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풍 서강대 총장 인터뷰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유기풍(65) 서강대 총장은 대학의 운영방향에 앞서 교육방향을 강조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학교육의 개혁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사회를 향한 학자로서의 제언이자 본질에 관한 통찰이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ICT혁명 이후 인공지능의 미래까지 관측되는 상황임에도 대학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강한 자각이 깔려있다. 유 총장은 ‘열린 교육혁신’을 제창한다. 학벌중심주의 공급자중심교육 학과장벽의 닫힌 틀에서 벗어나 열린 반성을 토대로 입시에서 자유로운 평생교육, 동기와 용기를 주는 수요자중심교육, 인문학과 과학이 균형을 이루는 융합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특히 4년제 오프라인 대학에 안주하는 현재를 경계한다. 유 총장은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에 대학도 닫힌 문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이제 교육은 닫힌 강의실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로 열린 공간에서 열린 교육을 해야 한다”며 ‘1년제 마이크로 대학’ ‘온라인 대학’이라는 지금껏 없던 대학의 갈 길을 풀어놓는다.

유 총장은 보수적인 대학 풍토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인물이다. 선이 굵다. 두둑한 배포와 거침 없는 화술 역시 단단하다. 수백 편의 논문에 수백 억원 수준의 개인연구비를 따낸, 제자들과 밤 새워 논문을 써가며 ‘제자 잘 키우는 교수’의 입지에, 학연 등 ‘떼거리’에 휘말리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학교를 이끌어가는, ‘할 일 다 하고 할 말 다 하는’ 총장이다. 공대 엔지니어 출신으로 실용을 추구하는 유 총장의 존재는 조용한 변혁으로 대학가를 선도하는 최근 서강대의 행보의 정점에 있다. 유 총장이 꿈꾸는 서강의 미래는 어쩌면 구조조정으로 길을 잃은 대학판에서 새로운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에 의존하지 않는 대학의 재정 자립”을 강조하는 유 총장은 교수들에 ‘실용 연구력’을 강도높게 밀어붙인다. 일종의 ‘권위’를 상징하는 관용차 ‘에쿠스’를 매각, ‘카니발’로 갈아탄 데서부터 철학의 한 단면이 보인다. ‘서강고’라 불릴 만큼 강도 높은 서강대의 교육에 대해 유 총장은 ‘서강고 2.0’을 강조한다. “공급자 중심의 일 방향 1.0에서 서강대는 쌍방향의 2.0으로 나아간다. 모든 걸 가르치기보다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 자발적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서강의 3.0은 서강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발현될 것이란 기대다.

서강이 선보일 3.0은 서강뿐 아니라 유 총장이 올 3월부터 회장으로 나선 ‘서울총장포럼’의 서울지역 32개 대학의 공동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회원 대학들은 ‘공유대학’의 체제로 상호 학점인정에 합의, 여름 계절학기부터 학점교류를 시행하고 2학기에 본격화한다. 올 하반기를 목표로 한 곳에서 강의신청 등이 가능한 공동플랫폼 마련까지 추진하는 등 교수들의 무한경쟁 체제를 이끌고 있다. 포럼회장 유 총장에 거는 기대가 부푸는 또 다른 배경이다.

유 총장은 52년생 경기양주 출신이다.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거쳐 국비유학으로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와는 유학직후 84년부터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로 인연을 맺었다. 화공생명공학과장 학생처장 기획처장 공과대학장 산학부총장 등 주요보직을 거쳐 2013년 2월부터 서강대 총장으로 자리한다. 대외적으로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통일준비위원회 통일교육자문위원, 한국국비유학한림원 정회원, 한국공학한림원(NAEK) 정회원, 한국 A.V. Humboldt-Stiftung Club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초임계유체학회 초대회장, 한국초임계유체학회 초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작년 3월부터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원장으로서 공학교육과 관련한 국내외 강연도 이어가고 있다. 올 봄부턴 서울소재 32개 4년제 대학의 총장 협의체인 ‘서울총장포럼’의 회장으로 자리하며, 시대급변에 대응하는 대학발전의 공조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수많은 수상 중 ‘2014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인재경영부문)’와 ‘한국화학공학회 학술지 게재논문 해외 최다인용 논문상(1998)’이 돋보인다. 연초 신년을 열며 낸 책 ‘마음을 열면 혁신이 온다’는 총장이 아닌 학자로서,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물론 여전히 갇힌 세상에 살고 있는 일부 기성세대들에게 보내는 혁신의 메시지로 인상적이다.

유기풍 서강대 총장 /사진=최병준 기자 ept160@veritas-a.com

- 최근 총장협의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서울총장포럼’은 학점교류라는 결단을 내린 데서 대학간 장벽이 사라지는 미래가 예견될 정도다
“그간 총장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모 매체 논설위원은 ‘대학총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더라. 맞는 말이다. 대학들은 현재 학령인구감소와 재정난 등의 위기에 봉착해있다. 할 말이 많아도 사회적 시선에 나서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총장들이 한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내기보다는 목소리를 모아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재정난의 측면은 현 시점에서는 대학자생의 노력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게 맞다. 대학위기의 본질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교육체제다. IT혁명 이후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 경계랄 게 없는 ‘초연결시대’에 당면했음에도 대학간 경계, 학문간 경계의 골이 깊다. 대학간 경계를 허무는 노력으로 서울총장포럼이 지난해 발족했다. ‘초연결시대의 열린 협회’를 지향한다. 올 여름계절학기부터 시행하는 학점교류는 그 출발이다. ‘공유대학’으로 명명, 울타리 안에서 각자 고립되어 경쟁할 게 아니라 상생하자는 취지다. ‘공유대학’은 그간 닫혀져 있던 대학간 경쟁에서, 열린 콜라보로 상생해야 한다는 포럼취지의 출발이다. 서울에서 성공하면 지방으로도 확대되는 ‘나비효과’도 기대한다. 소위 대학서열에 의한 쏠림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교수들이 각자 강의역량을 열과 성을 갖고 제고해가는 데 신선한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한다.”

- 대학이 봉착한 위기란
“대학위기로 자금난의 사정이 회자되지만, 그보다는 학령인구의 감소와 ICT혁명 이후 지식습득방법의 변화가 대학들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1등 교육기관만이 생존가능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고교졸업자수가 2013년 63만명 가량에서 2023년 40만명 가량으로 급감한다. 현 대학정원이 유지될 경우 당장 2018학년 대입부터 정원이 고교졸업자수를 초과한다. 대학의 덩치는 그대로인데 대학에 들어올 학생들이 크게 줄면서 상당수의 대학들이 도태될 가능성이다.

게다가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ICT혁명 이후 전 세계에 경계는 사라졌다. 무크(MOOC)를 보라. 시간강사가 가르치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둘 중 어떤 강의가 잘 팔리겠는가. 소셜 미디어를 보라. 정보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열어볼 수 있게 됐다. 지식전달의 대부분은 ‘위키피디아’에 맡겨도 될 정도로 지능정보 디지털 시대에 들어섰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해내는 배움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존 배움 방식의 혁신부터 이뤄야 한다. 미래 창의시대의 교육은 과거 산업시대의 공급자중심의 정형화된 교육에서 멘토-멘티 튜터-튜티의 양방형으로 흐를 것이다. 교수가 ‘원맨쇼’하면 안 되고 학생에 동기를 부여하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서강대는 선제적으로 나아가려 한다. 기존의 교육이 공급자중심의 단일방향 ‘1.0’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걸 다 가르치기보다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 자발적으로 가게 하는 양방향 ‘2.0’으로 가게 하겠다.”

- 연초 출간하신 책 ‘마음을 열면 혁신이 온다’는 ‘열린계’라는 공학용어를 전반에 걸쳐 인문사회학적으로 풀어내면서 학문을 넘나드는데다 학문간 경계의 ‘틈’을 파고든다는 문학적 재치도 엿보였다
“현재 우리의 대학교육은 문이과가 비대칭되는 문제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은 인문학과 과학을 두루 섭렵했다. 인문주의 과학에 익숙하다. 미켈란젤로가 대표적이다. 반면 우리의 교육은 인문학은 ‘과학문외한’을, 과학은 ‘인문문외한’을 당연시하는 풍토다. 세계적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과학기술과 인문학 철학 예술 사회과학의 창조적 통섭시대라고 ‘미래지능 정보혁명’을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 양쪽 모두 닫힌 틀에서 벗어나 겸허한, 열린 반성을 해야 한다. 균형이 미흡한 인문학과 과학 사이엔 ‘섬’이 있다. 마음을 열고, 그 섬 사이 틈에 가고 싶다는 학자적 입장으로 쓴 책이다.

책의 부제가 ‘열린 계 프로젝트’다. ‘열린 계’는 내가 전공한 ‘열역학’의 기본개념 중 하나다. ‘닫힌 계’나 ‘고립된 계’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는 광활하고 세상은 넓다. 매우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럴 때 어떤 관심의 대상(계)이 대상의 크기를 규정하는 경계를 통해 주위 또는 계를 둘러싼 나머지 우주와 무엇이든 자유로이 소통하고 교환할 수 있는 어떤 제약도 없는 계를 ‘열린 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간 여러 공학적 연구들을 수행하면서, 이 열린 계 논의를 열역학의 좁은 범주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부터 전문적인 업무수행에 이르는 다양한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학적 논리에서 삶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열린 논의를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여기저기서 통섭이나 창조적 융합을 강조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열린 계 자세를 꼽고 싶다. 인문학을 배제한 자연과학은 무식하고, 과학을 무시하는 인문학은 공허하다. 이 시대 이 땅의 청년들에게 더 큰 세상으로 마음껏 뻗어나갈 열린 자기혁신의 기초체력이 넉넉하길 바란다. 열린 계의 시각으로 닫힌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녔으면 싶다. 그래서 견고한 전공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대중과 열린 계를 같이 호흡하기 위해 책을 썼다.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에 대학도 닫힌 문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이제 교육은 닫힌 강의실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세계로 열린 공간에서 열린 교육을 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방 안에서 하버드대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대학의 열린 계다. 취업도 굳이 국내에만 한정할 필요 없다. 도전하지 않기에 무지한 것이지 한 걸음만 바깥세상으로 진일보하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경쟁에 쫓기는 사람은 닫힌 계에 갇혀있는 사람이다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가치를 발견하려는 사람이 열린 계 사람이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며 한숨짓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열린 계 정신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정신을 우리 학생들에게 먼저 심어주고 싶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