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고 1학년 김솔비학생, 한민족 통일문예제전 대통령상

[베리타스알파=최희연 기자] 갈수록 작아지는 아버지, 그리고 분노와 허탈함으로 부끄러워진 나라, 자랑스럽다는 수식어가 붙기 힘든 요즈음 조국과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는 한 고교생의 생각은 허를 찌르며 스스로와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힘이 있다. 제47회 한민족 통일문예 제전에서 한민고 1학년 김솔비 학생이 '자랑스런 나의 조국,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의 수필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통령상은 전부문에서 1명에게만 수여되는 1등 상이다. 군인자녀전형으로 올해 초 한민고에 입학한 김양은 늘 바쁘고 원망스러웠던 군인 아버지를 고교 진학후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고 사랑해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군인으로서 가정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김양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양이 재학 중인 한민고는 직업군인들의 빈번한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교육문제 해소를 위해 설립됐다. 1사단이 위치한 경기도 파주에 설립, 2014학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시작했다. 후기 일반고에다 학교의 역사는 깊지 않지만 군인 자녀를 전국단위로 모집하고,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개교 당시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이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되고,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를 주축으로 27인의 교수들이 '한민고 서울대 멘토단'을 결성, 한민고의 교육과정 운영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개교 이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교원 초빙 과정에서도 4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이 형성될 만큼 현장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한민고는 무학년 교과교실제 운영을 기본으로 자사고 외고/국제고 과고/영재학교 등 모든 학교 교육과정을 모아놓은 듯한 인성/예체능/교과교육과정을 구성, '경기도의 하나고'로 급부상했다. 1학년 입학 당시부터 진로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학생들은 인문사회/인문외국어/자연과학/자연공학 중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계열을 택해 공부하게 된다. 특목고, 영재학교의 전문교과 선택이수도 가능해 영재특성화반을 운영하며, 학생들은 AP UP 이수는 물론 사교육 없이 학교 안에서 SAT, 에세이작성도 지도 받아 해외대학진학을 준비할 수 있다. 대입지형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교사진은 수시와 정시를 아우르는 효율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한 저력을 지니고 있다. 교과 교육 뿐만 아니라 예체능 교육도 활발하다. 학생들은 1주일에 3일 이상 매 2시간 이상을 1인2기에 투자해야 한다. 매주 금요일은 별도의 체력단련 시간도 마련돼 있다. 한민고 학생들은 졸업인증제 통과를 위해 TEPS 600점 이상과 한자 3급 이상은 물론이고 체력/수영 인증과 독서인증, 1악기 연주 또는 미술작품 출품까지 완료해야 한다.

▲ 한민고 1학년 김솔비 학생이 제47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김양과 김양의 아버지 김선대 해병중령(해병대사령부 작전처)/사진=한민고 제공

한민고는 정원의 70%는 군인자녀전형으로 선발하고, 30%는 경기도 지역의 일반자녀전형으로 선발한다. 군자녀의 교육문제 해소를 위해 설립된 만큼 군인자녀에 한해서는 전국 모집을 실시한다. 단, 군인자녀라 하더라도 입학예정일 현재 현역 군인의 자녀만 지원이 가능하다. 입학예정일 이전 전역 군인의 자녀는 물론이고 전역 예정 군인의 자녀 역시 지원할 수 없다. 2017학년에는 정원내 군인자녀 255명과 일반자녀 109명 총 364명을 선발한다. 내달14일부터 20일 오후5시까지 원서접수가 실시되며, 중학교 내신 성적 200점 만점으로 선발한다. 내신 성적은 교과활동상황 150점, 출결상황 20점, 봉사활동 실적 20점, 학교활동 10점으로 산출한다.

다음은 제47회 한민족 통일문예 제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양의 수필 전문.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나의 아버지(한민고 1학년 김솔비)
 아버지의 손은 늘 군화 끈을 묶느라 바빴다. 어린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아버지가 ‘일’을 한다는 것만 알았지, 해가 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어디를 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깨달았던 것이 몇 살이었는지, 정확한 기억 또한 없다. 나는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군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없었다. 단 한번도 깊이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없었으므로, 그래, 내게 아버지는 그냥 군인이었다. 군에서 일하는 사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직업이라는 아주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했을 때 즈음, 나는 어렴풋이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소파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의 목에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버지가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날카로운 소리가 날 것처럼 생긴 은색 목걸이. 내가 그것이 뭐냐고 묻자, 아버지는 손에 목걸이를 빼 쥐고 나를 당신 무릎 위에 앉히셨다. 그리고 나의 눈높이에 맞춰 그것을 들어 보여주셨다.
 “이건, 아빠가 전쟁에 나가면 솔비가 아빠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봐, 여기 아빠 이름이 있잖아.”
 군번줄을 처음 본 날이었다. 순간 나는 무서운 기분이 되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간간이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비상’이라고만 했다. 그때마다 두려운 기분은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저 따뜻한 말에 느꼈던 그것에 비할 것은 못 되었다. 이제와 나는 아버지께서 어린 딸에게 어떤 심정으로 그 말씀을 하셨을까 곱씹어 본다.
 그때의 나는 몰랐으나, ‘비상’은 연평도 포격 사건과 천안함 사건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도 다섯 번에 세 번은 받지 못했던 밤들. 당신은 부대에서 밤을 새면서도,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셨던 밤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나이가 들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덜해졌다. 짐작하기에, ‘전쟁’이 한순간에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였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아버지를,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간만의 휴가에 가족들끼리 놀러가는 도중, 차를 돌리게 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필승’으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전화는 늘 무언가를 망쳐놓았다. 명절마다 어머니와 나와 동생을 먼저 내려 보내거나, 명절 당일 아침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쌓여왔던 서운함은 나로 하여금 아버지의 일에 무심하게 만들었다.
 중 3, 북한과의 충돌로 한창 시끄러웠던 하루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내 이러다가 정말로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일은 연례행사처럼 매번 있는 일이었고, 매번 아무 일도 없었다. 나와 같은 군자녀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으며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오늘 아빠 안 들어오지?”
 나는 확신하고 있었고, 당연하다고 느꼈고, 그러므로 일순간 비참했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나라에 헌신하는가? 누구를 위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는지, 북한의 도발이 지나가는 일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는지 알아야 했다. 도대체 왜,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생명 수당을 받으며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하는 일이 내게 그 어떤 두려움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아버지와 단절된 채로, 그렇게 시간은 갔다.
 고등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느낌에 아버지와 나는 서먹서먹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와의 물리적인 거리도 멀어졌다. 차라리 이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스스로 내가 많이 지쳤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꽤 많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부족하고 어린 사람이었다. 이렇게 힘든 매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놀랍게도 아버지였다.
 같이 방을 쓰는 친구들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할 때, 나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하고, 실제로도 따로 살게 되니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다.
 “아빠는 군인이 왜 되었어요? 왜 그렇게 나라에 헌신하세요?”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당신의 직업에, 선택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집안이 가난해서 돈이 덜 드는 사관학교에 갔다는 답을 은연 중에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버지의 답을 받았을 때,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이유는 국가를 방호하고, 국민을 보호한다는 직업적 사명이 너무 맘에 들어서였단다. 내 나라를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내 조국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매일 아침 군복을 입고 군화 끈을 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지키는 나라가 어딘지 몰랐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이라는 말은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그 안에 담긴 뜻이 너무나도 깊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담담한 저 답에 당신이 군인으로서 부대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군인인 그 순간에도 아버지로서 딸을 걱정하고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 나라가 어디인지를 안다. 가장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듯이, 아버지가 궁극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나와 우리 가족, 더 나아가서는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이었다.
 나의 조국은 나의 아버지가 생도 시절부터 수없이 가슴 속에 새긴 나라이고, 나의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을 포기하며 지켜내고자 했던 나라이고, 매일 아침 군복을 입는 이유이다. 포기한 가족과의 시간은 실은 더 많은 시간을 우리와 보내기 위함이므로, 지금껏 내가 느꼈을 서운함보다 당신이 느꼈을 미안함이 더 크므로,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당신을, 당신의 직업을 온전히 이해한다.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나의 아버지. 당신이 나를 위해 묵묵히 내딛은 수많은 걸음에 감사하며, 나의 오늘은 아버지의 헌신으로 평화롭다.

한민족 통일문예 제전은 민족통일협의회와 통일부가 주최하고 교육부 외교부 여성가족부 대한적십자사가 후원하는 행사로 올해 47회를 맞았다. 국내외 초(4년 이상)/중/고/대학생 및 일반국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우리에게 통일준비란? ▲통일된 한반도의 청사진 또는 통일한국의 미래상 ▲행복한 통일시대! 주인공은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나의 조국 4개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소설, 수필,시(시조) 시행문, 소감문 등을 자유 형식에 따라 작성해 공모하면 된다. 최종 수상작은 예선과 본선을 거쳐 선정된다. 예선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생 및 일반부까지 4개의 부문별로 실시된다. 예선을 거친 200여편의 우수작품을 중앙심사위에서 심사해 최종 입상작 60개 작품을 선정한다. 전 부문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에는 대통령상이 수여된다.

▲ 한민고는 군인자녀의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기숙형 고등학교로 2014학년 첫 신입생을 선발했다. 2017 한민고 원서접수는 내달 14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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