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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 신화의 주인공, 자연인 김승유.. 가려진 ‘학교운영의 전범’이름 외워 부르는 이사장 ‘자존감, 교육의 출발점’, ‘교육, 최소투자 최대효율.. 교육투자 확산됐으면’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자연인 김승유’는 비로소 평온하다. 1971년 한국투자금융(현 하나금융그룹의 전신)의 출발부터 함께 시작, 2012년 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직을 내려놓기까지 ‘존경 받는 기업인’으로 성공가도를 걸어 온 그의 인생궤적은 ‘꽃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눈치 보는 게 일상적”이라 표현할 정도로 평생을 서비스업 최전선에서 일각을 다툰 투박하고 거친 삶이었다고 회고했지만 금융인으로서 정점까지 쌓아 올린 업적들은 한편으론 족쇄이기도 했다. 김승유를 겨냥한 질시의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와서도 자신의 얘기를 쉽사리 풀어놓기 힘든 고민의 배경이다. 다만 김승유가 교육을 중심으로 펼쳐온 사회공헌활동의 족적은 금융인의 공과와는 별개로 의미가 결코 간단치 않다. 금융인의 치열한 삶에 가려져 있지만 김승유가 그린 교육에 관한 다양한 공헌과 밑그림은 학교운영의 전범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학교를 떠난 자연인 김승유는 이사장직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하나고 주변을 맴도는 애정처럼 우리사회에 제2, 제3의 이사장 김승유가 나오길 고대하고 있었다.

<하나고 카톡방엔 이사장이>
김승유(75) 전 하나고 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로 임기를 마감했다. 2010년 개교한 하나고의 개교준비시기인 2009년부터 재단 이사장으로 지낸 8년의 시간을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보람 있는 기간이었다. 하나고와 같은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었고, 꿈을 이뤘다. 가능한 자주 학생들을 만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눈빛들이 눈에 선하다. 학교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한 기회를, 고맙게 생각한다.”

김 전 이사장의 학생사랑은 개교초창기부터 유명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재단 이사장이 졸업생들에 밥을 사러 다녔다는 것이다. 김 전 이사장은 하나고 1기 배출 직후 당시 교장과 함께 ‘대학 순회 신입생 환영회’를 하러 다녔다. “선배들이 없는 아이들이다. 신설학교에 들어오는 게 모험이었을 테다. 고마웠다. 대학마다 고교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해주는데, 하나고 1기 졸업생들에겐 선배도 없고 그럴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해주마 하고 돌아다녔다. 사실은 그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김 전 이사장의 진심. 그 아이들이 입학 당시부터 이름을 불러주는 재단 이사장이었던 데서 이유를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입학하면, 김 전 이사장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웠다. 가급적 자주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을 마주쳤고, 마주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개교 초기부터 재단 이사장이 학생 이름 불러줬다는 것으로 인상 깊던 하나고는, 덕분인지 몰라도 교사뿐 아니라 교장 교감에 법인사무국장까지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이름을 불러주는 게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보통 재단 이사장이 학생 이름을 모르는 것은 물론 학생 역시 재단 이사장의 이름을 모르는 게 당연한 풍토에서, 하나고의 시작은 달랐던 셈이다. 

“잠깐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선생이 불과 2~3주 만에 내 이름을 불러서 깜짝 놀랐다. 영어이름들이야 외우기 쉽지만, 발음도 힘든 한국학생 이름을 외워 부른다는 게 놀라웠다. 대학 강단에 잠깐 섰었는데, 당시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워 불렀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었고, 교육의 한 차원이었다. 하나고 시작할 때부터 재단 이사장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다니니 모든 구성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게다. 지금은 사무국장도 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기숙학교니까 특히 더 그렇겠지만, 기숙학교가 아니더라도 학교 선생님들이라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이름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건 관심의 표현이다. 교육은 아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아이가 뭘 잘할지 가늠해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는 자존감이 생긴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란 걸 각인한다. 더 열심히 살게 된다. 이름을 외우는 건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천여 명의 이름을 외웠다. 나름대로 외우는 방법이 있다. 스토리텔링 식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외우는데, 결과적으론 이름은 물론 ‘어떻게 거기까지 아느냐’ 하는 고마움으로 돌아온다. 이름을 부르면서 비로소 관계가 형성되고,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김 전 이사장은 하나고 졸업생들의 ‘카톡방’도 함께 할 정도로 재학 시절뿐 아니라 졸업 이후에도 학생들이 가까이 해온, 흔치 않은 어른이다. 졸업생들을 아직까지도 만난다. 군대 간다 하면 만나고, 제대했다 하면 만나는 식이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고 3년이 가장 즐거웠다 말할 때 가장 보람을 갖는다. (실제로 하나고 졸업생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졸업생들은 하나고 3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학교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얘기를 우리더러 더 잘하란 얘기로 듣는다. 하나고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른 학교들은 어떻게 교육하는지 찾아보자 해서, 교사들과 함께 고교들을 방문했었다. 민사고 상산고 외대부고 공주한일고 논산대건고 거창고 등등 많은 학교들을 방문해 들으면서 배울 것들을 찾았다. 하나고는 서울에 있기 때문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 고교들은 여건이 달라 남들이 말하는 대입실적에선 하나고보다 못할 수는 있어도 각 학교의 경쟁력이 돋보였다.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거창고, 학생수가 아무리 많아도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생부를 교장선생님까지 관리하는 논산대건고가 특히 인상 깊었다. 결국,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학교가 얼마나 갖느냐에서 같은 맥락이다. 관심이란 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름 하나 불러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자존감을 키워주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귀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보다 중요한 교육은 없다고 본다.”

김승유 전 하나고 이사장은 평생을 서비스업 최전선에서 일각을 다툰 투박하고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도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밑그림을 꾸준히 그려나갔고 거침없이 질주했다. 가장 큰 관심은 교육이다. 김 전 이사장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게 교육”이라며 “이처럼 좋은 투자를 많은 분들께 권한다”고 전했다. /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a.com

<자존감 키워주고 패자부활전도 열어줘야>
김 전 이사장은 학부모들에도 자존감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의 첫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녀에게 함부로 말해선 곤란하다. 성적이 최우선이 되어서도 안 된다. 농담으로 ‘술 먹는 자리 가면 술 잘 먹는 게 최고이고, 학교에 가면 성적이 잘 나오는 게 최고’라 하는데,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성적이 뒤떨어진다고 아이들이 위축되어선 안 된다. 성적 때문에 자신감을 잃는다. 성적은 떨어지더라도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 하나고에서 항상 강조하던 얘기다. 아이가 잘하는 게 뭔지 찾아줘야 한다. 부모가 가장 잘 알겠지만, 하나고가 기숙학교인 이상 3년 데리고 있으면서 우리가 부모 못지않게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어디에 관심 있고 뭘 잘할지, 뭘 하면 자신의 평생직업으로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지 학교가 가르쳐줘야 한다. 특히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몇 명 들어갔냐고 물어본 적 없다. 어느 대학을 가든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사회풍토다. 일부 학부모들이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갔다 해서 남들에게 못 알리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길 할 게 아니다. 부모가 그런 생각을 가지면, 자녀도 그렇게 알게 된다. 부끄러운 대입결과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 아이가 대학 가서 뭘 얼마나 적극적으로 공부하겠나. 부모들이 달라져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사회적 편견을 깨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김 전 이사장이 강조하는 교육은 진학보다 진로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서 출발한 자존감 교육과 맞닿는 측면이다. “대학 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사회에는 길이 많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대학 못 간다고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국 이튼스쿨조차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인원이 1년에 15~20% 정도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대학에 가기도 한다. 무조건 대학진학을 권할 게 아니라 진로를 찾아주는 데 노력해야 한다. 쓸데 없이 4년씩이나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한다고 학자금 대출 받고 정작 취업을 못하는 현실은 정말 심각하다. 지금도 대학생 멘토링을 하고 있다. 고려대 교우회 선후배간 멘토-멘티를 시작으로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10명 정도 받고 해서 내가 멘토로서 40~50명의 대학생을 데리고 있는 것인데, 거기서도 보면 졸업 후 3년 간 취업을 못하면 아이들은 매우 힘겨워진다. 집에 눈치가 보이고, 친구들 눈치가 보이고… 평생 서비스업을 하면서 ‘눈치’만 많아져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그 아이들 눈치를 보면, 자신감이 없다. 자부심 갖고 평생 사는 게 중요한데, 청년들이 그걸 잊는 게 매우 안타깝다.” 김 전 이사장이 표현한 ‘눈치’는 ‘배려’라 읽어도 무방하겠다. 눈치를 본다는 표현은 배려의 측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강권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상황을 엿보며 배려하는 자세가 김 전 이사장은 몸에 밴 듯하다.

김 전 이사장은 대학진학만으로 끝난다고 여기는 풍토도 경계했다. “졸업장 하나 갖고 평생 먹고 산다는 생각은 지워야 한다. 은행에 있을 때도 누가 유학 갔다 왔다 서울대 나왔다 하면 꼭 하는 얘기가 있다. ‘그 졸업장을 네 이마에 붙이고 다닐 때부터 그건 네 핸디캡이 된다. 감춰라. 스스로 바닥에서부터 남들을 위해 서비스한다 생각하라’고. 혼자 잘나서 될 게 없다. 그걸 아는 게 중요하다. 졸업장 하나로 문을 쉽게 열어주는 사회는 건전하지 않다. 발전도 없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도 강조한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고교 이후 갈 곳을 대학만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사실 그렇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주 전문적인 분야라면 대학졸업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직종에 따라 고교졸업으로도 충분한 데가 있다. 간호사 하다가 의대 가서 의사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고3 때 공부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평생을 가른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교생활이 되어선 안 된다. 하나고 역시 바뀔 게 많다. 하나고 졸업생들이 하나고 3년이 즐거웠다 하는 건 상대적으로 즐거웠다는 것이지, 아직도 개선해야 할 게 많다.”

하나고는 김 전 이사장의 이 같은 신념이 녹아 든 학교라 할 수 있다. 동조한 대다수 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육신념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신청 강좌는 모두 열어준다. 교사가 일방향으로 모든 반에 같은 수업을 할 수 없다. 강좌 수가 많아 수업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업은 토론 위주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수업으로 진행된다. 교과활동 외에 활발한 비교과활동으로도 유명하다. 1인2기의 경우 음악 및 체육활동에 필요한 악기와 기구를 학교가 대준다. 다양한 강좌는 입시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생 각자의 관심 있는 학업 활동을 위한 지원이고, 1인2기는 학종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협동심을 고양하는 것은 물론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관계를 맺으며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한 방편이다. 하나고 1기가 서울대에 대거 합격하면서부턴 없어진 얘기지만 사교육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개교초기엔 일부 학부모와 마찰도 있었다. 학원 다닐 시간을 내주지 않으면서 일부 반발이 거셌다. 김 전 이사장은 학부모에 관한 일도 거들었다. “이미 있는 학교와 똑같은 학교를 만들 거면 교육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당시 반발하던 학부모들을 직접 만났다. 교사 교장을 거쳐 나한테까지 온 건데, 건학이념에 안 맞으니 사교육은 안 하는 게 맞다며 전학도 허가해준다 할 정도로 강하게 주장했다. 양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때 전학 간 그 학생들도 지금 하나고 카톡방에서 함께 대화하고 만난다는 것이다. 하나고를 거쳐갔다면 나에겐 모두 하나고 학생이다.”

<가슴에 품은 사배자>
김 전 이사장을 굳이 만나야 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사배자’에 대한 얘기다. 김 전 이사장은 하나고 1기 배출부터 해마다 10~11명의 사배자 졸업생들에게 각 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지난해 10월 말로 이사장직을 사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2월 졸업식에서도 김 전 이사장의 사배자 장학금은 이어졌다. 학교 관계자에 의하면 한 해 10명 가량에 300만원, 올해까지 총 1억6000만원 가량이나 된다. 김 전 이사장은 퇴임 이후에도 계속 지원 방침을 밝힌 상태다. 장학금은 김 전 이사장의 사재를 포함, 김 전 이사장이 주위에 부탁해 들인 재원으로 마련해왔다. 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직을 그만두면서 받은 공로금 40억원을 몽땅 여러 고교와 대학에 기부할 정도로 통 큰 인물이라 하지만, 사재를 털어내고 남들에 부탁해 지원 받기까지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위치에 있어온 터라 남들에 손 내밀기는 더욱 쉽지 않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속하는 아이들을 칭하는 ‘사배자’라는 표현 자체와 관련 얘기를 풀어놓는 걸, 사실 김 전 이사장은 매우 껄끄러워 했다. 아이들의 상처를 염려해서다. 김 전 이사장은 사배자라는 표현이 싫어서 대신 ‘일시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이라고 긴 표현을 일부러 썼다. ‘일시적으로’라는 표현을 특히 강조했다. 게다가 굳이 밖으로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본인은 극구사양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터뷰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해오고 해 나갈 김 전 이사장의 이야기가 세상에 흘러 들어가고, 퍼져나가 비슷한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원해서다.

“누가 사배자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티를 낸 적도, 그 아이들만 모아 뭔가를 하면서 밖에 티를 낸 적도 없었다. 그 아이들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봐 그랬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여러 방식으로 돕고 싶었다. 성적이 뒤처지면 입학 전부터 교사들더러 과외를 시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무리 티를 안 내고 돕는다 하지만 사실 그 아이들은 첫 한 학기 정도는 위축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게 둘째 학기 정도 되면 없어졌다. 얼굴이 밝아졌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음악 체육을 시키는 데서 밝아진 것 같다. 각자 공부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다. 요즘은 가정방문을 못하는데, 실제로 방문해보니 공개적으론 안 해도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공부방은커녕 기본 살림살이가 힘겹다. 부모로선 고민이 두 가지다. 대학 갔으면 좋겠는데 하면서도 가도 걱정이다. 등록금 입학금 다 합치면 400만~5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적은 돈이 아니다. 그걸 아이들이 모를 리 없다. 부모 걱정을 함께하느라 아이들도 안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큰소리 뻥 쳤다. 빌어서라도 한 학기는 대주겠다고. 특별한 건 아니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많다. 이 얘기가 자꾸 드러나긴 원치 않는다.”

김 전 이사장이 공부방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Teach For Korea’라 명명된 이 사업은 은행 사무실을 이용한 공부방 사업이다. “가정환경이 여의치 않을수록 집에 들어가질 않고 길거리에서 배회하기 십상이다. 그걸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4~5년 전에 만든 거다. 부유층은 알아서 공부 가르친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지원해줘야 한다. 하나은행에 빈 사무실이 많다. 빈 공간을 공부방으로 만들어서 튜터링을 하자 했다. 선생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해결했다. 현재로선 성북 서대문 관악의 세 군데에서 하는데 좀더 늘리고 싶다. 성북엔 고려대 학생들이 많은 편이고 서대문에는 고대 학생들도 있지만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관악은 서울대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처음엔 예능 쪽을 가르쳤지만 우리 능력 밖인 것 같고, 지금은 국수영 중심으로 가르치고 사배자뿐 아니라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사배자와 장애우를 우리가 다 커버할 수는 없다. 그저 우리가 시작하면 다른 데서도 나서줬으면 하는 거다. 요즘 은행들 사무실이 많이 남는다. 남아도는 공간을 사회공헌하는 차원에서 활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비용은 들 게 없다.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 외에도 ‘나폴레옹제과점’ ‘본도시락’ 등 몇 업체에서 끼니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여럿이 힘을 합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약자를 향한 식지 않는 열정>
학교가 학생에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불러주며 관계를 맺는 것. 대학간판 붙여주기보다 진로를 고민하고 평생직업의 길을 열어주는 것.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얘기다. 김 전 이사장은 왜 이렇게 아이들이 좋을까. “우리부모님께선 6남매 키우시면서 여섯 명 모두 대학등록금을 내주셨다. 나는 자녀가 세 명밖에 안 된다. 그래서 두세 명 따로 더 내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투자의 효율성이 가장 높은 게 교육이라 본다. 그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데, 조금만 지원해줘서 능력을 키워준다면 얼마나 효율이 높은 것인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게 교육이다.”

좋은 투자는 주위에도 권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마주하는 게 좋다. 졸업한 그 아이들을 지금도 만나는데, 취업준비가 한창이다. 아주 기특한 게, 구겨지지 않았다. 요즘 ‘흙수저’ ‘금수저’ 하는데, 그 아이들이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열심히 하면 되지요’라 한다. 그러면 껴안아주고 싶다. 그 말이 얼마나 내 가슴에 와 닿는지…

그런 투자는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뿐 아니라 하나금융 임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은행에 있으면서 자녀를 하나고 보내고 대학까지 보내면 등록금 걱정이 없다. 한 학기 등록금 내주는 셈치면 사실 어려울 것도 없다. 물론 부탁이 쉽진 않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뻔뻔해진다. 고려대 총장을 지내신 김준엽 선생님의 일화가 아직도 사무친다. 기부금을 부탁하기 위해 대기업 회장실에 그렇게 열심히 찾아 다니셨다 한다. 일부 문전박대에 보좌진들이 민망하다 하며 걱정하니 ‘학생들 위해 다닌다면 내가 못할 일이 뭐 있겠느냐’ 하셨다 한다. 존경스럽다. 선생님들의 마음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제자들을 위해서라면 자기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난 기업인이지만 학교 이사장을 지내면서 선생 노릇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김 전 이사장의 교육에 대한 투자는 어쩌면 어린 시절 선친의 장학회 사업과 가정분위기에서 출발했다 할 수도 있다. “선친께서 ‘나눔’에 대한 얘길 많이 하셨고, 본인이 직접 장학회도 하셨다. 한국전쟁 직후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을 우리집에서 보살피기도 하셨다. 어린 시절 우리집엔 언제나 두세 명의 유학생들이 함께 생활했다. 어머니께선 간혹 우리들에게 봄옷 한 벌 사주실 틈을 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하셨지만, 아버지께선 그걸 더 많은 유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데 주력하셨다. 다 같이 한가족처럼 지냈다. 군식구라 절대 티 내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의 ‘나눔’은 교육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금융인으로선 ‘미소금융재단’을 통해 서민대출의 폭을 넓혔고,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쳐왔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정착을 돕는 일에도 손을 뻗었다. 아름다운재단 발기인이기도 하다. “사회가 편안해지려면 스펙트럼이 좁아야 한다. 생각하는 사상 이념의 스펙트럼도 좁아져야 하지만, 빈부격차가 줄어들어야 한다. 기회가 같이 주어져야 한다. 물론 결과는 달라야 한다. 노력한 만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은 경쟁을 통해서만 배양될 수 있다. 그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천이다. 다만 완전한 공정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자면 조건이 같아야 한다. 조건이 같은 데서부터 출발해야지, 처음부터 다르면 그건 공정경쟁이 아니다. 이런 관심을 기득권층이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대한 불평밖에 안 된다. 공정경쟁을 위한 발판은 전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에 운동선수팀 스폰하는 데 적어도 연간 40억, 많으면 80억을 들인다. 여기서 10억만 떼어 나눈다면 사회가 공정경쟁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저 신문에 내기 위해 사진 찍고 악수 하고 말 게 아니라 실질 지원을 해야 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아픈 데를 찾아내서 지원한다. 대표적으로 군부대 자녀를 위한 스키캠프는 아이들 데리고 스키장 갈 여력이 안 되는 군인아버지들을 위해 하나은행이 애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열었던 식이다. 무엇보다 사회공헌은 순수해야 한다. 정치적 야망의 발판으로 사회공헌을 이용해선 안 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개척정신’도 강한 김 전 이사장은 ‘자연인’으로 돌아와서도 그 정신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여전히 아이들 곁을 맴돈다. “아이들이 제발 쉬라 해서 시골에 농가를 하나 지었다. 이젠 조용히 살려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 폐교될 위기에 처한 초등학교가 있더라. 시골아이들에 자부심을 키워주려고 하나고 영어캠프에 1년에 두 명씩 불러온다. 서울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걸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고 자부심을 심어줘야 한다. 이 학교를 돕고 싶어서 고민 중이다.”


김승유 하나고 전 이사장 프로필
출생 1943년
경기고-고려대 경영학-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고려대 경제학 명예박사
2009~2016.10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
2012.9 서울대 경영대학 초빙교수
2009~2013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2005.12~2012.3 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2005.3 이화여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1997.2~2005.3 하나은행 은행장
1991~1997.2 하나은행 전무이사
1980 한국투자금융 부사장
1973~1981 고려대 경영대학원 강사
1971 한국투자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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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기자  inca@verit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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