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 DGIST 입학처장 (대학원 정보통신융합공학전공 부교수)

최근 융복합이란 용어가 유행하면서 융복합 인재에 대한 정의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몇 달 전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알파고의 개발책임자 구글 딥마인드 사의 데미스 허사비스를 분석하면서, 그가 학부 과정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신경과학 전공을 한 것을 두고 많은 언론에서 융복합 인재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는 이렇듯 여러 분야를 섭렵한 융복합 인재를 키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자조 섞인 끝맺음으로 우리 고등 교육의 문제점을 한탄하는 기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 최지웅 DGIST 입학처장

기사 내용들은 우리의 교육 풍토를 돌아보았을 때 일면 일리가 있다. 대학에서 전공이 정해지고 집중해서 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폭이 작아지고 자신과 자기 분야의 잣대로 많은 것들을 보려고 하는 습관이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등학교까지 미래에 서로 다른 전공들을 가질 동기생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한다. 자연스럽게 큰 차이 없이 소통과 협력이 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대학에 입학하고 전공을 결정해서 집중적인 공부를 하면서 자기 분야의 깊이가 깊어지는 데 반해 다른 전공의 사람들과는 소통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자기 분야의 깊이가 깊어진다고 느껴지는 것도 많은 경우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기초가 허약한 상황에서 다른 주제나 문제가 주어졌을 때, 자기 분야에서 경험했던 방식과 생각, 도구를 고집해 적용하려 하는 탓에 문제가 왜곡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점들을 인정하고 새로운 교육을 시도해 한국의 허사비스들을 기르려는 입장에서는 희망이 없지만은 않다고 위안 삼는다. DGIST는 뇌공학과 같이 서로 다른 분야들이 결합해 시너지를 내야 할 융복합 연구 주제들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당연히,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함께 협력해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학부에서 서로 다른 전공을 공부했지만, 그 기간이 인생에서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던 터라, 서로간의 간극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들 사이에서 분야별 차이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며 많이 놀란 적이 있다. 물론, 전공별로 용어가 다르고 주어진 문제를 보고 해결하는 방식들이 다르며,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차이가 고착화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던 대로, 융복합 연구라는 게 어렵고 종종 초기의 큰 꿈이 사그라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란 생각에 미치곤 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그 가치를 설명하면서 긴 시간 동안 계속적인 협력을 유지하게끔 장을 만들면, 빠르지는 않더라도 2~3년 정도 후에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인하고는 한다. 초기에는 같은 용어라도 각 분야에서의 의미가 달라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씁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주어지면 각 분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합심해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최근 종종 접하는 이러한 광경들이 진정한 융복합 연구 및 교육의 모습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의 생각을 품게 된다. 데미스 허사비스와 같은 융복합 인재를 키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던 기존 기사들에 우리도 가능하다는 반론을 제기하고픈 자신감이 들기도 한다.

결국 융복합 인재들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이 가능한 유연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융복합 인재라고 말할 때 종종 여러 분야를 폭넓게 아는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폭의 넓음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꾸릴 때 각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인재들만이 그러한 개발에 참여 가능하고, 여러 분야들의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소통에 능한 열린 인재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앞으로 타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들과도 경쟁을 해야 할 우리들은 이러한 융복합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기초 공부를 탄탄히 해, 다른 분야들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고 자기가 관심 있고 흥미를 느끼는 중점 분야를 잘 파악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사회의 생산성이 저하되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의지는 신성하지만 지금처럼 너무나도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것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융복합 인재를 키워 이러한 저성장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교육도 이러한 융복합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기초를 탄탄히 하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게끔 하는 열린 교육이 필요하다. DGIST에서도 이러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보통 1학년까지 이루어지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의 기초 과목들을 2학년까지 필수로 배워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폭넓은 기초 아래에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게끔 도와주고 있다. 3,4학년 학생들은 4명 이상의 학생들이 그룹을 조직해 UGRP라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는 한편, 자연과학, 공학, 창업, 비이공계 주제들 중에서 희망하는 분야들을 접해보고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면서, 동료들과 협력하는 방법도 고민하는 시간을 부여한다. 이 때, 자신의 처음 생각과 비슷하게 적성이 맞는 경우에는 추후 심화 과정을 진행할 수 있고, 예상과 다르게 적성이 맞지 않다고 느낄 경우 4학년에서 다른 주제로 UGRP를 수행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무학과 단일학부라는 새로운 시스템 아래 보다 유연하게 운영 가능해진다. 철학, 비교역사학, 1인 1악기, 태권도 등도 배워 심신이 건강하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세계인이 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진로 교육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어떤 사람도 그 분야를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원하는 분야를 잘 발견하는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 사람 한 사람 귀한 인재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또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심신의 성장과 더불어 자신의 관심 분야도 변화할 수 있으며 그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의 교육이 필요하다. DGIST는 학부생에게 매년 희망 진로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다. 흥미롭게도 해마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달라지는 학생의 비율이 상당해 학생들의 성장과 생각의 변화를 실감하곤 한다. 이렇듯 진로와 관심 분야의 유동성이 큰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전공을 변경하거나 다른 분야와 접목하려는 시도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분위기보다는 인간 고유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사비스와 같은 융복합 인재들로 캠퍼스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러한 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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