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 시행 4년차'유명무실' ..업계 '광고 안하면 손해'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학원, 교습소의 선행학습 유발 광고를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차에 들어섰으나 선행학습 광고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사교육업체의 선행학습 광고를 금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제재나 처벌수단이 없는 때문이다. 학원들은 선행학습 광고로 적발되더라도 광고를 내리기만 하면 별다른 처벌이 없는 탓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미 광고로 학생들을 끌어 모은 뒤여서 선행학습 광고를 안 하는 학원만 바보가 되는 상황이라는 평이다.  

교육부는 최근 서울 학원밀집지역에서 선행학습을 내세운 광고를 실시한 학원 88곳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국 3만6434곳의 입시/보습학원을 대상으로 선행학습 유발 광고로 적발된 건수가 가장 많았던 강남구 양천구 노원구 등을 대상으로 재점검한 결과다. 교육부는 적발 결과를 해당 교육청에 통보해 해당 광고를 삭제하도록 행정지도했다. 학원이 불응할 경우 특별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특별실태조사는 수강료, 교습과정, 시설기준 등 학원운영 전반에 관한 지도 점검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광고에 대한 처벌 없이 광고 삭제 지시에 불응할 경우에만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직접적인 처벌규정이 없는 탓이다. 특별실태조사 역시 선행학습 자체나 선행학습 광고에 대한 처벌이 아닌 학원운영 전반에 대한 조사라는 점도 선행학습 금지법의 유명무실함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선행학습을 내세운 광고를 한 학원에 대한 점검조사는 선행학습 금지법 시행 이후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매년 비슷한 양상이다. 법안은 공교육의 선행학습에 대해선 엄격한 규제와 제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교육에 대해서는 광고/선전에 대한 금지만 있을 뿐 광고 이외 규제나 규제 위반 시 특별한 행정제재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학원, 교습소의 선행학습 유발 광고를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차에 들어섰으나 선행학습 광고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교육부 제공

<공교육만 규제? ‘반쪽짜리’ 선행학습 금지법>
교육부와 교육청의 선행학습 광고 규제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에 근거한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2014년 2월18일 여야 합의로 표결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은 사교육의 비정상적 횡행으로 공교육이 무너지고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 경제가 악화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발의됐으나 제정 당시에도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실효성 지적의 핵심적인 내용은 원안에서 사교육규제에 대한 내용이 삭제됐다는 점이다.

법안은 국가와 시/도에서 정한 교육과정보다 앞선 내용의 학습을 선행학습으로 규정한다. 초중고교에서 선행학습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초중고 및 대학교가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입학전형을 운영하는 경우 강력한 행정제재를 취하도록 했다. 행정제재를 내릴 수 있도록 심사 의결하는 기관으로 설치된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워회'는 초중고교가 교육과정을 위반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 시정/변경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교육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에 따른 징계 회부 ▲재정지원 중단 또는 삭감 ▲학생정원 감축 ▲학급 또는 학과의 감축/폐지 ▲학생 모집 정지 조치 등을 내릴 수 있다.

당초 선행학습 금지법은 2013년 4월16일 이상민(민주통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서 시작됐다. 이어 30일 강은희(새누리) 의원이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다음해 2월18일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두 법안을 합쳐 보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두 법안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이 의원이 발의한 내용은 대거 빠진 것이다. 

이 의원의 법안 가운데 삭제된 내용은 사교육 규제에 관한 내용이다. 법안은 사교육의 선행학습과 관련한 여러 규정사항을 담고 있었다. ▲미취학아동과 초등학생이 국가 교육과정에 편성돼 있지 않은 과목을 학습하는 경우 일정 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 ▲선행학습을 막기 위해 학원의 운영자나 교습강사에게 수강생의 학년을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 등을 두고 있었다. 규정위반에 대한 ▲학파라치제 도입 ▲학원등록 말소 ▲개인과외교습자 교습 중지 명령 ▲교습소 폐지 ▲1년 이내의 교습 정지 명령 등의 실효성 확보 수단도 포함돼 있었다. 

두 법안이 합쳐진 이후 살아남은 내용은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마저도 선언적 내용이어서 위반에 대한 제재방안이나 처벌규정은 없다. 이외 법안 내용은 모두 공교육 규제에 대한 내용으로 공교육 규제만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선 정부와 국회가 학원 업계 반발에 굴복해 반쪽짜리 법을 만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사교육이 제재대상에서 빗겨갈 수 있었던 것은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소지가 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정부는 법 제정 당시 학원 운영의 자율권과 학원 영업, 학부모의 선택권 등 여러 기본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사교육단체의 요구를 수용했다.

사교육에 대한 미미한 제재로 오히려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교육에서 선행학습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선행학습 수요를 채우지 못한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교육계의 한 전문가는 “사교육에서 팽창해왔던 선행학습 수요를 일정 수준 억제해오던 학교차원에서의 방과후 수업을 통한 선행교육이 금지되면서 사교육이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 학생들을 학교차원에서 선행학습을 시켜 교육특구 학생들과의 경쟁력 차이를 해소하는 수단 조차 막는 효과도 발생해 교육격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영재학교, 과고는 적용대상 제외>
선행학습 금지법은 다른 어떤 법률보다 우선 적용된다는 특칙을 두고 있으나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른 영재교육과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대상자는 적용을 배제한다. 통상의 학교가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것과 달리 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 운영되는 학교 유형이다.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영재학교는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이 자유롭다. 과학전문과정은 물론 심화교과연구과정까지 편성이 가능한 셈이다. 문제는 영재학교 입학전형 역시 선행학습 금지법의 적용에서 배제되면서 영재학습 입시를 위한 수학 과학 선행학습이 성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타 외고/국제고/자사고 등이 내신성적과 면접의 2단계로 진행하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영재학교 입시는 통상 3단계를 거친다. 특히 사교육이 집중되는 전형은 2단계 영재성검사와 3단계 캠프면접이다. 2단계 영재성검사는 지필고사 형태로 진행된다. 영재학교 측은 중학교 교육과정 내 출제를 못박고 있긴 하지만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실질적으로 중학교 학교수업만으로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영재성 검사는 매년 출제내용과 방식이 달라져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부모들이 많은 현실이다. 

교육계에서도 영재교육진흥법을 두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2002년 만들어진 영재교육진흥법을 이제 손볼때가 됐다고 본다. 2003년 3월 영재학교의 효시 한국영재가 문을 연 이래 전국에 8개의 영재학교가 존재한다. 문제는 현재 고입에서 유일하게 사교육 영향권 내 있는 입시가 영재학교 과고 입시라는 점이다. 선발권이 있는 고교유형 대부분이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했고 입학전형 영향평가를 실시하면서 사교육이 끼어들 소지가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실제 외고 국제고는 수능영어 절대평가와 함께 고입에서 사교육의 입지를 대폭 축소했다. 유일하게 사교육을 받아야하는 고입은 영재학교와 과고가 남은 상황”이라며 “사교육을 통해 영재학교 과고를 진학하는 현실은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영재들이 다시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의대행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로 연결된다고 본다. 관할문제도 심각하다. 크게 다르지 않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과고의 관할은 교육청, 영재학교의 관할은 미래부에 있다. 교육부가 관할하는 대부분 선발 고교유형들이 자기주도학습전형과 입학전형 영향평가 실시로 인해 정상화하고 있는 반면 영재학교만 섬처럼 운영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조기진급자를 배제하는 조항은 과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조항이 될 공산이 크다. 과고의 경우 80%가 2학년을 마치고 조기졸업을 하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발표된 ‘과학고 발전방안’에 따라 2014학년 입학자부터 조기졸업 학생의 비율이 20%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외고/국제고/자사고/일반고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적용 대상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지적되는 부분이다. 과고 내에서의 형평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조기졸업이 가능한 20%는 선행학습 금지법의 적용에서 배제되지만 나머지 80%는 선행학습 금지법의 대상이 된다. 조기졸업 대상자에 들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사교육이 성행할 가능성이 지적되는 상황이다. 

<거꾸로 가는 법안?.. 선행학습 금지법 개정>
2016년 5월 전국 중고등학교의 방과후학교의 선행학습이 다시 허용되는 내용의 선행학습 금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4년 공교육의 선행학습을 전면 규제하면서 선행학습에 대한 수요가 사교육으로 옮겨가고 소득격차에 따른 사교육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애초 방과후학교는 물론 정규 수업시간에도 선행학습을 모두 금지했으나 일부 규제를 완화해 모든 고교에서 방학 중에 한해 방과후학교의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농산어촌 지역과 대통령령으로 정한 도시 저소득층 밀집지역 중고교는 학기 중에도 방과후학교를 통해 선행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도시지역 학교의 경우, 교육급여를 받는 학생 또는 한부모/탈북자/다문화 자녀 등 사회적배려자가 재학생의 10% 이상 또는 70명 이상을 차지하는 중고교는 학기중에도 방과후학교를 통한 선행교육이 가능해졌다. 

2014년 9월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현장에서는 공교육 선행학습 규제로 인한 오히려 사교육이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대입과 특목고 진학 등을 위한 현실적인 선행학습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의 무조건적 규제는 오히려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2015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선행교육예방연구센터 조사 결과에 의하면 중학생의 80.7%, 고등학생의 65.2%가 대체 학습방법으로 사교육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서도 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1인당 사교육비는 충남의 3.5배를 기록하면서 지역별 격차도 심화됐다. 사교육 양극화 현상도 두드러졌다. 고가의 사교육비와 저가의 사교육비 지출분포는 늘어난 반면, 중간층의 사교육비 지출 분포는 줄어들었다. 올해 3월 발표한 '2016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도 초중고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월37만8천원(사교육 받지 않는 학생 제외한 통계)으로 4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교육부는 중고교에서 방학 중 사교육으로 이탈했던 선행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를 공교육이 흡수할 것을 개정 취지로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한 농산어촌 및 도시 저소득층 밀집 중고교 학생들의 선행학습 수요를 공교육으로 충족할 수 있어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며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방과후학교에서 선행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는 교육부의 개정안을 두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선행교육을 막아야 할 교육부가 앞장서서 선행교육 허용에 나섰다"며 "모처럼 나온 개혁법안(공교육정상화법)의 취지를 교육부가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사교육걱정은 법적용 범위가 적절한지에 대한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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