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 전 입학처장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이해하는 인문학으로 거듭나야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 인간은 생물학적 욕구 충족을 넘어 가치의 문제를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삶의 의의와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대해서 고민하고, 역사를 기록하며, 문학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표현하는 초인지(超認知, meta-thinking)가 가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 즉,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사고(思考)’가 등장하고, 이에 관련된 연구 분야들이 모여 인문학이 형성됐다.

1784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600만 년 이상을 그저 간단한 도구만을 가지고 자연에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적 존재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14세기~16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르네상스로, 동양에서는 유학으로 꽃을 피웠다. 당시 모든 사상은 ‘인간’ 정신의 고양과 인간의 삶에 귀착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간 신체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 증기 기관이 등장하고, 이렇게 한 번 시작한 기계화는 언덕을 내려오는 자전거처럼 가속화됐고, 드디어 전기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지구상의 주인인 인간이 기계에 의해 소외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기계의 발달로 사람들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게다가 산업화로 인해 인구수가 급격히 팽창하자 사람들은 인간의 가치와 관계의 질을 높이려는 고민 대신, 경쟁적으로 기계의 성능을 높여 더 많은 생산을 하고, 그렇게 축적한 자본으로 또다시 새로운 기계를 개발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인간이 직접 자신의 신체로 욕망을 실현해 나갈 때는 그렇게 많은 재화를 한꺼번에 생산해 낼 수 없었다. 도구의 힘을 빌리면서 인간이 실현해 내고 싶어하는 욕망의 영역은 다양해지고, 더 커진다. 인간의 가치보다 도구의 가치가 더 높은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인문학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더 풍요롭고, 더 건강하고, 더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은 기계이지 더 이상 인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찬규 중앙대 전 입학처장

기계를 통한 행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새로운 도구를 만들기 위한 경쟁으로 사람들은 ‘인간성’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복은 소수의 사람 몫이 되고 말았다. 2014년 2월 옥스팜 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소유한 재산은 1732조원으로 이는 세계 인구 절반(약 35억명)이 보유한 재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전 세계 약 26억명의 사람이 하루에 채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고, 이러한 양극화는 2050년까지 가속화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4차 산업 시기에 이르면 더 이상 이것이 인간끼리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 사이에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조만간 인류는 도구로서 기계를 넘어 지혜를 가진 기계인 로봇 사피엔스가 등장하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정신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로봇들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인간 정신의 어디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올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다. 연산과 검색의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칠 것인지, 정말 인간처럼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지까지 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지 인간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 이후 인문학의 위축은 가속화했다. 전미대학고용협회(NACE) 보고서를 인용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대학 졸업자 중 인문학 학위 소지자 비율이 1948년 이래로 최저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과연 4차 산업의 시기에도 이러한 관성(慣性)이 유지될 것인가? 로봇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공이 된다면,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로봇 사피엔스들에게는 불온한 학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로봇 사피엔스와의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우수성을 입증해 나가든지, 아니면 더욱 정교해진 방식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4차 산업시대의 인문학은 현재보다 더 치열한 학문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청동기 시대 이후 지구상에서 독점적 지위를 지켜온 인간은 약간 거만한 방식으로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심화해 왔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인 경쟁자를 두고 인간의 존재 가치를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이제 다시 좀 더 다른 모습으로 진용을 구축해 미래 사회에 대비해야만 한다. 분과학문적인 틀을 벗어나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공학을 이해하는 인문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늦었지만 2016년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인문학이 거의 절벽까지 밀린 상황에서 여러 인문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민주당 신기남 의원 등이 2013년 11월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것을 기반으로 2015년 12월31일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2016년 8월4일 법안의 시행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 법률안의 통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관계 부처의 담당자와 많은 힘을 실어 준 여러 의원들은 한국 인문학이 재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준 주역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 법률안에 따라 2016년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심의회’가 구성됐다. 향후 이 위원회가 한국 인문학의 제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하나의 판게아처럼 묶여 있다. 우리나라만 기술을 뒤로 두고 인문학을 우선으로 복원해 나가자고 할 수 없다. 다만 향후 인간과 로봇 사피언스들이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계적 표준이 정해진다면 그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 방향이 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선도국가가 아니라 AI시대에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구현할 것이며, 인간이 곧이어 등장할 로봇 사피언스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준비하는, 인문국가로서도 세계 속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 정부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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