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신뢰도 저하 vs 지나친 경쟁 완화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고교 성취평가제 도입에 대한 고교 교사들의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이하 전진협)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이하 진진상)가 주관한 ‘현장 진로/진학 교사 대상 대입정책’ 심포지엄에서 17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조사는 전국 진로/진학 담당교사 774명을 대상으로 4월9일부터 12일까지 총 4일간 실시됐다. 전체 응답자의 재직 학교 유형은 78.6%(608명)가 일반고(자공고 포함), 10.7%(83명)가 기타, 4.5%(35명)가 특성화고였으며 특목고와 자율형(자립형) 사립고가 각각 3.1%(24명)를 차지했다. 

대입관련 주요 의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교 성취 평가제에 찬성한다’는 질문에는 찬성이 49%(384명), 반대가 49%(384명)으로 정확히 나뉘었다. 성취평가제는 성취수준을 A B C D E로 구분하는 것으로 성취 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판단해 절대평가하는 방식이다. 비교집단 내에서 상대적인 서열을 비교하는 석차 9등급제와는 대비되는 방식이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고교 성취평가제 도입에 대한 고교 교사들의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성취평가제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상대평가의 문제점인 지나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이 29.1%(1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창의인성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다’가 27.5%(190명)를 보이며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학생들의 성취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까지 22.9%(158명)으로 20%대의 답변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정원 진진상 사무총장은 “줄 세우기 식의 상대적 평가방법보다는 수막히는 무한 경쟁을 없애고 창의인성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결국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성취평가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 대의 답변에는 들지 못했지만 ‘수준별, 맞춤형 교육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답변 역시 18.2%(126명)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했다. ‘자사고, 특목고의 내신 불이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답변은 2.7%(19명)로 소수에 그쳤다. 

반면 반대하는 이유로는 ‘성적 부풀리기 발생으로 평가 신뢰도가 저하될 것이다’가 36.2%(246명)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수능 절대평가에 내신마저 절대평가를 하면 반작용으로 대학별고사가 증가할 것이다’가 21.6%(147명), ‘자사고, 특목고 출신 학생이 유리해져 자사고, 특목고 진학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가 19.3%(131명), ‘집단 내 객관적인 학생의 수준 파악이 어려워진다’가 15.9%(108명)로 뒤를 이었다. ‘성취동기가 줄어 성취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답변은 6%(41명)로 소수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정 사무총장은 “성취평가제가 고교 현장에서는 큰 문제는 없지만 현재의 대입제도에서 대입과 연계될 때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성취평가제 대입 도입 여부 올해 발표 예정>
성취평가제는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처음 도입하기로 한 제도다. 학년단위로 교과목별 석차를 매겨 9등급을 부여하는 평가제도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학생들 간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한다는 것이 주요 도입 배경이었다. 

정 사무총장은 성취평가제의 도입배경에 대해 “교육과정이 창의/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방향으로 개편(2009 교육과정 총론)됨에 따라 이에 적합한 평가 방식의 변화가 요구됐다. 고교 교육과정을 선택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보통교과를 기본-일반-심화 과목으로 정비해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지만, 9등급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학생들이 석차 등급 산출에 불리한 소인수 교과목 수강을 기피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어렵고, 평가결과가 개별 학생의 맞춤형 교수/학습 방법에 활용되기 어려운 상대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대두됐다. 상대평가 제도는 학년 내 상대적 서열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므로 학생들에게 석차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나눔과 배려의 협동학습을 저해하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현시키기에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준다”고 교육부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교육부가 첫 도입을 계획한 당시에는 2012학년, 2013학년에 시범운영을 거쳐 2014학년 1학기부터 도입하는 것으로 추진됐다. 성취평가 결과의 대입반영 여부는 2019학년까지 유예하고 2020학년 이후 성취평가 결과의 대입반영은 2016년 하반기에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2015년 10월, 성취평가제의 대입 전형 연계를 올해로 또 한 번 유예했다. 

성취평가제의 도입 취지는 분명하나 대입전형과의 연계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사무총장은 “성취평가제 도입 유예의 주된 이유로 ‘일반고 위기’ 속에서 성취평가제가 특목고/자사고에 유리하다는 여론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 사무총장은 “귀족학교로 불리는 자사고를 대폭 축소하거나 전면 폐지하고 일반고를 정상화한 후에 성취평가제를 대입 전형에 도입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결론지었다.

<내신 절대평가, 대입 전형에서 활용할 수 있나>
교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 성취평가제 도입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성적 부풀리기 발생으로 평가 신뢰도 저하’와 ‘대학별 고사 증가’는 서로 연계된 문제다. 고교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수록 대학별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 사무총장은 “수능이 절대평가화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할 때 대학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별고사를 강화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면서 “오히려 사교육 유발요인이 커져서 교육제도를 선진적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거꾸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 봤다. 따라서 대학에서 내신 9등급제 평가에서 고교 성취재 평가로 전환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성취평가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사교육 유발 요인을 없애기 위해 ‘고교교육 정상화 사업’으로 대학별고사를 규제하는 상황에서 각 대학이 무조건적으로 대학별고사를 강화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문제는 대학별고사의 난이도를 쉽게 높일 수 없는 상황에서 수능 절대평가화에 이어 내신까지 절대평가화될 경우 학생 선발에 활용할 지표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대입에서 점점 비중이 높아져 최대 비율을 차지하는 학종의 경우 내신은 수치로 우열을 가리는 정량평가가 아닌, 학생의 성취도와 발전 정도를 파악하는 정성평가의 영역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학종에서 일정한 ‘내신 커트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각 대학 입학사정관이 입을 모아 말하는 점이다. 수업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활용했는지 확인하는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성평가하는 영역을 절대평가화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냐고 하겠지만 지표가 단순화되고 성적 부풀리기가 가능해질 경우 발전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줄어들어 평가 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교와 대학 간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 대학은 학종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고교 현장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내신성적이 수치화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고교와 대학간의 신뢰가 형성돼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꾼다 하더라도 교내 대회 수상실적을 수치화해 반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종이 좀 더 자리를 잡아 ‘학생을 일렬로 줄 세워 뽑는 것이 아니다’라는 신뢰가 고교 현장 전반에 자리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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