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자율권 보장.. 과학Ⅱ 이수권장 '유의'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서울대가 현 중3이 치르게 될 대입에서의 ‘필요조건’을 내놨다. 서울대 입학본부는 3년 후 있을 2021 대입에서의 ‘교과 이수기준’을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했다. 당장 내년 고1부터 적용될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비해 수요자 배려 차원에서 ‘사전예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정 교육과정 적용 관련, 대학이 선도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교과이수기준은 지원자격이나 수능최저학력기준과는 다르다. 지키지 않더라도 지원/합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서류평가에서 반영되고, 고교에서 배워야 할 최소 수준 등을 제시한 것이기에 서울대 지원에 있어서만큼은 ‘필요조건’으로 여겨진다. 일선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참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번 발표는 개별 고교들의 교육과정 편성안 제출 시기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고교들은 6월말 정도면 다음해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서울대가 현 중3이 치르게 될 대입에서의 ‘필요조건’을 내놨다. 탐구 이수기준은 통상의 수험생이면 충족 가능하지만, 제2외국어 한문 중 1과목 이수, 과학Ⅱ 이수 권장 등은 신경써야 할 대목이다. /사진=서울대 제공

이번 이수기준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탐구와 생활/교양 교과만 발표됐다. 탐구교과에서는 사회 3과목과 과학 3과목을 이수하거나 사회 2과목과 과학 4과목 이수를 권장했고, 생활/교양교과에서는 제2외국어나 한문 중 1과목 이수를 제시했다. 한국사는 탐구영역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이수기준은 아니지만 “진로희망에 따라 과학Ⅱ 과목 이수를 권장함”이란 문구가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 

탐구영역만 놓고 보면 이수기준은 예년 대비 다소 헐거워졌다. 사회4+과학3 또는 사회3+과학4에서 사회가 1과목씩 축소된 모양새다. 다만, 2021 이수기준은 기존에 포함됐던 한국사를 제외했다. 한국사 제외에 따라 이수기준을 축소한 것으로 해석하면 예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통상의 고교생이라면 탐구 이수기준 충족은 손쉬울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나 특목/자사고 등에 적용될 예정인 개정 교육과정의 단위배당 기준을 볼 때 사실상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개정 교육과정은 통합사회, 통합과학/과학탐구실험을 필수 이수토록 하고 있으며, 선택과목에서 1과목 이상 더 이수해야 필수 이수단위를 채울 수 있도록 한다. 때문에 고교생들은 누구나 졸업 때까지 최소과목만 이수하더라도 사회 2과목, 과학 3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서울대가 내놓은 이수기준은 여기에 사회 1과목이나 과학 1과목을 더한 수준이기에 충족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어렵다. 

현 중3들은 고교 진학 후 불충족 우려가 없는 탐구보다는 생활/교양 이수기준에 신경 써야 할 전망이다. 개정 교육과정은 제2외국어나 한문 이수를 강제하지 않는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따를 시 대부분이 충족하는 탐구와 달리 제2외국어나 한문, 과학Ⅱ 등은 이수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 ‘이과’처럼 수학 과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경우라도 제2외국어나 한문 중 1과목을 놓쳐선 안된다. 

과학Ⅱ 권장은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 등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그간 교육계에서는 수능 과탐Ⅱ 기피현상으로 이공계 진학생들이 대학 수업을 쫓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올해 초 열린 서울대 ‘샤 포럼’에 참가한 물리천문학부 유재준 교수는 “서울대 공대 신입생 중 물리Ⅱ를 배우지 않고 입학하는 경우가 40%쯤 돼 기본개념을 가르치는 물리과목을 따로 신설했다. 고교에서 배우고 들어왔어야 할 수준의 지식을 1학년 내내 배우고 나면 2~4학년 동안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힘들다. 학업을 포기하거나 마냥 외우는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공부해서는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이같은 우려를 인식해 과학Ⅱ 이수를 권장해왔다. 이공계에서 수학하기 위해 과학Ⅱ 지식이 필수란 판단에서다. 그간 수시 지균 자연계열이나 정시에서 과탐Ⅱ 1과목 필수이수를 설정한 것은 서울대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였다. 결국 이같은 고민이 2021 이수기준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과학Ⅱ 이수를 권장하도록 만든 셈이다. 그간의 우려나 서울대가 가진 위상을 생각했을 때 부가 문구에 그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서울대의 의도가 명백한 이상 자연계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과학Ⅱ를 필히 이수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이수해도 불합격이 아니라고 간과해선 안된다. 서류평가에서 상당비중의 반영이 이뤄질 것이라 봐야 한다. 특히, 대학에서의 학업에 있어 과학Ⅱ 사전지식을 필요로 하는 공대 등을 지망하는 경우 과학Ⅱ를 이수해야 서류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추후 전형안내나 평가기준을 통해 진로적성에 맞는 이수기준이 발표되면 그에 발맞춰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이수기준이 현장 자율권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서울대가 내놓은 이수기준은 가장 범위가 좁은 형태다. 쉽게 풀면 ‘고교 생활 중 최소한 이 정도 과목은 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개정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이라곤 하나 수험생들의 선택은 진로적성에 맞춰 사회나 과학 쪽으로 다소 쏠리기 마련이다. 이 때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제2외국어나 한문 1과목 이수, 과학Ⅱ 이수권장 등도 그간 서울대가 밝혀 온 ‘고른 교과 이수’와 일관된 기조”라며, “과감한 이수기준을 내놓기보다는 현장 자율성에 신경을 크게 쓴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가 대입에서 가진 위상으로 인해 과도한 제한사항을 내놓으면 현장에서는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 이번 이수기준 수준이면, 개별 고교들은 교육과정 편성에 있어 별다른 제한사항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어떻게 적용되나>
서울대 교과이수기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이해해야 한다.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물론 기존 교육과정에도 문이과 구분이 명시돼있진 않았다. 2005학년 대입에 모습을 드러낸 7차 교육과정부터 문/이과 구분은 없어졌다. 다만, 수능이 문/이과 구분을 전제로 시행되면서 문과는 과학, 이과는 사회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론과 현실은 달랐던 셈이다. 

개정 교육과정은 사회 과학에 적용되는 필수 이수기준을 둠으로써 문이과 구분을 최소화했다.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을 모든 학생들이 이수해야 할 ‘공통과목’으로 만들어 모든 학생이 공통과목을 무조건 이수하도록 해 계열에 따른 특정과목 편식을 막았다. 모든 고교생은 공통과목으로 국어/수학/영어 각 8단위, 한국사 6단위, 통합사회/통합과학 각 8단위, 과학탐구실험 2단위를 각각 이수해야 한다. 공통과목 이수단위 합은 48단위에 이른다. 

‘문이과 통합’이란 용어가 개정 교육과정을 오해토록 한단 지적이 있다.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문이과 불분과’가 더 적절한 표현인 때문이다. 한국진로진학정보원(한진원)의 진동섭 이사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문과와 이과를 나누지 않는 교육과정으로 봐야 한다. 용어가 통합인 탓에 오해가 생기곤 하는데 불분과로 보면 의도가 명확해진다. 융합형인재를 만든다기보다는 문과와 이과를 굳이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라 말했다. 

‘문이과 불분과’의 개정 교육과정은 204단위 이수를 규정한다. 졸업 때까지 204단위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단위’는 17시간의 수업을 묶어서 뜻하는 용어로 1학기가 17주라고 가정했을 때 주1회 50분 수업을 하면 1단위가 된다. 결국 204단위는 고교 3년간 3468시간의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204단위는 온전히 수업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개정 교육과정은 단위배당 기준을 통해 교과 180단위, 창의적체험활동 24단위를 규정했다. 창의적체험활동은 ‘자/동/봉/진’으로 불리는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을 의미한다. 통상의 수업을 의미하는 교과 180단위는 다시 보통교과 필수이수단위 94단위와 자율편성단위 86단위로 구분된다. 필수이수단위 94단위 중에는 공통과목 이수단위 48단위가 포함된다.

94단위를 이수해야 하는 보통교과는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구성된다. 공통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이며, 선택과목은 일반선택/진로선택으로 구분되는 과목들이다. 수학을 예로 들면, 공통과목으로 ‘수학’이 있고, 일반선택과목으로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 확률과통계, 진로선택과목으로 실용수학 기하 경제수학 수학과제탐구가 있는 방식이다. 일반선택과목은 문/이과 모두 이수할 수 있는 과목이며, 진로선택과목은 진로에 따라 선택여부가 갈리는 과목이라고 보면 된다.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은 실제 학과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진 이사는 “경제학 전공의 경우 문과수학만 배워서는 대학에서 수학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문과에 해당해 사실상 쉬운 수학만 배우도록 했다. 대학에 가서 다시금 공부해야 하는 불일치가 있었던 셈”이라며,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기 원하는 학생이라면 진로선택의 기하까지 배움으로써 대학 진학 시 필요한 수준까지 학습할 수 있다. 경제학 뿐만 아니라 문/이과 경계에 서있는 학과들은 많다. 인문/자연을 구분해 선발하는 형태가 많은 간호학과 등도 2021에는 문 이과를 고루 배운 학생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 중3들은 고교에서 공통과목 48단위를 먼저 듣고 차후 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을 통해 나머지 132단위를 채우는 과정을 밟게 된다. 공통과목 48단위에 10단위를 더한 58단위가 국/영/수/탐구에서 들어야 할 필수이수단위다. 체육/예술 생활/교양에서 36단위를 더 들음으로써 기존 58단위와 합해 교과 필수이수단위 94단위를 전부 충족하게 된다. 나머지 자율편성단위 86단위는 학교여건에 따라 선택과목과 전문교과 중 선택해 들을 수 있다. 특목고의 경우 일반선택/진로선택에 전문교과가 추가된다. 본래 전문교과는 보통교과의 심화과목이었지만, 개정 교육과정은 ‘전문 교과’(전문 교과Ⅰ)을 분리했다. 일반고도 교육여건에 따라 전문교과를 개설할 수 있다. 

이처럼 개정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기에 서울대 탐구 이수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회의 경우 공통과목인 통합사회 8단위를 들은 후 필수이수단위 10단위에서 모자란 2단위를 채우기 위해 일반선택/진로선택 중 1과목만 듣더라도 2과목을 이수하게 되며, 과학의 경우 공통과목인 통합과학과 과학탐구실험을 합쳐 10단위를 들은 후 필수이수단위 12단위에서 모자란 2단위를 채우기 위해 일반선택/진로선택 중 1과목만 듣더라도 3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서울대가 이번에 내놓은 교과 이수기준은 사회3+과학3 또는 사회2+과학4이므로 사회를 1과목 더 듣거나 과학을 1과목 더 듣는 순간 탐구 이수기준을 충족하게 된다. 어떻게 교육과정을 편성하더라도 다른 과목으로만 채워지는 사례는 희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제2외국어나 한문은 생활/교양 교과 영역으로 필수이수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정 교육과정은 기술/가정 제2외국어 한문 교양을 통틀어 16단위만 이수하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공통과목을 듣고 선택과목을 고르는 과정에서 현재의 이과생처럼 수학/과학에 치중한 교육과정을 따르는 경우 제2외국어나 한문을 듣지 않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일선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대해 충분히 안내하겠지만, 서울대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라면 제2외국어나 한문 중 1과목은 필히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과학Ⅱ 이수가 권장되는 만큼 과학교과의 진로선택과목인 물리학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이수를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일반선택과목을 고를 때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 등을 선택해 학습 순서가 역전되지 않도록 과학Ⅰ에서 과학Ⅱ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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