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나눠먹기 대신 영재학교 원론적 검토할 때'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전국 8개 체제로 운영되는 과학영재학교가 9개로 늘어날까. 울산시는 제19대 지역 대선공약 목록 가운데 교육 분야 사업의 일환으로 과학영재학교 건립을 최근 제시했다. 울산시는 과학영재학교 설립으로 고급과학기술 인재양성과 연구개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전국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울산에만 과학영재학교가 없는 만큼 영재학교 설립으로 울산의 우수한 지역인재의 유출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건립방안에 따르면 울산시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캠퍼스 내 부설학교로 6만제곱미터 부지에 학년당90명, 정원270명 규모의 과학영재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학교 운영도 UNIST가 전담해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KAIST가 관련법 개정을 통해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부설로 편입시킨 선례를 따른다는 것이다. 

울산시의 영재학교 건립안에 대해 교육계 인사들은 부정적인 시각이 앞선다. 울산시가 들고 있는 건립근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데다 이미 8개의 영재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재학교 확대 자체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눈길이다. 

울산시는 제19대 지역 대선공약 목록 가운데 교육 분야 사업의 일환으로 과학영재학교 건립을 최근 제시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울산의 영재학교 건립.. 광역시라서?> 
울산시는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울산에만 과학영재학교가 없어 지역의 우수한 이공계인재들이 유출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고를 포함해 전국의 특목/자사고들과 달리 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의거, 고교가 아닌 고교급 영재학교로 분류된다. 중3학생만이 아니라 중1 중2 학생은 물론 고등학생 검정고시생 외국유학생도 지원이 가능한 이유다. 울산과고가 광역단위 모집을 하고 있지만 특차 성격으로 전국단위 모집을 실시하는 영재학교에 의해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들이 다른 시/도로 빠져나간다는 주장이다. 

영재학교 모집 대상자는 전국의 중학생들로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재학교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재학교 선택 잣대로 지역보다는 학교특성이나 대입 진학실적을 더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2016년 설립한 인천예술영재와 2015년 설립된 세종예술영재는 아직 진학실적을 내지 못했고 대전과고와 광주과고는 올해 첫 대입원년을 맞았다. 한국영재를 제외하고는 영재학교 전환/설립 이후 10년이 채 넘지 않은 상황에서 울산에 영재학교가 생긴다 하더라도 지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고시절부터 절대강자 자리를 군림해온 서울과고부터 전통의 한국영재, 대입 실적을 내기 시작한 대전과고 광주과고 사이에서 울산의 영재학교가 지역 내 우수인재의 방출을 막을 수 있으리란 전망은 쉽지 않다.

울산에 영재학교가 설립될 경우 오히려 울산 내 특목고들의 질적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울산에는 특목고인 울산과고, 울산외고와 자사고인 현대청운고, 성신고가 있다. 영재학교 수험생들은 이공계 학생들이기 때문에 울산외고는 제외하더라도 울산 내 최상위권 중학생들이 개교효과로 울산과학영재학교로 일부 편입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은 울산과고가 받게 될 것이다. 영재학교에 응시하는 수험생들 대부분이 과고보다 이른 봄에 전형을 실시하는 영재학교에 지원한 뒤에야 과고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울산영재학교가 설립되더라도 울산지역 수험생들이 영재학교를 택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특차 성격의 영재학교 입시는 영재학교 합격자까지도 과고를 비롯한 타 전기고 지원이 가능하다. 진학실적 기준으로 비교할 때 올해 첫 대입원년을 맞은 광주과고는 서울대 등록자 11명을 배출했다. 울산과고도 10명이 서울대에 등록하면서 광주과고와 서울대 등록 실적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울산시는 과학영재학교 설립 근거로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울산만 과학영재학교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같은 논리라면 경기도에 경기과고가 있듯 도 단위에도 영재학교가 필요하다. 지역별 진학예정자(중학교 졸업자) 수를 분석해 봤을 때 울산시의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2016년 기준 울산의 중학교 졸업자수는 1만2946명이다. 반면 영재학교가 없는 충북의 경우 약4000명이 많은 1만6753명이고 전북의 진학예정자 수는 2만542명이다. 울산시의 주장대로라면 충북과 전북에도 영재학교를 설립해야 한다. 특히 학령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울산시측의 주장은 지역 이기주의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울산과학기술원과의 연계 건립도 석연치 않다. 지난해 과학기술원으로 전환한 UNIST는 서울대를 제외하고 최상위 이공계 인재들이 진학하는 이공계특성화대임에도 불구하고 과고/영재학교 출신비율이 유독 낮게 기록됐다. 2016년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에 따르면 GIST대학의 경우 영재학교 2명, 과고 31명이 입학했고 DGIST는 영재학교 3명, 과고 38명이 입학했다. UNIST의 경우 영재학교 1명, 과고 30명이 입학했다. 학생 수로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GIST대학의 입학인원이 200명, DGIST대학이 201명인 것에 비해 UNIST가 400명 임을 감안하면  낮은 선호도임은 분명하다. 

국내최초 과학영재학교인 한국영재는 해당 시도교육청 소속인 여타 7개 과학영재학교와는 달리 미래부 소속이다. 미래부 관할의 한국영재는 연간 150억원 가량의 넉넉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서울과고 24억원, 세종영재 20억원, 대구과고 36억원, 인천영재 30억~40억원, 광주과고 40억원 수준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한국영재와 달리, 대구과고나 대전과고가 각각 대구경북광학기술원(DGIST), 광주과학기술원(GIST대학)과 특별한 연계를 맺고 있지 않는데도 울산시가 굳이 UNIST와의 연계와 전담 운영까지 고려하는 것은 ‘국가지원’을 끌어 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영재학교 확대 과연 필요한가>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해 근거해 설립된 영재학교는 전국8개 체제다. 부산(한국영재) 서울(서울과고) 경기(경기과고) 대구(대구과고) 대전(대전과고) 광주(광주과고) 세종(세종영재) 인천(인천영재) 등 광역단위로 하나씩 자리한다. 영재학교의 광역단위 설립이 자리 잡게 된 것은 2003년 한국영재가 국내최초 과학영재학교로 출범한 뒤 지역별 균형을 이유로 지역과고들이 ‘나눠먹기식 전환’을 해왔기 때문이다. 교육계는 현재 8개 체제만으로도 ‘많다’는 의견이다. 이미 전국에 과고가 지역별로 한두 개교 자리하면서 20개교가 존재하고 2016학년 기준 영재학교 학생 수는 2260여 명, 과고 학생 수는 4400여 명에 달한다. 일반고에 운영되는 과학중점학교는 올해 135개로 확대되고 향후 교육부는 최종 200개교까지 늘릴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영재교육의 일환으로 과고를 지역별로 운영하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영재’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많은 수의 학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재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만큼 과고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문제를 제기한다. 영재학교는 영재교육법에 의거, 특정 분야에서의 특수한 능력의 심화를 중시한다. 반면 과고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재능을 중시한다. 영재학교는 자율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교육과정 운영이 자유로워 무학년제 졸업학점제, 대학 학점선이수제(AP) 등을 시행하면서 수학/과학 특정 분야의 연구와 실험 중심의 교육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과고는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전문교과와 기본교과의 이수단위가 정해져 있으며 수학/과학 속진 심화교육을 실시해 조기졸업도 가능하다. 설립근거가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세부 운영 방식은 차이가 날 수 있으나 두 학교 설립목표가 과학인재양성으로 모아져 있고, 전반적인 수학/과학 수업의 내용이나 수준, 교재는 차이가 없다. 

문제는 교육 수요자의 시각이다. 과고가 특정 운영방식이나 교과를 택한다고 해서 영재학교 지원을 희망하는 수험생이 과고 지원을 하지 않거나 과고 지원희망자가 영재학교 지원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특차 모집 성격의 영재학교는 여름에 실시하는 과고 전형일정보다 이른 봄에 전형을 실시하기 때문에 영재학교 불합격자는 물론 합격자까지도 타 전기고 지원이 가능하다. 영재학교 입시를 치른 이후 과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에 지원이 가능한 셈이다. 무엇보다 영재학교와 과고에 모두 응시할 수 있는 현 입시체제는 수험생들이 ‘보험격’으로라도 영재학교를 두드려보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계는 현 영재학교 체제 자체에 대해서도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설립근거인 영재교육법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영재가 많다는 점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선발권이 있는 고교유형 대부분이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했고 입학전형 영향평가를 실시하면서 사교육이 끼어들 소지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실제 외고 국제고는 수능영어 절대평가와 함께 고입에서 사교육의 입지를 대폭 축소했다. 유일하게 사교육을 받아야하는 고입은 영재학교와 과고 남은 상황이다. 사교육을 통해 영재학교 과고를 진학하는 현실은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영재들이 다시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의대행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로 연결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설립근거와 관할이 달라 섬처럼 운영되고 있는 영재학교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광역시라고 해서 영재학교를 둬야겠다는 울산시의 주장은 다소 회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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