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수요자 부담경감보다 보여주기식 귀결"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교육부의 전형료 인하 25%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후 대학들은 인하 수준을 정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서울 9개 사립대가 15% 수준으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대학들은 아직 확실히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인하 수준을 통일할 수는 없다”면서도 “너무 인하율이 높거나 낮아도 곤란하기 때문에 대학별로 탐색/조율하는 과정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학들이 전형료 인하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하율을 통일하기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튀지 않기 위해 대학별 인하수준을 맞추는 작업은 있겠지만 인하율을 통일해 공지하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대학들이 마치 담합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고, 다른 대학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교육부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면서 정부가 전형료 인하율 숫자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하 수준을 국고사업과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증폭됐다. 교육부는 ‘대입전형료 투명성 제고(인하) 추진계획’을 통해 올해 전형료 인하 실적을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의 평가지표로 반영하겠다고 대학에 알린 상태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학종/논술의 전형료는 적게 내리고 상대적으로 지원자가 적은 기회균형 등 특별전형의 전형료를 대폭 내리는 방식으로 인하율을 맞출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 정작 수요자들에게는 실질적 이익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합리적인 전형료 표준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인하부터 지시한 데 따라 맹점이 드러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마다, 전형마다 내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인하하라는 방침은 결국 대학더러 ‘꼼수’를 부리라고 종용하는 셈”이라면서 “총 인하율에 매몰된 인하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형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인하해 현실적으로 운영 중인 ‘착한 대학’만 손해를 입는다는 지적도 크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미 합리적인 수준의 전형료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을 나쁜 대학으로 모는 일"이라 반발하며, "그간 대학이 들여온 노력은 고려하지 않고 예외 없이 전형료를 인하하라고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 교육 전문가도 “사업과 연계한다면 비율이든, 금액이든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대학이 같은 수준으로 전형료를 인하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잡아야 할 대학들 사이에 끼어서 이미 잘 하고 있는 대학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라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인하율을 기준으로 대학에 전형료 인하를 사실상 강권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단순 합산으로 인하율을 산출할 시 수요자 부담 경감과는 오히려 멀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인하율 집착, 꼼수만 유발할 뿐”>
교육부는 지난달 19일 대학 입학처에 ‘대입전형료 투명성 제고(인하) 추진계획’을 내려보내 대학들에 전형료 인하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획기적으로 내리라는 방침이었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보낸 ‘대입전형료 인하 시행계획 제출서식’의 예시가 25.1%로 인하율을 제시하고 있어 논란은 컸다. 교육부는 단순 예시라는 입장이지만 대학들은 교육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전형료 인하에 따라 예상 가능한 부작용을 따져보는 절차 없이 무작정 인하를 강권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표준안이 마련된 이후에 진행해도 될 일을 너무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제출서식은 전형 간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 합산으로 인하율이 계산된다는 맹점이 있다.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논술에서 1만원 인하한 경우와 비교적 적게 지원하는 사회통합 전형에서 1만원 인하한 경우가 동일한 인하율을 나타내 실질적인 수요자 혜택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대학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지원자가 많은 전형은 그대로 두고, 지원자가 적은 전형의 전형료를 인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교육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수요자 부담 경감이라는 목적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무조건 내리라고 지시했어서는 안된다”면서 “결국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전형료 인하 수준을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과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커졌다. 인하에 동참하지 않는 대학에는 실태조사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한 대학 입학팀장은  "대학들에게 자발적인 인하를 독려할 거였다면, 자체 인하방안을 마련해 제출하라고 했으면 충분하다. 금액을 지정해서 보낸다는 것은 그 정도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일정 수준 이상의 '성의(인하율)'를 보이지 않으면 내년 재정지원부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입학팀장도 “교육부로부터 대체 얼마를 내려야 하냐고 물어 보니 ‘한 자리 수 내리는 것으로 되겠는가. 두 자리 수는 돼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지시한 일인데 사정을 알지 않냐는 얘기도 더해졌다”며, "최소 10% 이상 비율을 내리라는 얘기로 이해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급조된 추진계획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우세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합리적 개선 필요성이 있다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판별하는 작업부터 했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일부 학교의 방만 집행 및 입학처 전체 업무비용 처리’라고만 할 뿐 대학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수당은 평균집행률보다 높게 지출한 대학이 74개교, 홍보비를 평균보다 높게 지출한 학교가 98개교라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표준안 나오기도 전 “일단 내려라”>
교육부는 당장 2018 수시부터 전형료를 인하할 것을 주문하고 이달 4일까지 인하 계획을 제출하라고 한 상태다. 현 전형료 산정 방식의 개선점을 논의하기도 전에 ‘일단 내리라’는 식인 탓에 대학가는 혼란에 빠졌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절차와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관계자는 “현재 대입전형료가 과도한 것인지, 과도하다면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하는지 살펴보고 바꾸는 것이 맞다.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무조건 내리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수입/지출에 관한 규정을 구체화한 전형료 표준안을 내년 3월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표준안이 나오고 나서 진행하면 되는데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 없이 당장 실시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대학이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유도하면서 표준화 작업을 거친 후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일부 대학에 대한 실태조사를 예정하고 있다. 대학이 인건비와 홍보비를 적정한 수준으로 지출했는지 점검하고 산정기준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부터 대학의 ‘부도덕’을 가정하고 인하부터 지시하는 모양새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계자는 “대학이 잘못 운영해온 부분이 있다면 함께 살펴보고 바꿔가는 것이 맞지, 살펴볼 겨를도 없이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당장 9월 초부터 원서접수를 해야 하는데 4일까지 인하 계획을 내라고 하니 대학으로서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전형료 낮춘 착한 대학만 손해”>
대학가는 전형료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그간 대입전형료는 산정방법을 사실상 대학의 자율에 맡겨놓았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전형료 산정방법은 고등교육법 제34조의4의 제2항에 따라 교육부령으로 정하고 있지만 지출항목에 대해 규정할 뿐 지출 수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준없이 일괄적으로 전형료를 낮추게되면 그간 전형료를 낮춰 수요자를 배려해 온 대학이나 고교교육에 기여해온 학종을 많이 운영한 '착한 대학'들이 피해자가 되는 역설이 양산된다.  이미 전형단계나 방법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전형료를 인하한 대학은 또다시 전형료를 인하할 경우 재정에 타격이 생긴다는 우려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의 경우 2015학년 이미 전형료를 현실화했다”면서 “평균적으로 26~30% 가까이 인하를 했고 특정 전형의 경우 40% 정도로 인하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수입과 지출이 딱 맞게 만들어놨는데 여기서 더 내리라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종 비율이 높은 대학만 손해라는 지적도 있다. 학종이 타 전형 대비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기 때문이다.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에 발맞춰 학종을 확대해 온 ‘착한 대학’들이 역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는 분석이다. 학종은 1단계 서류평가에서 학생부/자소서 등을 검토하고 2차 면접을 실시하는 등 전형에 투입되는 인원이 많은 편이다.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로 실시한다는 특징도 있다. 공정한 전형 운영을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신 성적으로 정량평가하는 교과전형을 주로 늘려온 중하위권 대학만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내신을 줄세워 선발하지 않는 학종과 달리 교과는 내신 성적만을 반영해 비교적 간단한 전형방식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상위17개대학 기준으로 보면 특기자(9만7500원)>학종(7만5535원)>논술(6만5000원)>교과(5만2272원) 순으로 교과가 가장 싼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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