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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특집] 학종의 본산 서울대 입시의 출발점 성낙인 총장현대사 관통해온 ‘선한 인재’ 롤모델.. 대내외 변혁 이끌어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학생부종합(학종)의 본산 서울대 입시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선한 인재’다. 최고의 입결로 최고학부를 지향해온 서울대는 미래 인재상의 소실점에 ‘선한 인재’를 놓고 선발방식조차 학종으로 바꾸면서 대한민국 입시를 뒤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의대와 상위대학 입시가 정시와 논술로 버티는 가운데 2018 학종시대를 겨냥한 거침없는 서울대 행보의 중심에는 성낙인(66) 총장이 있다. 학종의 본산 서울대 입시는 ‘선한 인재’ 성낙인 총장의 등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경남창녕 출생, 경기고로 유학해 서울대 법대 진학, 20대 투병생활 와중에 파리유학, 영남대를 거쳐 서울대 법대교수와 법과대학장, 서울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관통해온 성 총장의 삶 자체가 결국 미래의 ‘선한 인재’를 지향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서울대 변혁의 배경을 설명하는 듯하다.

2014년 7월 ‘선한 인재’ 성 총장 취임부터 권위적인 서울대의 탈각은 시작됐다. 그저 성 총장의 뜻을 반영한 1천원의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생활비가 곤란한 학생들 800여 명에 월 30만원의 생활비, 입학본부장까지 나서는 도서지역 설명회, 전 단과대학으로 확대한 지역균형선발... 최고의 입결과 고압적 자세의 서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 총장이 취임일성으로 내세운 선한 인재론은 상위대학과 고교현장을 바꾸면서 입시전반을 뒤흔드는 한편 서울대 내부의 변혁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인재’는 이제 지적 역량과 선한 의지를 아우른 대한민국 미래 리더들을 향한다. 서울대뿐 아니라 대학사회 전체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이면서 학부 시절부터 ‘선한 인재’의 덕목을 갖춰 선한 나라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의 총장은 물론, 동량을 양성하는 교수, 인생을 더 살아낸 선배로서 후학에 대한 당부이기도 하다.

한국 법학계 석학임에도 성 총장은 ‘법대교수 출신 서울대 총장’이라는 고압적인 인상의 편견을 스스로 깬다. 불필요한 의전을 생략하고 학생식당에 줄 서서 식사하는 등 평소 소탈한 면모 역시 파격으로 읽힌다. 법학도들 사이에서 성 총장은 깊은 존경의 대상이다. 법학계 석학으로 손색 없는 저서와 논문에 활동역량은 물론이다. 특히 헌법학 책은 현재 16판째 발간되며 법학도들의 필독서로 통한다. 모 일간지 조사 인문사회 전체 저서 중 피인용율 1위에 오를 정도로 전문성을 입증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서술이라는 찬사다. 최근에는 성 총장의 헌법학 책을 중국국가번역과제로 선정, 상하이외국어대학에서 번역 중이다. 성 총장은 서울대 총장 이전에 법학도들에 친숙한 교수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는 성 총장에 ‘성사모(성낙인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결성됐을 정도다.

서울대는 최근 2년간 입시를 통해 ‘선한 대학’으로 우뚝하다. 시골출신인 성 총장의 교육소외지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교육은 물론 입시에도 뻗어, 입학본부를 통해 ‘선한 인재’의 가능성이 있는 ‘숨은 보석’을 발굴해내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부의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기조와 맞물린 덕도 있지만 성 총장의 존재가 아니면 최근 2년간 파격적인 서울대 행보를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성 총장은 서울대가 2012년 법인체제로 전환된 뒤 선출된 첫 번째 총장으로 2014년 7월 취임했다. 총장취임 2주년, 서울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성 총장이 취임 이후 내세운 ‘선한 인재’의 현재와 성 총장이 발굴하고 가꾸어낸 ‘선한 인재’들이 이끌어갈 미래를 더듬어본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a.com

<‘선한 인재’ 서울대, ‘숨은 보석’ 발굴의 노력>
과거 특정계층만의 리그로 여겨지던 서울대는 이제 대폭 문호를 넓혔다. 전국적 지명도의 몇몇 고교가 한 해에 수백 명의 서울대생을 배출하며 전국명문으로 군림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사고 과고 외고 등 특정 고교유형뿐 아니라 일반고 특히 섬 지역의 일반고까지 서울대 진입이 가능한 시대로 바뀌었다. 여전히 최고학부 서울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자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서울대가 ‘균형’과 ‘기회’를 강조하며 열어 온 입시는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시대 변화를 이끄는 동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학종의 본산 서울대 입시의 설계는 수시에 집중되어 있다. 매년 75% 가량의 인원을 수시에서 선발한다. 상대적으로 파격적인 수시비중은 물리적 ‘균형’의 시각에선 의아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오히려 홀대 받아온 일반고 출신의 서울대 문호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균형의 접근이 돋보인다. 과고 영재학교와 자사고 국제고 외고에 예고 체고까지, 현재 고입전형을 통해 한 차례 경쟁을 이겨낸 학생들이 포진한 고교유형도 이미 포화상태이고 보면 일반고 출신의 문호는 녹록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수능위주 정시가 오히려 일반고생들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일부 시각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 학종으로 논란을 단칼에 정리한 것은 물론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을 확대하고 도서지역에 입학본부장이 직접 방문해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큰 틀의 행보는 성 총장의 ‘선한 인재론’이 일궈낸 성과들이라 할만하다.

서울대는 올해 실시하는 2017 전형에서 전 단과대학으로 지역균형선발(지균) 대상을 확대한다. 그간 지균으로는 선발하지 않던 자유전공학부, 미술대학, 음악대학, 체육교육과에 지균 선발을 도입한 것이다. 전체 모집정원 중 23%(735명)를 지균으로 뽑게 된다. 성 총장의 의지에 의해서다. 서울대 입학본부장이 직접 도서지역을 방문, ‘숨은 보석’을 찾아내고 있는 변화 역시 성 총장 취임 이후부터다. 성 총장이 주장해온 ‘선한 인재’를 발굴한다는 데 그간 고압적 자세였던 입시까지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성 총장 취임과 함께 입학본부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권오현 본부장은 지난해 올해 지속적으로 전남 신안군 완도군 등 도서지역 고교를 직접 방문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고교에서 서울대 합격생이 배출되는 성과도 이미 거뒀다.

가만히 있어도 최고대학으로 견고한 서울대가 어쩌다 섬 지역에까지 입학본부장이 직접 나서 ‘서울대 홍보’를 하게 되었을까. 성 총장은 “서울대는 가급적 기회를 골고루 부여한다는 입장”이라며 배경을 설명한다. “적어도 서울대는 국민이 사랑하는 대학이라 여긴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기개를 지닌 인재를 널리 발굴해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선한 인재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잠재력을 갖춘 소외계층의 인재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하는 입학제도,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잠재력을 가진 소외계층의 인재를 적극 발굴하는 입학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입시제도의 큰 틀을 갑자기 바꾸겠다는 게 아니다. 지역균형선발이나 기회균등선발 등 기존의 소외계층 학생들을 배려하는 입시 제도를 보완하고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대도시 부유한 가정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공부를 잘한 ‘잘 가꿔진 보석’도 있지만, 도서벽지 어려운 환경에서 원어민 영어교사 없이 영어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못지않게 학업성취도를 보여준 ‘숨은 보석’에 대한 교육도 잘 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대학의 과제다.

입학본부장이 배 타고 도서지역 고교를 방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시에선 경제적 여건을 떠나 두루 서울대에서 교육 받을 기회를 열어야 한다. 대도시든 시골이든 지역별로 한 학교에 2명씩 추천을 받아 지역균형선발을 하고 있다. 교육특구 출신 학생도 입학해야 하겠지만, 도서벽지 학생들도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집안이 어렵다고 서울대에 못 오는 인재가 없어야 한다. 섬 지역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고교생들도 학업성취도와 잠재력이 높을 경우 서울대는 선발하려 한다. 서울대 음대 미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예고 출신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예고 출신이 아니더라도 예술에 잠재력이 있으면 서울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줘야 한다. 잠재력은 정시가 아닌 수시에서, 특히 일반고생들은 수시 지균에서 빛을 볼 수 있다. 지균이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하나의 소중한 요인이라면, 찾을 소지는 만들어야 한다. 모든 단과대학에 지균을 도입하라 했다. 올해 입시부터 자유전공 음대 미대 체육교육과에도 지균을 도입한다. 헌법학자로서 그간 국가정치제도에도 균형이론을 추구해왔다. 입법 사법 행정의 균형이 잘 이뤄져야 하듯 대학입시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균형이 무너지면 부조리와 부패가 쌓인다. 서울대는 가급적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 ‘선한 인재’인가>
성 총장의 가치관은 성 총장이 2014년 7월 취임하면서부터 줄곧 강조해온 ‘선한 인재’라는 화두로 이해된다. 취임사는 물론 신년사와 입학식 졸업식의 축사 등에 성 총장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선한 인재’에 대해 성 총장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서울대의 책무”라는 주제로 한 치의 숨돌림도 없이 설명한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더불어 사는 데 익숙지 않다. 형제 자매들과 한 방에 어울려 옹기종기 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 생활에 익숙했던 과거와 다르다. 대체로 한두 명의 자녀가 중심이 되는 가족체제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이미 공동체적 생활을 경험해온 과거와 달리 현재의 대학생들은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몇 개 고교들이 상위권 대학의 진학을 휩쓸던 과거와 달리 전국적으로 다양한 고교에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대학에 들어와서 새로운 경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다. 공동체적 경험이 많지 않아 취직해서도 ‘혼밥’ 먹는 데 익숙하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전교1등만 하다 보니 대학 들어와서 F학점의 충격을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젊은이가 이끌어갈 사회는 어떨까. 단순지식은 조금 나을 수 있겠지만, 공동체 리더는 아니더라도 일원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재작년 취임사에서부터 ‘선한 인재’라는 화두를 던졌다. ‘선한 인재’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인간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 속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데, 자기만의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기주의보다는 이타주의, 개인보다는 공동체적 가치, 공동선 공공선 공익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 공동체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인재, 달리 말하면 선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 ‘선한 인재’는 마음이 착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적 역량과 선한 의지를 함께 지닌 모습을 의미한다.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인 자양분으로 삼아 서울대가 제공하는 교육기회를 충분히 활용한 후 자기자신뿐 아니라 주변까지도 성장시킬 수 있는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자라면 ‘선한 인재’에 속한다. 미래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시대를 선도하는 전문성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선함으로 무장한 인재다.

서울대는 선한 의지가 충만한 인재를 양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무분별한 경쟁과 과도한 물질 만능의 시류에 편승한 개인성취 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재, 선한 의지가 우리의 의지작용 전체를 관통하고 생활의 근본을 구성하도록 확립하는 것이 서울대 이성의 도덕적 사명이라 여긴다. 서울대생은 전공을 불문하고 40대가 되면 대부분 자기 조직의 관리자가 된다. 서울대생이 ‘지식 상인’만 되어선 안 되며, 희생과 봉사 정신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자기 팀원, 협력처 직원을 배려할 수 있으려면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조직관리자가 선한 모습을 보여야 선한 조직이 되고, 선한 사회가 되고, 대한민국이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된다.

서울대생이 똑똑하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잘 안다. 다만 그것만으론 사회요구에 부응할 수도, 서울대와 서울대생이 사랑 받을 수도 없다. 똑똑한 머리에 선한 마음,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야 한다. 바로 ‘선한 인재’이고, 내가 우리학생들을 ‘선한 인재’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이다.

우리학생들이 지성뿐 아니라 미덕과 연민을 갖춘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1~2년 안에 당장 끝낼 수 있는 차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런 방향을 조성해간다는 차원으로 교수들이 합동강의를 하고 있다. 인간을 주제로 한 강좌다. 취임직후 ‘인간학개론’, 작년엔 ‘행복학개론’의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서울대학생들은 모두가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에 고민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성찰을 학생 때 한 번 해보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한 번 들었다고 천지개벽하지는 않겠지만, 관련한 생각을 해보고 판단해봤다는 것과 아무 의식 없이 지내왔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선한 사람들을 키워내는 건, 대학에 한정된 게 아니다. 위기가 상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전 인류에 해당하는 화두라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만들었으면, 그 공동체 속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내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 본다.”

<교육소외계층에 각별한 ‘선한 눈길’>
성 총장의 ‘선한 인재’ 육성 의지는 교내에서도 발현되고 있다. 지난해 언론을 통해 집중조명되면서 타 대학에도 영향을 미친 ‘1천원의 아침식사’ ‘1천원의 저녁식사’를 비롯, 소득분위에 따라 매달 생활비 30만원에 등록금까지 지원하는 ‘선한 인재 장학제도’의 시행이 대표적이다. 원가보다 적은 금액인 1천원의 식사는 원가부담은 있을지언정 학생들에게 ‘총장밥’이라 불리며 호응이다. ‘선한 인재 장학제도’는 2011년부터 운영, 소득1분위 이하 학생들 가운데 신청자 중 매년 300명 정도에만 지급해온 ‘SNU희망장학제도’를 신청자 전원으로 확대시킨 것으로 작년 이미 늘어난 30억원 이상의 예산에서 올해 예산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담은 총장 몫이지만 괘념치 않는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섬/시골 출신이거나 어려운 가정 출신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도 어촌 출신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남 하의도 농민의 아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졸업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동지상고 야간반을 졸업한 뒤 대학을 나왔다. 명석한 인재들이 적어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선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총장으로서의 사명이자 목표다. 어려운 환경의 대학생 중에서도 큰 리더가 배출될 수 있는데, 경제적 장벽이 이들의 꿈과 진로를 가로막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총장 이전, 교수로서도 보면 가난한 학생들이 너무 많다. 법과대학장 시절,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포기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대학으로 간 지방학생이 있었다. 가난 탓이다. 10년쯤 전, 어느 군청 소재지에서 올라온 학생이 학사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학생을 불러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어렵게 공부시켜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행실이냐 나무랐더니, 사실은 등록금과 하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 3개를 하느라 학업을 챙기지 못했다 하더라. A학점을 받은 학생을 제치고, 나에게 할당된 전액장학금을 이 학생에게 줬다. 이 학생은 여건이 되니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적이 오르더니 노력 끝에 결국 판사가 되어 있다. 결혼할 때 주례까지 봐줬을 정도로 인연이 생겼다. 과외 한 번 못 받고 서울대 들어온 역량 있는 학생들에겐 조금의 지원만으로도 우리사회의 동량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당장 의식주 문제 해결이 어려운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비가 없어서 서너 건의 과외를 해야 하는 등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할애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줘서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작년 3월부터 ‘선한 인재 장학제도’를 통해 해당 학생 전원에게 월 15만원 안팎의 기숙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소득분위에 따라 등록금도 면제한다. 작년에 해당 학생이 750명이었고 올해는 그간 숨어있던 학생들까지 발굴되어 1년 만에 100명이 늘어 850명이나 된다. 작년 6월부터 아침식사를 1천원에, 올해 3월부터 저녁식사도 1천원에 제공하는 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식비도 한계비용으로 부담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서다. 배가 고프면 모든 일에 움츠러들게 되어 있다. 배가 부르면 몸이 세워진다. 서울대가 지원하는 금액이 적다 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기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서울대생쯤 되면 재벌 아들 부러울 게 없지 않을까 한다. 열심히 생활한다면 미래에 어려울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 총장의 ‘선한 눈길’이 머무는 시야는 다양하다. 1년에 두 차례 서울대 전 교직원이 갹출해 관악 일대 보육원에 성금을 보내는 과정에, 성 총장은 보육원 출신 서울대생 두 명을 찾아 학업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지만, 배경이 궁금해 질문을 던졌고 조금의 답변을 받았다. “그간 성금을 온라인 계좌로 송금해왔다 하는데, 취임 이후 보육원에 직접 다녔다. 구청이 추천한 곳이라 해서 일괄적으로 송금하기보다는 직접 가 보고 성금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없는 곳이라면 중단하고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더 하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에서다. 당시 찾아낸 보육원 출신 서울대생은 내가 직접 찾아간 보육원 출신이 아니라, 보육원 앞 쉼터에서 만난 학생이었다. 그 전엔 시스템을 몰랐는데, 보육원 아이들은 고교를 졸업하게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더라.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요즘은 나라에 조금 여유가 생겨서인지 보육원 앞에 방을 한 칸 얻어 그 학생들이 머물게 해 주더라. 보육원에 방문하는 과정에서, 여기 보육원 출신은 아닌데 보육원 앞 셋방에 서울대생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수소문 끝에 그 학생에 다른 학생 한 명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서울대생이라 해서 모두 특정계층의 학생들이 아니다. 생활이 힘겨운 학생들도 많다. 이 같은 학생들을 더욱 많이 발굴해야 한다.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지만 굉장히 높은 잠재력을 갖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젊은 교수들에 ‘조건 없는’ 지원.. 노벨상 기대>
성 총장의 최근 행보 중 단연 부각되는 건, 올해 도입한 ‘창의선도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이다. 젊은 교수들에 매년 1억원(실험분야 1억원 내외, 이론분야 3000만원 내외) 최대 9년간 연구비를 지원한다. 한국사회의 성과주의를 지적,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사업의 지원대상은 서울대 임용 2년 이내 부교수와 4년 이내 조교수다. 최대 9년간 지원으로, 3년마다 단계평가를 통해 계속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지원인원은 20~30명으로, 올해 예산은 20억원이다. 현재 16개 대학(원) 113개 과제를 접수했으며, 1차 2차 평가를 거쳐 선발할 예정이다.

성 총장은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장기 투자”라 설명한다. “아직 빛을 보진 못했지만 촉망되는 유망교수들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선발만 되면 조건 없이 지원한다. 그간 대한민국의 연구문화는 단기성과를 재촉하며 과도한 조건을 건 측면이다. 단기적인 정량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호흡으로 본인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시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교내에서부터 만들어보고 싶었다. 파격적이고 창의적이어서 외부 연구비 수주가 당장은 어렵지만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라면, 믿고 기다리며 지원해주고 싶었다. 내 임기에 시작해서 차차기 총장 재임쯤에는 빛을 볼 것이라 생각한다. 급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10년 후 서울대, 더 나아가 10년 후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연구성과를 산출할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젊은 교수들에게도 성 총장은 ‘선한 인재’의 덕목을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 된다’.. 기(氣)를 키워라>
성 총장은 수험생들에게 “기개를 키우라”고 조언한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서울대 학생들에게 서울시민도 아닌, 신림동민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재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당부해왔다. 서울대에서 연마한 지성과 덕성을 펼쳐나가면 개인의 삶과 함께 공동체의 삶도 변화할 것이라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못지않게 국가와 사회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한 인재가 되길, 스스로 좋은 삶을 추구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는 삶을 영위하길 당부해왔다.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곧 명산이 된다)’이라 했다. ‘선한 인재’로 성장한 우리학생들이 아름다운 품성과 뛰어난 능력의 향기를 통해 이 사회를 품격 있는 명산으로 가꿔가리라 확신한다.

중고등학생들에겐 운동을 권한다. 한동안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표어가 유행했는데, 세월이 지나도 맞는 얘기다. 옛날엔 ‘지덕체’라 했지만, 이젠 ‘체지덕’으로 가야 한다. 공부도 체력이 뒷받침되어 몰입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헬스클럽 등 만들어진 공간에서 운동할 게 아니라 야외에서 한 바퀴 뛰어보라. 땀 흘리고 샤워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자신의 몸을 몰입 가능한 쾌적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몰입하면, 어머니가 억지로 시킨 과외보다 더 효과가 있다. 부모님들도 자녀를 한 시간 더 책상 앞에 붙이려 할 게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운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잠 안 오는 약 먹고 보약 먹는다고 건강한 육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감기 걸리면 바로 병원 가야 하는 허약함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학생들이 손 안에 스마트폰 쥐고 세상을 기웃거리며 좁쌀처럼 작아질 게 아니라 대자연을 품에 안는 기개를 가졌으면 좋겠다.”


◆성낙인 총장은=195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프랑스 제2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19년간 영남대에서 재직하다가 1999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대 법과대학장, 평의원회의원 등 학내 여러 보직을 거쳤다. 2014년 7월 26대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법대출신 서울대 총장으로는 1995년 20대 이수성 총장 이후 19년 만이다.

한국 법학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아 왔다. ‘헌법학’ ‘헌법소송론’ 등 30여 권의 저서와 논문 200여 편을 냈다. 프랑스 유학 시절인 1987년에 쓴 논문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각료제도’는 당시 아시아권 학자로는 최초로 프랑스 ‘정치헌법학전서’에 실리기도 했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헌법학자가 할 일이 많다”는 소신을 가져온 성 총장은 입법 사법 행정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공적 영역의 활동에 참여해왔다. 성 총장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위원장 교수’일 정도다. 한국공법학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대검 진상규명위원장, 콘텐츠분쟁조정위원장, 경찰위원회 위원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 활발한 대외활동이다. 현재 세계헌법학회 한국지부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좌우명은 ‘인격체로서의 인간 존중’이다. 총장 이전에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힘써온 교수로 알려져 있다. 법대생들이 만든 ‘성낙인을 사랑하는 모임(성사모)’도 있을 정도다. 정부의 정보공개위원장을 맡고 있는 수업에서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한 학생이 “교수님, 그 동안 쓰신 판공비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합니다”라고 당차게 요구했다는 일화는, 성 총장의 소통 마인드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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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기자  inca@verit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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