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휘문고 교장

-방향성 논쟁보다 이제 세부적 보완
-대입경쟁 불가피하지만 고교교육 왜곡해선 곤란
-‘생산적 경쟁’ 학종..‘ 착한 경쟁’ 넘어‘ 행복한 경쟁’ 추동해야

몇 년 전에 공부를 참 잘하는 학생이 있었다. 3학년1학기까지 A라는 한 과목을 제외한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A과목 역시 필기시험은 만점을 받았지만 실습과정의 팀원전원 감점으로 인한 것이었다. 전 과목 평균 1.03 등급으로 전교수석. 당연히 서울대의대 지역균형전형에 지원했다.

유력한 전문가는 전 과목 1등급인 학생들이 전국에 100명 넘는다며 서울대 의대 지균은 전 과목 1등급이 아니면 불합격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의 평가로 3학년 교무실이 술렁거렸다. ‘실습시간에 이 학생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떠들 겨를도 없었다. 떠든 학생만 감점을 하면 되지 열심히 한 학생까지 감점하면 되느냐?’ 이 학생이 불합격하면 A과목 선생님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얘기는 바로 교장실로 들어간다. 학교장은 지역사회에서 다 아는 학생인데, 서울대를 떨어지면 학교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고 걱정했다. 교장실은 문이 없고 학교는 울타리가 낮다. 교장실에서 이런 정도의 말이 나왔으면 순식간에 온 동네가 다 아는 얘기가 된다. 점점 A과목 선생님의 짐은 무거워졌다. 대입전형은 합불이 결정되는 과정이다. 학생이 잘했으면 합격, 잘못했으면 불합격이다. 그러나 입시는 상황마다 다양한 요인이 있어 합불의 책임소재가 특정 선생님에게 집중되는 경우도 있다. 합격을 하면 학생이 잘한 것이고 불합격하면 선생님이 잘못한 것이 된다. 심한 경우 교사의 신뢰와 권위까지 흔들려 교단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 이 학생은 합격했다. 학생이나 학부모, 담임선생님은 환호했지만, A과목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할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도 대학입시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요즘 학종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조희연 교육감까지 학종의 문제점을 들고 나왔다. 학교에 따라 학급에 따라 공정하지 않은 전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이 조건이 좋은 학교는 다양한 교과 및 비교과 활동을 할 수 있고, 그것이 학생부에 기록되는 과정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아 합격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사추천서를 제출하는 데 따른 교사 부담을 감안해 추천서를 폐지하고,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학생, 학부모에게 비공개하고 이를 추천서를 대체하자고 전국교육감회의에서 제안했다.

 

 

▲ 신동원 휘문고 교장

학종은 대학에서 뽑고 싶은 학생을 자유롭게 뽑을 수 있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한 학생이 합격할 수 있는 전형이다.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주도권과 자율권을 가지고, 고교는 교과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교육까지 적극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고교는 교육과정을 바꾸고, 다양한 수업 모형을 개발하고, 평가 방법을 바꾸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학생부기재도 꼼꼼하게 하고 있다. 35년의 교단생활에서 지금처럼 학교가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인 적은 없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휘문고는 학종으로 직접적 혜택을 보는 학교는 아니다. 그러나 교장으로 필자는 학종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대입이 수능 일변도라면 도저히 엄두도 못 냈을 특별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고, 교육과정을 바꾸어 학교가 지향하고 있는 ‘큰사람 큰교육’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교 3년간은 인생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이다. 공부를 통한 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찾고 이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당연히 대입도 성공해야겠지만,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하고 학교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전형이 바로 학종이다.

 

 

그러나 학종만 놓고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첫째,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에게 부담이 너무 크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어떤 학생에게 “시험도 끝났으니 마음이 후련하지?”라고 말을 건넸다. “산 넘어 산입니다. 수행평가 과제물이 4개나 있고, 과학경시대회가 다음 주에 있어요.” 이어 “다 포기하고 수능 공부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수능은 수능대로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교내 경시대회, 수행평가, 독서 활동 등은 두세 배로 늘어났다. 학생들이 바쁘면 당연히 채점하고 평가 기록하는 선생님들은 더 바쁘고, 바쁜 아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도 편하지 않다. 어떤 선생님은 1년 내내 쉼이 없으니 이제는 지쳤고, 인내할 수 있는 한계점에 왔다고 하소연한다.

둘째, 교내 비교과 활동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강점을 끌어내고 그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시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내 농구대회를 하면 득점상, 어시스트상, 수비왕상 등을 시상한다. 학생들은 농구 경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수상을 목표로 경기한다. 도를 넘어선 경쟁이 보기 민망하고,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도 순박하지 않다. 수학이나 과학 경시대회 등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도 많고, 탐구보고서 대회에서도 남의 도움을 받아 제출하는 학생도 없지 않다. 자기소개서조차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학생도 있다.

셋째, 진학지도가 어려워졌다. 전형유형을 상당해 간소화 했지만 세부전형은 여전히 복잡하다. 같은 학종이라 해도 대학별로 모집단위별로 전형방법이 다르다. 매우 특화된 전형이기 때문에 그것을 못 맞춰주면 불합격한다. 대학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현장에서는 합격한 아이들과 불합격한 아이들의 특징을 비교해 대학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세밀한 자료를 가지고 진학지도를 한다. 이렇다 보니 대학마다, 모집단위마다, 전형마다 합격가능성이 다르다. 이렇게 복잡하니 합격 가능성을 점치기도 어렵고, 진학상담도 만만치 않다. 담임교사가 소신껏 진학지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넷째, 학부모들이 힘들어 한다. 학종은 대학 쪽에서 비용부담이 큰 전형이고, 고교 쪽에서는 손품과 팔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전형이다. 대학과 고교는 시스템적으로 적응하지만, 학부모는 입장이 다르다. 절차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 전형을 선호한다. 학종은 고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한 학기도 교과나 비교과에서 한 번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전형이다. 특히 최상위권 대학은 고교마다 1% 안에 드는 학생들만이 지원하는 탓에 한 학기라도 놓치면 합격하기 어렵다. 즉, 3년 동안 입시에 매달려서 공을 들여야 합격할 수 있다. 이 전형이 학부모들한테 인기 없는 이유는 바로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각지대에 놓인 중하위권 학생들이 문제다. 교장 입장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공부에서 한 발짝 물러 서 있는 학생도 중요하다. 학교에는 그런 학생이 절대 다수이다. 그들의 교과성적이나 수능성적은 4~7등급이다. 학교마다 60%가 넘는 인원인데, 이들이 꿈을 이루어야 학교의 미래도 있다. 이 성적 대의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기회가 있어도 이용하지 못하고,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학종에서는 이들에게 기회마저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이들이 비교과를 쌓으면 학업능력이 없어서 못 받겠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수능 2~3등급 대로 올려도 학종으로 뽑아주는 대학이 없으니 정시까지 가야 한다. 이들에게 학종은 희망고문이다. 상당히 가슴 아픈 현실이다.

어떤 설명회에서 모 대학관계자가 학교가 잘 가르치면 붙고, 잘못 가르치면 떨어진다는 말을 했다. 학교간 경쟁을 하라는 말도 들려 학교장으로서 심히 듣기 거북했다. 학교와 교사가 대입 경쟁에 매달리라는 말로 들렸다. 더 나아가 학생의 합불을 이제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대학입시의 본질은 경쟁이다. 이 경쟁이 고교 교육을 왜곡시키거나 소모적으로 가면 안 된다. 그나마 학종은 생산적 경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은 이 경쟁이 더 완화되고, 착한 경쟁을 넘어 행복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전형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경쟁보다는 협력과 배려에, 진학보다는 진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착한 입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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