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출전 제시문'.. 시사이슈 '뉴타운'에 인문학적 고민 접목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2017논술의 개막을 알리는 건국대 논술이 1일과 2일 양일간 치뤄졌다. 2일 치뤄진 건국대의 인문계열 논술은 '장소'를 소재로 모든 제시문이 교과서 및 EBS 교재에서 출제됐다. 인문계열 논술은 상경계열을 제외한 인문계 대상인 인문사회Ⅰ과 상경계열인 인문사회Ⅱ로 구분된다. 인문사회Ⅱ는 인문사회Ⅰ과 같은 주제의 인문논술문항과 수리논술문항이 함께 출제된 특징이다.

상경계열을 제외한 인문계 대상인 인문사회Ⅰ은 2개의 논제에 4개 제시문이 나왔다. 제시문 중 1개는 도표가 출제됐다. 키워드는 '장소'로, 키워드가 담고 있는 제시문의 내용을 잘 분석해 논제에 맞게 서술해가는 게 핵심이다. 제시문 4개는 모두 고등학교 교과서 또는 EBS에서 발췌했다.

2017 건국대 인문사회계열 논술 출제진은 "논제1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표의 내용을 분석하는 문제, 논제2는 서로 다른 두 글에서 상호 연계가 가능한 요소를 찾아 통합한 뒤 그것을 문학 지문에 나타난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 분석해도록 했다"며 "교과서를 통해 학습한 지식을 바탕으로 통합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하는 지식의 활용 능력, 환경 및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건국대가 필요로 하고 또 미래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출제의도를 밝혔다.

논제1은 (가)에 제시된 장소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의 도표를 설명하길 요구했다. 401~600자 분량이며, 100점 중 40점이 배점됐다.

(가)에 제시된 장소의 개념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 (가)는 EBS 수능특강 '독서'에서 발췌했다.

(가) 최근 들어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인본주의 지리학이 등장하면서 ‘장소(場所, place)’ 개념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때 장소란 인간이 정서적인 끈을 형성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특정 장소는 다른 곳과 구별되게 만드는 특성인 장소성(場所性)을 지니고 있는데, 장소성이 있는 장소에 대해 사람이 지니는 정서적 유대를 장소애(場所愛)라고 한다.
인본주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를 인간이 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 보았다. 그는 서울, 뉴욕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보다 집, 고향과 같은 보편적인 장소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중 집을 가장 진정한 장소로 여겼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가족 관계를 통해 나의 집과 남의 집을 구별하는 것처럼 장소의 본질은 내적 경험에 있고, 따라서 장소의 의미는 장소를 경험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렐프는 장소와 장소를 경험하는 주체인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긍정적 유대감인 ‘장소의 정체성’에 주목했다.
그는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진정성을 경험하는 장소가 점점 훼손되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장소 상실 현상을 ‘무장소성’이라 명명하며, 장소들이 획일화되어 가는 것과 상품화된 가짜 장소가 등장하는 것을 대표적인 현상으로 들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세계화로 인해 비슷한 생활 방식을 보이는 여러 국가의 도시들과 순수하게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디즈니랜드 같은 곳은 무장소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가)는 인본주의 지리학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부상한 '장소'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본주의 지리학에서 강조하는 장소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정서적 유대감의 근원이 되는 공간을 지칭한다. 이 장소는 다른 곳과 구별되는 특성인 '장소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장소성을 지닌 장소에 대해 인간이 경험하는 정서적 유대감을 '장소애' 혹은 '장소의 정체성'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서울 뉴욕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보다 '집'이라는 보편적인 장소를 통해 장소애를 경험한다.

(가)는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인간이 장소애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이런 장소 상실 현상을 '무장소성'으로 정의한다. (가)에서 무장소성은 장소의 '획일화'와 '상품화된 가짜 장소'의 등장과 같은 현상으로 특징하ㅗ될 수 있는다. 예를 들면 디즈니랜드와 같은 장소가 무장소성을 보여준다.

수험생은 이러한 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의 뉴타운 사업으로 대표되는 도시 재개발에 대한 주민의 기대를 분석해야 한다.

(다) 다음 도표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의 기대를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표 안의 숫자는 응답자가 각 설문 항목에 대하여 기대의 정도(매우 기대, 조금 기대)를 선택한 비율을 나타낸다. 가령 첫 번째 막대의 ‘32.5’는 ‘주택 가치 상승’에 대해 ‘매우 기대’를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2007년 자료)

 
(다)를 통한 장소와 상호작용하며 장소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뉴타운 사업과 같은 도시 재개발 현상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건국대 논제1은 인문학적 개념을 사회 현상에 적용해 도표를 분석하게 함으로써 사회 정책의 결정과 실행에 있어서도 인문학적 통찰과 사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가)의 장소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의 도표를 분석해보자. 우선 (다)의 도표는 뉴타운 사업으로 대표되는 도시기획에 대한 주민의 기대를 보여준다. 노후주택 개선, 공원녹지 확대 및 문화생활 증진 등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가)에 제시된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서의 주거 공간, 즉 쾌적하고 안전하며 휴식과 문화의 향유가 가능한 장소로서의 집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동시에 공동체 증진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가장 낮고 '매우 기대' 역시 이 항목에서 가장 낮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주민들이 자신의 새로운 주거공간이 될 장소에서 기대하는 것이 그 곳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공동체적 소속감보다는 (가)에 제시된 '장소의 정체성'이 없는 획일적 공간일지라도 쾌적성 편리성 안정성 등이 형상된 공간임을 보여준다. 주택가치의 상승에 대한 비교적 높은 기대감 역시, 자본 가치로서의 집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뉴타운'이라는 신도시는 (가)에서 언급된 장소애의 대상이었던 집이 공동체적 성격이 약화된 몰개성적이고 균질적인 '무장소성'의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현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2017 건국대 인문계열 출제진은 "이처럼 (가)에서 제시된 장소성, 장소애(장소 정체성), 무장소성과 같은 장소에 대한 개념들을 적절하게 적용해 (다)의 도표를 잘 설명할 경우 높은 점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면 "(가)와의 유기적 연결 없이 (다)의 도표에 제시된 주택 가치 상승, 노후 주택 개선, 공원 녹지 확대, 문화 생활 증진, 공동체 증진 항목에 대한 수치적 해석에만 집중해 설명할 경우, 낮은 점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출제진은 한편 "도시(old town)가 노후화된 주택, 문화적 편의 시설 부족, 열악한 교육환경 등, 여러 면에서 낙후된 측면이 있으나 구성원들 사이에 유대감이나 친밀도의 측면에서는 새로 개발될 뉴타운보다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고, 이것이 [가]에서 말하는 보편적 장소, 상호 작용을 통한 긍정적 유대감의 측면과 연결될 수 있음을 서술한다면 가점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또한 다른 항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수준을 보이고는 있지만, 공동체 증진에 대한 기대 역시 67.5%로 나타났으므로, 전반적으로 생활 여건이 향상된 뉴타운에 대해서 새로운 장소애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관점을 피력한 경우에도 일정한 점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논제2는 (가)와 (나)를 연계해 (라)의 '나'에게 '원미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하길 요구했다. 801~1000자 분량으로 배점은 100점 중 60점이다. 논제1이 40점 배점인 데 비하면 논제2의 비중이 더 크다.

논제1을 통해 (가)가 지니는 의미를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를 (나)와 연계하기 위해 (나)를 살펴본다. (나)는 EBS 수능특강 '국어'에서 취했다.

(나) 자본주의 경제는 무한히 반복되는 확대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잉여를 온전히 생산에 재투자한다. 확대 재생산을 위한 자본주의의 운용 원리는 ‘수단-목적 합리성’으로, 이것은 최선의 수단을 통해 목적을 성취하고 이를 다시 수단 삼아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를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소모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성장을 위해 유용성과 효용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성(聖)의 세계, 즉 초월성이나 정서, 도덕을 몰아낸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인간은 유용한 사물이 되고, 인간의 관계도 사물의 관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용성에 대한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사물들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성장 체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조건을 뛰어넘어 초월적인 것과 소통하는 체험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끊임없이 권태와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노동을 하는 순간만은 상실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권태와 우울에 대한 방어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동하지 않는 순간에 자신도 하나의 유용한 사물로 축소되었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잃어버린 내면성을 되찾고 인간관계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생산적이고 무질서한 소비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즉 목적을 위해 잉여를 질서 정연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를 아무런 목적 없이 무질서하게 소비해야 한다. 바타유는 이를 ‘무조건적 소모’라고 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의 운용 원리가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서 ‘무조건적 소모’를 통해 잉여를 소모하는 것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결국 상실한 내면성과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조건적 소모’를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소모를 위해서 인간은 유용성을 벗어난 환몽(幻夢)의 세계를 특정의 시·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전략을 택한다.
환몽의 세계는 유용성의 세계와 대립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조건을 뛰어넘어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세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환몽의 세계를 유용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예를 들어 파리의 아케이드는 황홀경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환몽의 세계의 선구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용성에 환몽의 세계를 덧칠하는 전략으로 내면성을 되살리지 못한다. 이것은 후에 백화점 등으로 발전해 나간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환몽은 유용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용성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수단-목적 합리성’을 통해 확대 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소모를 위해 선택한 환몽의 세계마저 유용성을 창출하는 수단이 된다.

제시문 (가)와 (나)는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내면성의 기반이 되는 '장소' 혹은 '장소성'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와 유용성의 균질적인 공간이 되어가는 현상을 설명한다. (가)에서 에드워드 렐프는 집이나 고향같이 한 인간이 공동체 일원으로 뿌리 내리면서 실존적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는 장소에 주목하며, 이러한 '장소애'의 공간이 사라지는 현대사회의 장소 상실 현상을 '무장소성'이라 명명한다. (나)에서는 '수단-목적 합리성'만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내면성이나 인간관계 역시 유용성의 원칙에 따라 사물화되어감을 지적하고, 얼핏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보이는 '환몽의 세계' 역시 유용성과 효율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가)와 (나)의 연계 이후 (라)를 읽으며 '나'에게 '원미동'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도록 한다. (라)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나온 양귀자의 작품 '원미동 시인'에서 취했다.

(라) 내가 얼마나 구박덩이에 미운 오리새끼인가를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따위 너절한 게 아니라 원미동 시인(詩人)에 관한 것이니까. 내가 여러 가지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는 해도 솔직히 시가 뭣인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얼추 짐작하기로 그것은 달 밝은 밤이나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에서 눈을 착 내리깔고 멋진 말을 몇 마디 내뱉는 것이 아닐까 여기지만 원미동 시인이 하는 것을 보면 매양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원미동 시인 말고도 원미동 카수니 원미동 멋쟁이, 원미동 똑똑이 등이 있다. 행복사진관 엄 씨 아저씨가 원미동 카수인데 지난 번 ‘전국노래자랑’ 부천 대회에서 예선에도 못 들고 떨어졌다니 대단한 솜씨는 못 될 것이었다. 소라 엄마가 원미동 멋쟁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 보라색 매니큐어와 노랑머리는 소라 엄마뿐이니까. 원미동 똑똑이는, 부끄럽지만 우리 엄마이다. 부끄럽다는 것은 남의 일에 간섭이 심하고 걸핏하면 싸움질이나 해 대는 똑똑이는 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미동 시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 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가 밤중에 보면 꼭 몽달귀신 같다고 서울미용실 미용사 경자 언니가 맨 처음 그를 ‘몽달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자 언니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좀 경멸하듯이, 어린애 다루듯 함부로 하는 게 보통인데 까닭은 그가 약간 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어떻게 살짝 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만은 틀림없었다. 몽달 씨는 무궁화연립주택 3층에 살고 있었다. (중략)
그런 몽달 씨에게 친구가 있다면 아마 내가 유일할 것이었다. 몽달 씨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니까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지만 우리는 엄연히 친구이다. 믿지 않겠지만 내게는 스물일곱짜리 남자 친구가 또 하나 있다. 우리 집 옆, 형제슈퍼의 김 반장이 바로 또 하나의 내 친구인데 그는 원미동 23통 5반의 반장으로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슈퍼 앞의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그와 함께 낄낄거리는 재미로 하루를 보내다시피 하였는데 요즘은 내가 의자에 앉아 있어도 전처럼 웃기는 소리를 해 주거나 쭈쭈바 따위를 건네주는 법 없이 다소 퉁명스러워졌다. 그 까닭도 나는 환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우리 집 셋째 딸 선옥이 언니가 지난달에 서울 이모 집으로 훌쩍 떠나 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김 반장이 선옥이 언니랑 좋아 지내는 것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일이지만 선옥이 언니 마음이 요새 좀 싱숭생숭하더니 기어이는 이모네가 하는 옷가게를 도와준다고 서울로 가 버렸다. 선옥이 언니는 얼굴이 아주 예뻤다. 남들 말대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지리 궁상인 우리 집에 두고 보기로는 아까운 편인데, 그 지지리 궁상이 지겨워 만날 뚱하던 언니였다. (중략) 큰언니는 경기도 양평으로 시집가서 농사꾼 아내가 되었으니 상관없지만 둘째 언니 이야기는 말하기가 부끄럽다. 둘째 언니는 처음에는 버스 안내양, 그다음에는 소시지 공장의 여공원, 그다음에는 다방에서 일하더니 돈 버는 일에 극성인 성격대로 지금은 구로동 어디에서 스물여섯 살의 처녀가 대폿집을 열고 있다. 언젠가 한번 가 봤더니 키가 멀대같이 큰 남자가 하나뿐인 방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채 잠들어 있고 언니는 그 옆에서 엎드려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지 않은가. 그만한 정도로도 나는 일이 되어가는 모양을 알 수 있었다.
(중략)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가게 옆구리의 샛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새 사내의 발길에 차여 버린 도망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김 반장이 만약을 위해 사내 주변의 맥주 박스를 방 안으로 져 나르면서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김 형, 김 형……. 도와주세요.”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빨간 셔츠의 사내가 다시 쓰러진 자의 등허리를 발로 꽉 찍어 눌렀다.
“이 새끼, 아는 사이요? 그러면 당신도 한번 맛 좀 볼 텐가?”
맥주병을 거꾸로 쳐들고 빨간 셔츠가 소리 질렀다. 김 반장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려 버렸다.
“무, 무슨 소리요? 난 몰라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서들 하시오.”
그때 바닥에 쓰려져 버둥거리던 남자가 간신히 몸을 비틀고 일어섰다. 코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슬쩍 드러나 보였는데 세상에, 그는 몽달 씨임이 분명하였다. 그러고 보니 빛바랜 바지와 물들인 군용 점퍼 밑에 노상 껴입고 다니던 우중충한 남방셔츠가 틀림없는 몽달 씨였다.
(중략)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몽달 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응. 시를 읽으면서 누워 있었더니 금방 나았지.”
금방은 무슨 금방. 열흘이나 되었는데. 또 한 번 나는 몽달 씨의 형편없는 정신 상태에 실망했다.
“그날 밤에 난 여기에 앉아서 다 봤어요.”
“무얼?”
“김 반장이 아저씨를 쫓아내는 것…….”
순간 몽달 씨가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의 그 풀려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까맣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을 작정인지 괜스레 팔뚝에 엉겨 붙은 상처 딱지를 떼어 내려고 애쓰는 척했다. 나는 더욱 바싹 다가앉았다.
“김 반장은 나쁜 사람이야. 그렇지요?”
몽달 씨가 팔뚝을 탁 치면서 “아니야”라고 응수했는데도 나는 계속 다그쳤다.
“그렇지요? 맞죠?”
그래도 몽달 씨는 못 들은 척 팔뚝만 문지르고 있었다. 바보같이. 기억상실도 아니면서……. 나는 자꾸만 약이 올라 견딜 수 없는데도 몽달 씨는 마냥 딴전만 피우고 있었다.
“슬픈 시가 있어. 들어 볼래?”
치, 누가 그따위 시를 듣고 싶어 할 줄 알고. 내가 입술을 비죽 내밀거나 말거나 몽달 씨는 기어이 시를 읊고 있었다. (중략) 시는 전혀 슬픈 것 같지 않았는데도 난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였다. 바보같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바보 같은 몽달 씨…….

(라)에서 '원미동'이라는 장소는 화자 '나'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뿌리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관계를 맺게 되는 (가)의 '근원적인 공간'이다. 화자에게 원미동은 단순한 지리명이나 익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이 아니다. 부천의 작은 동네에서 '나'는 원미동 시인 몽달씨부터 원미동 카수 행복사진관 엄씨, 원미동 멋쟁이 소라 엄마, 씩씩하고 재미있는 형제슈퍼 김 반장 등 원미동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누구인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그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지닌다. 원미동의 이웃주민들은 '나'를 둘러싼 객관적인 공간 환경이기보다는 그들과의 상호작용과 구체적인 접촉으로 결국 '나'가 존재하게 되고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근원적 공간인 것이다.

특히 '나'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원미동 공동체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몽달씨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원미동이 어떻게 '나'에게 특별한 '장소성'을 지니는 공간이 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느 날 '나'는 괴한에게 얻어맞던 몽달씨가 김 반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며, 이후 그럼에도 끝까지 김 반장을 옹호하는 몽달씨에게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소 냉소적이었던 '나'가 (라)의 말미에서 느끼는 슬픈 감정은 '수단-목적 합리성'이라는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김 반장을 외려 감싸려는 몽달씨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며, 이러한 접촉과 교감을 통해 원미동은 '나'의 정서적 기억과 유대감, 내적 경험이 녹아든 '장소애'의 공간이 된다.

원미동이 '장소적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라면,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진정성을 경험하기 어려운 '무장소성'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서울'이다. '나'의 셋째 언니는 원미동의 궁상이 지겨워 이쁜 얼굴을 무기삼아 서울 이모 옷가게로 가버리며, 둘째 언니 역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서울 구로동에 술집을 차리지만 웃통을 벗은 채 낮잠 자는 남자 옆에서 주간지를 들척일 정도로 소외되고 궁색하다. 원미동 사람들은 (나)에서 설명하는 '환몽의 세계'이자 익명과 균질의 도시인 서울로 불나방처럼 찾아들지만, 도시에 대한 환상은 고스란히 유용성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흡수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나)에서 말한 인간의 내면성 상실이나 인간관계에서의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사물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공간이며, 이 공간을 배경으로 했을 때 '나'의 구체적 경험과 기억 혹은 감각이 살아있는 원미동이라는 공간의 '장소성'으로서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올해 첫 논술 건국대, 수능이전 고사실시 수능최저 미적용 논술>
한편 건국대는 6월8일부터 30일까지 2017 모의논술을 실시, 정보제공에 각별히 신경써 왔다. 시험현장을 체험할 수 없는 온라인 시행이었지만, 최대한 많은 응시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덕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올해 논술은 모의논술과 같은 기조를 취했다. 모의논술에서도 상경계열을 제외한 인문계 대상인 인문사회Ⅰ은 2개 문항과 4개 제시문이 출제됐다. 4개 제시문 중 하나는 도표다. 비교적 간단한 도표를 제외한 3개 제시문은 모두 교과서 출전이었다. 문항 역시 실제 논술과 비슷하게 출제됐다. 모의문항은 '문제1. (가)와 (나)의 논지를 바탕으로 (다)에 나타난 사회현상에 대해 논술(401~600자, 40점)' '문제2. (가)와 (나)의 논지를 바탕으로 (라) 글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입장 논술(801~1000자, 60점)의 2개 문제가 출제된 바 있다.

응시인원 제한이 없었던 2017 건국대 모의논술은 개별 채점결과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응시자 전원에 모의논술의 출제의도 문제해설 예시답안이 담긴 'KU논술가이드북'을 제공, 큰 호응을 얻었다. 모의논술을 통해 올해 건대 논술을 예상한 수험생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할 수 있었던 셈이다.

건국대는 2017 논술전형을 통해 462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논술 경쟁률은 37.63대 1(462명 모집/1만7384명 지원)로 지난해 45.42대 1(484명/2만1983명)보다 하락했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경쟁률에 수능이전 고사실시에도 불구하고 수능최저 미적용의 매력으로 응시율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논술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가 기록, 경쟁률 131대 1이다. 이어 수의예과 101대 1, 문화콘텐츠학과 94대 1, 중어중문학과 89대 1, 국어국문학과 86대 1 순이다. 가장 낮은 경쟁률의 식량자원과학과 역시 14대 1의 높은 경쟁률이다. 이어 과학인재전공 16대 1, 축산식품생명공학과 17대 1, 물리학과 인프라시스템공학과 각 18대 1 순으로 경쟁률이 낮다.

2017 건국대 논술은 지난해에 이어 수능최저학력기준 적용 없이 논술60%+학생부교과20%+학생부비교과20%로 반영해 합격자를 결정한다.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에 대한 부담보다는 논술로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 교과/비교과의 급간별 점수 차이가 크지 않은데다 비교과의 경우 무단결석과 출결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합/불을 가르는 지점은 논술고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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