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위 '탐구, 제2외국어 유불리 피할 것"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최근 수능의 최대 문제 가운데 하나인 과탐Ⅱ 기피와 아랍어 선호현상은 없어질 수 있을까. 정진갑 수능출제위원장이 탐구와 제2외국어/한문 특정과목에서 발생빈도가 잦은 유/불리 문제를 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힘에 따라 향후 예상되는 변화가 주목된다. 현재의 과탐Ⅱ기피, 아랍어 선호 현상이 특정 과목 선택으로 인한 피해 또는 이득에 의해 촉발됐음을 고려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책은 특정과목 유/불리 없는 수능 출제를 통해 수험생과 현장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언은 그간 특정과목 기피/선호현상 관련 교육계의 숱한 지적들에 대해 출제위원회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물이란 평가다. 올해 수능이 정 위원장이 밝힌대로 특정과목 선택으로 인한 유불리를 완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2018학년 수험생들의 과목선택 경향은 크게 요동칠 것이란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 최근 들어 극심해져가고 있는 과탐Ⅱ 기피와 아랍어 선호현상은 없어질 수 있을까. 정진갑 수능출제위원장이 탐구와 제2외국어/한문 특정과목에서 발생빈도가 잦은 유/불리 문제를 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힘에 따라 향후 예상되는 변화지점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정진갑 출제위원장, "특정과목 유/불리 피할 것">
올해 수능 출제위원회는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유/불리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열린 ‘2017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련 브리핑’에서 정진갑 수능출제위원장은 영역별 난이도 등을 묻는 질문에 “최대 목표는 표준점수로 변환 시 값의 차이가 없는 것”이라며, “탐구영역이나 제2외국어의 경우 과목에 따라 유/불리 현상이 일어난다. 그(유/불 리가 일어나는) 부분을 최대한 피하도록 노력했다”고 답변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오던 과탐Ⅱ와 제2외국어/한문 중 아랍어 영역을 염두에 둔 결과물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극심한 기피현상을 보이는 과탐Ⅱ와 반대로 극심한 선호현상을 보이는 아랍어로 인해 수능의 본래 취지가 크게 훼손된다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정 위원장의 짧은 발언이 담고 있는 함의는 만만치 않은 무게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물리Ⅱ 선택 시 감내해야 했던 백분위 피해 때문에 발생한 과탐Ⅱ 기피, 상대적으로 다른 제2외국어/한문에 비해 등급/백분위를 따내기 쉬운 아랍어 선호현상을 인지하고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펼쳤다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물Ⅱ 기피, 아랍어 선호 문제는 근본적으로 출제단계에서부터 유/불리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라도 방향을 잡아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출제위가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재의 과목선택 경향 해결의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출제위의 노력이 실현된다면 내년 탐구와 제2외국어/한문 선택경향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화되는 과탐Ⅱ기피.... 지난해 ‘물Ⅱ사태’가 기피 부추겨>
최근 과탐Ⅱ 기피 현상은 해를 넘길수록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해 수능의 과탐Ⅱ 응시인원은 지난해 대비 뚜렷하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전체 과탐 지원인원 대비 물리Ⅱ와 화학Ⅱ의 접수 비율은 1%대, 지구과학Ⅱ 접수비율은 4%대로 지난해와 동일했지만. 지난해 24만6545명이 과탐을 선택한 가운데 2만5492명이 선택, 10.3%비율을 보였던 생명과학Ⅱ 접수인원은 올해 1만5891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결국 과탐 접수인원 대비 과탐Ⅱ과목의 선택비율도 지난해 18.4%에서 올해 13.3%로 낮아지기에 이르렀다. 
 
과탐Ⅱ 기피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이미 올해 초부터 예견됐던 일이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이 공개한 최상위권 재수생들의 집결지인 강남대성학원(강대)의 과탐 선택현황을 보더라도 과탐Ⅱ 선택 비율은 절반 가량 감소했으며, 서울권 광역단위 자사고로 의대 진학 등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는 A고교도 지난해와 비슷한 자연계열 수험생 규모를 유지했으나,  과탐Ⅱ 선택비율이 40.79%에서 28.62%로 크게 감소했다. 과탐Ⅱ에 대한 기피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났었던 것이다. 
 
과탐Ⅱ 기피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Ⅱ과목의 활용도가 극히 낮다는 데 있다. 과탐Ⅱ에 응시하지 않으면 원서조차 낼 수 없는 서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학은 과탐Ⅱ 응시를 강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만을 노리는 자연계열 수험생이 아닌 이상 과탐Ⅱ를 응시해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Ⅱ과목도 고교 교육과정에 속해 있으며, 대학에서의 공부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이다. 
 
과탐Ⅱ 기피 현상의 또다른 원인은 선택인원이 적어 만점을 받더라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수능에서 발생했던 물Ⅱ 사태다. 지난해 물리Ⅱ의 만점자 비율이 11.56%를 기록해 만점자조차도 백분위 94를 받는 데 그쳤으며, 3점짜리 문제 하나를 틀려 원점수 47점을 받은 경우 백분위 83이 나온 현상을 물Ⅱ사태라 칭한다. 통상 정시에서는 백분위를 활용한 변환표준점수를 통해 점수가 산출되기 때문에 낮은 백분위로 인해 감내해야 할 피해의 정도는 더욱 컸다. 결국, 물리Ⅱ사태는 현재의 과탐Ⅱ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험생들은 불이익을 우려, 더욱 더 Ⅱ과목을 기피하고, 계속해서 응시자가 적다보니 등급을 받기 점차 어려워는 악순환이 더해지면서 문제해결이 요원해진 상태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과탐Ⅱ 기피현상 해결을 위해서는 과탐Ⅱ 선택 시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대입에서의 활용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수능결과를 통해 과탐Ⅱ 선택이 더 이상 불리하지 않다는 사인을 명확히 주고, 교육부/대교협이 나서 과탐Ⅱ 과목을 대입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하지 않는 이상 Ⅱ과목 기피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조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올해 수능에서 과탐Ⅱ 선택으로 인한 불리함의 정도가 줄어든다면 서울대 지원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을 중심으로 과탐Ⅱ를 선택하는 사례가 다소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다만, 대입에서 과탐Ⅱ의 활용가능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본래대로라면 과탐 Ⅰ+Ⅱ조합을 선택해 서울대에 지원했으나 아깝게 떨어진 경우라면 차순위 대학 상위학과에는 무난히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입 구조 하에서는 차순위 대학의 상위학과는 고사하고 하위학과 진학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대학들에게 Ⅱ과목 반영을 권장하고, 가산점을 강제화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현재의 과탐Ⅱ 기피현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극심해져 가는 아랍어 선호.. 난이도 조정으로 해결하나>
기피현상이 심화돼가는 과탐Ⅱ와 정반대로 제2외국어/한문영역에서 선택 가능한 아랍어Ⅰ(아랍어)의 경우 매년 선호정도가 높아져가고 있다. 올해 수능에서 제2외국어/한문을 선택한 9만4259명 가운데 6만5153명이 아랍어를 선택했다. 무려 69%나 되는 인원들이 1개 언어에 몰린 것이다. 아랍어 다음으로 많이 선택한 일본어Ⅰ은 접수인원 7875명(8.3%)으로 아랍어와 격차가 상당했다. 지난해까지 기초 베트남어였으나 올해 베트남어Ⅰ로 난이도가 높아진 베트남어의 경우 5193명(5.5%)만이 선택했다. 2014~2015 수능에서 아랍어보다 많은 학생들이 선택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지난해에도 아랍어는 51.6%로 과반수를 넘긴 최다선택 과목이었지만, 올해보다는 그 정도가 덜했다. 
 
수험생들이 이처럼 아랍어에 몰리는 것은 제2외국어/한문의 활용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제2외국어/한문은 통상 수시 수능최저와 지정 응시영역, 정시 등에서만 활용된다. 인문계열에서 수능최저 적용 시 일부대학의 경우 제2외국어/한문으로 사탐 1과목을 대체할 수 있게 하기도 하며, 서울대 입시에서는 일부 모집단위에 지원할 시 지정 응시영역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서울대는 수시 모집요강을 통해 인문대 사회과학대 경영대 농경제사회학부 사범대(교육학 국어교육 영어교육 독어교육 불어교육 사회교육 역사교육 지리교육 윤리교육) 소비자아동 의류 자유전공 등에 지원하면서 국어 수학(나) 영어 한국사 사/과탐을 응시하는 경우 제2외국어/한문을 필히 응시하도록 공고해 둔 상태다. 제2외국어/한문을 응시하지 않은 경우 해당 모집단위에 지원하더라도 불합격 처리된다. 서울대 정시의 경우 제2외국어/한문을 1~2등급 만점, 이후 등급별로 1점씩 차감해 8~9등급은 최대 6점을 감점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결국 과탐Ⅱ와 마찬가지로 서울대에 꼭 지원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2외국어/한문은 응시하지 않아도 무방한 과목에 불과하다. 
 
제2외국어/한문이 대입에서 극히 제한된 용도로만 활용되는 데다 만점을 받더라도 실익이 적고, 못 보더라도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배경 상 수험생들은 ‘로또’로 통하는 아랍어에 크게 몰리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 아랍어Ⅰ의 1등급 컷은 원점수 기준 23점, 2등급은 17점으로 추정돼 사실상 기본 개념만 알더라도 1,2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교내에서 정상적인 아랍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사례는 전국단위 모집으로 아랍어과가 존재하는 울산외고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아랍어에 대해서는 전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찍기’로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2외국어/한문의 활용도가 가장 높은 수능최저를 고려하더라도 아랍어로 수험생들이 쏠릴만한 개연성은 충분하다. 통상 상위권 대학의 수능최저마저도 2등급 2개~3개 수준이기 때문에 제2외국어/한문은 2등급 이내를 받은 경우 활용 가능한 상황이다. 원점수 기준 23점만 받으면 1등급을 획득할 수 있고 2등급 컷인 17점은 ‘찍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범위 내 점수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랍어가 수험생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이다.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높은 등급을 획득하기 쉬운 데다 여타 언어의 경우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점도 아랍어로 몰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여타 제2외국어/한문 과목 중 일본어 중국어 등은 외고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며, 해당 국가 유학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아랍어는 경쟁 대상이 울산외고 아랍어과 학생들 정도에 불과하며 유학경험자가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점수를 따내기 쉬운 편이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아랍어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난이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2등급 컷이 다소 높게 형성되도록 난이도를 조정해 수험생들을 여타 언어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아랍어 선택인원이 15.5%로 최근 5년 중 최저비율을 기록했던 2013 수능의 경우 아랍어 1등급 컷은 48점에서 형성됐으며, 2014 수능까지만 하더라도 1등급 컷이 44점에서 끊겼기 때문에 2015 수능 접수 시 아랍어 쏠림 현상이 크지 않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출제위원회의 아랍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유/불리 해결 노력 발언에 비춰볼 때 아랍어의 난이도 상승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아랍어 관련 사교육 시장만 키워주는 모양새가 될 것이란 우려를 출제위원회가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때문이다. 실제 사교육시장에서는 아랍어 과외를 비롯해 속성 아랍어 강좌까지 숱한 사교육프로그램들이 마련돼있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고교에서 제대로 배울 수 조차 없는 아랍어를 수능 과목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중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아랍어 과목의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고교 교육과정을 통해 아랍어를 배우기란 요원하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에 아랍어가 있는 울산외고 학생들을 제외하고, 드물게 아랍어 만점을 받아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등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과외나 위탁교육 등을 통해 실력을 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교육으로 아랍어 실력을 쌓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교육 차원에서 학업역량을 키울 수 없는 과목이라면, 차라리 수능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아랍어를 제외하지 않을 심산이라면 난이도를 조정해 현재처럼 극단적으로 ‘로또’를 노리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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