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교두보 겨냥한 도전과 변혁 돌입 신성철 KAIST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첫 동문출신의 준비된 총장’, 신성철(64) KAIST 신임총장에 거는 교육계 과학계는 물론 KAIST 안팎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KAIST 총장에 네 차례나 도전하면서 시행착오와 다짐의 세월을 거쳐 다듬은 13년 간의 경영철학이 드디어 결실을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남표 전 총장 당시 혁신 이미지를 강조하고, 강성모 전 총장 당시 내부결속을 다져온 KAIST는 신성철 총장 시대를 맞아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라는 외부환경, 세계 대학을 향한 본질적 경쟁력 확보라는 내부의 숙제. 산적한 안팎의 도전도 만만치 않지만 그 동안 절치부심하며 공력을 쌓아온 신 총장에겐 넘어설 기회에 다름 아닌 듯하다. 신 총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비전은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선도대학’. 신 총장은 KAIST의 시대적 사명을 ‘선도성’이라고 강조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KAIST의 미래를 구체적인 발전방안과 함께 제시했다. 이미 우리 연구의 ‘추격형’ 성격을 ‘선도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교육과 연구 모델의 세부적인 실천방안부터 제시하며 강력한 도전의지를 선보였다. 연구자 겸 경영자로서 뼈가 굵은 신 총장이 보여준 현장형 추진력의 단초인 셈이다. DGIST 총장 시절 보여준 신 총장의 강한 인상은 선 굵은 비전을 제시하지만 비전 구현을 위한 현장의 ‘디테일’에서는 세심하고 집요했다. 첫 동문 총장으로 KAIST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현장형 총장’의 준비된 드라이브는 KAIST 전체를 뒤흔들 전망이다. 단순한 인사개편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가슴 뛰는 추진력을 발휘하도록 몰아가는 본격적인 KAIST의 변혁이 시작된 셈이다. 이미 가동된 신 총장의 드라이브가 KAIST의 변혁을 완성하고 나아가 탈바꿈한 KAIST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향한 대한민국의 교두보로 부상하는 미래가 그려지는 듯하다.

<산업화 태동기 이끌어온 KAIST.. 4차산업혁명 태동기 ‘선도해야’>
신성철 KAIST(한국과학기술원,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총장이 선보인 KAIST 청사진은 무게감이 상당하다. 그 동안 KAIST뿐 아니라 국내 교육계와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고민해온 화두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기 때문이다. 신 총장은 고등과학원 설립추진단장과 KAIST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내며 국내연구 발전의 방향키를 제시한 이력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제협력부장을 지내면서 국내연구의 세계화에도 깊은 고민을 거친 바 있다. 외국인 총장 재직시절 KAIST 부총장을 지내고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Daegu Gyeongbuk Institute of Science & Technology) 초대총장 및 2대총장으로 신설 과기원의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들며 쌓은 학교경영의 경륜도 대단하다. 여기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분과의장과 부의장을 지내며 개별 과기원의 고민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이끌어갈 교육계 과학계의 고민까지 오랜 기간 끌어안은 바 있다. 신 총장이 제시하는 비전이 비전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실천할 세부방안이 치밀하게 갖춰진 배경이다.

신 총장은 “KAIST는 시대적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1971년 국내 산업화의 태동기에 국가발전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고급과학기술 인재배출의 국가적 사명을 띠고 특별법인 한국과학기술원법 아래 출발한 KAIST는, “그간의 업적을 바탕으로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태동기를 선도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신 총장은 “KAIST는 선도성이 있을 때 존재가치가 있다.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특별법 안에 안주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강조한다. KAIST는 특별법을 적용받으며 교육부 소속 일반대학과 달리 자율성이 상당하다. 전국 대학별로 형평을 고려해야 할 교육부의 고민에서 벗어난 미래부 소속으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 연구과제를 만들어내는 데 탄력적이다. 별도의 체제를 부여한 만큼 관행에서 벗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가는 데 시스템을 구축, 교육계 과학계를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 신 총장의 생각이다. 결국, 신 총장이 만들어갈 KAIST의 미래는 국내 교육계와 과학계에 촉구하는 변화의 메시지인 셈이다.

<‘3전4기’로 다져온 교육혁신 방향과 실질>
신 총장은 바닥부터 뛰는 ‘현장형 총장’으로 유명하다. DGIST 초대총장 시절 신입생 유치를 위해 총장이 직접 전국 70여 고교를 방문한 일화는 고교현장의 전설이 됐다. 당시 DGIST 신축 중인 탓에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어 ‘현풍할매곰탕 옆집으로 오라’ 말했을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신 총장은 DGIST 학부생 모집을 위해 직접 발전모델을 고교현장에 제시하며 DGIST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한 실행단계를 몸소 실천한 바 있다.

신 총장의 KAIST 총장 취임은 KAIST 출범 이래 13년 만의 내부출신 총장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13년 간 KAIST는 외부인사가 진두지휘해왔다. 외부인사 영입은 나름 장점도 있었지만, 한국실정을 몰라 실질적 운영이 힘든데다 과한 추진력으로 내부 불협화음을 겪기도 했고 오히려 내부결속에 치중하면서 현상유지에 머문다는 비판도 있던 실정이었다. 반면 신 총장의 이력은 진정한 변화를 이끌 적임자로 충분하다. KAIST 3기로 석사과정을 밟고 1989년부터 현재까지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자리해온 신 총장은 내부실정에 밝고 연구자로서의 자질에 특유의 리더십까지 선보이면서 이미 내부적으로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에 의해 외부인사가 영입돼 온 KAIST가 올해 13년 만에 내부인사를 총장으로 선출하면서 특히 고무된 배경이다.

신 총장의 총장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였다. 세 번의 도전이 무산된 후 DGIST 총장으로 자리한 와중에도 KAIST에선 러브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남들이 ‘3전4기’라 하더라. 처음 총장 선거에 나온 건 2004년이었다. 당시 52세로 총장으로선 젊은 나이었다. 한창 연구를 하던 시점이었다. ‘창의적 연구사업’이라 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들에 국가가 연간 10억원 가량의 연구비를 투자하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다. 1단계 3년 간 평가 잘 받았고, 2단계도 3년 간 평가를 잘 받아서 3단계에 진입할 시점이었는데 KAIST 은사 뻘 되시는 교수님들께서 찾아오셨다. ‘연구만 할 때가 아니다. 학교 위상을 위해 젊은 사람이 나서줬으면 좋겠다’ 하셨는데, 처음엔 한창 연구할 때라 응하지 않고 주춤하고 있었더니 며칠 후 여러 분께서 한꺼번에 찾아오셔서 ‘결심을 하라’고 떠미시더라. ‘KAIST를 위해 기여할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계속 연구해서 노벨상을 타든지, 또 하나는 KAIST 총장이 되어서 리더십을 발휘하든지’가 요지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벨상 받기는 힘들 것 같아서(웃음) 총장 나서보자 했다.”

주변권유에 의한 총장도전은 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무산됐다. 신 총장은 내부 교수협의회 프로세스에 의해 1순위로 선출됐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정부방침이 노벨수상자를 모셔오자는 것이어서 무산됐다. 당시 총장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MIT 물리학 교수로 외국인이었다. 신 총장은 “다시 연구를 하겠다 생각했는데, 정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외국인 총장 외에 실질적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고민 끝에 부총장을 맡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한다. 보직을 맡으면서 연구를 같이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시 연구는 사장됐다. 러플린 총장을 2년간 부총장으로 보좌한 뒤 또 다시 총장선출에 교수협의회 추천 1순위로 도전했지만, 정부방침에 의해 외부인사가 들어오면서 무산됐고, 다음 총장선출에도 내부추천 1순위로 도전했지만 총장연임으로 정부방침이 나면서 또 무산됐다. 2004년 2006년 2010년의 세 차례 모두 교수협 1순위 추천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신 총장은 “돌이켜보면, 2004년에 총장을 했더라도 큰 기여는 못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혈기뿐이지 아무 경험도 없고 밖의 네트워크도 별로 없는 상태였다. 총장 4년 끝나면 사람들이 그렇게 박수는 안 쳤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네 번째 도전에 또 실패하는 것 아닌가 하고 개인적으론 주춤했지만 정년을 KAIST에서 맞고 싶은 개인적 소망에다 KAIST 총장으로서 일한다는 건 KAIST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에서 인생2기의 의미를 찾는다. 4차 산업혁명 태동기에 신산업 창출을 위한 융합교육을 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KAIST의 수장이 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보고 응한 것이다. 2004년 첫 도전 이후 13년 만에 KAIST 총장이 됐는데, 그 사이 6년 동안 DGIST 총장 등 여러 경험 쌓고 많은 분들을 알게 되어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13년 간 네 차례 도전한 KAIST 총장직. 네 차례 도전하면서 다듬어온 연구자로서 경영자로서의 고민이 경륜과 함께 녹아 들며 방향만 제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실질적 발전방안까지 세세히 실현될 전망이다. 신 총장이 ‘글로벌 가치창출 선도대학’으로 KAIST를 끌어가기 위한 혁신과제는 ‘교육혁신’ ‘연구혁신’ ‘기술사업화 혁신’ ‘국제화혁신’ ‘미래전략혁신’의 다섯 가지다.

신성철 KAIST 총장이 DGIST 총장 시절 보여준 강한 인상은 선 굵은 비전을 제시하지만 비전 구현을 위한 현장의 ‘디테일’에서는 섬세하고 집요했다. 첫 동문 총장으로 KAIST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현장형 총장’의 준비된 드라이브는 KAIST 전체를 뒤흔들 전망이다. 구성원 스스로 가슴 뛰는 추진력을 발휘하도록 몰아가는 KAIST의 본격적인 변혁이 시작된 셈이다. /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a.com

- 2018학년 입학생부터 무학과트랙 도입
신 총장이 내비친 ‘교육혁신’ 실현방안 중 특히 ‘무학과 트랙의 도입’이 돋보인다. 무학과 제도는 신 총장이 DGIST 교육과정 설계 당시부터 그려온 밑그림이고, 실제 DGIST에서 구현하며 미래를 이끌 이공계 인재양성 교육과정의 성공가능성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다. “KAIST에서 자연스럽게 도입되어 타 과기원은 물론 일반대학까지 선도할 교육과정”이라는 신 총장 설명이다.

“DGIST는 학부 전체가 무학과 단일학부이지만, KAIST는 세부전공이 있다. DGIST처럼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어 세부전공 트랙은 살리되 여기에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무학과 트랙을 도입하려 한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이 어떤 인재를 양성할 건지에 중요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기초과학 기초공학이 튼튼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발전이 급변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빨리 좇으려면 기초가 튼튼한 게 제일 중요하다. 세부기술은 기업이 가르치면 된다. 여기에 인문사회 소양이 필요하다. 이공계열은 좌뇌교육이다. 인문사회 교육을 통해 우뇌교육도 시켜 결과적으로 전뇌교육을 해야 창의력이 더욱 개발될 것이다. KAIST는 리더를 키운다는 입장에서 리더로서의 소양과 자질도 교육해야 한다. 대학의 새로운 변화인 기업가정신 교육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융합인재 양성 무학과 트랙’에서 실현하려 한다. 2018학년에 입학한 학생들부터 적용한다. 세부전공트랙으로 갈지 무학과트랙으로 갈지는 학생이 선택한다. KAIST는 전원이 무학과로 입학하고, 2학년 때 세부전공을 결정해왔는데 입학당시 무학과로 들어오니 무학과트랙의 도입도 자연스럽게 안착할 것으로 본다.”

무학과제도는 신 총장이 DGIST에서 성공가능성을 본 제도다. 신 총장은 “DGIST에서 본 성공가능성을 KAIST에선 나름대로의 차별화를 기하려 한다. 최대의 성공여부는 3~4학년 때 드러날 것이다. 융합전공이지만 너무 넓은 범위의 지식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각자의 분야를 결정해야 한다. 각 분야를 짧은 기간 동안 심화교육을 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교재가 아니라 자체제작 교재 운영에 성패가 달려 있다. 전자교재의 형태로까지 갈지는 좀더 논의해 결정해야 하지만 최소한 교재는 KAIST 스타일의 융합교육교재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신 총장이 KAIST에서 열 무학과 제도는 전에 없는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DGIST에서 성공사례를 보여주긴 했지만 KAIST의 위상이 받쳐주는 성공사례라면, 선도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 이후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4개 과기원 중 KAIST가 ‘맏형’ 격이다. 신 총장이 KAIST에서 실현할 교육실험이 과기원뿐 아니라 일반대학까지 임팩트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배경이다.

- ‘한국어로 영어강의 지원’
KAIST 학부교육 특징 중 하나가 영어강의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 국제화의 흐름에 함께한다는 것이 시행배경이다. 신 총장이 펼쳐갈 KAIST의 ‘국제화 혁신’ 가운데 한 축인 영어강의는 현실적 문제를 감안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 총장은 “학부과정에 전면적인 영어강의의 일방적 진행은 무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교육을 희생하면서 영어로 강의하는 건 보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강의를 하지만 처음엔 한국어로 그날 강의에 대해 전체적 개요를 얘기해준 후 영어로 강의하고, 마지막에 한국어로 요약해주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영어강의를 비디오로 촬영해 반복학습하게 해주는 방식도 있다”고 방법까지 마련했다.

다만 ‘한국형 국제화’를 위한 인식이 기본이다. KAIST가 선도할 국제화는 언어적 측면에서도 무조건 영어를 좇을 게 아니라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안한 ‘KAIST 혁신 다섯 가지’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국제화 혁신이다. 홍콩과기대의 경우 KAIST를 벤치마킹, KAIST보다 20년 늦게 출발했지만 랭킹에선 항상 KAIST보다 10위 정도 높은 배경엔 시작부터 공식언어를 영어로 둔 점이 자리한다. KAIST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나아가려면 영어구사력은 필수적이다. 다만 KAIST는 한국에 있고, 한국에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킬 의무와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한영 이중언어 캠퍼스’를 지향한다. KAIST 학생들과 구성원은 영어구사력을 좀더 키워가고, 외국인들에겐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좀더 제공하는 것이다. KAIST에서 공부하는 박사과정 외국학생들은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어로 작성하게 하고 싶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강조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진짜 국제화 혁신이다.”

- ‘수평’ ‘수직’ 모두 고려한 ‘연구혁신’
신 총장이 연구자로서의 덕목을 선보인 것은 ‘연구혁신’에 있다. 한 축은 ‘융복합 연구 매트릭스 시스템’의 구축이다.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통 세부전공보다는 전공간의 학제를 뛰어넘은 융합연구를 통해, 또 전공의 접경에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나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초학제간, 즉 학제를 뛰어넘는 융복합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두된 AI 인공지능 과제를 수행한다고 한다면 전자과뿐 아니라 컴퓨터사이언스과 뇌과학과 물리과가 합쳐져서 교수와 연구원 학생들이 이 프로젝트를 수행해내게 하는 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융복합 과제 10개를 제시할 예정이다. KAIST가 세계선도대학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적 명성의 플래그십(Flagship) 연구그룹이 10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 신 총장이 제시할 10개 주제만으로도 ‘융복합 연구 매트릭스 시스템’은 세계를 선도할 창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다.

연구혁신의 또 다른 축은 ‘협업연구실 제도’의 도입이다. 기존 연구실의 학문적 업적과 명성을 계승하기 위한 장치로, 평생 연구에 몰두해온 연구자로서의 고민이 녹아있다. “융복합 연구 매트릭스가 분야 간 수평적인 결합이라 본다면, ‘협업연구실 제도’는 수직적인 깊이로 들어간다. 기초학문은 역사가 쌓이면서 학문이 축적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현실로는 불가능하다. 30년 가까이 가꾼 연구실을 은퇴와 동시에 폐쇄하는 게 우리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선 학문의 세대를 넘어 지식이 축적될 수 없다. 일본이 지금까지 22개의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근간에는 학문의 업적을 축적할 수 있는 연구실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가 은퇴하면 제일 잘하는 교수가 연구를 이어가면서 학문이 3대 4대를 이어 쌓인다. 우리도 학문의 깊이가 들어가려면 이런 연구실 제도를 가꿀 필요가 있고, 나는 ‘협업연구실 제도’라 명명했다. 세부전공에서 분야가 약간씩 다르되 연령도 골고루 섞어 구성, 교수가 은퇴하면 그 다음 교수가 이어가는 식으로 운영하려 한다. 일본의 같은 제도에서 불거진 순혈주의 등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그 다음을 이어갈 교수는 은퇴 교수의 추천을 받되 채용권한은 교수가 아닌 학교와 학과가 갖고 평가하게끔 하려 한다. 은퇴교수의 연구를 이어간다는 건 나뿐 아니라 은퇴를 앞둔 연구자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사안이다.”

- KAIST 경영대학원과 기술출자기업
융복합 교육과 연구의 결과물인 기술은 사업화를 통해 의미를 갖게 한다는 게 신 총장 계획이다. 다만 연구자들이 물정 모르고 사업화에 뛰어들기보다는 전문경영인과 함께 현실적으로 사업화를 끌어가도록 제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신 총장은 서울에 자리한 KAIST 경영대학원의 인력 풀을 예로 들며, 추진하는 ‘기술사업화 혁신’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다고 현실적 차원의 포부를 풀어냈다.

“21세기 선진대학들은 새로운 지식창출의 진원지일 뿐 아니라 지식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R&DB(Research, Development, Business) 허브 역할을 하는 2차 대학개혁을 이루고 있다. 연구결과가 논문이나 특허 실적만으로 그치지 않고, 상용성 있는 결과들을 기술이전이나 벤처창업을 통해 기술사업화로 연결, 연구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기술사업화가 잘 일어나고 있는 대표적 대학은 바로 스탠포드대학이다. 스탠포드는 동문기업이 4만여 개이고 이들 기업의 연 매출이 2조7000억 달러로 우리나라 GDP의 2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의 투입연구비당 기술이전 수입은 0.92%로 미국의 27% 수준이고, 공공기관당 기술창업 건수는 미국의 16% 수준인 0.6건으로 기술사업화가 매우 저조하다. 우리나라 박사급 인력의 61%가 대학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대학의 R&DB 역할은 대학재정 확충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KAIST를 R&DB 구현의 롤 모델 대학으로 육성하려 한다. KAIST가 보유한 지식재산권의 활용 및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술출자기업’을 적극 추진하려 한다. 기술출자기업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술을 가치평가해 현물로 20% 이상 출자하고, 기업인이 현금을 출자해 경영을 맡는 산학협업의 이상적 창업모델이다. 특구 내 기술출자기업이 설립되면 관련법에 의거, 법인세 혜택 등 여러 가지 지원을 받게 돼 창업성공 확률이 교수직접창업에 비해 훨씬 높다. 이를 위해 서울에 있는 KAIST 경영대학원의 MBA과정 학생들과 함께 공동창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 세계 선도 대학을 향한 리더십 함양
신 총장이 계획한 ‘교육혁신’ ‘연구혁신’ ‘기술사업화 혁신’ ‘국제화혁신’은 기본적으로 세계선도 대학을 향한 리더십 함양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기술사업화 혁신을 위해선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신 총장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강조했다. “창업마인드를 어떻게 가질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매출을 일으키고 이윤을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윤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지를 생각하고 창업을 하라는 게 우리학생들에 던지는 도전적인 메시지다. 기업가정신 교육,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내가 대학에 진학한 1971년엔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인생 목표인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가깝고, 경제적으로나 과학기술적으로 세계 10위권 나라로 발전했다. 우리 학생들이 활동할 20~30년 후엔 세계무대에 올라야 하니, 꿈도 다르게 심어줘야 한다. 과학자의 꿈을 갖더라도 학계에 획을 긋는 연구를 할 과학자가 되도록 꿈을 심어줘야 한다. CEO가 되고 싶다 한다면 구글 CEO에 도전하게 해야 하고, 대학총장이 되고 싶다 한다면 스탠포드 MIT 총장은 되고 싶어하도록 젊을 때 꿈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대학시절부터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껏 기능을 추구하고 성공을 추구했다면,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가치를 추구하는 삶도 고려해야 한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존경 받는 이유는 사회가 도왔기 때문에 이윤이 났다는 접근으로 이를 환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벤처도전정신과 사회배려정신을 함께 키워주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리더교육은 매너를 중시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도 강조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많이 알려진 AI만 하더라도 윤리의식 없는 연구라면,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모를 일이다. 그간 기능교육에 매진했다면, 앞으론 어떤 조직이나 사회, 국가를 끌고나가는 리더십 교육이 필요하다. 때문에 글로벌 리더를 모셔와서 미래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한다.”

리더십 교육과 관련해 신 총장은 현재의 ‘초연결사회’ ‘수평사회’를 언급하며 “수평사회에서의 리더십은 달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수직사회에선 위에서 명령하고 아래에서 강압적으로 복종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수평사회다. 수평사회에선 가슴을 뛰게 하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KAIST에서 조직개편보다 의미를 둔 게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다. 조직을 이리저리 개편해봤자 사람의 기본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개편은 아무 의미 없다. 리더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보고 나부터 KAIST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자리하려 한다. ‘비전’도 제시하지만 ‘디테일’도 최선을 다해서 임할 생각이다.” DGIST 재직 당시 하루 다섯 시간이었던 신 총장의 수면시간이 KAIST에서 네 시간으로 줄어든 이유다. 연설문을 비서실에 맡기는 대신 직접 작성해내는 사례만 보더라도, 신 총장의 ‘디테일’을 읽어낼 수 있다. 신 총장은 취임사에서 ‘3C 리더십’을 천명한 바 있다. 변화를 선도하고(Change) 구성원들과 소통하며(Communication) 구성원들을 돌보며 작은 목소리에도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Care) 리더가 될 것이란 얘기다.

신 총장은 “KAIST가 비전(Vision)과 혁신(Innovation)과 열정(Passion), 즉 ‘VIP’를 갖추고 있다면 능히 새로운 국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2031년 KAIST 설립 60주년을 바라보며 기관 비전과 혁신적 전략을 담은 ‘비전 2031 장기플랜’을 구성원들과 함께 준비하려 한다”고 ‘미래전략혁신’ 포부를 밝혔다. 또 “KAIST는 글로벌 레벨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으로서 KAIST에서 내는 연구는 최고(Best One)이거나 최초(First One)이거나 유일(Only One)한 것으로 실현될 것”이라 자부했다. 최고이자 최초, 유일한 교육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신 총장, 더 나아가 대한민국 이공계열의 미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신 총장은 경기고, 서울대 응용물리학과(학사), KAIST 대학원 고체물리학과(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박사)을 거쳐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교직에 들어섰다. KAIST에서 석좌교수, 학생부처장, 국제협력실장, 기획처장, 고등과학원 설립추진단장,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KAIST에서 연구와 행정으로 잔뼈가 굵었다. 2011년 DGIST 초대총장으로 자리한 신 총장은 연임을 통해 6년간 DGIST의 기틀을 닦았다. 미래부 연구개발사업 종합심의위원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 및 부의장, 국방과학연구사 비상임이사 등 정부 관련 화려한 이력 외에도 학술지 논문게재 310여 편, 국내외 특허등록/출원 37건,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등으로 우리나라를 견인하는 물리학과 교수로서의 위상이 버젓하다. 수 많은 상훈 중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2012),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글로벌경영 부문, 2012), KAIST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상(2011)과 함께 한국인 최초 수상인 AUMS(아시아자성연합회)상(2016년)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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