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세우기 경쟁 완화' vs '공교육 질 저하 우려'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9년 만에 사실상 폐지된다. 교육부는 전국시도교육감이 참여한 국정기획자문위 제안을 반영해 학업성취도평가를 교육청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국가수준 결과분석은 표집학교에 대해서만 실시한다고 밝혔다. 1986년 처음으로 실시해 그간 시행과 폐지를 반복해온 일제고사는 2008년 전수평가 시행 이후 9년 만의 폐지를 두고 교육계 반응이 엇갈렸다. 당장 20일 실시하기론 한 평가부터 표집방식을 적용, 시험이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을 발표해 성급한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평가는 매년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6월 넷째주 화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평가 과목은 중고교 모두 국영수사과 다섯 과목이지만 국영수만 전수조사를 실시, 사회 과학은 중학교를 대상으로 표집조사를 진행한다. 결과는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 등 4단계로 표시하며 학생 개인에게 통지한다. 학교별 성취수준 비율은 학교알리미를 통해 공개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9일 실시한 국정기획위 간담회에서 일제고사 전수평가를 폐지하고 표집평가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평가 결과 공개에 따른 시도별 학교 간 등수 경쟁과 시험에 대비한 교육과정 파행 운영 등으로 본래 취지에 벗어났다는 점을 근거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당장 20일 계획된 평가부터 교육부에서 선정한 표집학교는 단위학교 시행 매뉴얼에 따라 평가를 시행하되 그 외 학교의 시행 여부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17개 시도 교육감 대다수가 진보 성향인 점을 감안하면 표집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평가를 시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별 결과와 학교 정보 공시도 제외할 계획이다. 평가 대상은 중3학년 고2학년 학생이다. 국가 수준 결과 분석을 위한 표집규모는 전체 93만5059명의 학생의 약 3%에 해당하는 2만8646명으로 중학교 476개교 1만3649명, 고등학교 472개교 1만4997명이 해당된다. 

내년부터 완전 표집평가로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구체적 방안은 교육부에서 교육청과 학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 연구 결과 등을 반영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해선 두드림학교 운영 등을 통해 학습부진 원인진단 학습지도 상담 치료 등 맞춤형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행일이 촉박하지만 교육감들의 제안을 최대한 존중, 시행 계획을 변경하게 됐다”며 “시행계획 변경에 따른 혼선을 방지하고 표집학교를 비롯한 시행 학교에서의 엄격한 평가 관리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3학년과 고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9년 만에 사실상 폐지된다. /사진=충남교육청 제공

<과도한 경쟁 완화 vs 학력저하 우려.. 현장반응 엇갈려>
일제고사 폐지에 대한 교육계 반응은 엇갈렸다. 폐지를 반기는 쪽에선 학교별 줄세우기로 연결되는 일제고사 부작용을 지적했다. 본래 취지와 달리 학교나 시도 사이 불필요한 경쟁이 심화됐다는 입장이다. 한 일반고 교사는 “일제고사 성적에 따라 학교가 서열화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일제고사 폐지에 따른 장/단점이 있겠지만 학교를 줄 세우는 부작용을 고려하면 없애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다른 교사는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인데 일제고사를 통해 서열이 공개되는 것”이라며 “교사들은 폐지를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교조는 “학업성취도평가 변경 시행은 경쟁교육 철폐를 위해 노력해 온 투쟁 성과”라는 논평을 냈다. 덧붙여 “표집비율이 1986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0.5%에서 1.5%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3% 표집 규모는 과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교육청은 “평가가 학생들의 시험 부담과 점수 경쟁을 증가시킨 것이 현실이다. 교육청을 비교하는 결과 발표로 교육청 간 경쟁도 과열됐다”고 전했다. 이어 “지식 중심의 일제고사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학력 중심의 경쟁의식을 강화했다”며 평가 방식 변경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학력 저하를 우려해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았다. 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개인별 학력에 대한 진단과 평가 피드백은 필수”라며 “일부만 파악 가능한 표집평가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 대변인은 “과도한 성적 점수 중심의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전수평가 폐지는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단위학교의 학력 파악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학습지원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학업성취도평가는 단위학교와 시도 간 학력을 파악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지만 본래 목적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학습결손을 보충하고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단위학교의 학력 파악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학습지원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평가결과 산출도 구체적 점수 공개방식이 아닌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미달 등 4단계 구분에 불과하다. 학교알리미 공시는 우수학력 비율을 보통학력 이상에 흡수해 3단계 비율로 나타낸다. 학생들의 경쟁의식을 유도한다고 보기에는 분포가 넓다는 지적도 있었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학업성취도평가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 파악이라는 목적에 맞게 학력 파악보다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가결과에 민감한 주체는 학생이 아닌 기초학력 미달 비중이 높은 단위학교나 교육청인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교육의 질 저하와 수월성교육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성적과 점수 중심의 평가로 인한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는 측면이 있으나 경쟁이 배제되면 평균학력 수준이 낮아지고 교육 현장의 활력이 저하돼 사교육을 오히려 조장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학부모는 “전국 모든 학생들이 같은 문제로 시험을 봐 본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일제고사를 폐지하면 아이와 학교 수준은 어디서 파악하냐"며 반대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평가가 6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린 교육부의 결정에 대해 성급한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정기획위 제안과 교육부 발표가 약 30분 간격으로 이뤄져 국정기획위가 정부부처에 정책 변경을 지시한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교총 관계자는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고 교육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정기획위는 전 정권 정책 가운데 어떤 정책을 이어갈지, 대선 공약 중 어떤 것을 국정과제로 정할지 등을 말 그대로 ‘제안’하는 곳”이라며 “국정기획위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교육수요자 알권리는 어디로?>
일제고사에 대한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상한 교육계 쟁점이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전수평가로 실시하던 것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인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표집평가로 바꾸었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하면서 2008년부터 다시 전수평가를 실시해왔다. 이번에 평가방식이 변경되면 9년 만에 일제고사가 다시 폐지되는 셈이다. 

시도별 학교별 줄세우기 논란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교육수요자 입장에선 지역별 학교별 교육수준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사라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수조사에서 표집평가로 전환되면 교육청별 결과와 학교별 정보를 알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게 된다. 유일한 고입정보였던 평가가 없어지면서 고입 수요자는 학교선택권이 없는 ‘깜깜이입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8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평가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과 절차, 방법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점검해 교육수요자들이 알 권리를 충족하고 있다. 매년 6월 평가가 끝나면 11월에 학교알리미를 통해 각 학교별 응시현황과 평가결과 학교 향상도를 공시해야 한다. 평가결과는 보통학력이상(우수학력+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미달 등 3등급 비율로 나타낸다. 학교 향상도는 학생의 학력 향상에 학교가 기여한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고2 학생들의 성취도 점수를 입학 당시(중3학년) 성취도 점수와 비교해 산출해 학교 교육을 통한 학력 향상 정도를 측정한다. 학교의 노력에 의해 학력이 향상도니 부분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지표다. 전년 성적과 단순 비교가 아닌 입학 당시 성취도 점수가 유사한 학교들을 비교해 여건이 동일한 학교 간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  

성취도 결과와 학교 향상도는 고입수요자들 중에서도 특히 일반고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주요 고입선택 잣대로 활용됐다. 학교와 교육청을 운영을 감시하는 잣대로 역할 하기도 했다. 수요자 입장에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청 또는 단위학교가 교육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였다는 얘기다. 표집전환으로 더 이상 단위학교의 수준을 파악할 수 없다면 단위학교는 견제수단 없는 깜깜이운영이 가능한 셈이다. 

일각에선 진보 교육감들의 역점 사업인 혁신학교의 저조한 학력수준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조희연 교육감이 적극 추진한 서울형 혁신학교 10개교는 2015년 평가에서 기초학력미달 15.3%로 전국 고교평균 4.2% 대비 3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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