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응시나 가산점 부여 필요..'부메랑 대상 대학이 해결해야'

[베리타스알파=홍승표 기자] 수험생들의 과탐Ⅱ 기피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심화과목을 기피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수능 점수 획득이 용이한 과목으로 수험생들이 몰린 결과다. 과탐 선택과목이 3과목에서 2과목으로 줄어든 점은 과탐Ⅱ 기피현상이 더욱 만연하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된다. 심화과목을 공부하지 않은 이공계 대학생들의 과학기초 부실 우려까지 불거진 가운데 대학이 과탐Ⅱ 필수반영 등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수험생들의 과탐Ⅱ 기피현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심화과목을 기피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공부와 점수 획득이 용이한 과목으로 수험생들이 몰린 결과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수험생 외면하는 과탐Ⅱ..물리/화학Ⅱ 응시자 지난해 3000명대>
자연계 수험생들의 과탐 과목선택에서 물리Ⅱ와 화학Ⅱ가 배제되고 있었다. 오세정 의원(국민의당)이 최근 공개한 ‘수능 과탐 선택과목 선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2016수능에서 물리Ⅱ와 화학Ⅱ를 선택한 수험생 수는 각각 3479명(0.59%), 3936명(0.67%)이었다. 통상 이과생이 응시하는 수학(가)의 응시인원이 19만312명임을 감안하면 이과생의 1.83%와 2.07%만이 각각 물리Ⅱ, 화학Ⅱ를 선택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리Ⅱ는 과탐 영역 내에서 응시인원이 가장 적었고, 화학Ⅱ는 물리Ⅱ 다음이었다. 과탐Ⅰ 과목과 비교하면 물리Ⅱ와 화학Ⅱ의 적은 응시인원이 더 확연해진다. 지난해 과탐 영역에서 수험생이 가장 많이 몰린 생물Ⅰ의 14만2978명(24.43%)은 물리Ⅱ 응시인원의 40배 이상에 달한다. 생물Ⅰ 대신 물리Ⅰ을 기준으로 해도 물리Ⅱ 응시인원은 지나치게 적은 편이다. 물리Ⅰ 응시인원은 지난해 5만377명(8.61%)으로 물리Ⅱ의 14배였다.

가뜩이나 적은 물리Ⅱ와 화학Ⅱ의 응시인원은 매년 감소 추세다. 지난해 물리Ⅱ와 화학Ⅱ 응시인원은 지난해 3953명(0.66%), 5453명(0.92%)보다 각각 474명, 1517명 줄었다. 2015학년 응시인원 역시 2014학년보다 감소했다. 2014학년 물리Ⅱ 응시인원은 5758명(0.95%), 화학Ⅱ 응시인원은 1만200명(1.68%)이었다. 과탐에서 3과목을 선택해야 했던 2013년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커진다. 2013학년 물리Ⅱ는 2만1121명(3.4%), 화학Ⅱ는 3만4540명(5.56%)의 수험생이 선택했다. 2013학년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 심화과목 응시인원은 물리Ⅱ가 1/7, 화학Ⅱ가 1/9 가량 줄어든 것이다.

과탐 심화과목 내에서는 생물Ⅱ 쏠림 현상이 지속됐다. 지난해 수능 생물Ⅱ 선택 학생은 2만3405명(4%)으로 과탐Ⅱ 과목 중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했다. 지구과학Ⅱ는 1만443명(1.78%)이 선택, 생물Ⅱ 다음으로 응시인원이 많았다. 생물Ⅱ와 물리Ⅱ는 응시인원이 약 6배나 차이가 났다.

<등급경쟁 불리한 과탐Ⅱ 회피..응시인원 적고 상위권 수험생 많아>
물리Ⅱ와 화학Ⅱ 기피현상의 원인은 상위등급 획득에 불리하다는 데 있다. 자연계 수험생들 사이에선 물리Ⅱ와 화학Ⅱ가 응시인원이 적고 상위권 학생들이 많아 다른 과목에 비해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과목의 응시인원이 적을수록 상위등급 획득은 어려워진다. 10명의 학생 중 1등을 하는 것이 100명 중 10등 안에 속하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높은 성적을 얻지 못한 자연계 수험생들이 다른 과탐 과목으로 빠져나가면서 상위권 학생만 남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 물리Ⅱ 백분위 94점은 물리Ⅱ 기피현상을 부채질했다. 지난해 수능 물리Ⅱ의 만점자 비율은 11.56%(402명/3479명)였다. 백분위 기준의 탐구변환표준점수를 적용하면 물리Ⅱ 만점자의 백분위는 94가 된다. 지난해 수능 과탐 과목별 백분위는 화학Ⅱ 100, 생물Ⅱ 99, 지구과학Ⅱ 96이다. 물리Ⅱ 만점자들은 동일한 과탐Ⅱ 과목을 선택해 만점을 받았음에도 더 낮은 백분위 점수를 획득해야 했다. 과탐Ⅱ는 상위권 학생들이 포진해 있어 난이도가 조금만 쉬워져도 만점자가 몰린다. 수험생들은 더 많은 공부 시간을 투자하고도 오히려 입시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는 과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수능 탐구영역 선택과목이 3과목에서 2과목으로 축소되면서 어려운 과탐Ⅱ를 배제하고 과탐Ⅰ에 집중하는 경향이 거세졌다. 과탐 3과목을 응시해야 했던 2013학년과 지난해 수능 과탐 응시인원을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과탐Ⅰ 응시자는 선택과목 수 변경에 소폭 하락하는데 그친 반면, 과탐Ⅱ 응시자는 대폭 감소했다. 2013학년 화학Ⅰ 응시자는 13만6761명으로 전체 수능 응시자의 22.54%였고, 올해는 21.04%인 12만3126명이다. 화학Ⅱ 응시자는 2013년 2만1121명(3.4%)에서 올해 3936명(0.67%)로 감소했다.

<기피 방관한 대학, 신입생 기초학력 부족 ‘부메랑’..해결 나서야>
대학이 과탐Ⅱ를 과탐Ⅰ과 같은 기준으로 입시에 반영하는 점은 수험생들이 굳이 어려운 과탐Ⅱ를 선택하지 않는 요인이다. 과탐Ⅱ는 과탐Ⅰ보다 심화돼 복잡한 내용을 다루고 공부량이 많지만 입시에서 활용 가능한 부분은 거의 없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위 대학은 과탐Ⅱ를 외면하는 상태다. KAIST는 지난해까지 과탐Ⅰ에는 0.9를, 과탐Ⅱ에는 1을 곱해 정시에 반영했으나 올해는 가중치를 폐지했다. 서울대가 지원자들의 과탐Ⅱ 응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의대라는 대안이 있어 과탐Ⅱ 기피현상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연계열 최상위 수험생들이 서울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과탐Ⅱ에 응시할 것을 우려, 나머지 수험생들은 과탐Ⅱ 응시를 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5년부터 서울대만 필수반영해 문과 최상위 수험생들의 각축장이 됐던 국사 영역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탐Ⅱ 기피 현상은 이공계 대학생 기초학력 부족의 결과를 낳고 있다. 고교과정에서 심화된 과학과목을 공부하지 않은 채로 대학에 진학해 전공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기초과학에 해당돼 심화학습이 필요한 물리, 화학 과목 기피현상이 상대적으로 커 기초학력 부실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서울대를 포함한 상위대학에서는 신입생이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자 신입생 기초과학 특별 강좌를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과탐Ⅱ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학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과탐Ⅱ 기피현상이 학생들의 희망전공이나 학문에 대한 관심과 관계없이 입시과정의 유불리 문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과탐Ⅱ 응시가 입시에서 불리하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과탐Ⅱ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관계자는 “과탐 심화과목 기피에 대한 대학의 방관이 결국 대학 신입생의 학력저하로 환원되고 있다”며, “과탐Ⅱ 필수응시나 가산점 부여 등 대학 차원의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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