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추진에 교육부 '화답'가능성

[베리타스알파=최희연 기자] 서울대 약학대학이 3학년 편입생 선발을 포기하는 대신 고졸 신입생(1학년)을 선발하겠다는 새 학제/입시안에 대한 협조 요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하면서 약대 체제 개편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2009년 새롭게 도입된 2+4년 약대 입시제도는 학사 편입의 방식으로 기초학문 재학생의 이탈 비율을 높이고, 사교육 시장을 배불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베리타스알파> 역시 약대2+4체제가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클릭▶약대 2+4 체제 바뀌나..기초학문 이탈 40% '심각' 기사 참고)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 약대가 교육부에 체제 개편을 위한 협조 요청서를 보내면서 교육부 역시 '통합 6년제' 도입을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약학교육협의회(약교협) 차원에서 비공식 회의를 통해 교육부에 통합 6년제 구축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적은 있었지만, 공식 문건을 통해 정식으로 건의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가 한 발 더 나아가 통합 6년제 도입을 촉구하자 "통합 6년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던 교육부가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여 현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 약대가 나서서 고졸 신입생 선발을 촉구하고, 약교협과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역시 공동 의견서를 통해 약대 2+4년 제도의 부작용을 재차 꼬집으면서 약대 입시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약대 운영 체제가 통합 6년제로 개편되는 것은 약대 입시가 편입에서 대입으로 넘어오는 것을 의미한다.자연계열 대입 판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의/치/한 등의 전문직과 연계된 학과에서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을 휩쓸고 있는 대입 구조에 약대까지 가세하게 되는 때문이다. 기초학문의 붕괴를 걱정하고 이공계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지만, 의치한과 약대의 인기 앞에서는 기초학문과 공학계열이 밀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통합 6년제 도입에 앞서 이공계와 자연계열 기초학문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는 이유다.  

▲ 서울대 약학대학이 교육부에 고졸 신입생 모집에 대한 협조 요청서를 제출하면서, 약대 2+4 체제 개편에 대한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시기상조라던 교육부 "논의하겠다">
약대 체제 개편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는 서울대의 협조 요청에 교육부가 그간 유지하던 강경한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입장을 취한 때문이다.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에서는 "서울대가 고졸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서를 보낸게 맞다. 다만, 학제를 개편하는 것은 법령을 변경해야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향후 약교협을 비롯한 많은 단체와 논의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된 바 없어 답하기 어렵다고 대답했으나, 그간 "새롭게 도입한 입시제도로 졸업생을 배출한지 2차례 밖에 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약대 학제 개편은 시기상조다. 학제 개편은 불가능하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던 입장은 한층 누그러진 모습이다.

2016 국감에서 약대 2+4 체제의 부작용이 다시 한 번 지적되고, 서울대를 필두로 전국 35개 약대 협의체인 약학대학협의회와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가 공동 성명을 통해 약대 체제 개편에 힘을 보태면서 약대 입시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규혁 약교협 이사장 역시 "원치 않았던 2+4학제의 시행과 준비기간의 부족으로 새로운 학제를 시작한 이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겪어왔다"며 "편입학 형태의 신입생 진학과 재학생의 전공적응도 저하, 신생 분야의 교수 인력 부족과, 대학원 진학률 저하로 인한 기초약학의 위축 등이 6년제 이후 약데에 부담으로 가중됐다"고 밝혔다. "그간 6년제의 외형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진행했던 사안들을 세심히 살피고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통합 6년제의 추진이 최우선의 해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대 2+4 체제란>
약대 2+4 체제는 약학대학이 아닌 다른 학부(학과)로 입학해 2년 이상의 기초/교양교육을 이수한 후에 약학 전공 교육과정에 입문, 4년의 전공 및 실무교육과정을 이수하는 체제를 뜻한다. 그간 4년제로 운영되던 약대를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6년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폭넓은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2+4 체제를 도입했다. 2+4 체제가 도입되면서 전국의 약대는 2009학년과 2010학년 고졸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다.

2009학년 이후 대학 입학생이 약대에 입학하려면, 대학에서 2년 이상에 해당하는 과정을 이수하고 PEET(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와 선수과목 이수 등 대학별로 요구하는 지원자격을 갖춰야 한다. 약대 입시는 통상 서류평가와 면접평가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35개 대학 가운데 11개 대학은 면접 없이 서류를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우선선발도 실시하고 있다.

약대 입시가 학사 편입과 운영 방식이 궤를 같이하면서 약대 합격자들의 학과/대학 이탈이 불가피한 구조가 형성됐다. 약학대학 입문시험인 PEET와 관련성이 많은 자연과학 기초 학과들은 약대 입학을 위한 통로로 변질되면서 학과/대학 이탈률이 상당해 기초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욱이 PEET 시험은 자격시험의 역할 보다 변별력 확보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교육 시장을 과열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화학/생물/물리 관련 대학 선수과목을 충실히 듣더라도 독학으로 고득점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대부분의 수험생이 사비를 들여 학원/인강을 통해 추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2014년 약교협 조사에 따르면 전국 약대 학생의 53%가 6개월 이상 PEET 전문 학원을 이용했다고 답했으며 25%는 1년 이상 사설 강좌를 수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과학 기초학문 이탈율..최고 46%>
박경미(더불어민주)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5학년 기준 수도권 24개 대학 자연과학대 기초학문 이탈율은 평균 33%를 기록했다.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로, 서울 경기 24개교의 공학계열을 제외한 생명과학분야와 화학분야 재적학생 1만1499명 가운데 휴학생이 3057명 자퇴 등의 중도탈락학생이 703명으로 33%에 해당하는 3760명이 학과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입대와 여타 사유로 휴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대학 전체 평균 이탈율이 25% 수준임을 감안하면 자연과학 기초학문의 이탈율이 높다는 점이 확인된다.

특히 24개 대학의 42개 모집단위 가운데 7개 학과는 40%가 넘는 이탈율을 보여 문제가 심각했다. 7개 학과에서 매년 10명 중 4명이 학과를 이탈하는 셈이다. 가톨릭대 생명과학전공은 무려 46%의 이탈율을 기록했고, 동국대 화학과 45%, 건국대 생명과학전공 42%, 한국외대 화학과, 가톨릭대 화학전공,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전공, 가천대 나노화학과 등이 40%의 이탈율을 보였다.

수도권 대학 이탈이 늘어나면서 지방대 기초학과 학생들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서 이탈 학생을 편입으로 선발하면서, 약대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 외에도 상당수의 학생이 서울권 대학 편입을 시도하면서 학교를 떠나 기초학문의 붕괴가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통합 6년제 도입되면 대입 판도는 어떻게 되나>
약대의 경우 학생 선발 방식이 지닌 구조상의 문제점도 있지만, 시야를 확대해보면 취업난의 여파가 대학 전반에 미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인문사회계열은 물론이고 자연계열 기초학문 졸업자의 취업난이 심하고 연구분야의 처우가 낮은 탓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의대/치대/한의대/약대 등으로 지원자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약대가 2+4 체제를 통합 6년제로 개편하고 고졸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면, 자연계열 대입 판도는 의치한 3강 구도에서 의치한약 4강 구도로 바뀌게 된다. 특히 약대의 경우 35개 대학에서 1693명(2017학년 기준)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을 모집한다. 의치한이 모집하는 3789명(2017학년 기준 의대 2512명, 치대 552명, 한의대 725명)이 더해지면 자연계 고교 졸업자 5482명이 의치한약에 입학하게 된다. 이는 서울대 전체 정원 3136명(정원내 기준)의 1.7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2017 수시에서 의/치/한 경쟁률은 모두 전년 대비 상승했으며 2017 PEET 경쟁률 역시 전년 대비 상승했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치한 열풍이 심각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약대까지 가세하게 되면 이공/자연과학계열을 선택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되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기초학문 이탈율이 지금 보다는 줄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실제로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 합격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매년 10%에 달하고 이 중 30% 이상이 공대 학생인 것으로 나타나 의치한 열풍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기초학문 붕괴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이공계 인재 양성의 필요성 역시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지만 정작 의치한약대의 인기 앞에서는 이공계와 기초학문이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약대 통합 6년제 도입에 앞서 이공계와 기초학문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수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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