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하다 허리를 삐끗했어요.” 한의원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42세의 남자환자가 요통을 호소한다. 정황을 자세히 물어보니 세수를 하고 있는 중에 문이 열려 몸을 좌측으로 조금 틀면서 누구인가를 확인하려는 순간 허리가 뜨끔했다는 것. 그 후에 허리를 펴는 것은 물론이고 선반의 물건을 집으려 손을 뻗기도 힘들다고 한다. 당연히 몸을 좌우로 틀기도 힘들었다.

이런 경우 환자는 갑자기 요통이 생겼다고 하지만 그 전에 요통이 생길 수 있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일이 많아서 허리근육이 피로했거나, 잠자는 시간이 짧아 피곤이 가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세히 문진을 해보니 4일 동안 연속해 야근을 했고, 수면시간도 5시간 정도였다. 피로가 가중되면 단순하게 피로한 것이 아니라 근육의 힘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근육이 제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허리를 굽히고 세수를 하면서 척추의 기립근에 부하가 걸렸고, 허리를 트는 동작이 가중되면서 기립근은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한뜸한의원 황치혁 원장

체한 증상도 한 번의 과식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환자들은 저녁식사를 조금 과식한 후 명치 아랫부분이 갑갑하고 트림이 나오면 시원할 것 같은데 나오지도 않아서 괴롭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물어보면 한 번의 과식으로 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평소에 속이 냉한 사람이 오전에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점심에 소화하기 쉽지 않은 칼국수를 먹으면 위와 장이 KO 직전의 권투선수와 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이런 상태에선 약간의 과식으로 체할 수 있다.

장염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바이러스성 장염이 많기는 하지만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장염에 걸리고, 다른 사람은 멀쩡한 경우가 많다. 멀쩡한 사람은 소화기의 기능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장내의 세균총도 몸에 이로운 세균들이 해로운 세균들보다 많았고, 위와 대장의 기능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들어온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장염에 걸린 사람은 과식이나 냉한 음식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장의 상태가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몸에는 하루에 100여 개 가까이 암세포가 생긴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암이 생기고, 평생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가설이긴 하지만 암에 걸린 사람은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제때에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암세포는 NK세포 등의 면역세포에 포착되지 않게 위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면역체계가 우리 몸을 지키는 파수꾼이고, 암세포가 잘 숨어있는 도둑이라고 가정해보자. 파수꾼들이 충분히 많고, 정신도 똑바로 차리고 자기가 책임진 영역을 꼼꼼하게 수색한다면 잘 숨어 있는 도둑도 잘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피로가 가중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면역세포의 숫자도 적어질 것이고, 그 능력 또한 저하되어 있을 것이다. 제때에 암세포를 발견하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 한두 개의 암세포는 면역체계가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2개, 4개, 8개 식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덩어리가 된다면 면역세포가 도둑의 무리들을 인식한다 해도 처리하지 못할 수 있다. 한의원에 오는 암환자 분들에게 “4~5년 전에 몇 달 동안 많이 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직까지는 모든 환자분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피로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가 한 두 달 이상 되면 4~5년 후엔 암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암세포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개의 암세포가 요즘 CT 등의 진단기기로 발견할 수 있는 크기인 1cm까지 크는 데 5년 가까이 소요되지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긴 ‘병은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이지만 조금만 바꾸면 ‘병은 생기기 전에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병의 예방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충실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복잡한 기계도 톱니바퀴 하나가 고장나거나 전선이 하나 끊어지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우리 몸도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은 말하기 쑥스러울 정도로 뻔하다. 하루의 피로를 그 날로 해소할 수 있게 푹 자고, 균형잡힌 식단으로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 된다. 물론 주3~4회, 하루에 4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도 필요하다.

건강유지를 위한 비법은 없다. 의사 한의사들이 벌써 다 말해 놓았고 습관화하기 어려운 것도 결코 아니다. 80세가 넘어서까지 튼튼한 치아를 갖고 있으려면 식후 3분 이내에 3분 가까이 꼼꼼하게 바른 칫솔질을 하고 매일 치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손을 자주 씻으면 손에 묻어 있는 세균이 입이나 눈을 통해 체내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도 있다. 얼마나 건강에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느냐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관건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이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을 한다. 하루 7시간 이상의 수면을 하는 사람은 드물 정도다. 식사시간을 불규칙하게 만들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들쭉날쭉하게 만들어 자율신경을 교란한다. 손씻기와 치아관리도 이상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건강관리에 가장 좋은 규범대로 살지는 못할지라도 큰 병을 만드는 걸 막는 방법은 유념해 두어야 한다. 몸이 주는 비정상적인 사인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며칠이나 졸고 있다면 피로가 쌓여 있다는 증거다. 변이 묽어졌거나 생리에 큰 변화가 있어도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후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다. 몸에 어딘가에 통증이 생겼다면 즉시 대책을 세워달라고 몸이 하소연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병은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병이 생길 수 있다고 여러 번 사인을 보내는 걸 우리가 반복적으로 무시할 때 병이 생긴다. 몸의 변화를 잘 관찰하면 큰 병을 막을 수 있다.
/한뜸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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