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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선장 염재호가 띄운 21세기 고려대‘기다리는 대신 각자만의 뗏목 만들어 항해하라’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염재호(62) 고려대 총장은 빅토르 위고를 빌어 “미래란 약한 자에겐 불가능, 겁 많은 자에겐 미지, 용기 있는 자에겐 기회”라며 용기 있는 자의 미래를 말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사회에 대해 두려움을 얘기하고, 금수저 흙수저를 얘기하고, 취업이 안 될 거라며 겁을 주지만, 21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용기 있는 사람에겐 기회다. 많은 청년들이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염재호는 소년의 눈을 가진 대학총장이다. 자신이 그래왔듯 인생을,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살라 한다. 맑고 겁없는 소년의 눈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과거를 관통해 미래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고대가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개명하고, 2018학년 학종을 대폭확대하는 것 역시 용기 있는 자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이다. 객관화된 지식을 달달 외우는 ‘형식지’가 아닌 지식을 내재화하는 ‘암묵지’를 요구하는 시대흐름에 맞춰, 대학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미 미래의 바다를 향한 염재호號 고대의 혁신은 시작됐다. 출석 안 부르고 상대평가 안 하고 시험감독 안 하는 3無에서 출발, 토론위주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교육시설 구축 등 염 총장은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였다. 고대는 막걸리에 취한 촌스런 안암골 호랑이라는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교육을 선도할 세련된 기회를, 염 총장을 통해 열어젖히고 있다.

염재호 총장은 21세기 패러다임으로 교육을 개혁하고 입시를 개혁하면서 “큰 항공모함의 방향을 틀어본 수준”이라고 말한다. 당장 모든 걸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고대로부터 출발해 대한민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찾아보자는 얘기로 들린다. 미래 대한민국을 만드는 교육혁신의 단초가 ‘염재호’로 기억될지 주목된다. /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a.com

<혁신DNA의 발동>
염재호 고대 총장은 교육계에 이미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2015년 총장취임 이후 고대에 펼쳐낸 ‘파격’은 비단 고대뿐 아니라 교육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출석 부르지 않고 상대평가하지 않으며 시험감독을 하지 않겠다는 ‘3無정책’은 취임즉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성적장학금도 폐지했다. 대신 프로그램장학금을 통해 용돈보다 교육기회를 더 주는 차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교는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세계적 기업인 MS와 구글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모으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향으로 교육방법을 개편하기 위한 하드웨어, ‘파이빌’을 시작으로 ‘SK미래관’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우리 사회가 대학교육에 갖고 있던 경직된 이미지를 염 총장은 고대를 무대로 자신의 에티튜드처럼 세련되게 가꿔가는 것이다. 총장 되려 세 번 손 들었지만, 네 번째 만에 결국 총장이 됐다. 오랫동안 품어온 염 총장의 ‘혁신DNA’가 염 총장 스스로 개척하며 일궈온 단편적 얼개들과 맞물려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고대 학부시절 행정학을 전공했던 염 총장은 재학 당시 인문학은 물론 수학에 물리학까지도 섭렵하는, 이미 ‘융합형 인재’였다. 전공자들도 어려워할 수학과 4학년 확률론까지 들었다. 일과에 언제나 포함시켰던 독서의 범위 역시 학문간 경계를 흔들어댔다. 그러고도 고대법대를 수석졸업했다. 학문을 향한 개척정신은 고대 행정학 석사 이후 스탠포드대 정치학 박사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유학초기 토론은커녕 책 읽는 속도마저 느려 어쩔 줄 모르던, 한국인 유학생은 정치학방법론 수업에서 교수의 틀린 통계공식증명을 칠판에 적어 지적하기에 이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스탠포드 유학을 선택한 것 역시 잠재돼 있던 혁신DNA의 발로다. 대학시절까지 산동네 살면서 물지게 지고 다닐 정도로 가정형편이 녹록하지 않았던 염 총장은 SK의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으로 미국행이 가능했다. (염 총장은 201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이사장을 지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낯설던 스탠포드 정치학과에 염 총장은 1호 유학생으로 갔다. 스탠포드라는 선택은 탁월했다. 실리콘밸리 인근 스탠포드는 세계가 주목하는 개척정신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대형강의실에 오밀조밀 모여 학점관리하며 ‘입결’이나 ‘고시합격자수’를 대학평판 가늠자로 삼을 때 스탠포드는 박사과정 학생들에 연구실 한 칸씩 내어주고 책 읽고 토론하며 ‘동문 창업기업수 약 3만9900개, 이를 통해 창출된 일자리 약 540만개’를 자랑한다. 더 나아가 ‘동문 창업기업 연간 매출액 약 3000조원’이라는 사회기여도를 자랑한다. 연간 3000조원은 프랑스 GDP(2712조원)와 맞먹고 우리나라 GDP(1163조원)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이만한 가치창출을 해내는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부딪혀 살아낸 염 총장의 경험은, 고대를 무대로 그가 펼쳐낸 파격행보를 받쳐줄 밑거름이 됐다. 미래를 앞서 내다보는 남다른 식견, 유람선을 기다리는 대신 뗏목을 만들어 항해해나가는 굳건한 맷집과 배짱을 선사한 것이다.

<왜 혁신인가>
염 총장에게 지금 우리사회의 ‘유난한 걱정’은 불만이다. 특히 청년들을 향해 취업난을 얘기하고 ‘힘들지’라며 불쌍히 여기는 기성세대의 시각이 불편하다. 기성세대가 살아온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으로 청년들이 살아갈 21세기의 미래사회를 쳐다보는 우를 범하는 것뿐 아니라 청년들이 더 이상 시도하지 않도록 사회적 올가미로 묶어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염 총장은 대학교육부터 바꿔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21세기가 10년 정도 지나고 나서 인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 20세기 대량생산 체제가 21세기에도 유효할 것인가 하는 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자꾸만 대학졸업자들의 실업을 얘기하는데, 이 문제를 20세기 식으로 풀려 하니까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21세기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19세기에서 20세기,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특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20세기로 넘어올 때 등잔불이 전깃불로,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면서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혁명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산업화를 통해 급성장했다. 국민 1인당 평균소득이 1960년대 80달러에서 이제는 2만8000달러로 350배 늘었다. 대학진학률도 1960년 불과 6%에서 이제는 80% 가까이 된다.

문제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현재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학점 잘 따면 대기업이란 이름의 유람선을 타고 정년 때까지 월급 올라가며 안락하게 살 것이란 생각은 60~70년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시각이다. 21세기는 다른 시대다. 노동력의 개념 자체가 다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더 이상 대기업 취직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평균 근속년수가 12년, 500대 기업 평균 근속년수는 10.32년 가량이다. 고작 10년 대기업 다니려고 유치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그 고생을 하는가. 수명 역시 늘었다. 60~70년대엔 환갑잔치했지만 이제는 여성 84세, 남성 77세 가량까지 늘었다. 대기업 간다고 30년 근속을 보장받지 못하며, 30년 가량 수명이 늘어난 상황에서 50~60년을 우리는 새롭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10년쯤 전에 유명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을 만나 얘기하던 중 ‘앞으로 30년 안에 현재 전 세계에서 모든 생산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력은 현재의 10%만 있으면 된다’고 들었다. 나머지 90%는 실업자 되나 했더니 ‘자동화에 의해 모든 게 가능해진다’며 ‘21세기는 오히려 중소기업 중심, 서비스업 중심이 되어가고 품종은 다양하게 맞춤형 소량생산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생산현장은 이미 이런 흐름을 현실화하고 있다.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시안에 7조5000억원 가량을 들여 공장을 만들었지만, 중국정부가 기대했던 고용효과는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2000명 근무하는 공장이다. 이제 대기업에선 고용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지식근로자가 필요하지, 20세기처럼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는 필요 없다. 열심히 배워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처럼 나사만 잘 조립하는 사람은 이제 필요 없다. 20세기가 스페셜리스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프로페셔널의 시대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취임하면서 학생들에게 ‘개척하는 지성(Pioneering Intellectuals)’이 되라 했다. 지성은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전혀 길이 없는 걸 자기가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대기업에서도 대졸취업이란 건 고용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이라 한다. 경력자를 채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어서 고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대졸자를 채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확 바뀌었는데 정부마저도 아직도 고용만을 얘기한다. 고용 늘리는 데만 혈안이 되면 사회가 경직화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쏠림현상이 너무 강하다. 21세기를 얘기할 때도 아이들한테 창업하라 하면서 겁을 준다. 아이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창업을 하는가.

창업이 아니라 창직이 답이다. 돈에 얽매이지 말고 삶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풍요로워진다. 고작 1.8%밖에 안 뽑히는 9급공무원 되려고 3~4년씩 젊음을 낭비하는 이 사회는 심각한 사회다. 작년에 비해 올해 취업률이 높은데, 언론은 아직도 실업만 강조한다. 대학진학률이 6%였던 1960년대에 엘리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서독 광부로 갔다.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갔다. 대학졸업자들이 개척해서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열매만 따겠다고 입 벌리고’ 있는 걸 어른들이 ‘아유 안 됐다’고 측은해 한다. 이게 바람직한 사회인가. 고대의대 가면 평생 탄탄대로라는 부모 말만 믿고 들어온 의대생이 기생충 1000개 이름 외우는 데 젊음을 바치고 안 되면 대학이 해결하라 기대는 게 맞는 얘기인가. 국제기구 가서 일하고 싶다는 청년이 타임 뉴스위크 읽지도 않고, 코소보사태 시리아침공에 관심 없다면 말이 되는가.

‘No Pain, No Gain’이라고, 자신이 도전하게 해야 한다. 나더러 ‘총장님 성공했으니까 그런 말 하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법대 다닐 때 친구들은 모두 고시했다. 나 혼자 2학년 때부터 공부하겠다 해서 ‘미쳤나’ 소리도 들었다. 공부해서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나 좋아서 공부했더니 여기까지 왔다. 친구들은 모두 은퇴해 등산 다닌다. 수명이 늘었는데 30년간 등산만 다닐 수 있나? 청년들이 스스로 미래가 어떨지 책 보고 공부하고,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교수님들도 교수법을 상당히 바꾸셔야 하겠지만, 학생들도 이제는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그저 외우기만 하고 선생님들 숨소리 농담까지 노트필기하는 교육은 이제는 아니다.

지식은 두 가지다. 형식지와 암묵지다. 형식지는 객관화되어 있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다. 20세기가 필요로 하는 지식으로 당시엔 많이 아는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21세기는 다르다. 모두가 손 안에 컴퓨터를 갖고 다닌다. 찾아보면 5초 10초 만에도 엄청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전 매우 인기 높은 TV프로그램이던 ‘장학퀴즈’는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10초면 찾아볼 수 있는 지식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부저를 빨리 누르고 빨리 답하는 걸 능력이라 할 시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암묵지가 중요하다. 내재화되어 있는 지식이다. 영화배우 안성기가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 건 그 사람의 내재화된 지식 덕이지 책에서 가르쳐준 게 아니다. 형식적으로 되어 있는 지식이 아니라 내재화된 지식이 바로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지식인 것이다.

내재화된 지식에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20세기 방식으로 보자면, 아무런 도전정신이 없어도 좋은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대기업 갔다. 21세기는 다르다. 얼마 전 대기업 관계자가 그런 얘길 하더라. 소위 일류대학 출신은 안 뽑겠다고. 왜 그러냐 했더니 이제 우리나라 기업도 초일류이기 때문에 도전적인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데, 도전정신 없는 사람 뽑아 놓고 미션을 주면 정답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시도도 안 하는 게 일류대학 출신이란 얘기였다.

유람선은 이제 오지 않는다. 정답을 맞추는 문제는 컴퓨터 로봇이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이제는 각자만의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항해해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21세기 일을 20세기 식으로 풀려 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20세기의 패러다임과 문제의식을 갖고는 21세기에 원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마지막 교육단계인 대학교육이 중요하다.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으로 (고대혁신을) 출발했다.”

<고려대의 혁신>
그래서 염 총장이 고대에 도입한 게 여럿이다. 3無정책 수립과 성적장학금 폐지가 대표적이다.

“고대 정도면 사회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사교육이다.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하는 사회적 문제가 있다. 모든 부모가 자녀의 대입을 위해 인생을 살고, 가족이 존재하는 것 같은 모순을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이 키워지는 것도 모든 게 점수화되어 있는 걸 고대가 어떻게든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서 사교육이 기업화되어서 엄청난 압력으로 사람들을 ‘마술피리’로 현혹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고대와 연대 같은 ‘SKY’ 입시 때문에 그렇다 한다면 사실이 아닌 것을 받고 비난 받을 일이 없다고 봤다. 우리부터 바꾸자고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많은 학생들이 ‘점수의 노예’가 되어있다. 성적관리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런 건 20세기엔 맞을지 몰라도 21세기엔 전혀 맞지 않는 모델이다. 21세기형으로 바꾸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교수님들도 많이 계셔서 그런 철학을 가지고서 ‘고대라는 이름의 큰 항공모함’의 방향을 선회했다. 방향을 틀어주는 정도의 역할이라 해도 좋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게 우리나라교육엔 스탠다드로 되어 있는 게 너무 많다. 출석의 경우, 외국대학에서 출석을 부르는 일은 없다.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 이메일을 보내서 왜 출석 부르면서 5분 10분을 버리느냐 하더라. 나는 교수로서 한 번도 출석을 부른 적이 없다. 한 학기 두세 번 정도 학생들 얼굴과 이름을 매칭해보려 부르는 정도다. 내 자존심 때문이다. 내 강의가 좋아서 들어와야지 내 강의 안 들어오면 점수를 깎겠다는 것 때문에 강의실에 오게 하겠다 하는 건 내 교육철학으로는 안 맞는다. 우리가 처음에 3無정책에서 출석 안 불러도 되고 상대평가 안 해도 되고 시험감독 안 해도 된다고 한 것도 제대로 된 교육으로 가자는 것이다.

성적장학금도 글로벌 스탠다드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좀 나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 학점 관리해서 용돈 받는 메커니즘이 말이 되는가? 장학금이라는 건 필요에 의해 주는 것이다. 고대는 기초생활수급자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전액장학금에 근로장학을 통해 월40만원을 준다. 근로장학은 최저시급 1만원으로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일하는 수준으로 생활비는 된다. 고대학생들이 1년에 1000명 정도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비행기값 생활비의 부담으로 기회가 없어서 하위 3분위 대상으로 희망자를 받아 작년에 19명 선발해 한 사람당 최고 1700만원까지 비행기값과 체류비를 지원해줬다. 고대는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필요로 하면 도와주는 곳이지, 점수 매기고 용돈 주는 데가 아니다. 성적 잘 나온 학생들에겐 성적장학금을 주는 대신 프로그램장학금으로 돌렸다. 중국어 전공이 아닌 학생에 8주 동안 하루 여섯 시간씩 중국어를 배우게 하는 ‘차이나 글로벌 리더십(China Global Leadership)’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해 작년에 코스타리카에 가서 스페인어, 올해 멕시코까지 확장하고 일본어까지 한다. 문과 학생들에겐 겨울방학에 소프트웨어 집중교육을 시킨다. 교수님들 중에서도 초반엔 공부 잘하겠다는 학생들에 동기부여를 장학금으로 해왔는데 그걸 없앴다고 반발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들 이해하고 계신다. 돈으로 보상하는 건 필요한 데 하면 되는 것이다.”

염 총장은 교육의 개념도 다시 생각해보자 말한다. “핀란드가 교육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PISA학업성취도에서 우리나라와 핀란드는 항상 1등하는 나라지만, 교육철학은 완전히 다르다. 핀란드는 중3 때까지 동일한 시험문제로 아이들이 시험 보게 하는 걸 법으로 금지해뒀다. 아이들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점수를 그렇다고 안 매기고 마음대로 놀게 하는 게 아니다. 한 반에 20명 정도로 우리나라도 초중고생 숫자가 줄어들어 점점 비슷한 상황인데, 학생마다 ‘네가 올해 이 과목은 어디까지 할 수 있니’ 식으로 선생님하고 약속하고, 모두 성취하면 A 그렇지 않으면 B 식으로 점수를 매긴다. 이게 맞는 방법이다. 우리사회는 모든 아이들을 한 가지 잣대로 세우니, 모두들 학원 가서 선행학습하고 인생을 ‘턱걸이’라도 해서 살려 한다. 이런 식의 교육철학은 최소한 대학에 와서는 무너져야 한다.”

염 총장 교육철학에 맞는 환경개선도 한창이다. 지난해 파이빌 준공에 이어 올해 ‘SK미래관’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노동’으로 생각한다. 교육은 힘든 것이라고. 하지만 공부라 하는 건 사실 ‘호기심’이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 하면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무조건 외우라 해서 힘든 것이지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재미가 될 수 있다. 교육의 영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의 본뜻은 이듀스(educe)에서 나왔다. ‘끌어낸다’는 뜻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얼마나 많이 끌어낼 수 있는가가 교육이다.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끌어내는 게 교육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육환경으로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작년에 ‘파이빌’을 준공했다. 상징적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가지고 지었다. 창업하라는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공간이다. 20세기 대학모델은 교수가 더 많이 알고 가르치는, 지식의 전수였다. 21세기는 교수와 학생이 같이 창조하는 것이다. 지금 공사하는 SK미래관은 8500평 정도 공간에 강의실이 단 하나도 없다. 작년 고대 111주년을 맞이해 토론실 111개와 개인집중연구실 111개를 들인다. ‘거꾸로 교실’ 맥락으로, 교수님들 강의를 미리 듣고 난 후 토론실에서 토론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연구실에서 정리하고 연구한 뒤 다시 토론실에서 토론하는 식으로 교육방법을 개편하려 한다. 구글과 MS가 회사를 ‘캠퍼스’라 부르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상상하고 토론하고 즐기며 일하듯, 고대가 ‘지식의 놀이동산’이 됐으면 한다. 이런 식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공부만 잘하고 정답만 잘 맞추는 사람만 키우게 된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아니다. 정답 잘 맞추는 건 컴퓨터가, AI가 잘한다.”

<왜 학종인가>
교육혁신을 일궈가고 있는 염 총장은 입시에서도 혁신을 일구고 있다. 올해 실시하는 2018학년 대입은 고대로선 ‘파격 학종의 해’다. 고대는 2018학년에 논술을 폐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정원의 84%까지 늘린다. 2019학년에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간다. 고대의 파격 학종확대는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개명한 데서도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총장발전계획서에서부터 입학처를 인재발굴처로 바꾸겠다고 했다. 행정절차를 통해 점수로 줄서 있는 학생들을 끊어서 선발하는 건 안 하겠다 했다. 인재는 발굴해야 한다.

물론 모순들은 많다. 선발체제의 고교유형 중 설립취지를 벗어나 운영되는, 예를 들어 외고출신이 법관되고 과고출신이 의사되는 본질적 문제들이다. 점수로 줄 세워 뽑다 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15~20년 전에 고대 입시출제위원장 논술출제위원장을 했다. 논술도 수능에서 잘 찍어 점수 받는 것보다 글을 통해 사고력을 측정해보겠다고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논술과외 논술학원이 성행하면서 글이 정형화되고 결국 더 비싼 논술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유리해졌다. 이건 정의롭지도 않고 대학이 할 일도 아니다. 고대는 ‘원석’을 찾아야겠다고 입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찾은 답이 학종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교교육이 정상화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중고교교사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중고교교실이 엎드려 자는 학생들로 채워지면 곤란하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와서도 엎드려 자는 걸 미덕으로 아는 학생도 있어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수업의 의미도 모르는 학생이 많다. 수업은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다.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학종을 대폭확대한다. 고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면밀히 파악하려 한다. 상장 등 스펙쌓기를 우려하거나 고교를 등급화하려 한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고대는 철저히 심층면접으로 검증해 진위를 확인할 것이다. 팔로우업 퀘스천(follow-up question)을 계속하면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15년 전쯤 들은 일본 게이오대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의 선발방법에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교장추천서를 받는 게 아니라 자기추천서를 쓴다. ‘나를 안 뽑으면 게이오대가 손해 보는 일’을 적어내는 식이다. 추천서를 보고 교수들이 만나고 싶은 학생들을 1년 내내, 정말 ‘수시’로 만난다. 주말에 교수 3명이 두 시간 동안 면접을 하고 뽑고 싶다면 미리 뽑는다.

우리나라는 수시기간이 있어 이렇게까진 할 수 없지만, 학생부의 3년치 기록을 입학사정관들이 심도 깊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보려 한다. 기존 17명이던 사정관을 올해 35명 목표로 두 배 늘린다. 현재 30명까지 모셨다. 트랙별 개발과정에서 일부 바뀔 수는 있지만 고대학종의 기본은 정원의 3배수 가량을 서류심사로 선발한 후 일부는 학생들끼리 집단토론을 시키고, 나머지는 일대일로 최소 15분 동안 사정관 한 명과 교수 두 명이 심층면접을 하는 것으로 한다. 사정관은 질문하고 교수들은 객관화해 관찰하고 평가한다. 문제를 줘서 학생이 답을 하면, 정말 알고 있는지 후속질문을 계속 한다. 학생부에 있는 내용이 진짜인지 검증하기 위해 계속 질문한다.

심지어 교육부가 고교차별한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고교가 인성교육이나 봉사활동의 형식을 버리고 진실되게 한다 했을 때 점수를 더 주고 싶다. 고교추천을 받아 왔는데 다른 대학에 중복합격한 후 이탈해버린다면 그 학생의 출신고교 추천서는 다음 해에는 제한하는 것까지도 하고 싶다. 정말 고대가 좋아서 고대에서 제대로 배우겠다는 학생을 뽑고 싶어서다. 올해 입시광고도 바꾸려 한다. 고대는 ‘배치표’ 때문에 손해가 크다. 고대는 최근에 500대 기업 CEO를 서울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배출했고, 세계적 대학평가인 QS에서도 전 세계 4300개 대학 중 톱100 안에 든 국내 유일한 종합사립대이다. 그리고 21세기형 교육을 위해 가장 많은 개혁을 하고 있는 대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수준으로 학원이 만든 ‘배치표’에 맞춰 학생들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배치표를 찢어버려라’가 슬로건이다.

고대는 미래를 보고 왔으면 한다. 고대는 ‘가성비’가 높다. 이미 종단연구를 통해 특목고 성적 좋은 학생보다 일반고 추천 받은 학생의 성적이 고대에서 수업을 받을 동안 계속 향상되는 걸 봤다. 역사적으로도 고대에 들어온 학생들이 배치표 커트라인은 낮았을지 모르지만, 대기업 CEO, 정부관료, 언론 등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고대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입결이라는 인풋 갖고 얘기할 게 아니다. 우리는 ‘스루풋’이 좋아 ‘아웃풋’ 갖고 얘기한다. 고대는 자신 있다.”

염재호 총장이 고대라는 항공모함을 과감히 튼 만큼 고대가 21세기 우리나라 미래를 위한 해답을 선사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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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기자  inca@verit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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