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왜곡구조 개선 움직임 합류

[베리타스알파=홍승표 기자] 고려대가 대학생들의 '졸업학점 세탁' 철폐에 나선다. 재수강 가능 횟수는 최대 1회로 제한되고, 재수강 최대 취득가능 학점은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변경된다. 고려대는 총학생회와 면담과정에서 재수강제도 변경을 골자로 하는 '학사운영 개정안'을 학생들에게 17일 전달했다. 대학 측은 학점인플레이션 완화와 교육철학에 맞는 운영원칙 수립을 제도개선의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학생들은 학점인플레이션이 대학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고려대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학점 세탁'은 재수강과 학점포기 등의 제도를 통해 학점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의 기본 스펙이 된 학점을 뒤늦게 만회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높은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졸업을 늦춰서라도 재수강을 통해 학점을 높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서도 엄격한 학사운영으로 학생들이 입을 선의의 피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학점 퍼주기'를 지속해왔다. 제한 없이 이뤄진 학점 세탁은 학점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누구나 높은 학점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서 학점이 변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취업/진학 시장에서 학점은 점차 평가요소에서 배제되거나 최저자격 요건으로 쓰이는 등 영향력이 낮아졌다. 만연한 학점인플레가 대학교육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킨 셈이다.

▲ 고려대가 대학생들의 '졸업학점 세탁' 철폐에 나선다. 재수강 가능 횟수는 최대 1회로 제한되고, 재수강 최대 취득가능 학점은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변경된다. /사진=베리타스알파 DB

대학가에서는 학점 인플레이션을 개선, 학점의 신뢰도에서 나아가 대학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대학들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학점체계를 바꿔 엄정한 학사관리를 천명했고, 대학구조개혁평가 지표에 학점분포가 포함되기도 했다. 

<고려대, 학점세탁 철폐 추진..학생 여론수렴과정 거쳐 결정>
고려대가 학점 인플레이션을 없애기 위해 학사제도를 수정한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페이스북 긴급공지를 통해 대학 교무처장과의 면담에서 학교가 재수강 제도관련 규정 개졍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고 17일 밝혔다. 학사운영 개정안은 재수강을 과목당 최대 1회로 제한해 같은 과목을 3번 이상 수강하지 못하도록 했다. 재수강 시 취득할 수 있는 최고학점은 기존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낮아지고, 재수강을 통해 취득한 학점이 처음 수강 시 받은 학점보다 낮을 경우 재수강 학점이 최종학점으로 변경된다. 예를 들어, B학점을 받은 과목을 재수강해 C+학점을 받았다면 기존에는 최고학점인 B학점이 평균평점에 표기됐으나, 앞으로는 나중에 받은 C+학점이 표기된다는 의미다. 현재 평균평점에 포함되지 않는 F학점 또한 개정 이후에는 이수학점에 포함된다. 고려대는 학사운영 개정안의 취지가 학점 인플레이션 완화와 교육철학에 맞는 운영원칙 수립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에는 학생들의 부담감을 우려한 규정도 일부 포함됐다. 과목당 최대 1회로 제한되는 재수강에 전공필수과목 등 졸업에 필수적인 과목은 예외 사항으로 명시됐다. 표기학점을 최고학점에서 최종학점으로 변경하면서 재수강 가능 학점을 B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고려대의 현재 재수강 기준은 C+ 이하 과목이다. 단, 재수강 가능학점 확대는 총학생회와의 면담과정에서 나온 발언일 뿐, 개정안에는 담겨있지 않은 내용으로 확인됐다.

대학의 개정안에 대해 학생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총학생회가 개정안의 내용을 공지한 페이스북 글에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댓글 수 백개가 달렸다. 고려대의 엄격한 학사제도 운영이 결국 고려대 학생들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취업이나 대학원 등 진학과정에서 평가기준으로 학점이 활용돼 엄격한 학점제도는 학생들에게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재수강 횟수와 최대학점 제한은 다른 대학에서 실시하는 추세라며 납득하면서도 재수강 시 최종학점을 표기한다는 내용에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17일부터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학 학생처는 '총장과 재학생과의 대화' 행사를 11월1일 백주년기념관 지하1층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 2017학년 1학기부터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대학 자초한 학점 인플레이션..학생 부담으로 돌아와>
학점 인플레이션은 지속된 취업난으로 스펙쌓기가 치열해진 대학생들과 취업률 확보에 급급했던 대학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데 있다. 엄격한 학사규정으로 많은 학생들이 낮은 학점을 받아 졸업할 경우 취업/진학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학점 퍼주기가 이뤄졌다. 교수들은 정해진 비율의 최대치의 학생들에게 A학점을 부여하고, 재량껏 모든 학생에게 +를 붙여주는 등의 모습이 대학가에서 나타났다. 학생들은 학점에 개의치 않았던 과거 대학생들 모습과 달리 성적발표 기간마다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확인과정을 밟거나, 심지어 학점에 +를 붙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대학 또한 재수강 횟수 제한을 없애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만연한 학점 인플레이션은 결국 대학교육에 대한 신뢰를 크게 저하시켰다. 취업/진학 시장에서 학점은 점차 평가요소에서 배제되거나 최저자격 요건으로 쓰이는 등 영향력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생들의 성실성과 전공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요소인 학점이 의미를 상실하면서 기업 자체시험 등 새로운 평가제도가 학생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왜곡된 학점구조, 대학가 개선 움직임..재정평가사업과도 맞물려>
학점의 신뢰도 하락이 곧 대학교육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지면서 학점 인플레이션을 개선하려는 대학가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성균관대는 2012학년부터 F학점 취득교과목을 재수강할 경우 기존의 신규수강이 아닌 재수강으로 처리되도록 했다. 재수강 과목은 성적 상한선이 B+인데다 학기당 재수강 과목이 최대 2개로 제한돼 신규수강에 비해 높은 학점을 얻기에 불리했다. 연세대는 2013학년부터 재수강 가능 횟수를 3회로 제한했다. 2012학년 이전 입학생들은 재수강 횟수 제한이 없었다. 중앙대는 2015학년 신입생들부터 재수강 시 취득가능한 최고성적을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변경했다. 재수강 내역은 성적표에 기재되도록 변경됐다.

대학들의 학점 인플레이션 철폐 노력은 정부의 대학재정평가사업과도 맞물려 있다. 교육부는 2014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학사관리 지표 반영비율을 2013년 10%에서 12.5%로 늘렸다. 학자금대출제한대학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에서 10%로 확대했다. 학사관리 지표의 절반은 학생들의 학점 분포를 평가하는 학점관리 점수로 채워졌다. A~C학점을 받은 학생이 많을 수록 학점 관리 점수가 떨어지는 구조인 셈이다.  

<올해 학점인플레 최소대학.. 중앙 서강 성대 순>
올해 학점 인플레이션이 가장 적었던 대학은 중앙대로 확인됐다. 지난 5월,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서울 상위 12개 대학과 3개 과학기술원(DGIST 공시내용 없음으로 미포함)의 졸업 백분율 점수를 조사한 결과 중앙대(서울캠)는 34.5%의 인원이 백분율 90 이상을 받고 졸업했다.  중앙대(서울캠)는 졸업생 3495명 중 백분율 90 이상을 받은 인원이 1207명이었다.

중앙대에 이어  적은 대학은 서강대 34.9%(졸업 2278명/90이상 794명), 성균관대 38.2%(1674명/4384명) 순이었다. 중앙대 서강대 성균관대는 졸업 백분율 90이상 인원이 40% 이내였다.  GIST대학 40.5%(34명/84명)과 시립대 40.8%(858명/2102명), 건국대 43.1%(1642명/3809명), 동국대 45.6%(1434명/3142명) 4개 대학은 졸업 백분율 90이상 비율이 50% 이하였다. 졸업 백분율 90이상 비율 60% 이하인 대학은 경희대 50.8%(2761명/5439명) 연세대 53.3%(2352명/4414명), KAIST 54.1%(469명/867명), 한양대 55.4%(2049명/3696명) 등 4개 대학이었다. 이어 서울대 62.0%(2091명/3375명), 한국외대 62.1%(2594명/4177명), UNIST 63.1%(321명/509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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