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 클리닉]

“좀 걸으셔야 합니다. 심장이 워낙 약하시니까 천천히 하루 30분 정도 산보 정도가 적당할 겁니다.” 70대 중반의 남자환자 분을 뵐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다. 심장맥이 워낙 좋지 않아 자녀에겐 언제라도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치료보다도 적당한 운동이 중요한데 힘들다고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빨리 대처하면 조그만 문제로 끝날 상황을 포크레인으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임상에서 과로가 너무 심한 분들을 만나면 건강을 ‘제방’과 비교해 이야기한다. 저수지 둑에 균열이 생겨 물이 샐 때에, 적시에 막으면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누수량이 많아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고치기 힘들어지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비용이 많이 들어도 고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둑이 터지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건강을 지키는 둑이 터지면 대책이 없다. 몸이 과로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도 대책을 세우지 못해 덜컥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과로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지면 암세포가 무섭게 자란다. 암진단을 받은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5년 전후에 과로와 스트레스가 심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몸에 하루에도 1백개 이상 생겨난다는 암세포를 면역체계가 처리하지 못하고 크기 시작한다면, 1cm 이상으로 커지는 데 보통 5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너무 겁주는 말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인정한다. 건강 칼럼에 ‘이렇게 하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그래도 무너지기 전에 대책을 세우라는 말은 계속해 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환자가 전화로 약 처방을 원했다. 전에 내원했던 환자여서 증상을 묻고 처방을 했다. 통화 중에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때라고,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사인을 그렇게 강하게 보내는데 그걸 무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최근 직장을 옮겼는데 하루에 수면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무리하고 있다고 했다. 몸무게가 40kg 이하로 줄어 보약이라도 먹어야겠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한숨이 나왔다. 1m63cm 정도 되는 키에 40kg 이하의 체중은 문제다. 이 정도면 어떤 병도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수면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당분간 그게 어렵다고 한다.

가락동 시장에서 30년째 농산물 가게를 하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 분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수면시간은 4시간 정도. 본인도 체력이 좋으니까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눈이 토끼눈처럼 빨갛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편치 않단다. 휴식이 보약이라고 해도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 왔으니 바꾸기가 힘들다고 한다. 간열이 치성한 맥을 보며 속으로 “언제라도 중풍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도 “한 일주일이라도 푹 쉬세요. 잘못하면 큰 일 나세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한의학과 양의학의 차이점 중의 하나가 바로 미병(未病)이란 개념이다. 병이 되진 않았지만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건강과 질병의 중간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병 즉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는 사인은 아주 많다. 여자들은 생리 상황으로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정상적이던 생리가 건너 뛰고, 생리양이 준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과로로 인해 몸의 피로가 가중되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고, 혈액생성 작용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손발이 차지는 것도 몸의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수족냉은 몸의 말단까지 피돌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수족냉이 다른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료실에서 맥이 이상해서 “소화 잘 되세요”라고 물으면 반 이상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베드에 눕히고 배를 눌러보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한다. 문제가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전형적인 미병 상태이다. 이렇게 압통이 나타나는 환자들은 그대로 두면 체하기 쉽다. 두드러기가 나오기도 한다. 아픈 장소에서 음식물이 잘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오늘 잠자리에 누워서 배를 여기 저기 천천히 눌러 보면 독자 분들이 본인의 소화기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명치와 배꼽 중간에서 압통이 나오면 위의 기능이 좋지 않은 것이다. 아프기도 하고 덩어리도 만져 진다면 더 나쁜 상태이다. 배꼽 왼쪽이 아프면 대장의 기능이 나쁜 것이고, 오른쪽은 소장의 건강 체크포인트이다. 이외에도 한의학에서 미병 상태라고 볼 수 있는 증상은 수없이 많다. 눈이 빡빡해지는 안삽(眼澁), 어지러움, 메슥거림 변의 비정상적인 상태 등으로 미병을 파악할 수 있다.

한의사가 아니라도 본인 몸의 미병은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평소와 달리 뭔가 불편해진 증상이 미병의 사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잠자는 시간은 똑같은데 피로가 심해지거나 없던 통증이 생기거나 뭐든지 불편한 게 생기면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증상이라도 강도가 심해지거나 불편함이 가중된다면 병으로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병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미병의 단계에서 치료를 하면 고치기도 쉽고 원래의 정상 기능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병이 되면 치료 기간도 길어지고, 원래의 기능으로 완벽하게 되돌리기 힘들다. 미병 단계에서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환자에게 미병수준에서 고쳐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언제 중풍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장, 간 폐 등에 열이 꽉 차 있는데도 술을 매일 마시고, 잠도 5시간 이하로 자는 분이다. 돌아 올 수 없는 다리(Bridge of No Return)를 건너기 전에 되돌아 오라고, 수면을 늘리고 음주를 자제하라고 부탁했다. 선택은 환자의 몫이지만 보는 이는 답답하기만 하다. /황치혁 한뜸 한의원 원장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