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당락 영향 따라 1000만원 42명, 200만원 52명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2014 수능 출제오류 관련 법정공방이 항소심에서 뒤집히며 처음으로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0일 부산고등법원 민사합의 1부는 수험생 94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능 출제오류와 구제절차 지연으로 대입에 영향이 있었던 경우와 없었던 경우로 94명의 수험생을 구분, 평가원과 국가는 42명에게 각 1000만원, 52명에게 각 200만원을 손해배상 하라고 판시했다.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난 42명은 출제오류로 인해 등급, 백분위 등에서 손해를 봐 대입에서 당락이 뒤바뀐 사례였다. 출제오류로 인해 직접적인 당락이 갈리진 않았지만, 지원 가능한 대학의 범위가 줄어든 52명은 상대적으로 적은 200만원이 손해배상액으로 결정됐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지난해 7월20일 수험생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던 1심을 뒤집는 결정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출제오류가 분명 존재한다면서도 “객관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잘못된 문제출제와 정답결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출제오류가 발생하긴 했으나,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 이의심사실무위 평가위원 등이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본 것이다. 평가원이 오류논란 발생 이후 제반절차를 성실히 이행했다는 것도 수험생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이유였다. 

반면, 항소심에서는 출제과정과 이의처리 과정에서 평가원의 과실이 있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문 자체에 오류가 있거나 객관적 사실에 위배되는 명백한 오류가 존재했음에도 평가원이 출제/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이는 불법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이 존재한다. 수험생들이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조기에 대응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1심과 항소심의 판결이 엇갈린 것은 평가원이 출제/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민법은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등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과실책임주의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한 손해까지 책임을 물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가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본 1심과 달리 평가원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항소심에서 수험생들의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2014학년 수능에서의 세계지리 출제오류 후속조치는 실제로도 다소 미흡했다는 평이다. 후속조치가 다소 늦게 이뤄진 때문이다. 2013년 11월7일 실시한 2014학년 수능 당시 평가원은 출제오류 지적이 제기된 후 실무위 개최, 학회 자문 등을 통해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판정하고 후속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출제오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행정소송 1심 판결이 추후 항소심에서 뒤집힌 이후에야 구제절차에 나섰지만 이미 시간은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이었다. 평가원은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오답 처리됐던 1만8884명의 성적을 재산정해 9073명의 성적을 한 등급씩 올렸고, 대학들은 2014 지원자들의 성적을 재산정해 4년제대학 430명, 전문대 203명 등 총 633명의 추가합격을 실시했으나, 사후 구제책일 뿐이었다. 출제오류로 대학에 불합격해 재수하는 데 들인 비용 등까지는 보전할 수 있는 대책으로 보긴 어려웠다.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구제받지 못했다. 1심 판결에서 수험생들의 손해배상청구가 기각됐을 때 교육계에서 평가원의 법적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도의적 책임에선 자유롭기 어렵다고 본 것도 때늦은 구제절차 때문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1심 판결이 나왔을 당시에도 잘못된 출제에 대한 보상은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잘못된 문제출제로 인한 실제 피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합당하지 못했던 때문이다. 사후 구제조치가 이뤄졌다고는 하나 그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대학에 합격해 다니던 학생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커리큘럼이 꼬이기도 했으며, 세계지리 등급이 1등급 낮아지면서 지원대학을 하향해 합격한 경우 사후구제 대상이 되지 못한 맹점도 존재했다”며, “물론 최초 행정소송에서 출제오류가 없다고 결정이 나온 이상 평가원이 어떤 조치를 취하긴 어려웠다. 이후 구제절차에도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법적 논리를 뛰어넘어 도의적 책임은 분명 존재했다. 지금이라도 재판부가 수험생들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결정해서 다행이다. 이번 판결이 국가적 관심사인 수능 출제오류로 유/무형의 피해를 입은 수험생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심 기각으로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던 2014 수능 출제오류 관련 법정공방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10일 부산고등법원 민사합의 1부는 수험생 94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판결을 취소하고 수험생들에게 총 5억24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중앙대 제공

<2014 수능 세계지리 출제오류.. 무엇이 문제였나>
2013년 11월7일 실시된 2014학년 수능 직후 이의신청을 통해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도를 통해 유럽연합(EU)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의 총생산액 규모를 비교한 세계지리 8번문항에서 제시한 보기의 ㉢이 오류로 보였던 때문이다. 옳은 설명을 모두 고르는 8번문항에서 “A(EU)는 B(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고 밝힌 ㉢은 옳은 설명으로 분류됐으나, 사실관계와 달랐다. 제시된 지도에 ‘(2012)’로 연도가 표기돼있었고, 2012년을 기준으로 할 시 NAFTA의 총생산액이 EU보다 크다고 봐야했다. 

다만, 평가원은 세계지리 8번을 포함해 2014 수능에서 출제오류가 없다며 이의신청 절차를 종결했다. 오류 제기 이후 이의심사 실무위원회를 열어 평가위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17명의 평가위원 중 16명이 ㉢을 옳은 설명으로 규정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 데 더해 외부 전문집단인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등도 오류가 없다고 판단했던 때문이다. 또한, 평가원은 매년 바뀌는 통계치를 고려해야 하는 수능문제는 출제하지 않는다며, 잘못된 보기를 지우는 형태로도 답을 맞힐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출제오류를 주장하는 수험생과 교육계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지도에 (2012)라는 표기가 있는 이상 2012년의 사례가 적용돼야 하며, 문제풀이 요령을 통해 답을 맞히라는 것은 논란의 본질을 비껴간 해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수험생 38명이 “세계지리 8번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보고 내린 등급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평가원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세계지리 출제 여부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뒤집힌 행정소송.. ‘출제오류 아니다’에서 출제오류로>
수험생들의 청구로 시작된 행정소송은 이번 손해배상소송과 마찬가지로 1심과 2심의 판결이 뒤집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3년 12월16일 1심 재판부는 출제 오류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완전한 출제오류로 보기 힘들며, 출제오류로 판명할 시 향후 학습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질문이 다소 애매하긴 하나,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풀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문제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도에 연도가 표기돼있긴 하나, 문제 자체에는 연도에 대한 언급이 없어 특정 연도를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며, 교과서에서도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취지로 언급돼 있다는 점이 판결의 근거였다. 1심판결 직후 정시 원서접수가 시작되면서 세계지리 응시 수험생들은 일단 대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항소심은 정시 원서접수 이후에야 판결이 나오기 때문에 일단 원서지원이 이뤄져야 했던 때문이다. 

반전은 2014년 10월16일 있었던 2심 판결에서 시작됐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는 세계지리 8번문항에 정답이 없다며 원고(수험생)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수능은 객관적 사실의 옳고 그름 여부를 묻는 시험으로 출제의도에 의해 정답으로 예정된 답안이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문은 명백히 틀렸으며, 2012년 기준 NAFTA와 EU의 총생산액 차이를 알고 있는 수험생들은 정답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구제절차 개시.. 전원 정답 처리>
결국,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자 교육부와 평가원은 협의 끝에 상고를 포기하고, 세계지리 8번문항을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기로 2014년 11월20일 결정했다. 수능 출제오류가 발생한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이후 구제조치로 8번문항에서 오답이 나왔던 수험생들은 재산정된 표준점수, 백분위를 받게 됐다. 총 1만8884명의 성적을 재산정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9073명이 한 등급씩 오른 성적표를 받았다. 대학들도 변경된 성적을 기준으로 다시금 입학사정을 실시, 바뀐 성적을 적용했을 때 합격권에 든 학생들을 전부 추가합격시켰다. 4년제대학 430명, 전문대 203명 등 총 633명의 추가합격자가 나왔다. 해당 학생들은 대학 재학중인 경우 신입학/편입학 중 하나를 선택해 대학을 옮길 수 있도록 선택권이 주어졌으며, 대학에 다니지 않는 경우 신입학으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구제됐다. 

<이어진 손해배상소송, 또다시 뒤집힌 1심.. 향후 재발 없을듯>
평가원과 교육부가 추가합격을 단행해 사후 구제절차에 나섰지만, 법정공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능 출제오류로 하향지원을 했던 수험생과 재수비용을 소모한 수험생들은 평가원의 ‘늦장 대처’를 문제삼아 사상 최초의 수능출제오류를 근거로 하는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1월19일 시작된 소송에는 100명의 피해 학생이 우선 참여했다. 1차 소송결과를 본 후 2차 소송인단을 꾸리려는 계획에서였다. 당시 수험생들은 정신적 손해와 재수 투입비용, 잃어버린 1년의 시간 등을 이유로 1500만원에서 6000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지난해 7월20일 1심 재판부는 평가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고, 적절한 후속조치가 이뤄졌다며 수험생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이대로 2014 수능 출제오류 관련 법정공방이 끝나지 않겠냐는 예상이 우세했다. 행정소송처럼 또 다시 결과가 뒤집힐 것으로 예상되진 않았던 때문이다. 하지만, 10일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세계지리 오류에 대해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다시금 상황은 급변하게 됐다. 행정소송의 전례에 비춰봤을 때 평가원이 상고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항소심이 인정되는 경우 9000여 명에 달하는 수험생들이 유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고가 이뤄질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태다. 

2014 수능에서 불거진 출제오류가 끝내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면서 평가원은 이후 출제오류에 적극 대처하는 모양새다. 출제오류 검토절차를 더욱 강화한 데 더해 2014 수능 이후 발생한 2015 수능과 2017 수능 출제오류 당시 평가원은 즉각 출제오류를 인정하고 복수정답 처리에 나섬으로써 논란을 원천차단하기도 했다. 때문에 향후 2014 수능처럼 출제오류로 인한 법정공방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진=2014 수능 세계지리 8번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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