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중심 입시구조 개편' 교육계 여론 무시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이 최근 공개한 새 의학교육 평가기준안의 입학정책 항목에서 인성평가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의무화된 평가인증은 ‘학생선발 시 인성평가 방안 유무'를 기준으로 제시해 성적중심 의대입시구조를 개편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와 달리 2019학년부터 적용되는 새 기준안에선 관련 기준이 자취를 감췄다. 2011년 고려대 의대 동기생 집단 성추행 사건으로 촉발된 예비의사 인성검증 문제는 2015년 가해 학생의 성균관대 의대 재입학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화됐다. 이달 초 경남 거제의 한 병원장이 약물 과다투여로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유기한 사건은 예비의사의 인성검증 요구를 가중시켰다. 정시와 논술 등 면접이 없는 성적중심 전형이 절반을 차지하는 의대입시는 학종 중심의 현 대입흐름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예비의사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성검증 절차가 없다는 점에서 교육계는 지속적으로 입시구조 개편을 요구해왔다. 의평원이 내놓은 새 기준안이 이 같은 교육계의 요청과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평가기준이 오히려 의대입시 퇴행을 이끈다는 비판이 더해질 전망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이 최근 공개한 새 의학교육 평가기준안의 입학정책 항목에서 인성평가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의무화된 평가인증은 ‘학생선발 시 인성평가 방안 유무'를 기준으로 제시해 성적중심 의대입시구조를 개편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와 달리 2019학년부터 적용되는 새 기준안에선 관련 기준이 자취를 감췄다. /사진=울산대 제공

<대입흐름 역행하는 의평원.. '성적중심 의대입시 장려?'>
의학계열 교육기관 평가인증제도는 지난해 법 개정으로 실효성을 크게 확보한 제도다. 그간 대학이 평가를 거부하거나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대학이 평가인증에 통과하지 못하거나 평가를 거부할 경우 신입생 모집정지와 폐과조치 처분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해 전국 의대를 포함해 치의/한의/간호대가 모두 평가인증을 받는 데 집중했다.

의평원은 새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인 ‘ASK 2019(Accreditation Standards of KIMEE 2019)’를 최근 공개했다. 기준은 2019학년 의학교육 평가인증부터 적용된다. 새 기준안에선 인성평가 기준이 강화되리란 교육계의 기대와 달리 인성평가는 물론 심층면접에 관한 기준은 단 한문항도 없었으며 오히려 학생선발에 관한 항목 자체가 축소돼 대입흐름에 역행, 후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개정기준안은 지난해 6월 새 의학평가인증 기준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공개된 시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평가영역이 기존 6개에서 9개로 늘고 전체 문항수도 141개에서 143개로 늘었지만 학생영역 문항은 32문항에서 16문항으로 줄었다. 입학정책과 선발에 관한 기준은 5문항에서 4문항으로 축소됐다. 개정된 기준은 ▲의과대학은 객관적인 원칙에 근거한 입학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기본기준 1문항과 ▲의과대학은 학생 선발에서 대학의 사명, 교육과정과 졸업생이 갖춰야 할 자질 등의 관계를 기술한다 ▲의과대학은 입학정책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질적 향상을 위한 개선노력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은 장애학생 입학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시행한다는 우수기준 3문항이 전부였다. 심층면접이나 인성평가에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정안에서 심층면접과 관련된 내용이 삭제된 것은 의평원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의평원은 교수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대 교수들이 수능중심 성적위주 선발을 지향해온 것을 고려하면 심층면접기준 삭제배경이 추정된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의대는 인기가 높은 모집단위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중심 선발을 지향해왔다. 교수들조차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아도 충분한데 왜 다른 전형을 통해 의대생을 선발해야 하냐고 공공연히 발언할 정도”라며 “새 평가기준에서 학생선발과 관련된 내용이 더욱 모호하게 바뀐 것도 의대 교수들이 그간 보인 태도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교육부 등 관계당국이 나서 학생선발과 관련된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의평원의 평가기준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교수복지차원의 항목은 다소 축소된 모습이다. 기존 평가기준은 교육기관에 가장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학생선발에 대한 내용은 극히 일부분이거나 막연한 내용에 그쳤지만 교수복지차원의 규정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교수들의 장/단기 외국연수와 국내외 학회 참석을 위한 재정적 지원체제’ 항목에선 교수들의 외국연수와 국내외 학회 참석을 장려하기 위한 등록비 항공료 체재비 등 재정적 지원체계를 갖췄는지를 최근 2년간의 지원실적까지 포함해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연구 시설/설비’ 항목은 개인교수실 공간의 충분한 확보 이상을 요구해 지적받기도 했다. 의평원은 ‘전임강사 이상의 개인교수실 확보현황’에 더해 ‘교수실의 크기’ ‘조명 냉난방 방음 환기 채광 LAN설치 등 실내 설비 상태’까지 보고서에 명시하도록 요구했다. 반면 개정안에선 ‘개인 교수실이 충분히 확보돼있고 적절한 행정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수들의 연구를 위한 충분한 공간과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있다’ 정도로 적시했다. 

<인성검증 가능한 유일 대안.. ‘서울대 다중미니면접’>
지난해부터 의학/치의학/한의학/간호학 교육과정의 평가인증이 의무화되면서 평가기준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기준은 기본 97개문항, 우수 44개문항 등으로 구성됐다. ▲대학의 운영체계 22문항 ▲기본의학 교육과정 40문항 ▲시설/설비 13문항 등 교육기관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내용부터 ▲학생 32문항 ▲교수 30문항 ▲졸업 후 교육 4문항 등 구성원들에 관한 기준이다. 문항은 각 분야에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기본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중 44개문항은 우수기준도 제시한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지난 포스트2주기 평가에서 의평원이 활용한 평가기준 가운데 인성평가 항목이다. 기준안 3-1-4 항목은 ‘대학은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인성을 평가하는 학생선발 방안이 있는가’로 제시했으며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인성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를 우수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평원이 규정한 심층면접은 전체 면접시간이 1인당 1시간 이상인 면접이다. 

97개문항 가운데 인성평가 관련 문항은 단 1문항에 불과하지만 이제껏 견고하게 유지해온 의대의 성적중심 선발구조를 깨고 인성평가 확대의 초석이 되리란 기대가 이어졌다. 지난해 대교협이 발표한 ‘2019 대입전형 기본사항’에서도 의학계열의 인적성평가 도입을 장려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인성평가 강화에 힘이 실렸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교육계는 일제히 심층면접평가의 구체적인 대안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중미니면접을 지목했다. 현재 전국 의대 입학전형 가운데 의평원이 제시한 1시간 이상의 인성면접 기준을 충족하는 면접은 서울대의 다중미니면접이 유일한 때문이다. 2013학년 서울대 의대 수시에서 처음 도입된 다중미니면접은 여러 개의 면접실을 돌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거나 제시문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면접이다. 서울대 외에도 한림대 인제대가 의대입시에서 다중미니면접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면접시간이 30분 남짓으로 의평원 기준은 충족하지 못한다.

다중미니면접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면접으로도 유명하다. 도입 당시 상황제시방 4개, 제시문분석방 1개, 서류확인방 1개의 6개 방 체제에서 이후 면접내용을 계속해서 바꿔왔다. 면접실 수는 지난해까지 6개로 동일하게 유지됐으나 지금까지 역할극 빅데이터분석 자기PR 한국사 등 신유형의 면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년 형태를 달리해온 데는 인성평가에 초점을 맞춰 사교육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인성평가마저도 사교육이 가르친 전형적인 답변이 나오는 웃지못할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평가우수성을 인정받은 다중미니면접은 2014학년 치의학과, 2015학년 수의예과로 점차 범위를 늘리더니 2014학년부터 2015학년까진 의예과 한정으로 수시/정시 모두 다중미니면접을 실시하기도 했다.  

<교육계 "높아진 의대인기만큼 엄격한 검증 필요">
대학이 인성면접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기형적인 의대선호현상이 뒷받침하고 있다. 의대라면 최상위권 대학도 포기하고 몰려오는 탓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동섭(국민의당)의원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학년부터 2016학년까지 5년간 서울대 합격을 포기한 학생은 평균 332명에 달한다. 매년 전체 합격자의 10%를 웃도는 인원이 서울대 합격을 포기하는 것이다. 합격 포기자 가운데 37%가 공대 출신이라는 점은 자연계열 학생들의 의대선호현상을 방증하고 있다. 이어 자연대(48명) 간호대(33명) 농생대(27명) 순으로 포기학생의 절반이상이 자연계열에서 나온 셈이다. 

2018학년이 학종시대로 불릴 만큼 대입에서 학종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과 달리 의대입시가 여전히 정시와 논술 등 성적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는 배경이다. 올해 의대도 학종확대 흐름을 뒤따르며 수시비중을 지난해 57.8%에서 올해 62.9%로 늘렸지만 전형별 비중을 고려하면 정시가 37.1%로 40%에 가까운 규모를 차지한다. 불과 2년 전인 2016학년 정시비중은 44.4%로 절반에 가까웠다. 정시와 마찬가지로 인성평가과정이 없는 논술이 2016학년 9.7%, 2017학년 11.3%, 2018학년 10.0%인 사실까지 감안하면 예비의사의 절반을 인성검증 절차 없이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셈이다. 정시의 경우, 자연계열의 의대선호현상을 고려하면 의대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올해 상위17개대학의 수시비중이 70%를 넘어선 상황에서 여전히 자연계열 상위권 학생들을 수능중심학습으로 묶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성적중심 선발구조의 폐해는 교육계가 줄곧 지적해온 지점이다. 2011년 고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예비의사 선발문제는 2014년 가해자인 고대 의대생이 형을 살며 수능을 준비해 성대 의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편압력이 심화됐다. 의대 입학이 곧 의사로 이어지는 구조인 때문에 사실상 예비의사를 선발하는 의대의 입시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성추행 의대생의 경우, 면접과정이 있었다면 과거 이력을 물어 거를 수 있었으며, 면접에서 관련 사실을 감췄더라도 이후 합격취소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정시 입학생에 대해선 관련 제재 조치를 취할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이미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과거 이력으로 불합격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도의적 차원의 제재를 촉구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성대 의대/의전원 학생회는 성명서를 내고 '의대생의 선발에 고려돼야 할 가치가 비단 성적만은 아님'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적 특성 상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 때문이다. 

<의학계열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란?>
그간 대학별 자율에 맡겨졌던 의학계열 평가인증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의학/치의학/한의학/간호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과/학부/전문대학원 등이 평가인증을 신청하지 않거나 평가인증을 받지 않는 위반사항에 대해 모집정지, 폐지처분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개정안은 2012년 의료법 개정과 2015년 고등교육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다. 개정된 의료법은 평가인증기구로부터 인증을 받은 의/치의/한의/간호학 전공 학교를 졸업한 자에 한해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평가인증을 받지 않은 의학계열 학과/학부/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은 국가시험 응시자격 부여대상에서 배제되는 셈이다. 개정된 의료법은 올해 2월2일부터 시행, 2018학년 입시부터 평가인증에 따른 국가시험 응시자격 미부여 제재가 적용된다. 평가인증을 받지 못하면 의학계열 학과를 졸업하고서도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가 될 수 없어 교육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의료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는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도입하겠단 목적에서 마련됐다.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해진 글로벌시대를 맞아 여러 국가에서 상호 인정할 수 있는 고등교육 질 보증체제를 갖추기 위함이다. 평가인증은 교육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평가기관이 평가를 신청한 대학의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리 마련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대학이 일정기준 이상을 충족하는지 따지게 된다. 인증결과에 따라 교육부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여부, 불이익 행정처분 등을 내리게 된다. 교육부가 지정한 인정기관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포함해 한국치의학교육평가원 한국간호교육평가원,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다. 의대와 치대는 6년, 한의대와 간호대는 5년마다 평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의학계열 학과는 각 평가인증기구로부터 인증평가를 받고 평가결과를 대학 홈페이지 등 인터넷과 신입생 모집요강에 공개해야 한다. 평가에 응하지 않거나 평가를 받은 후 인증을 받지 못한 학과의 경우 행정처분이 가해진다. 의무사항 위반 시 교육부는 해당 대학에 시정명령을 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입학정원의 100% 범위에서 모집을 정지한다. 2차 위반 시에는 학과를 전면폐지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현재 의학계열은 전공/학과/학부/대학원 등 다양한 체제로 운영되지만, 의학41개교 치의학11개교 한의학12개교 간호학204개교 등에서 의학계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의대를 기준으로 보면 2012년부터 실시된 포스트2주기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은 38개교다. 가톨릭관동대와 동국대가 인증유예 판정을 받았으며 2018학년 폐과를 자구책으로 내놓은 서남대가 ‘불인증’을 받았다. 재인증 신청 마감인 올해 5월10일까지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한 서남대는 재정기여희망 인수주체로 서울시립대와 삼육대를 교육부에 추천했으나, 정상화 계획안이 불수용 판정을 받으면서 폐교 수순에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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