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우리가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교육적 유산 중에는 대단한 것들이 참 많다. 물론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시도 또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과거의 제도나 정책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순식간에 용도 폐기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 ‘학생부종합전형’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찬성이든 반대든 각자 입장에서 보면 충분한 논리와 정당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문득 알렉산더 콜더라는 조각가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만들다 만 작품들을 치우지 않고 있으면 거기서 뭔가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어요. 나중에는 그게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 된다는 말이죠.” 논의를 확장시켜보자. 단, ‘고교’라는 하나의 프레임을 통해 교육을 바라보자. 현재 우리가 당면한 교육 문제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대입 전형을 보다 더 단순화해야 할까. 정시 선발 인원을 줄여야 하나. 학종 전형은 깜깜이 평가이며 금수저를 위한 제도인가. 특목고와 자사고를 반드시 폐지해야 하는가. 수능은 절대평가로 가야 하나. 성취평가제를 전면 도입해야 하는가? 2015 교육과정이 적용되었을 때 교원 수급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많은 의문과 논란들은 다음의 세 가지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교육은 첫째,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둘째,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해 내는 데 적합한 것일까? 셋째, 학생들은 학업 및 평가에 대해 만족하고, 학교생활에서 행복을 느낄까?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가치마저 부의 세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100년 전과 현재의 교육방식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데 경악하기도 한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는데 반해, 우리 교육은 과거의 시공간에 갇힌 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작 우리가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교육을 통해 학업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교육 또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인해, 내지는 내가 속한 집단에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사안들을 하나씩 꺼내보고자 한다.

우선 고교를 의무 교육 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중학교에서 고교로 진학하는 학생비율이 99%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고교는 의무 교육에 가깝게 운영되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교 의무 교육에 따른 재정 부담이 정부의 예산 운용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선행 연구 결과가 있고, OECD 국가들의 평균 의무 교육 기간도 평균 12년이다.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 보편적 복지를 확립한다는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학급당 인원수를 20명 이하로 줄일 필요가 있다. 과거의 강독식 교수-학습 방법만으로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학급에 35명에 달하는 학생을 대상으로는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 또한 버겁다. 즉 학급당 인원수 감축은 교사들에게 각성을 요구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교사들이 창의적인 교수-학습 방법으로 수업하지 않는다고, 또 우리 아이의 학생부에 좀 더 신경 써 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먼저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고 학생 상담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선행 과제들을 바탕으로, 모든 고교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단위학교의 형편과 교육철학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다면, 학교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을 통해 매우 창의적이고 독특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과 함께 일반고에 필수적으로 부여해야 할 또 다른 권한은 바로 학생 선발권(또는 중학교 학생들의 고등학교 선택권)이다. 현재는 특목고나 자사고가 학생 선발권을 독식하는 구조여서 일반고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가 어렵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일반고의 학생 수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생 선발권을 가진 특목고와 자사고는 전기 모집을 통해 입학생을 선점하는 점도 지나친 특권으로 보인다. 이는 특목고와 자사고의 설립 목적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

이미 정부는 일반고 역량 강화를 외치며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일반고에 교육과정 편성권과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것이라 본다. 개별 단위 학교의 형편에 맞게 독특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다면, 배움의 과정 자체가 즐거워질 것이다. 이는 곧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해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학생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고교를 찾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모든 고교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학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모든 학교의 모든 교사들은 보다 교육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학종 전형에서 학교 간, 교사 간 차이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학생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학교에는 더 이상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존립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또 교육과정 속에 단위 학교 나름의 철학 또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015 교육과정은 미래로 나아가는 하나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수능에서 한 문제를 더 맞은 학생이 덜 맞은 학생보다 학업 역량이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한다. 시험의 형태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납득 가능한 진실이다. 즉 수능은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수능이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수능은 공정하다. 정시만이 유일하게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그릇된 편견 때문일 것이다. 과연 수능 점수로 학생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수능의 과목별 난이도가 ‘국어-상, 수학-하’로 책정되었다면, 국어를 못하고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된다. 탐구영역의 선택과목에 따라 표준 점수 및 등급이 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도 학생의 미래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능 성적이 사교육 여부와 큰 영향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시가 강화되었을 때 지역균형성 계층이동성은 떨어지고 특정지역 특정계층에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능은 1994년부터 출제 노하우를 축적해 온 완성도 높은 시험이다. 충분히 검증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질 높은 수준의 문항으로 채워진 시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 사교육 유발, 한 가지 정답만 강요하는 인식의 강화, 틀리지 않기 연습, 창의성 및 문제해결력 약화 등의 문제점을 만들어낸 것 또한 사실이다. 수능이 현행 체제로 유지되는 이상 학생들이 학업을 즐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와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성취평가제 전면 도입 여부이다. 현재는 학생부에 ‘A, B, C, …’와 같은 성취도와 함께 상대평가에 기반한 석차등급을 병기한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는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학생부에서 석차등급 표기를 없애는 것이 상식상, 맥락상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성취평가 도입을 잠정적으로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고 싶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는 마당에 내신마저 절대평가로 바뀐다면 특목고, 자사고로의 쏠림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반고 학생들이 학종 전형에서 선전하고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내신 등급상의 유리함 때문이다. 만약 갑작스럽게 석차등급 표기를 없애게 되면 특목고 및 자사고와 일반고 간 서열화를 없애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학 입장에서도 학생을 선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 특목고와 자사고 문제, 고입선발제도의 문제가 해결되고, 고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의 자율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성취평가제의 도입은 일시적으로 유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학자 지앤 뱀버거는 “오늘날의 교육은 이론을 가르치면서도 이를 실제세계에 적용하는 방법은 가르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상상력 결핍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교육이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 사고 능력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세 가지 제안을 앞에서 정리했지만 제안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숱한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때 한 번쯤은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우리 학교’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이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닌지.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