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 (의과대학 의학부 교수)

-세속적 성취의 잣대보다 자신만의 인생수업

입추와 말복을 지나 처서, 8월말에 들어서니 굳이 기상청예보가 아니라 해도 찜통더위는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고, 이른 아침 풋풋한 풀벌레 소리를 함빡 머금고 살랑살랑 피부에 와 닿는 싱그러운 바람결은 가을이 코앞에 와있음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때맞춰 대학캠퍼스는 신선한 기운으로 용솟음하는 열매를 추수하려 안달복달난다. 학업의 이치를 궁구해오던, 이제는 제법 어른스러운 졸업예정자의 자리에 청청한 꿈 가득한 새내기 가족을 맞이할 채비로 입학처는 여름 끝자락부터 들썩들썩 수선스럽다.

우리나라 대학/교육 관계자는 물론이고 수험생, 학부모 모두가 소망하는 대학, 원하는 특정전공의 학과/부 입학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합격의 영광은 다재다능한 인재와의 치열한 경쟁을 극복한 수험생들만의 전유물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으뜸중의 하나로 회자되는 교훈이라면, 23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 내려오는 맹모삼천지교 아닐까 싶다. 통상 배움에 대한 주위 환경의 중요성, 특히 학문을 배가하기 위한 적절한 여건의 불가피성 정도로 그 의미를 이해한다. 교육특구 강남8학군을 남다르게 선망하는 것과도 연이 닿는 설명이다.

반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지혜를 겸비하신 맹모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임기응변 식의 시행착오로 세 번을 이사하셨을 리 만무하다는 시각이다. 의중에 이미 뜻하시는 바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학문 이전에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깨우침을 주기 위해 묘지 근처로 갔으며, 학문의 늪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탁상공론의 관념적인 이상주의에 머물지 않도록 치열한 생존현장인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고, 마침내 삶과 일상을 터득한 뒤에 비로소 학문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서당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배움’에 대해 재삼재사 숙고해야 함을 전하는 - 선명하게 마음에 와 닿는 - 발상의 전환이다.

최근 대입은 배움에 대한 자질/의식/소명이 부실한 가운데 취업보장, 고액연봉, 안락한 삶 등으로의 성취 가능성을 잣대로 수험생(그리고 학부모님)의 선택은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와 데이비드 케슬러는 그들의 명저 ‘인생수업’에서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라며 배움에 대한 지혜로운 뜻을 피력했다.

‘배움: 인생수업을 위한 여행’을 진지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마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인 P는 캠브리지 의대를 졸업했고, 세속적 안락함의 기득권을 포기한 채 1966년부터 15년 동안 마산결핵요양원 환자를 돌보며 대한민국 의학도들과 함께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배움의 의미를 나누었다. P를 통해 배움의 의미를 깨달았던 어떤 한국인 의사부부는 삶의 터전을 알바니아로 옮겨 열악한 환경에서 빈궁한 환자들을 돌보았다. 1990년대 극심했던 내전으로 어쩔 수 없이 소개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잠시 영국을 방문해 P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을 찾아온 벗, 고맙고 자랑스러운 의사부부에게 P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Only one life, it will soon be passed: Only what's done for ( ) will last. 오직 한 번뿐인 인생,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다. 오직 ( )을 위해 행한 것들만이 지속될 것이다.” 인생수업을 위한 여행길에 들어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선배가 다음 세대를 격려하는, 속 깊은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P는 본인이 간직한 소중한 단어로 괄호 안을 채웠고, 부부의사 역시 의미 가득한 단어를 간직하고 있었으며, 오늘도 이들은 그 단어와 메시지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가고자 현재진행형의 배움, 인생수업을 위한 여행 중이다. 중년 혹은 20~30대 패기만만한 젊은이의 말이었다면, 아직 인생을 충분히 겪어보지 못한 풋내기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말의 주체가 그 내용의 격을 다르게 함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의사/의학도와 P와의 교류는 여전하다. 이야기 속의 한국인 의사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2010년 1월14일 선종)와 함께 2009년 12월 ‘한미자랑스런의사상’을 공동 수상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로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사태를 맞이했고, 그 이후 정부와 기업 등 사회/경제 활동과 관련된 분야는 물론이고 배움에 대한 선택 취향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순수 기초학문보다는 실용/응용학문이 득세하고 있으며 수험생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취업이 보장되는 전공과 국가고시, 자격시험 등에 집중하는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은 그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해석 여부를 떠나 IMF 사태가 우리나라 백년대계인 배움의 틀마저 일순간에 흔들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대학(입시 포함)을 길들이려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교육부의 당근과 채찍, 준비/대책도 없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대학의 학문단위 조정과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학 구성원의 갈등과 일탈이 어색할 뿐만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세상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누구라도 배움을 향한 동경과 기회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욕망이 아닌, 우리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소망 속에서 그 단초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산들산들 가을바람과 함께 시작될 수시 원서접수, 배움의 기회를 고대하며 온갖 유혹과 무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신의 꿈과 비전을 견지했을 우리의 동량지재 청소년 수험생들이 배움에 대한 의의를 인식하고 동경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수업을 위해 담대한 발걸음으로 나아가기를 온 마음으로 성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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