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전 KAIST 입학처장 (기계공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교육이 없고, 오직 대학 입시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교육은 자라면서 자신의 삶과 사회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감과 자긍심을 키워나가, 궁극적으로 자신과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은 대입에 필요한 것들을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많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고 인식되는 듯하다. 해방 이후 교육이 보편화되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조건이 되면서, 대입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육이 충실히 시행되지 못했던 과거에는 인재 선발의 최종 관문으로 대입의 역할이 불가피하게 이해될 수도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모든 교육이 대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국가차원의 교육 철학과 시스템의 실종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에서는 고교까지는 인성교육과 다양한 교과목들이 학습되고 적성과 능력에 맞춰 ‘전공과 대학’이 결정되면 대학에서 전공과 직업교육이 진행된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는 고교까지의 모든 교육 내용은 대입을 목표로 하고 대입 점수가 결정되면 그 점수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결정돼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 이상 공부해야 할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채 허송세월 하는 것 같다. 즉, 대입에서 영어 비중이 낮아지면 영어 과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논술시험의 유무에 따라 논술교육의 유무가 결정될 뿐, 학습의 내용과 형식이 향후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하고 개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체육은 청소년 시기의 성장과 정신 건강에 가장 중요한 과목임에도 대입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항상 소홀히 다루어진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명분으로 대학에 가장 유리한 (손쉬운) 방법으로 변별력을 높이는 데에만 몰두하고, 왜곡된 변별력에 맞춰 교육은 또 다시 왜곡되는 것 같다.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입전략은 어쩌면 선행학습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남들보다 미리 공부하면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쉽게 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예습은 권장돼야 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수 년치 학습 내용을 선행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승부에만 집착하는 감독이 어린 선수들에게 탄탄한 기본기와 튼튼한 기초 체력은 외면한 채 잔기술만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순간의 승리를 챙길 수 있겠지만, 어린 선수들은 몸이 망가져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하거나,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피우기도 전에 꺾이게 마련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대입이라는 눈 앞의 승리에 집착해 어린 나이에 과도한 공부에 내몰린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고, 어려운 문제는 잘 푸는 데 기본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떨어져, 정작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대학에 들어와서는 전공에 대한 흥미는 물론 학문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이 떨어져 점점 낙오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특히 대학원과정에서 연구를 할 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고교 때 잘 했던 선수가 대학 와서 기량이 점점 떨어져, 프로 무대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이승섭 전 KAIST 입학처장

 

이런 방식으로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막상 대학에서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과 우월감 속에서 정작 사회에서 필요한 진짜 경쟁력은 쌓을 기회를 놓치고, 못 들어간 사람은 열등감 속에 살아가는 것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이룬다. 지난 20여 년 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필자는 고교까지 배워온 많은 내용들이 막상 대학과 인생에서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결국, 대학에 들어와 큰 도움이 안 되는 내용들을 배우기 위해 청소년기의 시간들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는 셈인데 놀랍고 안타까운 점은 학생들도 그런 사실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중/고등학교 교육과 대입을 한번 들여다보자. 고교를 졸업하면 모든 학생들은 군대에 가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세계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 1년 동안 시험을 준비해 대입시험을 보고 대학에 진학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왜 이스라엘의 교육이 노벨상의 산실이고, 이스라엘의 벤처기업들이 세계 최고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중/고등학생들은 교육시스템상 대입에 목 매거나 미리 과도한 선행 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 학교는 학생들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그 나이에 맞는 교육을 충실히 시키면 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배우게 된다. 군 복무와 세계여행을 마친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넓은 세상의 경험을 통해, 대학 진학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갖게 되고 자신의 적성과 꿈을 바탕으로 전공을 바르게 정한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쁨과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가 바르게 세워지는 학교, 학창 시절이 즐거운 학교, 대입 결과보다는 교육 그 자체로 평가 받는 학교, 사교육이 필요 없는 사회,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대학에 가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사회, 창의와 도전 정신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 우리가 꿈꾸는 ‘교육이 살아있는 나라’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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