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고려대 KU-MAGIC 연구원장 (전 하나고 교장)

해마다 노벨상시즌이 되면 수상이 기대되는 학자들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곤 한다. 올해도 누가 노벨과학상을 받는 최초의 한국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뉴스들이 넘쳐났다. 한국연구재단이 행한 노벨과학상에 대한 인식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앞으로 최소한 6~10년은 기다려야 될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높아진 국가위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 해결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법들을 내놓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은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벨과학상이 남과 다른 연구에 전념한 창의성 있는 과학자에게 주어져 왔고, 논란이 있긴 하지만 올해 노벨문학상이 밥 딜런에게 돌아간 것을 보면 상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켜서 될 일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조만간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된다. 과연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수능이 대학에 가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수능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며 성토해왔던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노력의 하나일 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출제오류나 난이도 조절실패 등의 논란이 나올 때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는 것도 한 문제를 맞고 틀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인 탓에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대부분 고교들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을 보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양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 학교들은 창의력 양성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수능성적 높이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수능이 대학에 가서 수학할 능력을 가졌느냐를 점검하는 시험이라고 주장하지만 대입을 결정하는 데 너무 중요한 시험이다 보니 틀리지 않고 빠르게 문제를 푸는 연습을 쉼 없이 반복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부모들은 밤잠도 제대로 못 자는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대견해 하며 박수치고 응원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죽하면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비싼 돈을 들여가며 총명주사를 맞히고 물범탕을 먹일까? 물론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 김진성 고려대 KU-MAGIC 연구원장

수능에 몰두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나름대로 끼를 갖고 있는 예체능계 학생들에게도 유사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일전 예술고에 다니는 학생을 만났는데 학교에서 예능교습을 받고 늦은 저녁에 하교하면 너무나 피곤해 학과공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지원할 대학을 미리 정해놓고 대입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 예술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그러한 재능을 즐기고 다양한 교과목을 배우기보다 입시준비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태라면 정작 꿈꾸는 대학에 입학했다 해도 계속해서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떤 교육을 하더라도 평가는 필요하고 그 결과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개인을 한 가지 기준에 있어서의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성공과 실패자로 나누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실제 정책당국이 온갖 지혜를 모아 새로운 입시 정책을 내놓아도 기준이 하나라면 모두가 그 기준을 넘어서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이제 다양한 개인이 남과는 다른 자신의 능력을 찾게 하고,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능력이 평가되고, 그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너무 거리가 멀고 진부한 이야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 정부초기에 실체도 없이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하겠다’고 약속하며 국민들을 설득하려 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의 꿈이 남과 다른 자기의 끼를 발휘하는 데 있지 않고 대입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몰입해야 한다면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이고 꿈을 이루기도 힘들 것이다. 지나간 날을 돌아보며 과거에 경험했던 역경이 자신의 삶에 오히려 유익한 것이 되는 교훈을 얻는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교육현장에서 어린 학생들을 괴롭혀 온 고통은 이미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내용적으로 보면 더 이상 방치해서도 안 되는 일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하면서 엉뚱하게도 단기간 내에 효과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언제 한국인이 최초의 노벨과학상을 수상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박수 받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도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평생 모은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만들고 과학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구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 계신다. 한국연구재단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2%가 20년 안에는 우리나라도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 과학자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야 하는데… 학식이 높은 연구자들의 그 예측이 보기 좋게 틀렸으면 좋겠다. 이 어르신이 조금이라도 일찍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감격을 우리와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수한 과학자들을 노벨상을 받도록 경쟁시키는 우는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얻어지는 수능 성적처럼 노벨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수능을 치를 아이들아! 너희들이 지금 고통스럽게 된 것은 너희 잘못이 아니고 그 잘난 순서 매김에서 스스로 앞서있다고 우쭐대며, 그 동안 여러 가지 경험과 결과물들이 있었음에도 배울 줄 모르고 쉬운 방법으로 순서를 정하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이 어른들의 잘못이란다. 정말 미안하다. 너희가 어른이 되고 나면 엄청난 모순을 품고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이 모습들이 그저 먼 옛날이야기가 되는 꿈을 가져본다. 총명주사, 물범탕 없더라도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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