙지해 교과/비교과 활동과 연결 지었다. 막연한 학과 선택이 아니라 실제로 깊은 관심을 갖고 탐구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진정성 있게 어필할 수 있었던 셈이다.

<제2외국어 거점학교 통해 ‘언어학’ 관심 심화>
이양이 언어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언어학과를 목표로 준비한 건 2학년2학기였다. 국어시간에 ‘찌아찌아족에 한글을 보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계기였다. 찌아찌아족은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으로 그들의 언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어 공식 언어로 한글을 이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양은 “한국 언어학자들은 ‘문자 없는 민족’이 그들의 문화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신념이 대단히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언어학은 국문학 영문학 등과는 다른 학문이다. 이양은 언어학에 대해 인문학의 영역에 속해있으면서도 과학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인문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언어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과학적인 틀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양은 “형태론 의미론 통사론 음운론 등은 인간의 말을 작은 분위로 쪼개고 인간의 보편문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관찰-가설 설정-설명’의 절차를 따른다. 그런 점에서 언어학은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공부 자체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과학과 수학도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양에게는 더욱 특별한 학문이었던 셈이다.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 다른 수업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심화시켜나갔다. 심화영어수업에서 소수언어에 대한 발표주제를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수언어학자들의 절멸위기언어 구하기’를 주제로 언어학자의 연구과정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 있었다. 소수언어를 문서화하는 일을 하는 미국/일본의 단체에 대해 조사하고 그 연구과정을 다뤘다. 조사과정을 통해 이양은 “언어란 문화와 사회를 담는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양은 특히 ‘거점학교’ 수업을 유용하게 활용한 케이스다. 거점학교는 과학 수학 제2외국어 등 특정분야 학습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지정한 학교다. 이양은 제2외국어 거점학교로 지정된 건대부고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프랑스어 수업을 수강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수업을 들어야 해 고3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내신기간에도 시간을 내야 하고 별도로 시험과 발표까지 준비해야 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많은 언어에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업을 통해 ‘한국 학생의 프랑스어 발음 오류’라는 주제를 정해 탐구했다. 이양은 “학생들이 모두 유사한 부분에서 프랑스어 발음 실수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모국어 간섭현상’과 ‘영어 간섭현상’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이론언어학의 하위 분야인 음성론에 대해 접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내신과 수능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얻지 못했을 귀중한 경험이었다.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현 학생/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a.com

<소논문 주제 선정, 진학학과 세부 하위과목 숙지 필요>
많은 서울대 합격생이 ‘토론’의 중요성을 역설하듯, 이양 역시 토론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토론대회 대상 수상경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 대표팀으로 전국고교생토론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양은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실전의 답변능력까지 기를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토론입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를 구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찾아 읽게 된 논문/책 등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기존 교과 공부에서는 접할 수 없던 비트겐슈타인 언어철학이나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등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토론 자체를 통해서는 상대방의 질문이나 비판에 답변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즉각적인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답하는 능력을 이때 키웠다.”

여전히 말들이 많지만 소논문 쓰기도 이양에게는 유용했다. ‘청소년 신조어 사용문화의 실태와 인식’을 주제로 했다. 신조어의 부정적인 면이 주로 부각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신조어를 재조명해보고 싶다는 의도를 담았다. 청소년 신조어는 형식 측면에서는 줄임말이, 내용 면에서는 사회비판적인 신조어가 크게 늘어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신조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많지만 이양은 논문활동을 통해 신조어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때 작성한 논문은 지역신문에 싣기도 했다. 이양은 논문 작성 경험이 3학년 사회 교과 성적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자료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사회탐구 과목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소논문이나 발표주제는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고민이 첫 번째다. 어느 학과에 진학할지 결정한 후에는 그 학과의 하위 과목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위 과목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분야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양은 신조어 관련 소논문 작성에는 사회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위 과목을 정했다면 일상생활이나 학교 공부와 연결을 고민했다. 이양은 사회언어학에서 배우는 ‘계층 간 언어차이와 언어 격차’를 청소년 신조어에 따른 세대 격차로 연결 지은 경우다. 주제를 탐구하는 방식은 해당 소재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사회 통념에 대한 비판 등이다. 이양 역시 신조어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통념을 비튼 방식이었다.

<학생의 자율 선택 존중하고 심화공부 북돋는 ‘예일여고’>
이양은 예일여고에 대해 “심화학습에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예일여고는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되기도 했고, 심화영어나 비교문화 심화생명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심화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양이 자소서에 유용하게 활용한 심화영어수업이나 비교문화 수업은 지난해 학생들의 요구로 개설된 과목이다. 여러 학생들이 배우고 싶다는 의견을 개진해 학교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교과 공부를 넘어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 이양의 설명이다.

심화영어수업은 방과후학교로 운영했다. 외고나 특목고에서는 일반수업으로 교과시간 내에 들을 수 있지만 일반고인 예일여고는 따로 방과후학교라는 형식을 통해 학습한 것이다. 이양은 “서울대가 요구하는 것은 학생들이 내신을 넘어서서 심화하는 것을 원한다. 논문쓰기나 토론대회 등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지만 요즘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심화교과수업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심화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씩 진행했다. 영어로 발표하고 싶거나 글로써 작성해보고 싶은 내용, 토의하고 싶은 내용 등을 다양하게 선정할 수 있었다. 이양이 언어학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통로가 된 점도 그 때문이다.

물적 지원도 많아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 점도 예일여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예산안을 미리 짜서 필요한 물품을 요구하면 학교에서는 부족함 없이 지원했다. 소논문쓰기대회에서 활용할 논문집이나 단편집을 구매해 도서관에 비치하기도 했고 이과 학생들의 경우 실험도구 등도 지원받았다.

<학교 수업을 넘어서는 열정과 호기심 드러내>
이양은 교과/비교과를 아울러 ‘언어학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드러낸 점이 유효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대한 공부도 필수였다. 이양은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무엇인지, 언어학의 하위 분야에는 무엇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이를 교과/비교과활동에서 연결 지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교과 영역에서는 교과목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통해 ‘문법과 발음’ 측면에서 두드러졌던 부분,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뇌와 언어의 관계에 대해 공부한 점 등을 기재했다. 비교과 활동에서는 심화영어수업이나 프랑스어 거점학교 수업에서 언어학에 관련된 호기심을 보여주는 발표주제를 선정했다. 심화영어수업에서는 ‘소수언어학자들의 절멸위기언어 구하기’ ‘코퍼스언어학과 실생활 응용’을, 프랑스어 거점학교 수업에서는 ‘한국어 학생들의 프랑스어 발음 오류’ 등을 선정했다. 해당 내용은 학업능력에 대해 서술하는 자소서 1번문항에서 구체적으로 서술해 학문적 관심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심화된 점을 담아냈다.

이양은 면접에 대해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평소에 토론대회에 출전한 경험이나 회장으로서 학급회의를 이끌었던 경험 등이 실전 면접에서 도움이 된 경우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태도를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평소 고교생활 중에서도 발표나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잡을 것을 추천했다.

면접태도가 아닌 면접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배운 내용을 조금 더 심화해 생각해보는 노력을 평소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일반화해 본다거나,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는 등의 활동이 추후 면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다. 비문학 지문 등을 통해 간단하게 배운 작품도 일반화시켜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양의 경우 면접에서 EBS수능교재에 나온 이론을 활용했다. “’수능특강-비문학’에 나온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을 면접 때 사례로 제시했다. 고교 교과내용에서 배운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면접 때 활용할 수 있다. 고교 교육과정에 충실히 하는 게 면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례로 쓰일만한 내용을 책이나 신문에서 알아두는 것도 좋다. 이양은 아침에 버스 타고 등교하는 시간을 쪼개 활용했다. 매일 신문을 읽으며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 말할 거리가 많을수록 면접 답변에서 창의성을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 질문에서 ‘관련 사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예시를 들어 설명하면 면접관이 이해하기에도 훨씬 쉽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마구잡이로 여러 가지 사례만을 수집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양은 “책 한 권을 읽고도 여러 번 고민해서 그 책과 관련해 더 읽고 싶은 책은 없는지, 책에서 자신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디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남들이 1분 고민한다면 본인은 5분에서 10분 정도 고민해보는 식이었다. 고민을 통해 자기화한 내용은 면접장에서 활용하기도 쉬웠다.

저자의 메시지가 집약된 구절을 외워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서울대 인문분야 면접질문은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평소 고민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이양은 “다음 면접에서도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적용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이런 주제로 고민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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