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숙 한영고(서울) 연구부장

-‘규제 과도.. 전형본질 왜곡 우려’

“저 나무에 빨리 올라가 보세요. 내가 공정하게 심판을 보겠다”라는 심판관 앞에 원숭이 코끼리 금붕어 펭귄 개 새 금붕어가 모두 일등을 꿈꾸며 서 있는 그림이 해외 신문만평에 실린 적이 있다. 아마 심판관은 공정하게 심판을 보겠지만 어느 누구도 원숭이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에겐 너무 쉽고 금붕어에겐 목숨을 걸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면 과연 공정하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우린 너무 쉽게 공정하게 평가해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재 대입제도 중 수능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시 지표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같은 날 동일한 시험문제로 국가가 주도하는 수능 시험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2017학년 서울대 정시모집 최초 합격 배출 상위 고교 중 대다수가 자사고와 특목고이고 소위 교육 특수 지역 쏠림 현상은 과연 수능이 공정한 평가인가라는 의구심을 일게 한다.

최근 건국대를 비롯한 6개 대학 공동연구 발표에 따르면 대입 전형 중 사교육에 참여한 빈도가 높은 전형으로 논술전형에 이어 정시로 나타났다. 가장 공정하다는 인식을 갖는 수능이 부모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수능도 학생의 객관적 우수성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논술전형 역시 사교육 유발 요소를 갖고 있다는 같은 맥락에서 공정한 평가로서 불완전하다. 학생부 위주전형인 교과와 종합전형도 경쟁이 극심한 학교에서 내신 성적의 불리함과 학교평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교간 격차가 있다는 이유로 공정한 평가가 되기엔 부족하다. 수능, 논술, 교과, 학종전형 중 어느 하나도 평가로서 공정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유제숙 한영고(서울) 연구부장

그렇지만 교육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수능, 폭넓은 비판적 사고력을 갖출 수 있는 논술, 성실하게 지식의 양을 채워가는 교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문제해결이 가능한 학종전형, 현재 대입제도는 학생 능력에 따라 교육을 할 수 있고 평가가 가능하므로 나쁘지 않다. 학종전형 시행 3년 차를 보내며 교육이 평가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대입 평가 방법은 어떠한가? 대입제도를 수능 논술 교과 학종으로 세분화해 놓고도 평가방법은 여전히 점수로 정량화하려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학종전형의 정성평가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불합격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불확실성과 입시 부정이 개입할 수 있다는 불편한 시각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한 고교에서 벌어진 학생부 기록 부정은 학종전형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켰고 급기야 교육부는 학생부기록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대폭 규제를 강화한 학생부 기록 개선 방안을 공개한 데 이어 최근 발표한 2017학생부기재요령으로 구체화했다. 학생부 기록 개선 방안은 결과보단 성장과 과정 중심으로 학생부를 기록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학생부 기록에서 정성적 요소가 대폭 사라져 무엇을 가지고 학종전형의 평가가 이루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학생부기재요령은 매년 바뀌면서 학교현장을 괴롭혀왔다. 학생부에 ‘대학’ 명칭을 기록할 수 없다는 기재요령으로 인해 기존에 이미 기록된 것에서 대학명을 모두 삭제해야 했고 2015학년도에는 교내상이 남발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회’라는 용어를 기록할 수 없다는 기록지침이 학기 중간에 발표돼 체육대회와 같은 수상과 전혀 관계없는 명칭까지도 모두 수정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2016학년도에는 야간자율학습 관련 기재가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가 며칠 만에 번복한 사례도 있었다. 그나마 매해 4월말에 발표되던 학생부기재요령이 2016학년도에는 한 학기가 다 지나고 나서야 확정본이 나와서 이미 기재가 완료된 내용을 전체적으로 수정을 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도 서로 다른 학생부기재요령은 교사의 피로도를 높이고 있으며 특수문자가 깨진다는 이유로 특수문자를 삭제하거나 날짜표시에 ‘~’표시 대신 ‘-’로 모두 교체하게 하는 것 등 기술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학생부기록의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넘기고 있다. 학생부기재요령에는 학생 역량 중심으로 기록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학생부기록을 수정하기도 바쁜 교사에게 학생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기대할 수 없다. 일의 앞뒤가 뒤바뀐 모양새다.

2017학생부기재요령은 무엇을 바꾸었을까. 기재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활동과 기록에 제한 수위를 높이면서 수상경력, 진로희망사항, 교과학습발달사항, 자율탐구활동, 독서기록에서 변화를 주었다. 기재 요령에도 명시되어 있듯 교과학습발달사항 중 과목세부 기록 주체는 교과 담당교사이며 개인세부 기록 주체는 담임교사로 구분되어 있다. 교과담당교사가 아닌 다른 교사의 방과후수업을 수강한 경우 기록 주체가 모호해져 별도의 행정적 절차를 밟아야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다. 강좌명과 이수시간만을 기록함으로써 수업에서 교사가 관찰한 학생의 핵심역량을 기록할 수 없다. 2017학생부기재요령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동기와 과정 없이 결과기록만 허용함으로써 성장과 과정 중심 기록이라는 학생부의 본질을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2016학년도까진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롭지 못한 일반고에서도 심화, 선택, 전공, 진로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 강좌를 개설해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의 학업역량 등 성장과정을 학생부에 기록해 학생 개인별 노력과 우수성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고에 비해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로운 특목고나 자율고는 심화, 전문교과를 교육과정 내 편성할 수 있어 교과담당교사가 학생역량중심기록이 가능하므로 방과후학교 기록 기재에 따른 불편함이 없다. 결국 2017학생부 기재요령은 ‘열심히 하는 일반고’ 죽이기의 방향으로 내달린 셈이다.

독서기록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교사가 관찰 및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책 선정이유, 읽은 후 소감과 영향 등을 빼고 도서명과 저자만을 기록하도록 제한을 두었다. “당신은 무슨 힘으로 그렇게 성공했습니까?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독서입니다”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에서 독서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도부터 적용되는 2015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재상에도 지식과 인성, 과학적 창조력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삶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결정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창의성을 자극한다. 교과서 밖 넓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간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며 학종전형 평가요소 중 하나인 전공적합성을 효율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자유학기제가 실시되고 있는 중학교에서는 학교 도서관을 활용한 수업모형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교육청에서는 ‘질문이 있는 교실’을 실천하기 위해 지역 교육청 단위로 서울형 독서토론 모형을 연구 보급하며 수업 개선과 함께 독서교육을 강조했다. 이렇게 학교 교육 현장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독서활동에서 학생이 책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을 뺀 도서명과 저자만의 기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시 학생성장중심 기록이라는 학생부의 본질과 반대방향이다.

학생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성적 요소를 줄임으로써 교과 성적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종전형 합격자 교과 성적 분포가 상향된 것으로 나타나는데다 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교과 성적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불만 섞인 말도 들려오는 상황에서 교과성적에 무게를 싣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얘기일까.

2017학생부기재요령은 교내 수상을 받지 못한 학생의 노력에 대한 정성적 평가의 길도 막았다. 교내 대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학기 초 등록된 교내상만 을 수상 경력란에만 기록하도록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모호한 수상을 표준화해 수상의 남발을 제한하는 긍정적 면도 있지만 많은 학생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부담스러운 과제연구는 교내에서 실시한 학생 중심 과제연구만 연구 과제명, 참가인원, 연구 소요시간 등만을 기재할 수 있다. 외형적으론 공정하게 보이지만 연구를 하게 된 이유, 연구를 수행하는 학생 모습 등을 기록할 수 없어 이 또한 정성적 평가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 진로희망사항에서는 특기 및 흥미를 쓰는 대신 진로 희망사유를 적게 해 학생 스스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를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번 2017학생부기재요령의 변화 중 유일하게 정성적 평가요소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자주 바뀌고 기록에 제한을 주는 학생부기재요령은 학생부가 학생 성장기록임을 잊고 대입평가자료만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학종전형 시행 3년 차를 보내며 학생부가 학생 성장기록으로서 본질을 회복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규제 속에 가능성을 묶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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